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할 수 없고’, ‘기억나지 않는’ 이유

2013년 08월 23일 08시 08분

서울경찰청은 왜 지난해 12월 16일 밤 서둘러 국정원 사건 수사 결과를 발표했을까? 이번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그 의문을 풀 정황과 증언이 나왔다.

국정원 사건 국회 국정조사 증인청문회에서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은 지난 2012년 12월 12일 오후에 당시 김용판 서울경찰청장이 직접 전화를 걸어와,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하지 말라고 했다고 증언했다.

내사사건이므로 압수수색 영장은 적절하지 않다는 게 근거였다.

그런데 같은 날 오후, 민주당이 김 씨를 경찰에 고발하면서 사건은 고발사건으로 성격이 변했다.

경찰은 본격 수사에 착수할 수 밖에 없었고, 민주당이 제기한 김 씨의 공직선거법과 국정원법 위반 혐의를 수사하기 위해선 압수수색 영장 신청도 불가피한 상태였다.

그러자 김 씨는 다음날인 13일 오후 2시 노트북과 데스크톱을 자진해서 제출하기로 하고 오피스텔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임의제출 조건으로 ‘2012년 10월 1일 이후의 문재인, 박근혜 지지, 비방글에 한해서만 분석해달라’며 경찰에 분석범위를 제한해 요청한다. 사생활과 기밀 보호가 이유였다.

그런데 김 씨는 오피스텔에 머무는 동안 컴퓨터 하드디스크에 남아있던 주요데이터와 댓글 게시 흔적을 삭제했다는 사실이 서울청 증거분석팀 CCTV 녹화영상을 통해 밝혀졌다.

김 씨는 자신이 이미 증거를 삭제한 분석범위 안에서는 문제될 것이 없다고 판단했기에 분석범위를 한정하는 조건을 붙여 증거물을 임의제출 한 것으로 보여진다.

그런데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12월 11일 이후 오피스텔 안에서 하드디스크 자료를 삭제했느냐는 질문에 직원 김 씨는 ‘재정신청중인 상황이라 답변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만큼 이 문제가 혐의사실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문제는 피고발자가 요청한 분석범위를 수사기관인 경찰이 끝까지 고수했다는 점이다.

서울청 증거분석팀은 분석 초기인 13일 저녁에는 분석방향을 잡아야한다면서 수서경찰서 수사팀에 키워드를 달라고 요청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상부의 지시를 받고 태도가 바뀐다.

경찰청의 감찰자료를 보면 14일 서울청 수사2계장이 분석범위를 ‘10월 1일 이후 문재인,박근혜 후보에 대한 지지.비방글’에 한정하라는 지시를 받고 이에 따라 키워드를 박근혜,문재인,새누리당,민주통합당 4개로 정한 것으로 나온다.

또 검찰 공소장에는 서울청 수사과장이 지시한 것으로 돼 있다.

당시 서울청 수사부장, 수사과장, 수사2계장은 수시로 김용판 청장에게 직보하는 상황이었다.

분석범위를 피고발인인 김 씨와 국정원 측이 요구한대로 한정하는데 김용판 청장이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청문회에 출석한 서울청 분석관들은 대법원판례를 예를 들며 피고발인이 요청한 증거분석범위를 지켜야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증거분석범위는 혐의사실과 관련이 있는 부분에 엄격히 한정돼야한다는 것이 대법원 판례의 핵심이다. 분석범위가 피고발인의 자의적 요청에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혐의사실과 관련이 있다면 분석범위에 해당하지 않더라도 강제수사에 돌입할 수 있으며 이는 전적으로 수사팀의 판단에 따라야 하지만 당시 서울청은 이를 무시했다.

당시 12월 16일 김용판 청장은 국정원의 박원동 국장과 통화한 적이 있다고 인정했다.

또 전날인 12월 15일 4시간 넘게 청와대 부근 식당에서 이뤄졌던 점심식사에 대해서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증언했다.

