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분신 경비원’ 유족에 거짓 진술 요구...“가정 불화 있었다고 해라”

2014년 11월 18일 21시 53분

경찰, 입주민 폭언보다는 우울증, 가난 부각

입주민의 폭언을 견디지 못하고 분신, 사망한 경비원 고 이만수 씨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강남경찰서가 유가족 측에 “가정 불화가 있었다, 가정 형편이 어렵다고 하라”는 등의 거짓 진술을 강요한 것으로 뉴스타파 취재결과 드러났다. 이 때문에 경찰이 처음부터 입주민의 폭언보다는 가정형편이나 우울증 등 개인적 사유 때문에 분신한 쪽으로 사건의 방향을 몰아가려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

사건 이틀 뒤 강남서에서 참고인 진술을 한 동료 경비원도 “경찰이 상당히 억압적인 분위기로 질문을 했고, 숨진 경비원이 평소 우울증을 앓지 않았느냐고 물어 보더라”며 “숨진 이씨가 우울증인지도 몰랐는데, 경찰로부터 듣고 처음 알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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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숨진 경비원을 피해자가 아닌 방화 피의자로 수사

뉴스타파가 입수한 유족들의 경찰 진술 조서에 따르면 이 씨의 분신 자살 사건은 ‘화재 피의 사건’이라고 규정돼 있다. 숨진 이 씨는 처음부터 입주민의 폭언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한 피해자가 아니라 방화를 저지른 피의자로 수사를 받고 있었다.

숨진 경비원의 아들 이모 씨(27)는 “경찰이 사건 당일(10월7일) 경찰서로 불러 처음 꺼낸 말이 ‘아버지는 방화범’이라는 말이었다”며 “불에 탄 차주와 합의를 하려면 “가정불화가 있었고, 아버지가 평소 집 때문에 힘들고 우울증이 있었다는 식으로 불쌍한 척을 해야한다”고 거짓 진술을 종용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아들 이 씨는 거짓 진술을 거부했다고 한다. 그는 “평소 아버지는 가정에 충실했고, 어느 집보다 화목했던 가족이기에 거짓으로 조서를 쓸 수 없어 경찰 말에 따르지 않았다”고 말했다.

▲ 분신 당일 (10월 7일) 경비원 이 씨가 가족들과 대화를 나눈 카톡 채팅방
▲ 분신 당일 (10월 7일) 경비원 이 씨가 가족들과 대화를 나눈 카톡 채팅방

실제로 경찰 진술 조서를 보면 경비원 고 이만수 씨의 부인은 “경비원 이씨가 생전에 119동에서 103동으로 부당하게 인사발령을 당했고, 그 후로 103동 거주자의 괴롭힘 등으로 심각한 스트레스를 받아 분신이라는 선택을 한 것 같다”고 여러 차례 진술하고 있다.

오히려 경제 형편은 전보다 나아지고 있고, 우울증도 기존에 앓아왔던 것이 아니라 103동으로 발령이 난 2014년 7월 이후 발병한 것이라며 유가족 측은 분신 원인이 ‘개인사’가 아님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 같은 진술은 사고 발생 사흘 뒤인 10월 10일, 오후 2시 23분~3시27분까지 1시간 가량 진행됐다.

▲ 경비원 고 이만수 씨 부인이 작성한 경찰진술조서
▲ 경비원 고 이만수 씨 부인이 작성한 경찰진술조서

그런데 같은 날인 10월 10일 오후 2시 29분, 즉 유족 측의 진술이 끝나기도 전에 강남경찰서 관계자의 발언을 인용한 보도가 나오기 시작했다. 분신한 경비원 이모 씨가 가정 형편이 어려웠고, 우울증도 있었기 때문에 주민의 폭언이 분신의 원인이 아닐 수도 있다는 내용이었다. 연합뉴스, 뉴시스, SBS, 조선일보, 경향신문 등 10여개 언론사가 비슷한 보도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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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강남경찰서 형사지원팀장은 “(언론에서 인용한) 경찰 관계자는 경찰 관계자가 아닐 수도 있고, 어떤 경찰이 말했는지 우리도 알 수도 없다”며 “기자들이 경찰 확인 없이도 통상적으로 그렇게 쓰지 않느냐 ”고 주장했다. 하지만 연합뉴스 기자는 뉴스타파와의 통화에서 “경찰에게 확인하고 기사를 작성했다”고 말했다.

현재 경찰은 이 사건에 대해 계속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경비원 이 씨의 아들은 “강남경찰서가 아버지의 사인에 대해 진실 규명은 못 하더라도 거짓 수사는 하지 말아야 한다”며 “경찰은 아직 사건 당사자에게 CCTV 도 보여주지 않고 있는데, 이제라도 CCTV 등 모든 자료를 투명하게 공개해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진실 규명을 해 달라”고 당부했다.

7천만 원 보상금 제시...병원비만 2억 원

경비원 이 씨가 소속된 한국주택시설관리 측은 보상금 7000만 원(장례비 포함)을 지급하는 대신 ‘산재 처리가 안 되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 ‘민형사상 소송을 제기하지 않겠다’는 조건을 제시하며 유족 측에 합의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유족 측은 이미 병원 치료비만 2억 원 가량 나온 상황이라고 밝혔다. 유족 측은 산재 신청을 하는 한편, 민사 소송을 낼 계획이다.

본보는 지난 11월 18일자 <경찰, ‘분신 경비원’ 유족에 거짓 진술 요구… “가정불화...”> 제하의 기사에서 “강남경찰서가 분신경비원의 유가족 측에 거짓진술을 강요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바 있습니다.

이에 대해 강남 경찰서 측은 “유가족 측에 거짓 진술을 강요한 사실이 없고, 해당 사건과 관련하여 공식적인 인터뷰를 하거나 보도자료를 배포한 적이 없으며,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열어 놓고 수사 중에 있다는 답변을 해왔다”고 알려왔습니다. 이 기사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