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와 호텔 사이] ①호텔은 유해시설 아니다?

2015년 04월 13일 19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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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교육 학부모회 어떤 분이 저에게 “당신의 사랑스런 아들 딸들이 다니는 학교에 호텔이 들어서면 찬성할 겁니까?” 이렇게 물었습니다. ‘저도 사랑하는 딸 둘이 있는데 난 찬성합니다’라고 얘기했어요. 왜냐하면 호텔은 유해시설이 아니기 때문에.

지난 4월 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한국호텔외식관광경영학회 주관으로 관광관련 6개 학회가 공동 주최한 토론회에서 청주대 김혁수 교수가 한 이야기입니다.

토론회 주제는 ‘한국관광호텔의 미래와 과제’였지만 사실상 ‘학교 앞 호텔 규제’를 풀어야한다는 목소리를 내기 위한 행사였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투자활성화 법안이라면서 4월 국회에서 꼭 통과시켜야 한다는 관광진흥법 개정안은 학교 앞 호텔 건설을 가능하게 해주는 법입니다.

호텔업이나 관광업과 관련된 학회 관계자 분들이라 모두 개정안에 찬성 입장이었습니다. 주관 학회의 회장이 전직 문체부 차관출신이란 사실은 일단 접어두겠습니다.

호텔은 현재 학교보건법에서 여관이나 여인숙과 함께 정화구역내 금지시설로 분류돼 있어서 학교절대정화구역(학교 출입문으로부터 50미터 이내) 안에는 들어설 수 없고 학교상대정화구역(학교 경계로부터 2백미터 이내)안에 세울 경우는 학교환경위생정화위원회의 승인을 받아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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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이 유해시설일까요?

특급 호텔들의 멋진 외경과 품격있는 서비스, 수준 높은 문화행사의 장, 외국 관광객들, 그리고 각 대학마다 설치돼 있는 관련 학과들과 호텔리어를 꿈꾸며 공부하는 학생들. 여러 교수가 토론회에서 힘주어 말했던 것처럼 호텔에 유해시설이란 낙인을 찍는 것은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통과에 공을 들이고 있는 관광진흥법 개정안의 핵심 내용을 보겠습니다.

1.학교 경계 50미터 밖의 지역인 경우 2.유해시설이 없고 3.100실 이상의 객실 규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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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3가지 조건을 충족하면 학교환경위생정화위원회(이하 학교정화위원회)의 심의를 받지 않아도 호텔 건립을 허용한다는 내용입니다.그리고 불법영업 행위가 한 번이라도 적발되면(원 스트라이크 아웃제도) 등록을 취소하도록 했습니다.

쉽게 말해 -호텔 안에 유흥주점 같은 유해시설이 없고, -모텔(2013년 현재 모텔 평균 객실 22개라고 합니다)과 달리 100실 규모 이상의 제대로된 호텔은 -학교에서 50미터 밖이면 심의없이 허용해주자는 것입니다. 문체부가 2012년 처음 법안을 낸 이후 계속되는 학부모와 학교관계자들의 반발을 감안해서 수정에 수정을 거듭해 보완한 법안입니다.

불필요한 규제라면 푸는 것이 마땅합니다. 도대체 무엇을 위한 규제인지 모를 그런 규제라면 말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궁금해지는 것이 있습니다.

학교환경위생정화위원회 심의가 과연 불필요한 규제일까?

불필요한 규제 때문에 호텔을 짓고 싶어도 지을 수 없게 되었다면 그건 정말 제도에 문제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대다수의 호텔이 몰려 있는 서울지역의 학교정화위원회 심의 결과를 바탕으로 현장 몇 곳을 확인해봤습니다.

학교정화위원회에서는

-학교에서 호텔이 들여다보이는지, -호텔입구가 학생들의 통학로인지, -호텔로 인해 교육환경에 좋지 않은 영향은 없는지를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금지 여부를 결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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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2014년 8월, 서울 구로동에 108개 객실의 10층 짜리 호텔을 지으려다 심의를 통과하지 못한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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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사각형으로 표시된 부분이 호텔 건립 예정지였습니다. 구로중학교 바로 뒷편입니다. 오른쪽으로는 동구로 초등학교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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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면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오른쪽이 구로중학교 건물(파란 원)이고, 왼쪽(빨간 원)이 호텔을 지으려던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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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중학교 4층 복도에서 창문 밖으로 내려다 본 모습입니다. 이 자리에 10층짜리 호텔이 들어선다면 호텔 출입구는 물론 객실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이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호텔이 불허되자 10층 짜리 호텔 대신 현재는 17층 짜리 오피스텔을 짓고 있습니다.)

새정치민주연합 김태년 의원실로부터 제공받은 당시 학교정화위원회 심의자료에는 이곳에 호텔이 들어선다면 교육 위생 환경에 지장을 준다며 이유를 이렇게 적어놓았습니다.

-구로중 재학생 775명 중 100명이 다니는 통학로이며 업소 출입구와 내부 행위가 보여 학습분위기를 저해. -호기심 유발, 이용객들의 흡연이 예상. -밤늦게 학원에서 귀가하는 학생들은 성폭행 등 위험에 노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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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학교 경계로부터 12미터 밖에 떨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관광진흥법이 개정되더라도 이곳에 호텔은 세워질 수 없습니다. (개정안은 학교 경계로부터 50미터 바깥쪽만 허용하기 때문에). 다만 학교정화위원회가 보통 어떤 이유로 금지 결정을 내리는지는 알 수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토론회에서 관광관련 학회 교수 한 분은 학교보건법 상의 학교정화위원회 때문에 건립하지 못한 호텔이 지난 3년 동안 91개나 되고 그 중 76개가 서울지역이었다며 이게 말이 되냐고 한탄했습니다. 구로중학교 바로 뒷편의 이 호텔도 그 76개 중 1개입니다.