그런데 ‘기억나지 않는 점심식사’를 했던 12월 15일 밤부터, 서울청에서는 ‘2012년 10월 1일 이후 박근혜, 문재인 지지, 비방글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보도자료 초안을 작성하기 시작한다.

디지털 증거분석팀이 분석을 종료한 시점은 12월 16일 밤 9시 15분이었다. 분석이 끝나기 무려 하루 전, 어떻게 결과가 나올지 알 수 없는 시점에 서울청은 이미 ‘댓글은 없었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는 증거다.

국정원은 분석범위 안에서 문제가 될 것이 없으리란 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서울청은 당시 사건의 수사책임자인 수서서 수사팀의 의견을 배제하고 이 국정원 측이 요구한 범위에 맞춰 분석을 진행했다.

경찰이 국정원과 모종의 협의를 거치지 않았다면 분석이 끝나기도 전에 ‘댓글없음’으로 결론내렸다는 사실을 설명하기 힘들다.


<앵커 멘트>
국정원 사태 국정조사가 마무리됐습니다. 국정원 직원 김모씨가 오피스텔 안에서 증거를 인멸하고 있었던 정황이 경찰 CCTV를 통해 드러났다는 소식은 지난주에 전해드렸는데요.

경찰은 결국 피고발인인 국정원 직원이 증거를 없애고 난 뒤에 국정원이 제시한 분석범위에 맞춰서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이게 정당한 법 집행일까요? 경찰과 국정원이 사전에 치밀하게 짜맞춘 것이 아니냐는 의심도 생깁니다.

최기훈 기자가 보도합니다.

<최기훈 기자>
지난해 12월 11일. 국정원 여직원 김모씨의 선거개입 의혹사건이 터졌습니다. 바로 다음 날 수서경찰서는 김씨의 오피스텔에 대해 압수수색영장을 신청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권은희 수사과장은 김용판 서울경찰청장이 직접 전화를 걸어와 이를 막았다고 국회청문회에서 증언했습니다.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
“서울청 전 김용판 서울청장이 전화를 직접 하셨고요. 통화를 해서는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하지 말 것을 지시를 하셨고 그 근거로는 ‘내사사건인데 압수수개을 하는 것이 맞지 않다’는 것과 경찰이 신청을 했는데 검찰에서 기각하면 어떻게 하냐, 이런 근거를 댔습니다.”

이후 민주당은 국정원 직원 김씨를 수서경찰서에 고발합니다. 혐의는 공직선거법과 국정원법 위반. 김씨는 피고발자가 됐고 사건도 내사사건이 아닌 고발사건이 됩니다. 압수수색을 막을 근거가 없어진 겁니다. 그러자 김씨는 다음 날 오후 데스크탑과 노트북을 경찰에 자진해서 제출하고 오피스텔을 나옵니다. 경찰이 통로를 열어주겠다고 해도 안 나오던 김씨였습니다.

[김민기 민주당 국회의원]
“회사에서 연락을 받고 나왔다고 그랬죠?”

[김 모 씨 / 국가정보원 직원]
“연락을 받고 나온 것이 아니고 노트북에 대해서 제출하는 것을 허가를 받아서 임의제출을 하고 나오게 됐습니다.”

그런데 김씨는 컴퓨터를 임의제출하면서 조건을 달았습니다. 2012년 10월 1일 이후에 박근혜, 문재인지지, 비방 글과 관련된 하드디스크 정보만 분석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사생활과 기밀보호가 이유였습니다.

당시 수서서 수사팀은 이의를 제기하며 혐의사실 전체에 대한 분석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서울경찰청에 전달했습니다.

[권은희 전 수사경찰서 수사과정]
“압수수색의 범위는 임의제출물이라고 해서 당사자가 임의로 지정할 수 있는 내용이 결코 아닙니다.”

하지만 서울 경찰청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서울청 사이버 분석팀 분석관들은 자체적인 판단에 따라 분석범위를 결정했다고 청문회에서 증언했습니다.

