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1주기 특집 2부 '인양, 국가는 속였다'
2015년 04월 13일 08시 40분
정부가 세월호 인양이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는 사실을 이미 1년 전에 확인하고도 그동안 은폐하다 최근에야 대통령의 언급에 맞춰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는 검토 결과를 발표한 것으로 뉴스타파 취재 결과 드러났다. 세월호 인양 자문을 담당했던 영국의 TMC사가 지난해 5월 23일 해수부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제시한 세월호 인양 방식이 최근 세월호 선체처리기술검토 TF가 발표한 유력 인양 방식과 동일했던 것으로 확인된 것이다. 이에 따라 정부가 세월호 1주기를 앞두고 정부에 대한 비판 목소리가 높아질 것을 예상하고 전략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지금껏 이같은 사실을 감춰온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해수부 산하 세월호 선체처리기술검토 TF는 지난 4월 10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세월호 인양 기술검토 중간결과’를 발표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인양이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오면 세월호 인양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말한 지 꼭 나흘 만이었다. 앞서 지난해 11월 11일 세월호 수중수색 중단 직후부터 꾸려진 TF는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과 유가족들의 지속적인 인양 요구에도 불구하고 기술검토 결과 발표를 차일피일 미뤄왔다. 당초 3월 말 예정됐던 발표를 4월 말로 연기했다가 대통령의 인양 관련 언급이 나오자 즉각 발표에 나선 것이다.
이날 TF는 세월호 인양이 기술적으로 가능한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가장 위험도가 낮다고 평가된 유력한 인양 방식도 소개했다. 좌측으로 90도 넘어져 있는 세월호의 현재 상태를 유지한 채 우측 선체면의 93개 지점을 크레인으로 연결해 해저면으로부터 3m 정도 들어올린 뒤 2.5km 떨어진 동거차도 남단의 수심 30m 해역으로 옮겨 대기 중인 플로팅 도크에 실어 인양한다는 것이다. 이곳은 현재 세월호가 침몰된 해역보다 조류가 약하고 수심이 얕아 크레인줄 설치와 플로팅도크 안착 작업이 훨씬 용이하다는 것이 TF의 설명이었다.
TF는 이같은 방식으로 세월호를 인양할 경우 기간은 최소 1년에서 최대 1년 6개월, 비용은 최소 1천억 원에서 1천 5백억 원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했다. 이번 검토 결과를 중앙재난대책본부에 보고한 뒤 인양이 결정되면 업체 선정과 계약에 1~2개월, 인양업체가 현장 세부 조사를 하고 장비와 인력을 모으는 설계기간으로 2~3개월을 보낸 뒤부터 수중 작업 등 본격적인 인양이 개시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정부TF가 5개월 가까운 기술검토 끝에 발표한 세월호 인양 방식은 이미 지난해 5월 말 인양 전문 컨설팅업체인 TMC가 해수부에 제출한 인양 방식과 똑같은 내용이었다. 이는 뉴스타파가 입수한 해수부 내부 문건을 통해 확인됐다.
해당 문건의 제목은 ‘세월호 인양 입찰 검토’, 작성 주체는 TMC 기술지원팀이었다. 문건에 따르면 TMC는 지난해 5월 5일 해수부와 세월호 인양 자문협정서를 체결함과 동시에 SMIT, Svitzer, Mammoet, Titan, CSR(이상 외국업체), 살코, 코리아살배지, 언딘(이상 국내업체) 등 8개 인양 전문 업체에 세월호 인양 입찰 참여를 위해 기술제안서를 제출할 것을 요청하는 공문을 발송했다. 이 가운데 당시 입찰 포기를 선언한 언딘을 제외한 7개 업체로부터 5월 17일까지 기술제안서를 접수받았다.
TMC는 이들 7개 업체의 기술제안서에 담긴 인양 방안을 면밀히 검토한 결과를 5월 23일 보고서와 프레젠테이션 파일 형식으로 해수부에 제출했다. 여기엔 7개 업체가 제시한 인양 방식이 세월호의 상태와 해역 조건 등을 감안할 때 모두 부적격이라는 검토 결과가 담겨 있었다.
