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영 기자의 독일 사이버정책 연수기 III "하얀색 나라와 주황색 국가의 차이"

2014년 08월 18일 16시 02분

독일이 재통일 되기 전까지는 베를린 장벽의 상징적 문이기도 했던 브란덴부르크 개선문.

▲ 브란덴부르크 개선문 야경
▲ 브란덴부르크 개선문 야경

이 개선문 바로 옆 야외 카페에서 이번 연수 참가자 모두가 함께 한 저녁 식사자리에서였다.

우리 테이블에 앉았던 중국인이 자기 나라 자랑을 하기 시작했다.

"중국은 뭐든지 시키면 30분 안에 배달된다. 뭐가 고장나도 바로 서비스 기사가 온다.정말 편하다."

옆에서 묵묵히 듣고 있던 오딜라 박사(Dr.Odila Triebel.이번 연수과정의 독일 측 실무 책임자)의 반응이 썩 유쾌하지는 않다.

"응,그렇구나"

정도로 답변하던 오딜라 박사가 저녁 식사가 끝난후 버스로 가는 길에 나에게 묻는다.

"당신 나라도 그런가?"

"비슷하지. 더하면 더하겠지. 근데 문제가 좀 많아"

"그렇지? 그렇게 시간 맞추려면 노동자는 언제 쉬는가?"

내가 뭐라고 몇 마디 하지도 않았는데 그녀는 그런 상황에서 서비스 노동자가 처할 삶의 질을 먼저 걱정했다.

역시 독일사람이구나.

이런 연수과정에 참여하면 자연스럽게 나라 별로 이것저것 비교해 보게 된다.

"저 나라 사람은 저런 생각을 하는구나, 이 나라 사람은 이런 생각을 하는구나"

그리고 마음 속으로 이런 질문도 떠오른다.

"우리는 독일같은 나라의 수준인가? 아니면 중국같은 나라와 비슷한가?"

한국 사회의 겉모습, 인프라는 독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니 오히려 더 발전된 부분도 있다.

특히 이번 연수과정의 주제 ‘사이버 정책’을 논할 때 한국만큼 인터넷 인프라가 우수한 곳은 전세계적으로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독일인들도 한국의 인터넷 인프라 수준에 대해서는 높게 평가한다.

이에 더해 박근혜 대통령은 이미 후보 시절 정부 3.0을 주창하며 "개인별 맞춤행복을 위하여 국민 입장에서 행복서비스를 창출하고 제공하는 국민서비스정부를 지향"한다고 선언했을 정도이니 겉보기에는 얼마나 근사한 정부이고 얼마나 행복한 사회인가?

그런데 조금만 안으로 들어가면 큰 차이가 난다.

이번 연수과정에서 방문한 독일의 국경없는 기자회 사무실에는 나라별 언론 자유도가 걸려있었다.

독일은 완전한 자유국가에 속해 있고, 우리는 아직 ‘자유’라는 가치의 수준에서 한참 떨어지는 국가에 속해 있다.

중국이나 러시아 수준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독일을 넘볼 수는 없는 그저 그런 국가이다.

독일은 하얀색의 완전 자유국으로 분류된 데 반해 우리는 대만 등이 속한 노란색의 부분 자유국도 아닌 주황색의 관찰대상국 그룹에 속해있다.

하얀색보다는 빨간색에 가깝다는 뜻이다.

▲2014 국가별 언론자유도/국경없는 기자회: 독일-하얀색의 완전자유국,그 밑 단계가 대만 등의 부분자유국인 노란색, 그 밑 단계가 한국 등 관찰대상국으로 주황색. 언론자유가 희박한 러시아 등이 빨강, 중국이나 북한 등이 최하등급으로 검정색이다.
▲2014 국가별 언론자유도/국경없는 기자회: 독일-하얀색의 완전자유국,그 밑 단계가 대만 등의 부분자유국인 노란색, 그 밑 단계가 한국 등 관찰대상국으로 주황색. 언론자유가 희박한 러시아 등이 빨강, 중국이나 북한 등이 최하등급으로 검정색이다.
 

하나의 사회가 공유하는 ‘정신적 믿음’ 또는 ‘가치’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낡으면 허물고 후다닥 우뚝 세울 수 있는 도로나 건물이 아니다.

그건 누구나 의식하지 않았지만 누구에게나 조금씩 쌓여가고 형성되어 쉬 허물어지거나 무너지지 않는, 가슴 속의 보이지 않는 공감대다.

