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도 모르는 예산 나눠먹기의 비밀... 심사없는 예산증액

2014년 12월 23일 07시 15분

내년 예산안 심의과정에서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이 국회가 증액한 예산 3조 원을 사이좋게 ‘나눠먹기’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 예산은 국회의 예산 심의 과정을 전혀 거치지 않았고, 양당의 의석수를 기준으로 일괄 분배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정부는 두 거대 정당이 밀실 담합을 통해 관행적으로 예산을 배분해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를 묵인해왔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뉴스타파는 올해 국회 예산결산심의특별위원회 소위원회에서 활동한 복수의 의원들을 통해 이같은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국회는 지난 2일 본회의를 열고 375조4,000억 원 규모의 내년도 예산안을 통과시켰습니다. 당초 정부안보다 6천억 원 줄었습니다. 국회가 정부안 감액 심사로 총 3조 6천억 원을 삭감한 뒤, 국회 차원에서 다시 3조 원을 늘렸기 때문입니다.

정부가 예산안을 제출하면, 국회는 예산 심사를 통해 불요불급한 항목을 꼼꼼하게 따져 걸러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자신들이 증액하는 예산은 얼마나 제대로 심사를 하고 있을까요?

뉴스타파는 국회가 이번에 3조 원의 예산을 늘리는 과정을 들여다봤습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습니다. 3조 원 규모로 증액한 예산을 구체적으로 어디에, 어떻게 쓸 것인지에 대한 심의는 전혀 없었습니다.

정부의 동의를 얻긴 하지만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이 거의 일률적으로 알아서 ‘나눠먹는’ 구조였습니다. 뉴스타파는 올해 처음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소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한 박완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을 통해 이 같은 내용을 확인했습니다.

다음은 박 의원과의 인터뷰 요지입니다.

박완주 의원 : (국회 예결위는) 감액만 하고 증액(심사)은 없어요.

기자 : 증액은 누가하나요?

박완주 의원 : 증액에 대해서는 이렇게 하는 겁니다. (이번 예산심사에서) 감액이 저희가 3.6조 원 정도를 했고, 그래서 증액을 3조 원 정도 했는데 3조 원의 증액분이 생기는 거죠.  3조 원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여야가 의석수를 가지고 나눕니다. 증액분을 어떻게 할 건지 그러면 5대 5로 나누는 것이 아니고 의석수 비율로 하면 정확하지는 않은데 아마 1.7조 원대 1.3조 원 이 정도로 나눈 것 같아요.

여당구조도 똑같은데 저의 야당만 말씀 드리면 1.3조 원의 반 정도는 당 정책 예산으로 씁니다. 예를 들면 저희는 이번에 누리과정이라던지, 복지예산이라든지, 어린이집 예산이라든지, 병역예산이라든지, 경로당 예산이라든지, 저희 정책 중심으로 하는 예산 중심으로 사용합니다. 그 예산이 6500억 원에서 7000억 원 정도 될 겁니다. 그리고 야당 간사가 기획재정부 예산실장과 함께 우리 당의 정책 예산의 순서와 금액을 쭉 정리를 합니다.

그러면 나머지 반인 6500억 원에 대해서는 지역 예산으로 증액 예산안을 잡는 겁니다. 저희가 7명이니까 간사님을 포함해서, 저는 충청권 지자체나 충청권 의원님들의 현안사업들을 정리를 하는 거죠. 광주 전남은 황주홍 의원, 경기남부는 송호창 의원, 경기 북부는 김현미 의원이 제주 영남은 강창일 의원님이 이렇게 권역을 나누면 그 배정액이 얼마겠어요? 한 1000억 원 증액하는 거예요. 저 같은 경우에 이걸 또 4개 시도로 쪼개면 각 시도별 200억~300억 원 증액하는 거에요.

같은 당 김현미 의원은 “국회가 증액한 예산에 대한 심사는 전혀 없었다”며 박 의원의 말을 뒷받침했습니다. 이들 의원들의 말을 종합하면, 국회는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을 감액해야 그 범위 안에서 국회의원들이 쓸 수 있는 예산을 새로 넣을 수 있고, 이렇게 만든 국회 증액분은 의석수에 맞춰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이 나눠 갖는다는 겁니다. 정의당 등 군소 정당은 증액 예산 배정 과정에서 제외됩니다.

