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벌레가 아니다” ...끝나지 않은 고통

2014년 08월 08일 00시 19분

군내 가혹행위가 근절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피해자가 어렵게 용기를 내서 가해자들을 고발해도 진상규명이나 제대로 된 처벌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피해자가 보복을 당하는 일이 일상적으로 벌어진다.

뉴스타파는 지난 5월 20일 <한 군인의 절규, ‘나는 벌레가 아니다> 편을 통해 한 공군 부사관이 군에서 겪은 참담한 일을 보도한 바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하사관으로 군입대했던 이진혁(가명) 하사가 5년 전 당한 가혹행위의 실상, 당시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점. 이때문에 가해자가 5년이 지난 후에 이 하사의 상급자에게 보낸 음해 메일로 인해 이 하사가 군 수사관이 되겠다는 꿈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고, 그로 인해 자살까지 기도했다는 내용이었다.

그 이후 3개월, 과연 이 하사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취재진은 근황을 듣기 위해 강원도 정선에 있는 이 하사의 아버지를 찾았다. 그는 신문과 방송을 통해 연일 보도되고 있는 윤일병 사건을 볼 때마다 자신의 아들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윤 일병이 당한 게 우리 아들하고 똑같아요. 윤 일병은 말도 못 하고 결국 죽었지만, 우리 아들은 이런 일을 당했다고 말하고 나서 몇년동안을 내부고발자로 낙인이 찍혀 살아가는 것만 달라요.

자살까지 기도했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나 이제서 살아서 싸우겠다고 마음을 다잡은 아들이었지만, 실제 개인이 거대 조직을 상대로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고 한다.

공군에서 전혀 자기네는 잘못 없다고 하고. 문제도 안 되는데 계속 고집 부린다고 하고... 가해자와 피해자를 불러서 제대로 진상조사를 한 것도 아니고.. 오직 피해자 너는 나쁜 놈이다, 네가 이상한 놈이다, 이러고만 있는 거예요.

이 하사는 자신이 겪은 일을 외부에 알렸다가 오히려 군 내부에서 군인 정신을 위배한 배신자로 찍혔다고 한다.

우리 아들이 방송에 모자이크 음성변조 가명까지 쓰고 나왔는데도 방송에 나왔다고 우리 아들 징계한다면 내가 나가 나서서 할 얘기 하면 되잖아요

군 수사관 예비 과정인 양성수사관에서 해임된 이후 공군의 해임 처분이 부당하다며 제기한 행정 소송에서도 이 하사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군 수사관의 꿈이 좌절된 고통도 잠시, 이 하사는 전혀 예상치 못한 조사까지 받았다고 한다.

이 하사는 지난 6월 선임수사관이 휴가로 자리를 비운 사이 선임수사관 앞으로 5년 전 가혹행위 가담자 중 한 명이 자신을 일방적으로 음해하는 메일을 보내 온 것을 우연히 확인하고, 이 파일을 옮긴 뒤 삭제했다. 그런데 선임수사관이 자신의 메일을 열어보고 허락없이 파일을 옮겼다는 이유로 이 하사를 정보통신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군 검찰에 고발한 것이다. 제대로 진상 규명이 이뤄질 것이라는 이 하사의 생각과는 정 반대로 일이 흘러갔다. 그러나 군검찰은 허락없이 파일을 옮긴 행위에 대해서는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다만 메일을 보고 삭제한 것에 대해서는 기소유예 결정을 내렸다. 이 하사의 당시 상황에 대한 정상을 참작해준 것이다.

이 두 가지는 이 하사가 양성수사관에서 해임된 사유이기도 했다. 이에 대해 이 하사의 담당 변호인 김칠준 변호사는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군검찰이 정상을 참작하고 무혐의 결정을 내린 것은 공군 헌병단이 주장하는 양성수사관 해임 사유가 적절하지 않았다는 것을 반증하는 셈.’ 이라고 말했다.

윤 일병 사건을 폭로한 군인권센터의 임태훈 소장 역시 이 하사의 선임수사관이 이 하사를 음해하는 메일을 받은 뒤 발신자를 조사하지 않은 행위가 오히려 징계위에 회부될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공군 측은 이 하사의 선임수사관과 메일을 보낸 5년 전 가혹행위 가담자 양 모 상사에 대해서는 정식 징계 절차도 밟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공군 측은 참모총장 명의로 음해 메일을 보낸 양 상사에게는 경고를, 선임수사관 조 모 중사에게는 주의 처분을 내리는데 그쳤다.

이 하사의 아버지는 아들이 겪었던 끔찍한 사건의 진상을 알리기 위해 지난 6개월 동안 백방으로 노력했다. 그동안 그가 절실하게 깨달은 것은 현재로서는 군 내부의 악습을 견제할 수단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군에 있는 자신의 아들에게 아비로서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무력감이 제일 참기 힘든 고통이라고 말한다.

자기들 땜에 사람이 죽을 뻔 했는데, 1프로의 가책이라던가 심각성을 전혀 못 느끼는 거예요. 정말이야, 단 한번도. 오히려 내가 애를 치료도 받게 하고 그랬지. 군대 내에서 그런 조치가 전혀 없는 거예요.

21세기 군대에서 일어나는 20세기 식 인권유린과 악습. 보안유지라는 미명 하에 많은 젊은이들이 상상조차 하기 힘든 고통을 겪고 있지만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고 있고, 심지어 생명까지 앗기는 것이 오늘날 우리 군의 현주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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