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법관 기피 신청은 불법 기소 자백이다
2024년 11월 22일 11시 02분
검찰의 국정원 증거 조작 수사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은 유우성 사건 공판 담당 검사들이 국정원이 제출한 중국 싼허변방검사참 명의의 위조 문서와 가짜 영사확인서 등을 묵인해준 정황이 드러났다. 특히 증거조작 재판 과정에서 국정원 직원들이 협조자들에게 돈을 주고 문서를 입수한 것과 영사확인서 내용이 허위라는 사실 등을 검사들이 이미 알고 있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확인돼 이런 내용을 몰랐다고 한 검사들의 주장은 설득력을 잃게 됐다.
▲ 싼허변방검사참 명의 답변서(위조). 공판 담당 검사는 똑같은 문서를 12월 18일과 1월 3일 두번 제출했다
뉴스타파가 유우성 사건 항소심 기록을 분석한 결과 검사들은 국정원이 위조한 싼허변방검사참 명의 답변서를 두 차례 법정에 제출했다. 이 문서는 유우성 씨 측이 법원에 증거로 제출한 중국 문서가 합법적으로 발급된 것이 아니라는 내용으로, 국정원 협조자 김원하 씨가 중국에서 위조해 온 것이다. 검찰의 국정원 증거조작수사팀 수사 과정에서 가장 먼저 위조 문서로 판명났다.
유 씨 사건 담당 검사였던 이문성 검사는 이 싼허검사참 답변서를 지난해 12월 18일과 올해 1월 3일 검찰 의견서를 통해 법원에 두 차례 제출했다. 왜 검사들은 똑같은 문서를 두 번이나 법원에 냈을까. 증거조작 재판에서 나온 증언을 토대로 당시 상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지난해 12월 15일, 중국에서 싼허검사참 명의의 답변서를 위조해온 협조자 김 씨는 과천의 한 식당에서 국정원 김보현 과장을 만나 이 문서를 전달했다. 이미 김 과장은 담당 검사인 이문성 검사에게 문서 입수 과정을 자세히 보고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김 과장은 검찰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문서 입수 당일 이문성 검사실에서 다른 직원들 2명과 함께 협조자를 통해 돈을 들여 문서를 입수한 과정을 자세히 설명했다고 진술했다.
▲ 지난해 12월 15일 국정원 김보현 과장은 이문성 검사를 만나 협조자를 통한 입수 과정을 자세히 설명했다
위조된 싼허검사참 답변서가 담당 검사에게 전달된 것은 다음날인 12월 16일이다. 이처럼 자세한 입수 경위를 보고 받았기 때문에 이문성 검사는 이 문서가 공식 외교 경로가 아닌 국정원의 조선족 협조자를 통해 입수된 것임을 잘 알고 있었을 개연성이 높다. 그런데도 이 검사는 지난해 12월 18일 법원에 문서를 제출하며 “공식적 답변을 통해 확보했다”라고 강조했다. 12월 20일 열린 공판에서도 이 내용을 강조하며 유 씨 측이 증거로 낸 진본 문서가 가짜라며 적반하장 격 주장을 폈다.
▲ 이문성 검사가 작성한 1월 3일 의견서. 두번째 ‘싼허 답변서’에 영사 확인서를 첨부해 법원에 제출했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담당 검사들이 올해 1월 3일에도 법원 제출 의견서를 통해 똑같은 싼허검사참 문서를 다시 낸 점이다. 여기에는 중국 선양 주재 한국 영사관에 영사 신분으로 파견돼 있던 국정원 직원이 이 문서를 중국 당국에서 직접 발급받았다는 영사확인서까지 첨부됐다. ‘대검찰청이 영사관을 통해 공식 입수했다’고 강조하는 설명도 덧붙였다. 국정원이 보름 전 전문으로 선양영사관에 보낸 위조 문서에다 가짜 영사확인서를 첨부해 다시 검찰로 보낸 것이다.
▲ 똑같은 위조 문서지만 1월 3일에는 영사 확인 도장이 찍혀 있다
똑같은 문서지만 검찰이 1월 3일 법원에 제출한 싼허 답변서에는 영사 확인 도장까지 찍혀있다. 때문에 검사들이 이 문서가 협조자를 통해 돈을 주고 입수됐다는 것을 알면서도 선양 주재 한국 영사가 직접 입수한 것처럼 꾸며 재판부를 속이려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이와 관련해 뉴스타파 취재진은 국정원 직원들이 법정에서 중요한 내용을 증언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국정원 직원들은 재판 과정에서 “당시 싼허 답변서를 선양 영사관이 직접 입수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공판 담당 검사들이 알고 있었다”고 시인한 것이다. 그러나 국정원 직원들은 담당 검사들의 사전 지시 여부에 대해서는 부인했다.
▲ 지난 7월 증거조작 비공개 신문에서 나온 국정원 직원들의 진술
국정원이 돈을 들여 협조자를 통해 문서를 입수했다는 것을 인지한 상태에서 이 문서를 지난해 12월 18일에 법원에 제출했으면서도, 보름 뒤에는 똑같은 문서를 제출하면서 영사관을 통해 공식입수한 것이라고 주장한 검찰의 말은 상식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다. 검사가 위조 사실을 미리 알았으면서도 법원을 속인 것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국정원 직원들은 중국 문서 위조 뿐 아니라 허위 영사확인서 작성 혐의로도 재판에 넘겨졌다. 증거 조작 재판 초기 국정원 직원들의 변호인단이 왜 공판 검사들만 무혐의를 받았는지 알고 싶다며, 증인 출석 가능성을 언급한 것도 이런 이유로 보인다.
지금까지 드러난 것을 종합할 때 유우성 씨 사건 담당 검사들이 싼허검사참 명의의 위조 문서와 가짜 영사확인서에 대해서 최소한 묵인은 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될 수 밖에 없다. 법률 전문가들은 검사들이 증거위조를 방조한 것 만으로도 형사처벌이 가능하기 때문에 검찰의 국정원 증거조작 사건 수사 과정에서 무엇보다 담당 검사의 직무유기를 엄히 물었어야 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당시 검찰 수사팀은 담당 검사들이 위조 정황을 몰랐고 국정원에 속았을 뿐이라며 면죄부를 줬고, 솜방망이 징계를 내리는데 그쳤다. 당시 검찰 수사팀과 내부 감찰팀은 공식 문서만을 대상으로 조사하고, 담당 검사들의 통화 내역이나 SNS 메신저는 조사에서 제외해 의도적 봐주기라는 비난이 거셌다. 그런데도 당시 검찰 수사팀은 담당 검사들을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했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취재진은 정직 한달의 징계를 마치고 광주와 대구고검으로 복귀한 이문성, 이시원 검사의 입장을 듣기 위해 여러 차례 연락했지만 이들은 한결같이 답변을 거부했다.
현재 진행 중인 증거조작 재판에서 과연 사건의 전모와 진실이 드러날 수 있을까? 재판에 넘겨진 국정원 직원 4명과 협조자 2명에 대한 선고 결과는 이달 내로 나올 전망이다. 하지만 담당 검사들이 빠진 재판에서 이번 판결에 얼마나 진실이 담길지는 미지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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