국정원 기록물 관리 제멋대로

2013년 07월 11일 11시 06분

최근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공개해 물의를 빚고 있는 국가정보원이 관련 법령에 따라 국가기록원에 이관해야 할 기록물을 한 건도 이관하지 않은 것은 물론 생산 기록물 목록조차 넘기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와 함께 국정원이 홈페이지에 올리는 정보목록의 문서 건수가 이명박 정부 들어 급격히 줄어든 것으로 드러났다. 

뉴스타파가 정보공개센터와 함께 국가기록원을 상대로 정보공개를 청구한 결과 국정원은 보존기간 30년 이상이 된 기록물 목록을 단 한번도 국가기록원에 통보한 적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관련 법령에 따라 매년 국가기록원에 통보해야하는  비밀기록물 생산, 해제 및 재분류 현황도 통보한 적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71조)에 따르면 공공기관은 비밀기록물 목록 중 보존기간이 30년 이상인 기록물은 매년 국가기록원에 통보해야 한다. 또한 매년 전년도 비밀기록물의 생산, 해제 및 재분류 현황을 통보해야 하지만 국정원은 이를 전혀 지키지 않은 것이다. 

국정원은 지난 7월 2일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공개한 행위는 적법하다고 주장하며 “국정원이 생산, 관리, 보유하고 있는 기록물, 자료 등은 공공기록물”이라고 밝힌 바 있다. 따라서 국정원 역시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매년 기록물 생산현황과 보존기간이 30년 이상인 기록물 목록을 국가기록원에 통보하고 일정 기간이 지난 후에는 기록물을 이관해야 한다. 

그런데 정작 남북정상회담 회의록같은 주요 기록은 공개하면서 기본적인 기록물에 대한 사안은 해당 기관에 통보하지 않는 이중적 행태를 보인 것이다. 

또한 국정원이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있는 정보목록의 문서건수도 2007년 1941건에서 2008년 1520건, 2009년 1038건, 2010년 1028건, 2011년 920건, 2012년 688건으로 급격히 줄었다. 특히 지난해부터 정보목록에 오른 문서는 모두 비공개 문서였다. 

최근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두고 국정원과 참여정부 관계자 사이에 생산 시기가 다르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진본 논쟁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애초에 국정원이 국가기록원에  비밀기록물 목록 등을 제대로  통보하고, 국가기록원도 관련 자료를 보관하고 있었다면 이런 불필요한 논란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국민은 정부나 공공기관이 생산하는 기록물을 통해 그들이 하는 일을 파악하고 감시할 수 있다. 후대의 역사적 평가도 기록물이 판단 기준이 된다는 점에서 국정원도 기록물 관리에 있어서 치외법권 지역에 머무르지 않도록 철저한 관리, 감독이 필요한 것으로 지적된다.

<앵커 멘트>

2007년 남북정상회담 NLL 발언 공방이 회의록 진위 여부에 대한 논란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국정원이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같은 주요 기록은 공개하면서 기본적인 기록물에 대한 사안은 해당 기관에 통보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는데요. 

이번 사건은 국가기록물이 얼마나 허술하게 관리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현미 기자가 보도합니다.  

국정원은 지난 7월 2일,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공개가 적법한 행위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국정원이 생산, 관리, 보유하고 있는 기록물은 공공기록물이다, 따라서  공공기록물관리법 등에 따라 2급 비밀인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원본을 일반문서로 재분류해 공개한 것은 적법하다' 라는 논리였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국정원은 이렇게 강조한 공공기록물관리법을 그 동안 얼마나 지켜왔을까?  

뉴스타파는 국정원의 기록물 관리 실태를 살피기 위해 정보공개센터와 함께 국가기록원에 정보공개를 청구했습니다.

2008년부터 2012년까지 국정원의 비밀기록물 생산, 해제 및 재분류 현황을 국가기록원이 제대로 통보받았는지 또 보존기간 30년 이상의 국정원 기록물 목록이 있는 지를 물었습니다. 

국가기록원의 답변은 통보도 받지 못했고 목록도 없다는 것. 

다만 2010년과 2011년의 기록물 생산건수만 통보받았다고 밝혔습니다.  

“둘 다 문제인 거예요. 의무를 둘 다 지키지 않고 있는 거죠. 관리 감독의 의무가 있고 통보의 의무가 있는데 둘 다 자기 의무를 지키지 않은 거죠. 당연히 국가정보원도 국가기록 관리의 제도적인 제재 조치를 받아야 되는 거죠. 자기들만 통보를 하지 않고 당연히 지켜야 될 법적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문제인 거죠.” 

하지만 현행 공공기록물 관리법에는 법을 지키지 않아도 제재를 가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공문도 시행하고 그런 조치를 취하고 있지요. 공공기관 단체 상호 간에는 일반인과 달리 행정조치를 취하거나 이행 강제한다는 그런 규정은 없지 않습니까.”

국정원은 특히 자체 보존기간이 지나 국가기록원으로 보내야 하는 기록물도 이관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공공기관은 보존기간이 30년 이상으로 분류된 기록물을 생산된 지 10년이 지나면 국가기록원으로 이관해야 합니다. 

다만 국정원은 이를 50년까지 연장할 수 있지만 50년이 지난 기록도 넘기지 않고 있습니다. 

“권력기관들은 그 기록물을 생산할 때부터 공개를 원칙으로 생산하고 부득이하게 국가의 안위를 위해서 일부 필요하다면 비공개를 하고 있는데 비공개도 법률에 의해서 철저하게 제한돼 있고 제한 기간이 끝나면 바로 공개하는 게 원칙인 거죠. 당연히 국가기록원이 이관받아서 하나씩 공개하면서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해줘야 하고 역사학자들이 평가할 수 있게끔 가줘야 한다.”

국정원은 국민들에게 직접 공개하는 정보도 대폭 축소하고 있습니다.

국정원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정보 목록입니다. 

국정원은 2005년 9월부터 정보 목록을 올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2011년 5월부터 공개 문서 건수가 줄어들더니 계속 같은 제목의 문서 목록만 올라오고 있습니다. 

공개로 분류돼 있던 ‘오늘의 테러정보’는 2011년 9월부터 비공개로 바뀝니다.

실제 국정원이 정보목록에 올려놓은 문서 목록은 2005년 1천414건에서 지난해 688건으로 줄었습니다. 

목록 건수가 급격하게 줄어든 시기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재임 시기와도 맞물립니다. 

문서 공개 비율도 지속적으로 줄어 2005년 비공개 문건은 35%였으나 지난해엔 100%가 됐습니다. 

“2011년 이후 모든 정보들이 비공개이고, 정보목록의 내용도 굉장히 축소되고, 행정정보 빠지고 국정운영정보 빠지고 굉장히 기본적인 정보만 포함돼 있는 것이거든요. 이런 것은 국민의 알권리를 근본적으로 침해하는 것이고 국민이 국가정보원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궁금할 때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는 거예요.” 

최근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생산 시기를 두고 진본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애초에 공공기록물관리법에 따라 국정원이 국가기록원에 생산문서 목록 등을 제대로 통보했다면 이런 불필요한 논란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가기관이 어떤 일을 했는가는 결국 기록으로 남게 됩니다.

하지만 국정원은 문서를 생산하고 보관하는데 있어 어떤 통제도 받지 않는 무소불위의 권력집단이 돼 버렸습니다. 

뉴스타파 조현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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