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밥 먹고 14킬로나 살찐 간첩?

2014년 08월 19일 23시 45분

유우성, 이시은, 홍00, 위00, 채00

이 5명은 박근혜 정부에서 간첩이라고 발표한 사람들입니다. 이 중 유우성 씨에 대해서는 아시다시피 간첩조작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이시은 씨(가명)는 북한 보위사령부로부터 ‘기억 제거 패치’를 받아 국정원의 거짓말탐지기를 통과했다는 여간첩입니다. 이시은 씨에 대한 국정원, 검찰의 수사내용이 얼마나 황당한지는 뉴스타파가 이미 방송했습니다.

그런데 또 있습니다.

유우성 증거조작사건 직후 발표된 간첩사건

홍00 씨는 이시은 씨와 마찬가지로 북한 보위사령부의 지령을 받고 잠입한 간첩이라고 발표된 사람입니다. 홍 씨가 간첩으로 발표된 지난 3월에는 유우성 씨 간첩증거조작이 밝혀져 국정원과 검찰이 궁지에 몰려 있었습니다. 특히 서울중앙지검 공안 1부는 조작된 증거를 법정에 제출한 부서로 많은 비판을 받고 있었는데요, 바로 이 때 서울중앙지검 공안 1부가 보위사 직파 간첩이라면서 언론에 공개한 것이 홍 씨 사건입니다. 당시 간첩증거조작으로 검찰, 국정원과 마찬가지로 적잖게 풀 죽어 있던 보수언론은 이 사건을 대대적으로 보도했습니다.

국정원 합동신문센터의 식사와 생활이 좋아 살이 14킬로나 쪘다, 남한의 구치소 밥이 북한 명절밥보다 좋다는 등의 보도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러나 국정원과 공안 검찰의 체면을 좀 되살려주었을 그 보도들은 민변 변호사들의 주목을 끌었습니다. 유우성 변호인단의 장경욱, 김진형 변호사는 구치소에 수감된 홍 씨를 만났고, 이후 이 사건도 조작 의혹이 있다는 기자회견을 했습니다.

뉴스타파는 지난 3월 변호인단이 서울중앙지검 접견실에서 홍 씨를 만났을 때 녹음한 파일을 입수했습니다. 간첩혐의자 홍 씨의 이야기를 들어보시죠.

“국정원이 북한의 가족을 데려다 주겠다기에 허위자백했다”

 

홍 씨는 국정원이 절대 자신을 언론에 노출시키지 않겠다고 약속했으며, 북한에 남은 가족들도 데려와 주겠다고 약속해서 간첩이라고 거짓자백을 했다고 말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국정원 측이 돈도 주고 직업도 주며 생활을 보장한다고 회유했다고 밝혔습니다.

물론 재판에 출석한 국정원 조사관들은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습니다. 어떤 약속도 회유도 한 적이 없고, 홍 씨 스스로 자백한 내용이라는 것입니다.

탈북브로커, 북한의 홍 씨에게 박00 모녀의 탈북을 의뢰

2014081904_01

이 사건은 탈북브로커인 유 모 씨가 2013년 북한에 있던 홍 씨에게 박 모 씨 모녀의 탈북을 부탁하면서 시작됐습니다. 홍 씨는 당시 북한에서 탈북하려는 사람들을 중국까지 넘겨주는 도강 브로커 역할을 했다고 하는데요. 홍 씨는 애초 브로커 유 씨에게 두만강을 건너 박 씨 모녀를 탈북시키겠다고 하고 시간 약속도 했지만 경비가 심해졌다는 이유로 강을 건너지 않습니다. 이후 홍 씨는 박 씨 모녀를 데리고 수백킬로미터를 이동해 압록강을 건너 탈북시켰습니다. 처음에는 박 씨 모녀만 탈북시키려던 홍 씨는 자신도 함께 탈북하는 쪽으로 결정했는데요, 홍 씨는 당시 북한 당국에 수배된 처지여서 북한을 떠나려 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2014081904_02

탈북한 사람들을 데리러 오지 않은 브로커 유 씨

그런데 중국 땅에 닿은 홍 씨가 브로커 유 씨에게 데리러 와 달라고 연락했지만 유 씨는 오지 않았습니다. 유 씨는 왜 오지 않았을까? 홍 씨는 당시 브로커 유 씨가 돈을 요구하자 박 씨의 가족이 거절해 싸움이 났다고 주장합니다. 홍 씨와 박 씨 모녀가 북한에서 압록강을 건너올 때 길을 안내해준 ‘도강브로커’에게 돈을 주고 박 씨 모녀 일행을 인수해야 하는데, 이 돈은 원래 유 씨가 자신의 돈으로 계산해야 했다고 합니다. 유 씨는 일행을 인수해 중국의 안전한 지역까지 무사히 인도한 뒤 약속한 돈을 달라고 해야 하는데, 돈이 없던 유 씨가 돈을 요구하자 이를 의심한 박 씨 가족이 거절했고 유 씨는 박 씨 일행을 데리러 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결국 박 씨 가족은 급히 다른 브로커와 선을 댔고, 홍 씨와 박 씨 모녀는 무사히 한국까지 옵니다. 그런데 박 씨 모녀를 데리고 오지는 않았지만 탈북 과정에서 적지 않은 돈이 들었다면서 브로커 유 씨가 박 씨의 어머니에게 돈을 내놓으라고 협박하기 시작했습니다.

