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이 된 어부’ 30년 만에 무죄…“간첩조작 여전한 현실에 한탄”

2014년 11월 21일 21시 55분

지난해 뉴스타파가 보도했던 납북어부 간첩 조작사건 피해자 김용태 씨가 재심을 통해 지난 6월 무죄 선고를 받은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지난 1984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4년을 선고받고 실제로 12년 6개월의 옥살이를 한 김 씨가 무려 30년 만에 간첩 누명을 벗게 된 것이다. 유사한 사건에 대한 재심이 잇따르고 있어 과거 국가기관의 불법구금과 가혹행위에 의한 간첩조작 사건의 실체가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될 전망이다.

▲ 납북어부 간첩 조작사건 피해자 김용태 씨
▲ 납북어부 간첩 조작사건 피해자 김용태 씨

‘간첩이 된 어부’, 그 기구한 사연

뉴스타파 취재진이 지난해 4월 만난 50대 김용태 씨는 지난 1971년 13살 나이로 오징어잡이 배에 올라 바다로 나섰다가 강제 납북됐다. 이듬해 남북공동성명에 따른 화해 조치의 일환으로 남으로 송환된 그는 곧바로 수산업법과 반공법 위반으로 기소돼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그로부터 12년 뒤, 경남 마산에서 4살 아이를 둔 가장으로 평범하게 살아가던 그에게 낯선 남자 3명이 찾아왔다. 그는 강릉보안대로 끌려가 영장도 없이 구금 당한 뒤, 한 달 가까운 모진 고문을 이기지 못해 ‘10여 년 동안 간첩활동을 했다’고 자백한다. 결국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4년, 자격정지 14년 형을 선고받게 된다.

자백을 하지 않으면 죽을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아니, 내가 죽는 건 괜찮은데 가족들까지 다 잡아넣겠다고 위협했습니다. 가족들을 살리기 위해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만약 지금 다시 같은 상황에 처해도 똑같이 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김용태 / 납북어부 간첩 조작사건 피해자>>

▲ 보안대와 검찰이 김 씨의 가족을 잡아들이겠다며 협박해 조작한 간첩활동 증거 사진
▲ 보안대와 검찰이 김 씨의 가족을 잡아들이겠다며 협박해 조작한 간첩활동 증거 사진

그는 12년 6개월의 옥살이를 하고 출소했다. 그 사이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고 고향의 친척들과 지인들은 그를 받아주지 않았다. 몇 년 동안 수소문해 간신히 찾아내 만난 19살 아들은 불과 3일 동안 함께 지낸 뒤 ‘간첩인 아버지는 제 인생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으니 이제 인연을 끊자’는 말을 남기고 떠나갔다. 아들은 얼마 뒤 한강에 투신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김 씨는 그 사실조차 4년이 지나서야 알 수 있었다.

뉴스타파 취재진과 만났던 지난해 4월 당시 김 씨는 국가를 상대로 한 재심을 신청해둔 상태였다. 자신의 인생을 처절하게 파괴한 간첩이라는 낙인을 지워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전국의 검찰청과 기록원들을 뒤져봐도 과거 자신이 간첩이 되는 과정이 담긴 사건기록을 도저히 찾아낼 수 없었다. 사건기록 없이 재심 결정은 불가능했기에, 그는 반쯤은 포기한 듯한 얼굴로 오랫동안 먼바다만 응시하고 있었다.

1년 반 만의 연락... “간첩 누명 벗었습니다”

뉴스타파 취재진에게 김 씨가 다시 연락을 취해온 건 그로부터 1년 반이 지난 이달 초였다. 제보창에 남긴 짧은 글에는 ‘도와주신 덕에 이제 무죄가 밝혀졌고 지금은 민사 소송이 진행 중입니다. 정말 고맙습니다’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취재진은 김 씨가 현재 살고 있는 경남 마산으로 찾아가 그간의 자초지종을 들어보기로 했다.

