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타파 본 뒤 협조자가 알아서 위조”...국정원의 황당 ‘오리발’

2014년 07월 11일 19시 46분

유우성 씨 간첩 증거를 조작한 혐의로 기소된 국정원 직원들이 협조자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며 자신들의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나섰다.

현재 국정원 간첩증거 조작과 관련해 이재윤 국정원 대공수사처장(3급,불구속), 김보현 과장(4급,구속), 이인철 영사(4급,불구속), 권세영 과장(4급,불구속) 등 모두 4명의 국정원 직원들이 재판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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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직원들은 검찰의 증거 조작 수사에서 무혐의로 면죄부를 받은 담당 검사들처럼 문서 위조에 대해 ‘진짜라고 믿었다’, ‘고의가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신 국정원의 지시에 따라 위조를 도왔던 중국 국적의 협력자들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현재까지 유우성 씨 간첩사건 증거조작 수사에서 신원이 확인된 협조자는 2명으로 알려져 있다.

이 가운데 싼허변방참 답변서 등을 위조한 김원하 씨는 국정원 직원 4명과 함께 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고 있고, 허룽시 출입경기록을 위조한 것으로 알려진 또 다른 김 모 씨는 현재 중국에 체류 중이라 기소 중지 상태이다.

60대 중국동포가 뉴스타파 보고 알아서 ‘간첩 증거’를 위조했다고?

지난 8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증거조작 재판에서 국정원 측 변호인단은 문서 위조 의혹을 처음으로 폭로한 뉴스타파 화면을 증거로 제시하며 협조자 김 씨가 이 뉴스타파 방송을 보고 스스로 알아서 중국 공문서를 위조했다고 주장했다.

2014071103_02당시 방송 보기: ‘간첩 사건에 또 가짜 증거?’(2013.12.6)

방송을 보고 쟁점을 파악한 뒤 국정원에 전화을 걸어와 먼저 대책 마련을 제안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김 씨는 법정에서 국정원 대공수사국 김보현 과장이 먼저 연락을 해 와 유 씨 측 변호인단과 반대되는 내용의 자료를 구해올 것을 요구했다고 반박했다. 특히 다음날 직접 만난 자리에서 유 씨 본인이나 가족 등이 아닌 제 3자가 유 씨 관련 문서를 발급받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는데도 김 과장은 가짜라도 문제없으니 돈을 써서라도 구해달라고 요구했다고 밝혔다. 김 씨는 국정원 측이 한국 국적 취득 등을 대가로 내걸어 요청을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국정원-김원하 변호인단, 카톡 메시지 놓고 진위 공방

국정원 측 변호인은 이날 재판에서 김 씨가 보냈다는 휴대폰 메시지를 공개하며 김 씨를 몰아세웠다. 김원하 씨가 지난 2월 말 중국에서 “모든 것이 자신 혼자 소행이고 책임을 달게 받겠다”는 내용의 메시지를 김 과장에게 보냈다는 것이다.

그러나 김 씨 변호인은 검찰 수사 당시에 제출되지 않은 메시지를 어떻게 믿을 수 있겠냐며, 국정원의 조작 의혹을 제기하고 별도의 과학적 검증을 요청했다. 검찰이 증거조작 핵심 인물인 김 과장의 휴대폰을 제대로 조사하지 않아 벌어진 일이다.

공소 사실에 허룽시 출입경 위조 혐의 제외... ‘위조'가 ‘비정상적인 입수'로 표현

검찰 수사의 가장 큰 문제는 증거 조작 사태의 출발점인 허룽시 출입경기록 위조 관련 혐의가 국정원 직원들의 공소사실에는 빠져 있다는 것이다. 나머지 위조 문서들은 모두 이 최초의 위조 기록을 뒷받침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들이다.

그런데도 검찰은 지난 8일 변경한 공소장에서 이 출입경기록에 대해 ‘위조’가 아니라 ‘비정상적으로 입수’했다고 표현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2월과 5월 두 차례에 걸쳐 중국 당국이 위조 사실을 확임했음에도 검찰은 공소장에서 출입경기록이 위조됐다고 명시적으로 언급하는 것을 피해간 것이다.

국정원 측은 검찰의 이 같은 부실 수사의 틈새를 파고 들어 위조 개념이 분명하지 않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국정원 변호인단은 국정원 직원들이 “직접적인 증거인 출입경기록에 대해서는 위조로 기소된 바 없는 반면, 그 회신 공문에 대해선 위조로 기소됐다”며 “차이점이 무엇인지 동의할 수 없다”고 검찰의 공소 내용에 의문을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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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검찰은 “공소 사실과 중국 당국의 답변 내용에 차이가 있지만 법리적으로 차이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궁색한 답변을 내놨다. 국정원 공소 사실에 출입경기록 위조 혐의를 적시하게 되면 국보법상 날조 혐의 적용을 피할 수 없기 때문으로 보인다.

유우성 씨 문서가 반박 문서 위조에 역이용…관인 옮겨오다 본문 내용까지 포함

유우성 씨의 진본 문서가 국정원 측의 증거 조작에 역이용된 과정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유 씨 측이 중국에서 확보한 진본 출입경기록 문서가 법정에 제출된 것은 지난해 12월 6일이다.  바로 그 다음날 이 문서 사본이 국정원 김 과장을 통해 협조자 김 씨에게 전달됐다.

국정원의 요청으로 김 씨가 위조한 싼허변방참 답변서의 관인도 유우성 씨 측 문서의 관인을 컴퓨터로 옮겨와 제작한 것으로 확인됐다. 위조된 문서에 찍힌 관인을 보면 싼허검사참의 ‘검(檢)’자가 일부에 한 획이 더 빠져 나와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김 씨가 문서를 위조한 중국 도장방에서 정교하게 작업하지 못해 유 씨 문서 본문에 포개져 있는 글씨까지 옮겨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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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 씨가 위조한 싼허변방참 문서. 똑같이 만들려다 유 씨 문서 본문 일부까지 옮겨왔다.

검찰의 문서감정 보고서는 두 문서의 관인이 ‘서로 다르다’고만 언급했을 뿐이다. 지난 2월에 위조했다가 실제 사용하지 못한 연변 공안국 명의의 출입경 기록도 마찬가지 방법으로 유 씨의 진본 문서를 컴퓨터로 스캔해 위조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김원하 씨는 최근 뉴스타파와 서면 인터뷰에서 국정원 김 과장이 유우성 씨 측이 법원에 증거로 제출한 문서를 모두 갖고 있었고, 담당 검사들에게 위조 사실이 발각될 지에 대해서도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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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원하 씨의 서면 인터뷰

담당 검사들은 왜 바로 다음날 문서를 국정원에 넘겼나?

유우성 씨 변호인단은 유 씨의 증거 문서들이 법정에 제출되자마자 국정원을 거쳐 위조 업무 협력자에게 넘어간 점으로 미뤄, 처음부터 위조 목적으로 문서가 전달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국정원과 기록을 공유하는 것은 공소 유지 차원에서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고 말해 담당 검사들을 통해 유 씨의 증거 문서들이 국정원에 전달됐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았다.

법무부 징계가 확정되지 않아 아직 정상 업무를 보고 있는 유우성 씨 사건 담당 검사들은 뉴스타파의 취재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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