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의 보상법

2013년 09월 10일 07시 43분

 2007년 12월, 태안 앞바다에서 일어난 사상 최악의 해양 오염사고. 침몰하는 유조선에서 흘러나온 새까만 기름이 바다와 백사장을 뒤엎은 참혹한 모습은 아직도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당시 수많은 사람들이 기름때 제거에 동참하는 등 복구에 최선을 다했지만 지금도 태안군의 어획소득은 사고 이전의1/3 수준에 불과하고, 관광소득도 반 이상 줄어들었다.

 그러나 삼성중공업이 재판을 통해 부담하게 된 보상금은 불과 56억 원. 사고 후 약속한 지역발전기금은 지금까지 전혀 지급되지 않았다. 피해주민에 대한 배상을 논의하는 국회 특위에서 삼성이 지역발전기금 액수를 놓고 주민들과 줄다리기 하는 가운데 특위는 오는 9월 말이면 활동이 끝난다. 사고 직후 기름유출사고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다던 삼성의 약속은 지켜질 수 있을까. 


<앵커 멘트>

아직도 기억하시는 분 많으실 겁니다. 충청남도 태안 앞바다에 유조선이 침몰해서 새까만 기름이 바다를 뒤덮은 참혹한 모습. 6년 전 일어난 사상 최악의 해양오염 사건. 당시 수많은 국민들이 기름띠 제거에 동참하는 등 복구에 최선을 다했습니다만, 지금도 태안군의 어획소득은 사고 이전의 30%에 불과하고, 관광소득도 반 이상 줄어들었습니다. 매년 수천억 원의 피해를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삼성중공업이 재판을 통해 지급하기로 한 액수는 56억 원입니다. 삼성은 여기에다 지역발전기금을 내겠다고 하는데요, 그 동안 삼성이 봉사를 하며 이 지역에서 지출한 돈도 발전기금에서 빼겠다는 입장이라고 합니다. 이럴 거면 왜 봉사라고 했느냐는 주민들의 원성이 자자합니다. 박경현 피디가 취재했습니다.

<박경현 PD>

굴 양식과 꽃게잡이로 유명한 태안 앞바다입니다.

바로 옆에 있는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일용직으로 일하고 있는 박상만 씨. 박 씨는 여기서 일당을 받고 잔디 깎는 일을 합니다. 5년 전, 기름유출 사고가 있기 전까지만 해도 박 씨는 꽤 넉넉한 어부였습니다.

[박상만 / 태안 기름유출 피해 주민]

“그 어장만 했어도 내 생활력은 됐지. 생활 유지는 했지. 할 수 없이 이런 거 다니면서 조금씩 하는 거야. 안하면 안 돼.”

사고 전 박상만 씨가 운영했던 굴 양식장. 하루에도 서너 트럭의 굴을 수확할 정도로 규모가 컸습니다.

박 씨가 운영하는 굴 양식장이 있던 곳입니다. 박 씨는 이 곳에서 굴 양식을 하며, 반평생 삶을 꾸려 왔습니다.

2007년 12월, 홍콩의 유조선 허베이스피리트호와 삼성중공업의 강철선이 충돌하며 흘러나온 기름이 이 곳 민어도 항까지 뒤덮었습니다.

[박상만 / 태안 기름유출 피해 주민]

“전부 공기가 다 기름이야. 바닷가가 전부 다 기름이야. 바위가 다…이렇게 이불 둘러쓴 것 마냥 까맣게…”

항구 전체를 차지하던 굴 양식장은 사고가 난 뒤 모두 철거됐습니다.

[박상만 / 태안 기름유출 피해 주민]

“철거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는 게 죽어서 폐사됐으니까. 전부 다 죽어서 없어졌으니까. 시설물만 서있지.”

사고 직후에 1/3로 줄어든 태안 지역의 수산물 어획소득은 아직까지 회복되지 않고 있습니다.

[백승권 / 태안 기름유출 피해 주민]

“이거는 (굴) 양식이고. 양식인데 이제 (피해보상신청이) 기각당한 거고.”

박 씨와 동네 어민들은 국제기금과 국내 법원에서 모두 보상금 지급을 거절당했습니다. 실제로 굴 양식을 했었는지, 소득을 얼마나 올렸는지 충분한 자료가 없다는 이유였습니다. 이렇게 보상금을 하나도 받지 못하게 된 주민이 6만 4천명. 피해보상을 신청한 주민의 절반이 넘습니다.

[백승권 / 태안 기름유출 피해 주민]

“삼성에서 56억 나오고 허베이 측에서 1500억 나오고. (삼성이 너무 적어)”

[송원석 / 태안 기름유출 피해 주민]

“자기들이 잘못해놓고. 그래도 어느 정도는 해줘야 되는 것 아니에요? 그런데 그냥 그 것 밖에 안 해주면 어떡하라는 거야.”

올해 1월, 사고 후 6년이 지나서야 피해 주민들에 대한 보상금액이 법원에서 결정됐습니다. 삼성중공업이 주민들에게 내야 할 보상금은 56억. 이것으로 삼성의 법적인 책임은 끝났습니다.

태안을 찾는 관광객 수도 기름유출 사고 후 절반 이하로 떨어졌습니다.