2014081904_03

유 씨는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설과 협박을 퍼부었습니다. 무려 170여 회나. 협박 내용 중에는 ‘홍 씨는 보위부의 눈깔(정보원)인데 , 네 딸은 어떤지 보자’는 내용도 있었습니다. 결국 견디다 못한 박 씨의 어머니는 유 씨를 경찰에 고소했고, 유 씨는 공갈 미수 혐의로 벌금 5백만 원에 처해졌습니다.

브로커 유 씨, 탈북비용 문제로 박 씨 가족과 싸운 뒤 제보 “돈 주지 않아서 가지 않았다” -> “납치당할 것 같아 가지 않았다”로 주장 바뀌어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유 씨는 국정원에 홍 씨가 간첩인 것 같다고 제보했습니다. 몇 차례나 만날 약속을 어기고, 탈북자가 납치된 적이 있는 곳으로 자신을 오라고 하는 등 홍 씨가 자신을 유인, 납치하려는 정황이 있었다는 겁니다. 유 씨는 홍 씨 일행이 압록강을 건넌 뒤 자신이 근처까지 갔지만 납치될 위험이 있어 홍 씨 일행이 있는 곳으로 가지 않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이 주장은 유 씨가 공갈미수혐의로 수사를 받으면서 한 진술과는 다릅니다. 공갈 미수사건 수사 당시 유 씨는 ‘박 씨 어머니가 돈을 주지 않겠다고 해서 데리러 가지 않았다’고 진술했습니다. 말이 바뀐 것입니다.

홍 씨의 간첩 자백, 어떻게 나왔나?

홍 씨는 합동신문센터 조사과정에서 자신이 보위사령부의 지시를 받고 브로커 유 씨를 유인, 납치하려 했다고 자백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끝없는 반복 질문과 회유에 허위자백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홍 씨는 간첩일까요? 간첩조작의 희생자일까요?

현재 상황에서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만약 홍 씨가 말하는 것과 같은 회유와 기망(속임)이 있었다면 누구라도 간첩이라고 허위자백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한 번 상상해볼까요?

합신센터에 들어가면 조사관들은 집요하게 왜 한국으로 들어왔느냐고 묻습니다. 영문도 모르고 사실대로 이야기하지만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계속 한 가지만 묻습니다. 무려 12일 동안. “왜 들어왔나?” 만 묻습니다. 아침부터 밤까지 독방에 갇혀 밖으로 나가지도 못한 채 오직 한 가지 질문에만 답해야 합니다. 달력도 없습니다. 언제까지 있어야 나가는지도 말해주지 않습니다. 어느새 자신의 이야기를 전혀 듣지 않는 조사관들의 태도에 절망을 느낍니다. 빠져나갈 수 없는 그물에 걸린 것을 느낍니다. 무기력해집니다. 그 때 조사관들은 희망의 밧줄을 내려줍니다.

자네 남한에서 한 일이 있나? 아무 일도 한 게 없는데 왜 겁을 내지? 빨리 털어놓고 나가게. 솔직하게 털어놓으면 우리가 모든 생활을 보장해주겠네. 자네 가족도 데려다 주지. 평양에서도 데려오는데 국경 근처에 있는 자네 가족들을 못 데려오겠나?

의문을 느끼는 홍 씨에게 조사관들은 김현희를 이야기합니다. 비행기를 폭파해 수백 명의 대한민국 국민을 살상한 김현희도 자백한 뒤 얼마나 잘 살고 있는지, 가족과 집, 돈, 명예 모든 것을 가진 그녀처럼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누구라도 이런 상황에 처하면 허위자백을 하는 것이 오히려 합리적인 선택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이 허위자백에 대한 연구 결과입니다. 대단한 대가가 아니라 그저 ‘자백하면 집에 보내준다’는 기망에도 허위자백을 하는 경우는 많습니다. 더구나 탈북자처럼 한국의 법체계에 대해 무지한 사람들은 수사관들이 기망을 통해 허위자백을 얻어내려 한다면 너무나 쉬운 상대일 수밖에 없습니다.

홍 씨는 과연 간첩일까요? 그가 만약 간첩이 아니라면 유우성 사건이 있었음에도 국정원이 여전히 간첩조작을 멈추지 않고 있는 것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민변 변호인단과 뉴스타파는 지금까지 박근혜 정부 하에서 기소된 5명의 탈북자 중 3명을 접촉했고, 그 중 유우성 씨는 조작이 밝혀졌습니다. 거짓말 탐지기를 속인 여자 이시은 씨도 조작 혐의가 짙습니다. 조만간 대법원 판결이 있을 예정입니다. 만약 홍 씨 사건까지 무죄판결이 난다면 국정원은 관행적으로 간첩조작을 해왔다고 봐도 무리가 없을 것 같습니다.

민변 변호인단과 국정원, 검찰은 불꽃 튀는 공방을 벌이고 있고, 오는 9월 5일 이 사건1심 선고가 있을 예정입니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뉴스타파는 이 사건의 진실을 끝까지 파헤쳐서 보여드리겠습니다.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