독일 외무성 관료들과의 만남에서도 이런 공유된 가치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언론자유를 구가하는 나라이지만 독일 외무성은 공식 페이스북을 운영하면서 극우 국가주의자들이나, 나치즘 신봉자들, 또는 유대인 말살정책(Holocaust)을 부인하는 글들은 ‘지우지(Delete)’는 않지만 ‘가리는(Hide)’ 정책을 고수하고 있었다.

누구나 ‘말할 수 있는 자유(Right to speak)’는 인정하지만 공동체를 부정하는 ‘증오발언(Hate  Speech)’은 인정하지 않는다. 즉 누구나 말할 자유는 있지만 극우적 발언을 행하는 사람들의 말이 누구에게나 ‘들려져야 할 자유(Right to be heard)’의 영역에 있다고 판단하지는 않고 있다는 이야기다.

▲독일 의사당 내 역대 의원들의 명단을 예술적 전시물로 만든 이 곳에서는 나치 등 국가주의자들에게 희생된 국회의원들의 이름은 검은색 바탕을 해 눈에 띄게 했다.
▲독일 의사당 내 역대 의원들의 명단을 예술적 전시물로 만든 이 곳에서는 나치 등 국가주의자들에게 희생된 국회의원들의 이름은 검은색 바탕을 해 눈에 띄게 했다.
 
▲잘못된 역사로부터 자신의 모습을 깨닫고 이를 되풀이 하지 않으려는 독일인의 모습이 가장 상징화된 곳이 마지막 사진의 홀로코스트 기념공원이다.
▲잘못된 역사로부터 자신의 모습을 깨닫고 이를 되풀이 하지 않으려는 독일인의 모습이 가장 상징화된 곳이 마지막 사진의 홀로코스트 기념공원이다.
 

공영방송 언론인들을 해고하고 공영방송사를 거의 국영방송으로 전락시키고도 정부 3.0이라는 허망한 구호를 주창하며 "국민 입장에서 행복 서비스를 창출한다"고 립서비스하는,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어지간한 자유민주주의자들까지 ‘종북 빨갱이’로 몰아아고, 선거 기간이 되면 국정원이 나서서 스스로 증오발언을 서슴치 않는 한국 정부 수준에서는 따라가기가 매우 힘든 ‘정신적 믿음’을 독일 정부와 사회 대부분이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회 분위기는 지하철이나 식당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필자가 독일 베를린을 방문한 5일 동안은 비도 거의 오지 않았고 날씨가 참 좋았다. 한 낮에 28도를 오르내렸으니 좀 더운 편이었다.

그러나 식당에서도 심지어는 지하철에서도 냉방을 하지 않았다. 좀 덥다고 하자 호텔 레스토랑의 종업원이 웃으며 창문을 열어줬다.

"이것도 정부 정책인가?"라고 필자가 묻자, "아니. 그냥 사회 분위기인 것 같아. 사람들이 여름에 더운 건 좀 참자는 분위기야. 하지만 겨울에 추우면 그건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생존이 걸린 문제이니 그때는 난방은 잘 한다. 겨울에 와"라며 웃는 독일인 기자 세바스티안의 대답을 듣고서야 독일이 왜 일찌감치 '원자력 제로 정책'을 펼 수 있었는지 이해하게 된다.

●관련 기사 경향신문 [원전, 대전환 시점 왔다](5)‘원자력 제로’ 선언한 독일에서 배운다

독일 정부가 독일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한 5일 간의 외국 기자 연수 일정 가운데 절반 이상을 국경없는 기자회를 비롯한 독일의 각종 시민단체 (이 가운데는 정부의 언론탄압정책에 대비해 언론이 어떻게 하면 인터넷 보안을 철저히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전략과 기술을 가르쳐준 곳도 있었다)에 배정한 배경, 즉 그들의 언론자유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아무리 좋은 인터넷 인프라를 갖췄다고 한들 과연 독일인이 공유하는 ‘정신적 가치’의 깊이와 수준을 따라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투명한 정보 공개를 통해 정부 3.0을 추구하면서 국민 입장에서 행복 서비스를 창출하겠다”고 선언했던 박근혜 정부가 이제라도 제발 유족과 국민 대다수의 뜻에 따라 세월호 참사의 진실 규명에라도 제대로 나서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최경영 기자는 지난 8월 3일부터 10일까지 독일연방정부 초청으로 독일의 사이버 정책 등에(Visitors Programme of The Federal Government-Dialogue with Germany) 관한 5일 동안의 연수에 참여했습니다.비행기 왕복 항공료를 포함한 독일 베를린 현지의 숙박과 식비 등 일체의 경비는 독일연방정부의 후원이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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