증액 예산은 예결위원으로 선정된 새누리와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15명에게 각각 1000억 원 가량 할당됩니다. 이들은 별다른 심의 없이 사용처를 정합니다. 즉 국회의원들의 선심성 사업 등에 국민의 혈세가 낭비되는 길이 무방비로 열려 있는 것입니다.

이런 구조에서는 자기 당 정책에 부합되지 않거나 우선 순위에 밀리는 사업은 예산 배정 대상에서 제외될 수밖에 없습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청소 노동자들에 대한 급여 예산이 이런 경우입니다. 정부는 지난 2012년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시중노임보다 턱없이 적은 월급을 받는다며 이를 인상하도록 하는 고용개선 지침을 마련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예산이 없다며 임금을 올려주지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정의당 서기호 의원은 국회 법사위 의원들을 설득해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법무부의 청소 노동자 임금 관련 예산을 70억 원 늘리는 상임위 증액안을 제출했습니다. 이 안이 통과되면 청소노동자들은 시간당 5210원의 최저임금이 아닌 시중노임단가에 근접한 6945원이 적용돼 33%의 임금을 더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됐습니다.

그러나 법사위에서 올린 예산 증액안은 어떤 이유에선지 예결위의 문턱을 넘지 못했습니다. 김현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이에 대해 국회 상임위에서 예결특위로 올리는 예산안은 아예 심사를 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김현미 새정치민주연합 예결위원 : 그것은 아주 단순해요. 상임위에서 증액 요구하는 사업은 기록으로만 남아있을 뿐이고 그것 자체가 의제가 되지 않아요. 한 번도 (상임위 증액안)그걸 놓고서 회의한 적이 없어요.

기자 : 그런데 왜 예결위에서는 상임위안을 검토하지 않습니까.

김현미 의원 : 상임위에서 증액 요구한 예산안은 심사하지 않아요, 아예. 저는 이번에 예결위원을 해보고 나니까 이해가 되더라고요, 예전에 상임위 예결소위할 때 국회 전문위원 한분이 그러더라고요. 그것, 증액하는 것으로 열심히 싸울 필요 없다고.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다고 말한 이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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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이 2002년 이후 12년 만에 처음으로 법정 시한 내에 예산안이 통과됐다며 치켜세운 여야합의의 배경에는 이런 과정이 있었습니다. 이 같은 사실은 국민은 물론 같은 당 소속 국회의원들조차 알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기자 : 국회의원들도 증액심사를 안하는 것을 모릅니까.

김현미 의원 : 모르죠. 증액 심의를 이런 방식으로 한다는 것을 모르죠. 에결위 계수조정소위를 안 해보면.

기자 : 그러면 예결위 계수조정소위를 한 국회의원이 300명 중에 몇 분이나 계실까요? 정말 일부겠네요.

김현미 의원 : 일부죠. 이번에 15명이잖아요. 15명이면 4년이면 60명, 60명 아는 거죠, 5분의 1만. 나머지 5분의 4정도는 모르는 거죠.

세금을 내는 국민뿐 아니라 국회의원 300명중 240명은 모르는 예산 편성의 비밀입니다.

그렇다면 국회는 왜 증액심사를 하지 않는걸까?

김현미 의원 : 왜 안하냐고 했더니 만약에 어떤 사업을 놓고서 회의를 했는데 반대한다. 누군가 반대한다 그러면 그 사업을 요구했던 쪽하고 공개가 되면 정치적 부담이 있다. 그래서 비공개한다. 그런식으로 운영되는 거죠.

국회의 가장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국민이 낸 세금을 꼭 필요한 곳에 소중하게 쓰도록 하는 겁니다. 그런데 국회의원들이 정부의 세금 낭비를 감시하기는커녕, 예산을 제멋대로 가져다 쓴다면 국회의 존재 이유는 근본부터 허물어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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