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회견해부➁ 박근혜 대통령의 지우개
2015년 01월 12일 21시 05분
세월호 특별조사위를 ‘세금도둑’으로 규정해 논란을 빚고 있는 새누리당 김재원 의원이 여당 추천 조사위원을 통해 조사위 내부 정보를 수시로 보고받는 등 세월호 진상조사를 위한 준비 활동에 부적절하게 개입하고 있는 정황이 포착됐다. 김 의원 발언 직후 여당측 조사위원들이 조사위 준비단 해체 등 무리한 주장을 잇달아 제기하는 등 여권이 세월호 조사위를 공식 출범도 하기 전부터 흔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새누리당 김재원 의원의 ‘세금도둑’ 발언이 나온 건 지난 16일 오전 새누리당 원내대책회의에서였다. 당시 김 의원은 세월호 특별위원회가 여성가족부나 방송통신위원회보다 큰 규모로 준비되고 있다며 “세금도둑적 작태를 절대 용서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회의 직후 일부 기자들이 이 발언의 근거를 묻자 김재원 의원실은 조사위 설립준비단 명의의 문건을 참고자료라며 배포했다. 여기엔 세월호 조사위가 125명의 인력과 직제, 241억 원의 예산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정부와 협의되고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다수 언론들이 이 수치들을 근거로 김재원 의원의 발언을 기사화했다.
그러나 정작 조사위 준비단은 이 문건이 내부 공식 논의를 거치지 않은 출처 불명의 자료라고 즉각 반박했다. 이에 따라 일부 언론은 김재원 의원이 조사위 준비단의 명의를 도용했다는 보도까지 내놨고, 김 의원실은 분명히 준비단으로부터 받은 문건이라며 해당 언론사에 법적 대응 방침을 밝히는 등 논란이 확대됐다. 과연 이 문건은 누가 어떻게 만들어 어떤 경로로 전달된 것이었을까.
뉴스타파 취재 결과 이 문건은 새누리당 추천 상임 조사위원인 조대환 조사위 부위원장의 지시로 현재 조사위 파견 근무 중인 해양수산부 서기관이 작성했으며, 조 부위원장은 이 문건을 직접 들고 김재원 의원을 찾아가 전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과정은 이석태 위원장 등 상임위원단과의 협의가 전혀 없이 조 부위원장이 독자적으로 진행했다.
조 부위원장은 이에 대해 “조사위의 조직과 예산을 정부와 협의하는 과정에서 난항을 겪고 있다는 보고를 받고 여당 쪽에 협조를 구해야 겠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해수부에서 파견 온 직원에게 시켜 설명자료를 만들어 김재원 의원과 약속을 잡고 16일 오전 11시 경 직접 찾아가서 설명을 한 것”이라고 밝혔다.
조사위가 직면한 어려움을 잘 풀려는 취지였다는 설명이지만, 조 부위원장이 왜 하필 김재원 의원을 협의 대상으로 삼았는지는 의문이다. 조사위 준비단으로부터 받은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금까지 준비단은 조사위의 인력 규모와 직제에 대해선 행정자치부와, 예산에 대해선 기획재정부와 협의를 진행해 왔는데, 김재원 의원은 보건복지위와 운영위 소속이어서 직접적인 관계는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결과적으로 김재원 의원이 이 자료를 토대로 ‘세금도둑’ 발언을 함으로써 논란을 부추겼다는 점에서 실제로는 협조를 얻어내기는커녕 정쟁거리만 던져준 꼴이 된 것이다.
조대환 부위원장이 김재원 의원실에 조사위 내부 자료를 넘긴 것이 이번 뿐만이 아니었다는 점도 취재 과정에서 확인됐다. 이는 김재원 의원의 16일 ‘세금도둑’ 발언을 문제의 문건과 비교한 결과 확실해졌다.
김재원 의원은 원내대책회의에서 “세월호 준비단이 정원을 125명으로 하고 고위공무원을 4명, 3-4급을 2명, 4급을 15명, 4-5급을 5명, 5급을 38명 두고 다시 과를 무려 13개나 두는 거대 부서를 만든다고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문제의 문건에는 3-4급이 1명, 4급이 13명, 그리고 14개 과를 만드는 안이 적혀 있었다. 김 의원이 수치를 세 곳이나 틀리게 읽은 이유가 뭘까.
이유는 간단했다. 김재원 의원의 발언이 있었던 원내대책회의는 16일 오전 9시부터 시작됐지만, 정작 조대환 부위원장이 김 의원을 찾아와 문건을 건넨 것은 당일 오전 11시쯤이었다. 즉, 문제의 김 의원 발언은 이 문건이 아니라 이미 가지고 있던 또 다른 자료를 근거로 이뤄졌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이미 확보하고 있던 자료는 누구로부터 어떻게 받은 것일까. 취재 결과 이 자료 역시 김재원 의원실 보좌관이 세월호 조사위에 파견돼 있는 해수부 직원에게 요구해 받았던 것으로 파악됐다.
결국 김재원 의원은 조대환 부위원장과 파견 공무원 등을 통해 세월호 조사위의 내부 동향을 수시로 보고받아 왔으며, 이 가운데 확정되지도 않은 내용을 ‘세금도둑’이라는 표현과 함께 언론에 유포해 조사위를 설립 준비 단계부터 흔들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는 정황이다. 이는 여야가 합의한 세월호특별법 9조 ‘조사위원은 외부의 어떤 지시나 간섭을 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활동해야 한다’는 규정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김재원 의원은 이에 관한 입장을 물으려는 뉴스타파의 수 차례 전화를 받지 않았고 문자메시지 질문에 대해서도 명확한 대답을 하지 않았다.
김재원 의원의 ‘세금도둑’ 발언 직후 여당 추천 조사위원들은 일제히 극단적 주장을 내놓기 시작했다.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 지지를 공개 선언하고 지난 총선에서 새누리당 공천을 신청했던 교총 대변인 출신의 황전원 의원은 18일과 20일 잇달아 기자회견을 자청해 세월호 조사위 준비단을 공격했다. 준비단의 241억 예산안이 정부와 협상 중일 뿐 확정된 것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불투명한 의사 결정의 산물이라고 비난한데 이어 “아직 임명장도 받지 않은 조사위원장이 구성한 준비단은 정체불명의 불법 유령조직”이라며 “즉각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방문진 이사로 재직하면서 김재철 전 MBC 사장을 비호하는데 앞장섰고 세월호 참사 직후 일베 게시판 글을 퍼날랐던 차기환 위원 역시 21일 열린 조사위원 간담회 자리에서 이미 활동 중인 민간조사단의 자격을 문제삼으며 당장 돌려보내야 한다고 주장하며 위원장의 해명과 사과까지 요구하고 나섰다.
이들의 극단적 주장은 조사위 준비단에 대한 명확한 법적 규정이 확인되고 다수 조사위원들의 반론에 부딪친 끝에 부결됐다. 그러나 앞으로의 조사위 활동에서 언제든 유사한 주장들이 반복될 가능성은 여전하다.
이럴 경우 우려되는 것은 세월호 조사위의 진상규명 활동을 사회적 갈등 프레임으로 몰고 갈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지난해 세월호 특별법 제정 과정에서도 여당과 보수세력은 야당의 법안이 의사상자 지정과 대입특례 등 유가족들에 대한 과도한 배보상과 지원을 하도록 했다는 근거 없는 여론을 확산시킴으로써 초유의 사회적 갈등 국면을 촉발했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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