보고서는 이어, ‘검토 결과 성공 확률이 높고 안전하게 인양할 수 있는 대안 방식이 존재한다’며 이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세월호를 현재의 누운 상태에서 크레인으로 5~10m 들어 올려 조류와 수심의 제한을 덜 받는 장소로 옮긴 뒤 잠수바지(플로팅도크)에 안착시켜 인양한다는 것이다. 옮겨질 장소로는 수심 27~30m인 동거차도 남단 해역이 적합하다며 지도까지 첨부했다. 이같은 내용은 최근 정부TF가 발표한 인양 방식과 판박이처럼 똑같다.
보고서에는 이같은 방식의 인양이 진행될 경우 입찰 절차에 대해서도 상세히 설명돼 있다. 다수 후보군 가운데 2곳을 우선 협상 대상으로 선정하고 세부 평가를 거쳐 1곳을 최종 낙찰하며, 이 과정에 2주에서 1개월 가량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했다. 이어 낙찰 업체와 협상을 통해 최종 계약까지 마치는 데 다시 2주에서 1개월이 걸릴 것으로 예측했다. 이후 낙찰 업체는 현장에 대한 세부조사와 장비 및 인력을 확보해 이동시키느라 2달 이상을 필요로 하며 실질적인 인양 작업은 그 이후부터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 내용 역시 정부 TF가 밝힌 인양 업체 선정 및 작업 착수까지의 소요 기간과 거의 일치했다.
이에 따라 정부가 이미 지난해 5월 말에 세월호를 인양할 수 있는 기술적 방식을 내부적으로 확정한 상태에서 이를 감춰왔던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실제로 해수부는 지난해 6월 국회 세월호 국정조사특위로부터 ‘세월호 인양제안서 일체’를 제출하라는 요구를 받고도 7개 업체의 제안서에 대한 TMC의 기술검토 결과만 요약해서 제출했을 뿐 정작 TMC가 제안한 대안 방식은 보고하지 않았다.
특히 TMC 보고서에는 세월호 인양 문제를 놓고 정부가 유가족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충고도 담겨 있다. 보고서는 ‘인양 절차의 전 과정에 있어서 최우선 순위는 유가족이며, 따라서 정부는 이들이 원하는 바를 파악하기 위해 긴밀한 유대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유가족은 세월호 인양을 강력히 요구할 것이며 이 경우 정부는 이와 같은 방식의 인양을 준비해왔다고 설명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시했다.
그러나 정부는 지금까지 정반대의 행보를 보였다. 지난해 11월 11일 세월호 수중수색 종료 직후 정부는 실종자 가족들이 기술검토TF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3일 TF의 첫 회의 직후 정부는 유가족들에게 논의 과정에서 빠져줄 것을 요구했다. 유가족들이 회의에 들어오면 전문가들이 제대로 의견을 제시할 수 없고, 설령 회의가 진행된다 해도 전문 용어들이 많아 유가족들이 알아듣기 힘들 것이라는 이유를 들었다. 이후 TF는 12월 8일과 26일 두 차례 회의 결과를 유가족들에게 브리핑한 뒤 이후 추가로 열린 10여 차례의 회의는 아예 일정조차 알려주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영국 업체조차 유가족들에게 인양 관련 정보를 제대로 전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충고했는데 우리 정부는 정보를 감추기에만 급급했던 셈이다.
이처럼 정부가 거의 1년 전에 세월호 인양이 기술적으로 가능함을 인지하고도 최근까지 이 사실을 감추며 인양 결정을 미뤄온 사실이 확인됨에 따라 유가족들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당초 오늘(14일) 오후 해수부가 유가족을 대상으로 세월호 인양 기술검토 결과 설명회를 제안했으나 가족들은 거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416 가족협의회 관계자는 정부가 가족들을 1년 가까이 속여 왔다며, 즉각 인양에 나선다는 결정이 아니라면 인양에 관한 어떤 논의도 거부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뉴스타파는 오는 15일 세월호 참사 1주기 특집다큐 ‘참혹한 세월, 국가의 거짓말’을 통해 TMC 보고서에 담긴 세월호 인양 기술검토의 내막을 집중적으로 다룰 예정이다. 이번 다큐에서는 이밖에도 세월호 실종자 수색 과정이 부실하기 짝이 없었다는 사실을 최초로 공개되는 선체 내부 수색 영상을 통해 폭로하고,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를 무력화시키고 있는 주체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도 심층 보도할 예정이다. 지난해 세월호 100일 특집다큐 ‘세월호 골든타임, 국가는 없었다’에서 진행과 내레이션을 맡았던 박혜진 아나운서가 이번 세월호 1주기 다큐에서도 같은 역할로 시청자들을 만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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