[최명화 / 횟집 운영]

“바다에서 직접 배 (운영)한다든가 바닷가 펜션이라든가 그런 분들은 나왔는데 이쪽 태안읍은 피해가 없다고 안 나왔어요. 아무것도. 장사 못 했던 건 그 뒤로 사고로 또 못했고. 기름유출 사고로 못했고 또 우리 아저씨 사고로 못했고.”

태안 시내에서 횟집을 운영하던 고 지창환 씨. 주변 수산물 상인회 대표로 일하던 지 씨는 유류사고에 대한 피해보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자 항의의 뜻으로 지난 2008년 1월 피해보상 특별법을 촉구하는 집회 도중에 자신의 몸에 불을 붙여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렇지만 지 씨의 가게도 결국 유류유출 사고로 인한 피해를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최명화 / 횟집운영]

“이 쪽에는 피해가 없다고, 이쪽 시장에는 전혀 확정돼서 안 나왔다니까. 천 원도. 0원이라고 나왔다니까.”

2억 6천만 원의 피해를 봤다고 신고했지만 손해사정 재판 결과 통보받은 인정 금액은 0원이었습니다.

지창환 씨가 염원하던 이른바 ‘허베이 특별법’은 지 씨가 죽은 뒤 2달 만에 가까스로 제정됐습니다. 그 뒤에 수차례 개정을 거쳐 올해 7월부터 시행된 개정안에는 원인제공자인 삼성이 피해지역과 주민 지원을 위해 노력할 의무를 처음으로 명시했습니다.

하지만 삼성의 지역발전기금 출연 규모를 협의하는 국회 ‘(허베이스피리트호) 유류피해대책 특별위원회’는 난항 중입니다. 주민들은 최소 5천억 원의 지역발전기금과 추가적인 지역 공헌을 요구해 왔습니다. 삼성중공업은 이번 협의안에서 2천 5백억 정도를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주민들은 피해 규모에 턱없이 모자란다는 입장입니다.

그래서 국회 특위와 주민들은 삼성이 그룹 차원에서 지역발전기금을 협의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문승일 태안군 기름유출 피해 대책위 사무국장]

“결국은 판단은 이건희 회장이더라고요. 삼성중공업이 중공업이 아니라. 협상에서는 사고기업인 삼성중공업으로 제한을 두려고 하고 지금 자매결연 같은 경우는 삼성 그룹 전체가 합니다. 삼성전기, 삼성 엔지니어링, 삼성생명.”

삼성은 기름유출 사고 후 그룹 차원에서 피해지역과 1사 1촌 자매결연을 맺고 지역공헌 활동을 해왔습니다

[문승일 태안군 기름유출 피해 대책위 사무국장]

“각 사마다 하나씩 마을별로. 내용은 뭐 이불 하나씩 갖다 주고 TV 하나씩 마을회관에 갖다 주고. 겨울에 막걸리…”

“(진료가) 일반 의료보험 있는 사람들은 무료인데 그것을 30만원, 50만원 다 매겨서 (지역발전기금) 금액에 다 포함을 시킨 거예요. 그럼 봉사라고 하질 말든지. 삼성병원 의료봉사라고 5년 동안 한 그 금액을 환산시켜서 금액을 빼야 되겠다. 500억을 이미 썼기 때문에 그 금액을 빼야 되겠다 그거예요.”

“그러니까 국회에서 의원들이 마을 경로당에 막걸리 마신 거 뺀다고 하면 막걸리 다 토해내겠다. 삼성 부사장한테 그렇게 얘기했어요. 말도 안 되는 얘기다. 어떻게 의료봉사라고 한 걸 금액으로 환산해서 얘기를 하냐. ‘봉사’ 자를 빼든지. 너무 비열한 거 아닙니까? 추잡하게 이게 뭐냐고요.”

아무런 이해득실 없이 태안을 찾은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저 바다를 살리기 위해서였습니다. 당시 120만 명이 넘는 자원봉사자들이 태안으로 모여들었습니다.

[엄창환 / 기름피해 당시 자원봉사 활동]

“어떻게 보면 전 국민이 달려들어서 봉사활동을 해왔는데. 문제를 일으킨 당사자는 뒤로 빠져 있었던 게 아닌가…”

하지만 삼성은 여전히 확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삼성그룹 홍보팀]

“발전기금 증액이라든지 구체적인 지원문제 그런 건 국회 특위에서 논의가 진행 중인 사안이기 때문에 인터뷰 요청에 응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김기동 / 태안 기름유출 피해 주민]

“피해자에게 도움을 줘야하는데 가해자가 딴죽을 거니까 피해자는 더더욱 (힘들어져요.) 그러니까 가진 자들, 힘 있는 사람만 그렇게 사는 그런 세상 아닙니까? 우리나라 법이 잘못돼서 말이지 똑똑한 사람은 다 빠져나가고…”

피해주민에 대한 배상을 논의하는 국회 특위는 오는 9월 30일이면 활동이 끝납니다. 이번에도 지역발전기금이 합의되지 않는다면 기름유출사고에 대해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다던 삼성측의 약속이 과연 진정성이 있는 것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뉴스타파 박경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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