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격자들]추석 특집 2부, 건달할배 채현국을 만나다 - 마약같은 ‘돈벌이’에서 ‘헬조선’까지
2015년 10월 02일 16시 55분
노인은 많지만 ‘꼰대’가 아닌 ‘참 어른’은 찾아보기 힘든 이 시대. 세대 간 대화는 단절되고 갈등의 골은 점점 깊어져 간다. 그런데 어르신 한 분이 나타났다. 지난해 초, 한겨레신문 인터뷰에서 “노인들이 저 모양이란 걸 잘 봐두어라”는 촌철살인 한 마디를 남긴 채현국 효암학원 이사장(81). 그의 한 마디는 울림이 컸다. 인터뷰 기사는 SNS에서 5만 건 이상 공유되었고, ‘채현국 어록’이라는 이름으로 그의 말이 회자되고 있다. 최근엔 [풍운아 채현국], [쓴맛이 사는 맛] 등 그의 이야기를 담은 책들도 잇달아 출간되고 있다.
하지만 ‘81세 뉴페이스’ 채현국 어르신은 본인을 ‘건달’로 불러 달라 하신다. 선생님을 소개할 때 ‘위대한’, ‘풍운아’ 같은 그럴싸한 수식어를 붙이면 당신과 원수지는 일이라며 도리어 호통을 치신다.
‘건달 할배’의 일상은 요샛말로 ‘쿨’하다. 다방보다는 커피전문점이 좋다며 에스프레소 더블을 마신다. 젊은이들이 지하철에서 자리를 양보해줘도 운동 삼아 서 있겠다며 마다한다. 학교에서는 쓰레기 줍고 다니는 동네 할아버지라 오해하기에 십상이다. 보통 중·고등학교를 운영하는 이사장이라 생각하기 힘든 소탈한 옷차림에, 학생·선생님들과 격의 없는 대화까지. ‘건달 할배’는 타인의 눈을 신경 쓰지 않는 이 시대의 ‘쿨남’ 이자, 자유인이다.
내 것이 아닌데 뭘 나눠줘요? 나눠주긴. 남의 것 내가 다 차지하고 앉았다가 주인한테 들켜서 돌려주는 거죠. 돌려준 겁니다.
남이 아플 때 내가 그들을 못 꺼내주면 여기 아픈 사람이 있다고 소리는 질러줘야 하지 않습니까... 같이 맞아 죽지는 못하더라도 호루라기는 불어야지.
채현국 어르신은 1970년대 ‘흥국탄광’을 비롯한 20여 개의 흥국 계열사를 운영한 오너이자, 당시 개인소득세 납부액이 전국 10위 안에 들 정도의 거부였다. 그러나 그는 1972년 유신헌법 선포 이후 “그런 놈들하고 한패 안 하려고” 잘 나가던 회사를 정리했다. 당시 흥국탄광에서 일하던 직원들에게 벌었던 돈을 다 돌려주었다. 마약 같은 ‘버는 재미’와 돈에서 해방된 그는 진정한 자유인이 되었다.
그리고 1970년대와 80년대 군사정권 시절에는 도피생활을 하던 민주화 인사에게 자신의 집과 회사를 은신처로 내주었고, 자금을 지원하기도 했다. 전두환 정권 시절 ‘수배 1번’이었던 장기표 씨는 ‘어르신은 자신뿐만 아니라 다수의 사람에게 그렇게 했다’며 그 시절의 채현국을 기억했다. 어쩌면 그의 삶은 ‘불의의 앞잡이’가 되기 싫어 고군분투했던, ‘건달의 삶’이었을지도 모른다.
늙으면 지혜로워진다는 건 거짓말입니다. 농경 시대의 꿈같은 소리입니다. 늙으면 뻔뻔해집니다.
그들을 욕해봤자 소용없어요. 욕을 넘어서야 해요. 그런 자들이 바로 못하게끔 젊은이들이 좀 더 분발해야 합니다.
어르신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이상하게 기분이 나쁘지 않다. 어르신이 ‘척’하는 꼰대가 아닌, 진짜 ‘건달’임을. 그가 불의의 앞잡이가 되지 않기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싸워왔는지를, 알기 때문일 거다. 진정한 어른이 되는 법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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