[윤재옥 새누리당 국회의원]
“디지털 증거 분석 범위와 관련해서 서울청장이나 수사부장이나 수사과장의 지시를 받아 분석범위를 결정했습니까. 아니면 분석관들이 회의를 통해 판례라든지, 법리에 따라서 분석범위를 결정했습니까?”

[김보규 서울경찰청 사이버분석팀장]
“당시 분석관들이 예전의 분석경험과 법 지식 그리고 디지털증거분석에 대한 법리를 가지고 있는 부분을 가지고 이미 분석 시작하기 전에 분석관들이 분석범위에 맞춰분석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상부의 지시는 없었다는 겁니다. 하지만 검찰청의 감찰보고서를 보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12월 13일 저녁, 서울청 분석관 임판중 경위는 분석방향을 잡을 수 있게 키워드를 달라고 수서서 사이버 팀장에게 요구했습니다. 당시까지만 해도 무엇을 분석해야 하는지 분석관들이 스스로 결정하지 못했다는 증거입니다.

분석범위는 서울청 수사 2계장이 지시한 이후에야 정해졌습니다. 감찰보고서에는 수사2계장이 사이버수사대장 방으로 찾아와 수사대장과 분석팀장에게 문재인 비방, 박근혜 지지 글에 한정해 분석하라고 지시하라고 돼 있습니다. 국정원 직원 김씨가 제시한 분석범위를 넘어설 경우 위법하게 수집한 증거가 될 수 있다는 게 근거였습니다.

수사2계장의 지시는 분석관들에게 전달됐습니다. 그리고 저녁 8시 반 분석관 회의에서 키워드를 문재인, 박근혜, 새누리당, 민주통합당, 네 개로 한정합니다.

국회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서울청 분석관들은 국정원직원 김씨가 컴퓨터를 임의제출하면서 조건에 건 범위 안에서 분석하는 것이 정당하다며 대법원 판례까지 근거로 들었습니다.

[김수미 서울경찰청 증거분석관]
(상급자의 지시에 의해서 판단한 겁니까, 아니면 회의를 통해서 결정한 겁니까?)
“저희는 이미 2009모1190인 전교조 압수수색을 통해서 법에서 디지털 증거가 법정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범위가 당연히 임의제출이 범위에 한정돼 있다고 이미 판례를 얻었습니다. 따라서 수색은 노트북, 데스크톱 전체를 수색을 진행했지만 저희가 결과를 도출해 낼 수 있는 부분은 임의제출의 범위 한정 안에서만 될 수밖에 없는 부분이라고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당시 대법원 판결을 왜곡한 증언입니다. 지난 2009년 경찰은 전교조 시국선언과 관련해 전교조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면서 컴퓨터 여러 대를 통째로 가져갔습니다. 전교조는 이것이 압수수색 범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소송을 제기했고 대법원은 이를 기각했습니다. 경찰의 증거수집이 혐의사실과 관련이 있는 것이어서 적법했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강영구 변호사]
“전교조 영장집행 과정에서도 전교조나 제가 압수수색 범위를 시국선언 이씩 1년 전 정도의 파일까지만 한정하라고 요구했지만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수사기관이 보기에 10년 전 파일이라도 시국선언과 관련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고 범죄행위와 관련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이것이 결과적으로 대법원에서는 정당한 영장집행이라고 인정이 되었습니다.”

서울청 사이버 분석팀은 김씨가 제출한 컴퓨터를 본격적으로 분석한지 한 시간도 안 돼 중요한 텍스트 파일 하나를 복구했습니다. 여기엔 오늘의 유머사이트에 운영방식, 그리고 김씨가 사용한 아이디와 닉네임, 조력자 이 모씨 명의의 아이디 등 30여 개의 아이디가 고스란히 담겨있었습니다. 분석팀은 추가로 10개를 더 발견해 모두 40개의 아이디로 다수의 증거를 찾아냈습니다.

