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완종 회장은 박 대통령을 겨냥했다

2015년 04월 23일 19시 06분

고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이 세상을 등지면서 남긴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가 온 나라를 발칵 뒤집어 놓고 있다. 55글자에 불과한 메모지에는 허태열 전 비서실장과 홍문종 의원, 유정복 인천시장, 홍준표 경남지사, 서병수 부산시장, 김기춘 전 비서실장과 이병기 현 비서실장, 그리고 이완구 국무총리의 이름과 그들에게 줬다는 돈의 액수가 적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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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은 곧바로 <특별 수사팀>을 만들어 수사에 착수했고, 지금까지는 선거 후원 명목 3천만 원 수수 등 각종 의혹들로 결국 사의를 표명한 이완구 국무총리와 한나라당 대표 경선과정에서 1억 원 수수 의혹이 불거진 홍준표 경남지사가 수사와 여론의 초점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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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성완종 회장이 남긴 진실은 무엇이었을까?

성완종 리스트에 등장한 나머지 여섯 명의 공통점은 모두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의 일등 공신들이다. 성완종 회장 역시 숨지기 전날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은 MB맨이 아니라, 박근혜 후보님 당선을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뛰었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원 개발 비리 수사 대상에 오르고 자신이 평생 쌓아온 모든 것들을 하루아침에 잃게 될 위기에 처하자, 이완구 총리와 이병기 비서실장, 김기춘 전 실장 등 정권 실세들에게 수십에서 수백 차례씩 통화를 시도하며 구명 요청을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모두 나 몰라라 하자, 극도의 배신감을 느낀 정황이 곳곳에서 감지된다.

경향신문과의 통화 녹음에서 성 회장은 의리와 신뢰를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그는 “정치집단이라는 게 의리와 신뢰 속에서 어떤 때는 목숨까지 걸고 정권을 창출한다. 신뢰를 지키는 게 정도 아닌가?”라며 분통을 터뜨리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억울함을 호소했다고 한다. 결국, 성 회장은 혼자 희생양이 될 수 없다며 자신의 충청포럼과 재력을 기반으로 박근혜 정부 출범 과정에 깊숙이 개입한 비밀을 풀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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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2007년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 때 박근혜 캠프의 <직능 총괄 본부장>이었던 허태열 전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7억 원을 줬다며 돈을 건넨 장소인 서울 리베라 호텔까지 구체적으로 거론했다. 허태열 전 실장은 당시 박근혜 후보에게 성 회장을 직접 소개하기도 했던 인물이다. 성 회장은 또 2012년 대통령 선거 때 박근혜 후보 캠프의 <조직 총괄 본부장>이었던 홍문종 새누리당 의원에게도 2억 원을 줬다고 털어놨다.

두 사람 모두 개인에게 준 것이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의 경선과 대선 자금 명목으로 돈을 줬다는 것이다. 결국, 자신이 건넨 돈은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 에 쓰였고, 폭로의 핵심은 박근혜 정부의 불법 정치자금 문제라는 것을 지적하는 대목이다. 성 회장은 통화 녹음에서 “박근혜 대통령한테 너무 실망했고, 아마 나 같은 사람들이 앞으로 계속 나오지 않겠나. 나같이 희생되는 사람이, 나 하나로 희생됐으면 좋겠다”며 박근혜 대통령을 직접 겨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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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허태열 전 실장은 해명 보도자료를 내 그런 금품 거래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라며 부인했고, 홍문종 의원도 기자회견을 통해 “단 1원이라도 받았다면 정계 은퇴할 것”이라며 돈을 받은 사실이 없다고 말했다. 이제 성완종 리스트의 진위는 검찰 수사가 규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검찰이 살아있는 권력의 아킬레스건이라 할 수 있는 불법 대선과 경선 자금에 대해 얼마나 실체를 밝혀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이런 현실적인 부담 때문에 성 전 회장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고도 볼 수 있다.

성완종 회장은 “내가 희생되고 죽는 한이 있어도 내 목숨으로 내가 대처하려고요. 그렇지 않으면. 이게 자기의 진실과 진실의 고백이 남들한테 인정이 안 되지 않습니까?”라며 극단적인 선택을 암시했다. 실패한 기업인이자 정치인으로서 성 전 회장 역시 구시대의 정치 관행을 답습했지만, 그가 남긴 진실을 규명하는 일은 우리 사회 전체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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