취재진을 만난 김 씨는, 뉴스타파을 통해 자신의 사연이 보도된 지 1달여 만인 지난해 6월 뜻밖의 전화를 받았다고 했다. 수년 동안 찾을 수 없던 자신의 과거 사건기록이 춘천지검 강릉지청에서 발견됐다는 것이었다. 한달음에 달려갔다. 고문에 못 이겨 거짓으로 쓴 자필 진술서를 포함한 모든 기록이 정말로 그대로 남아 있었다.

▲ 지난해 6월 춘천지검 강릉지청에서 발견된 김 씨의 간첩사건 기록
▲ 지난해 6월 춘천지검 강릉지청에서 발견된 김 씨의 간첩사건 기록

그때부턴 일사천리로 일이 풀렸다. 두 달만에 재심이 결정된 데 이어 올해 1월 서울고등법원이 영장 없는 구금과 고문 등 가혹행위에 의한 자백을 모두 인정해 무죄를 선고했다. 김 씨는 이날 너무나도 기쁘고 고마운 마음에 재판장을 향해 바닥에 엎드려 절을 했다고 말했다. 이어 6월에는 대법원으로부터 무죄 확정 선고를 받았다. 천형과도 같았던 간첩 낙인이 30년 만에 완전히 지워진 순간이었다.

이어 오늘(21일)은 김 씨가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1심 선고 재판이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렸다. 국가가 10억 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액수가 얼마가 됐든 송두리째 빼앗긴 인생의 대가가 될 순 없었다. 다만 김 씨는 재판부가 자신이 겪은 일에 대해 진심어린 사과의 뜻을 전해온 것에 대해 작으나마 위안을 받았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김 씨에게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할 국가 수사기관이 불법구금과 가혹행위를 저지른 것은 어떤 말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범죄였으며, 이 과정에서 인권의 최후 보루여야 할 사법부 역시 자신의 소명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점을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밝혔다. 민사법정에서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 민사 법정을 나서는 이명춘 변호사와 김용태 씨
▲ 민사 법정을 나서는 이명춘 변호사와 김용태 씨

“납북어부 간첩조작 진실규명은 과거 아닌 현재와 미래를 위한 것”

김용태 씨가 간첩조작 사건의 재심을 신청하고 30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기까지는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 소속인 이명춘 변호사의 도움이 컸다. 이 변호사는 지난 2006년부터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간첩사건 조사팀으로 일했다.

과거사위 활동 당시 이 변호사는 3천여 명의 납북 송환 어부들 가운데 짧게는 1년, 길게는 20년이 지나 다시 간첩으로 처벌받은 103명의 사건에 대해 조작 의혹이 짙다고 보고 직권조사에 나섰다. 이 가운데 25명에 대해 국가기관의 불법구금과 고문 등 인권침해 증거를 수집해 재심의 길을 열어줬다.

그러나 과거사위는 이명박 정부 중반인 2010년 말로 활동이 종료됐고 이 변호사도 본업으로 복귀했다. 그러나 간첩으로 조작당해 평생을 고통받은 이들을 직접 만나 확인하고도 끝까지 누명을 벗겨주지 못한 것이 못내 미안했다. 그는 과거사위 활동 중 만났던 납북어부 간첩조작 사건 피해자들에게 자신이 끝까지 사건을 맡겠다는 뜻을 전했고, 김용태 씨를 포함한 30여 명이 그를 찾아왔다.

이명춘 변호사는 납북어부 간첩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의 의미가 비단 과거사를 정리하는 차원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고 단언한다. 최근 유우성 씨 사건처럼 간첩조작 사건이 양태를 달리해서 계속 나타나고 있는 만큼, 과거에 있었던 조작 사건의 진실을 제대로 밝혀내는 것이야말로 현재의 피해자와 미래의 잠재적 피해자들을 구제하는 길을 여는 첫걸음이라는 것이다. 이 변호사는 “지금까지 재심을 받은 납북어부 간첩 조작사건은 예외 없이 무죄 판결을 받았으며, 앞으로 이같은 성과가 계속 쌓여갈수록 국가기관의 인권침해 행위를 억누르는 효과를 발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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