하지만 김씨가 조건으로 내 건 분석범위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모두 증거에서 빼버렸습니다.

[영상분석팀 CCTV]
“저거 같은 경우에는 복지정책을 까고 있는 것이거든요.”
“누구라고 안 적었네.”
“누구라고 안 적었어. 문제는... 누구 같아, 근데 심정적으로 누구 같아.”

이름이 명시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다음 대선에서 문재인이 당선될 수 없는 이유를 토탈리쿨이 추천했습니다.”
“어디 어디?”

게시글이 아닌 추천클릭이란 이유로

“투데이이즈가 국보법 폐지했다가는 무슨 사단이...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조차 TV에 나와 대한민국을 남쪽정부라 불러요.”

박근혜, 문재인 관련 글이 아니란 이유로

“과장님이 아까 얘기한 게, 임의제출을 했을 때 그 여자가 10월 1일이라고 문서에 박아서 넣었잖아요. 그런데 아까 그 얘기를 하니까 시간정보 없는 것은 빼는 게 맞지 않나 싶어요.”

그리고 10월 1일 이전 글과 김씨가 삭제해 버려서 시간정보가 남아있지 않은 파일도 범위 밖이란 이유로 모두 제외합니다.

김씨와 국정원 측은 처음부터 이 분석 범위 안에서는 문제될 것이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입니다. 사건이 터지자 오피스텔 안에서 적어도 이 분석범위 안의 증거들을 모두 삭제했을 개연성이 높습니다.

[영상분석팀 CCTV]
“10월 달 것 없고, 12월 달 것 없고.”
“지웠나 보네.”
“그니까 지운 것 같아.”
“토탈리쿨 같은 경우는 자기 키워드를 넣고 검색한 것이 있더라고요. 이게 지우려고 검색을 해본 건지. 토탈리쿨은 쓴 것 못 보셨죠?”
“내가 한 데서는 안 나왔어.”
“저거(토탈리쿨)는 글을 못 봤거든요.”

김씨는 오피스텔 안에서 한 일들을 청문회에서 말할 수 없었습니다.

[김 모씨 국가정보원 직원]
(김도읍 새누리당 국회의원 : 김OO 증인)
“네.”
(12월 11일 감금시작 당시부터 해서 감금돼 있을 동안 컴퓨터나 노트북 게시글을 삭제한 적 있습니까?)
“재정 신청 중인 내용과 관련되어 있어서 답변 드리기 곤란할 것 같습니다.”

김용판 당시 서울경찰청장은 국정원의 박원동 국장과 12월 16일 전화통화를 했습니다. 하루 전인 15일엔 청와대 근처에 한 식당에서 4시간 동안 누군가와 긴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4명 이상만 예약이 되는 방이었습니다. 그 식사 이후 저녁시각, 분석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서울경찰청에서는 보도자료 초안이 작성되기 시작합니다. 경찰도 국정원과 마찬가지로 분석종료 하루 전에 이미 분석범위 안에선 문재인, 박근혜 후보에 대한 비방이나 지지글이 나오지 않을 것이라 판단했다는 증거입니다.

김용판 서울청장은 그날 점심을 누구와 했는지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김민기 민주당 국회의원]
“점심이 업무일지하고 전혀 달라요. 점심 누구하고 먹었습니까?”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
“점심은 좀 전에 말했듯이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결국 중간 수사결과 발표는 피고발자 국정원이 제시한 틀, 분석범위 안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경찰디지털 증거 분석 결과 12년 10월 1일부터 12월 13일 간 문재인, 박근혜 대선후보에 대한 비방,지지 게시글이나 댓글을 게재하나 사실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권은희 전 수사경찰서 수사과정]
“대선에 영향을 미쳤느냐는 별론으로 하고, 중간수사결과 발표행위가 대선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부정한 목적으로 하였음은 분명하다고 판단합니다.”

뉴스타파 최기훈입니다.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