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기아차, ‘자동차 품질규격 미달 부품’ 3만 개 사용 확인
2015년 09월 16일 21시 36분
현대기아차에 들어가는 전자장치에 ‘위조 부품’이 사용되고 있다는 내용이 담긴 현대모비스 내부 보고서를 뉴스타파가 입수했다. 이 보고서에는 현대기아차에 들어가는 전자장치 4개에 장착된 부품(트랜지스터, 다이오드, 저항 등) 10개가 ‘위조품(counterfeit)’이거나 ‘위조품으로 의심(suspect)’된다고 쓰여있다. 이 보고서는 현대모비스가 의뢰했고 반도체 신뢰성 검증업체인 QRT(주)가 작성했다. 현대모비스 측은 이 보고서가 “근거 없이 섣부르게 결론을 내린 것”이라고 주장했다.
뉴스타파가 입수한 두 개의 보고서는 각각 2014년 11월 5일과 11월 20일 QRT가 작성한 것이다. 11월 5일 보고서는 기아자동차 슬로바키아 공장에서 조립됐다가 불량으로 판명된 전자장치 두 개를 검사한 것이고, 11월 20일 보고서는 현대기아차 부품 계열사인 현대모비스 진천공장에서 제조된 전자장치 두 개를 검사한 것이다. 이 보고서들은 현대모비스 내부적으로 공유할 뿐 외부로 공개하지 않을 계획이었다고 현대모비스 관계자는 밝혔다.
현대모비스 품질팀은 2014년 10월 14일 장석원 박사(한양대 신뢰성분석연구센터 소장직무대행 2003~2009, 현재 컨설팅 그룹인 ‘인사이터스’ 수석 전문 위원), 그리고 반도체 신뢰성 검증 업체인 QRT의 불량분석팀장인 김모 씨와 함께 현대기아차에 쓰이는 전자장치들의 원인불명고장(NTF : no trouble found)과 관련해 회의를 했다. 그리고 불량 원인이 ‘위조 부품’일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 뒤 QRT에 정밀 검사를 의뢰했다.
QRT는 검사 결과 4개의 전자장치에서 모두 ‘위조(counterfeit)’ 부품이나 ‘위조가 의심(suspect)’되는 부품이 발견됐다고 보고했다. 위조나 위조가 의심되는 부품은 모두 10개였다.
검사 대상인 4개 부품 중 2개는 현대모비스의 품질테스트를 모두 통과한 뒤 기아차 슬로바키아 공장에서 완성차량에 조립된 BCM(Body Control Module)이고, 나머지 두 개는 현대모비스 진천공장에서 임의로 고른 BCM과 오디오 장치이다. BCM은 자동차의 문 개폐를 비롯한 기본적인 차체 제어를 담당한다. 국내 1호 자동차 명장 박병일 씨는 “BCM에 문제가 생길 경우 문이 열리지 않아 차에 들어가지 못하거나 빠져나오지 못하는 등 안전과 보안 상의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QRT 보고서에 쓰여있는 위조부품의 증거들을 몇 가지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편의상 검사 대상이 된 장치들을 검사 순서에 따라 1번 BCM, 2번 BCM, 3번 BCM, 4번 오디오로 표기한다.)
먼저 1번 BCM의 부품에서는 ‘블랙 토핑(Black topping)’의 흔적과 ‘모서리 깨짐’ 등의 현상이 발견됐다고 나온다. 블랙 토핑은 칩이 위조되기 전의 마킹(칩 제조사의 로고, 제조일자 등의 정보)을 지우기 위해 새로운 층을 덮어 씌우는 위조 기술이다. QRT는 우측 상단의 사진을 블랙 토핑의 증거로 파악했다. 사진 중 노란색 상자 표시 안에 검은색 시료가 불거져 나온 것은 블랙 토핑의 흔적이다.
보고서는 위조부품의 또 다른 증거로 알려진 모서리 깨짐 현상도 제시했다. 위 사진 좌측 상단과 하단 두 장의 사진의 ‘노란색 표시’ 부분에서 모두 모서리 깨짐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아래 사진은 2번 BCM에 사용된 부품이다. 1번과 마찬가지로 모서리 깨짐 증상이 발견됐다. (노란색 삼각형)
아래 사진은 3번 BCM에 쓰인 부품이다. 보고서는 이 부품에서 모서리 깨짐, 재도금 등을 위조품 증거로 제시했다. 우측 상단은 모서리 깨짐 흔적이고, 하단 두 장의 사진이 재도금의 흔적이다. 이 부품은 전기적 특성 테스트에서도 불량으로 나타났다.
아래 사진은 4번 오디오의 부품이다. 이 부품에서는 모서리 갈림이 발견됐고(상단 큰 사진) 단자 상부가 깨진 흔적(하단 작은 사진 4장)도 관찰됐다.