이번에는 서울 대림동의 경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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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상단에 영림초등학교가 보입니다. A구역은 2013년 6월에 180객실의 11층 짜리 호텔이 추진됐지만 학교정화심의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반면 바로 길건너 B구역은 그보다 앞선 2012년 1월, 19층 짜리 호텔이 정화위를 통과했습니다.

왜 A는 정화위를 통과하지 못하고 B는 통과한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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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림초 초등학교 출입문에서 나오면 왼쪽으로 큰길로 가는 통행로가 하나 있는데 호텔부지 옆을 바로 통과하게 돼 있습니다.

정화위 심의자료를 보니 A구역은 ‘학교와 건물로 가려져 있지 않고, 호텔로 드나드는 차량이 학교정문을 지날 경우 아동 안전이 우려된다’는 것이 금지 이유였습니다. 여기에 호텔을 지었다면 박스 표시한 부분(위 사진)이 호텔이 될 것입니다.

학교 경계에서 58미터 떨어져 있고 100실 이상 규모이니 관광진흥법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학교정화위의 심의를 받을 필요가 없어지는 곳입니다. 마음 놓고 호텔이 들어서게 됩니다.

B구역은 학교 경계로부터 129미터 떨어져 있어 상대정화구역 안에 있습니다. 하지만 학생들의 주 통학로로 이용되지 않고 학교와의 사이에 왕복8차선 도로가 놓여져 있어 특별히 보건위생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학교정화위는 판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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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보니 호텔 겸 오피스텔을 짓는 공사가 한창이었는데 앞에는 중앙분리대가 있는 왕복8차선 도로가 있었고, 통학 시에 초등학생들이 다닐만한 길은 아니었습니다.

극히 일부의 예이긴 하지만 학교정화위의 역할이 필요한 것으로 보이는 사례들입니다. 현행 법안에서도 교육환경을 해치지 않으면 학교 200미터 안에서도 호텔이 지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2011년부터 4년 동안 338개 호텔이 학교정화위 심의를 받았고 이 가운데 224개 호텔의 건립이 허용됐습니다.

현재도 학교정화위의 심의를 받겠다고 서류를 내는 호텔들은 대부분 유흥주점 같은 유해시설이 없는 호텔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 교육주체들이 면밀한 분석을 통해 학생 교육과 보건에 유해할 지 아닐 지를 판단하는 것입니다.

학교정화위원회는 보통 15명 안팎으로 구성되는데 절반이 학교운영위원(학부모)이고 나머지는 교육공무원,지역사회 전문가, 보건소 등으로 구성됩니다. 그 지역의 학습 환경을 그 지역사회가 책임지는 일종의 교육자치가 이뤄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관광진흥법이 개정되면 50미터 밖의 호텔은 심사를 받지 않아도 됩니다. 하지만 50미터 밖에 떨어져 있더라도 학생 교육에 유해한 환경은 조성될 수 있습니다. 주변 교통량의 증가가 불가피하고 이는 안전사고 우려 요인이 됩니다. 호텔 앞 흡연자와 음주자들이 학생과 자주 마주치게 됩니다.

서울지역 한 학교정화심의위가 내린 모 호텔에 대한 금지 이유입니다.

- 오피스텔의 호텔숙박업 행위로 관광차 주차로 본교 학생과 주민들의 통행에 불편 및 교통사고의 위험성에 항시 노출돼 있음. - 인근 편의점에서 아침과 저녁에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는 행위를 등하교 학생들이 목격하는 비교육적 환경이 자주 목격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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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교육지원청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호텔하면 아무래도 남녀간의 그런 것 때문에 학생들 보기에 안좋으니까 우려하는 것 아니겠어요? 관광호텔 붙여 놓고도 다 대실 같은 거 하던데요?

호텔 몇 군데에 전화를 걸어 확인해봤습니다. 관광진흥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학교정화위원회를 거치지 않아도 되는 100실 이상, 학교경계 50미터 밖의 조건을 충족하는 호텔들이었습니다. “저희는 대실 영업은 안합니다”라고 말하는 호텔프론트도 있었지만 다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대실은 아침 7시부터 가능하시고요 3만원에 4시간입니다.”-1등급 호텔 “ 대실은 4시간에 3만원 이십니다.” -미등급 호텔

이 가운데는 이미 학교정화위원회를 통과해 세워진 호텔도 있었습니다.

자 어떻습니까? 당신의 학생 자녀가 다니는 학교 부근에 관광진흥법 개정안 대로 유해시설이 없는 100실 이상의 이런 호텔이 세워진다면 찬성하시겠습니까?

교육환경을 책임지는 학교정화위의 엄정한 심사가 있었고 금지와 허용에는 다 구체적인 이유가 있었습니다. 이것이 불필요한 규제일까요? 투자활성화를 이유로 이런 교육자치권을 무력화시켜도 되는 것일까요?

정부는 세월호 참사 1년을 맞아 안전 마스터플랜을 확정하면서 그동안 완화했던 안전규제를 다시 강화하고 아동과 여성 등 취약계층의 안전복지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다음에는 정부 말대로 외국관광객의 급증으로 인해 호텔이 정말 부족한 것인지 다루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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