취재진은 반도체 신뢰성 전문가로 꼽히는 A 교수에게 QRT 보고서와 관련해 자문을 요청했다. A 교수는 현대기아차 관련 보도임을 밝히자 익명을 요구했다. A 교수는 “이런 부품이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데 들어가면 잠깐의 고장 정도로 끝나겠지만, 엔진제어장치 같은 중요 부품에 들어갔다면 고속도로를 달리는 도중에 엔진이 꺼진다든지 하는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 심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자동차는 항상 습기에 노출되어 있는데 부품에 크래킹(cracking, 갈라짐)이 있을 경우 그 사이로 습기가 들어갈 수 있습니다. 습기가 침투하면 여러 가지 고장이 일어날 수 있어요. 와이어가 끊어진다든지 전기적 불량이 발생할 수 있지요. 이런 부품이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데 들어가면 잠깐의 고장 정도로 끝나겠지만, 엔진제어장치 같은 중요 부품에 들어갔다면 고속도로를 달리는 도중에 엔진이 꺼진다든지 하는 문제를 유발할 수 있어요. 그럼 심각할 수 있지요. 이런 부품이 쓰인 모든 제품들이 다 고장날 거라고 볼 수는 없겠지만, 십만 대 중에 하나만 그렇게 된다고 하더라도 참 불행한 일이에요. -반도체 신뢰성 전문가 A교수
뉴스타파 취재진은 QRT 보고서를 검토한 뒤 현대기아차에 들어가는 전자장치 여섯 개를 시중에서 임의로 구입해 미국의 위조부품 검사기관 SMT에 검증을 의뢰했다. SMT는 뉴스타파가 의뢰한 부품에서 위조 칩을 발견하지 못했다. SMT의 조사 담당자 마이클 드벤디토는 “비용과 시간의 제약 때문에 의뢰 부품에 포함된 칩 중 크기가 큰 주요 부품에 한정해 조사를 진행했다”고 말했다. (뉴스타파는 SMT에 비용을 일정 수준 이하로 제한해 달라고 요청했다.) QRT 보고서에서 위조품으로 언급된 부품들은 모두 트랜지스터나 다이오드 같은 작은 부품들이었다. SMT검사에서는 QRT보고서에서 언급된 위조부품들이 조사대상에서 빠지게 된 것이다. 모든 부품들에 대해 검사를 진행하려면 수십 배 이상의 비용과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현대모비스는 뉴스타파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QRT 보고서는 섣부른 단정이었다”고 주장했다. 현대모비스는 보고서를 직접 작성한 QRT 불량분석팀 김모 팀장이 쓴 ‘사실 확인서’를 취재진에게 제시했다. 사실 확인서에는 QRT 보고서에 언급된 깨짐, 긁힘, 전기적 불량 같은 증상이 발생하는 데는 다양한 원인이 있는데 정확하게 판단하지 못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현대기아차 전자장치에 위조 부품이 사용됐거나 사용이 의심된다는 결론을 내린 보고서를 직접 작성한 QRT 김 팀장이 6개월 여 만에 입장을 180도 뒤집은 셈이다.
현대모비스는 보고서를 작성한 QRT가 반도체 신뢰성 검증 관련 업무에 대한 전문성이 떨어진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QRT는 국가 공인 반도체 신뢰성 검증 기관으로서 이번 의뢰 이전까지 현대모비스의 불량분석 업무를 도맡아 해왔다.
현대모비스는 또 위조로 의심 받은 부품을 생산한 제조사로부터 진품 확인서를 받았다며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 진품 확인서들은 QRT보고서가 작성된 뒤 반년 가까이 지난 올해 3월 이후 받은 것이다. 또한 현대모비스는 위조가 의심되는 부품 가운데 2개와 관련해서는 진품 확인서를 받지 못했다. 현대모비스는 QRT 검사에서 디캡(De-cap, 칩 분리) 검사를 실시해 진품 확인이 불가능했다고 해명했다.
현대모비스는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반도체에서 크래킹(갈라짐), 갈림 등의 현상은 드물지 않게 발생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앞서 취재진이 인터뷰했던 반도체 신뢰성 전문가 A 교수는 “자동차에 들어가는 작은 소자들은 전자장치의 신뢰성을 지켜주는 기본 부품이고 값도 싸기 때문에 항상 새 것을 쓴다”고 강조했다. 또한 자신이 다뤄온 반도체 부품들 가운데 “QRT 보고서에 나오는 것처럼 갈리거나 깨진 제품들을 잘 보지 못했다”면서 “보통은 깨끗한 형태로 들어온다”고 말했다. 또 다른 반도체 신뢰성 전문가 B교수는 “흔히 쓰는 반도체에 깨지거나 갈린 흔적들이 발견되진 않는다. 그건 굉장히 위험한 짓”이라고 말했다.
현대모비스 측은 QRT 조사 과정에서 누군가 부품을 불량으로 조작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회는 현대기아차에 위조부품이 사용됐다는 의혹과 관련해 현대차그룹 권문식 부회장을 오는 9월 15일 국정감사 증인으로 채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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