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회] 지율을 죽여라

2012년 04월 27일 07시 10분

<기자>

2008년 7월. 청와대가 발간한 새정부의 국정 철학과 주요 국정과제라는 제목의 문건입니다. 설익은 민주화의 적폐 사례로 천성산 문제가 적시돼 있습니다. 이 문건 작성자는 기획재정부 장관인 박재완 당시 국정기획수석 비서관입니다. 그는 당시 대한상공회의 강연에서 천성산 도롱뇽 보호를 위해 2조5천억 원을 지불했다고 말했습니다. 문건에 나온 대로 천성산 문제를 민주화를 너무 빨리 이룬 폐단, 설익은 민주화의 적폐 사례라고 주장했습니다.

친이 인사들과 건설사 대표 등이 망라된 MB 정권 외곽 단체가 만들어질 때도 천성산는 국가발전의 걸림돌로 규정됐습니다.

[박승환 전 한나라당 의원 / 현 한국환경공단 이사장]
“기존의 환경단체가 지나치게 이상론적으로, 비판적으로만 흘러서 국가의 발전에 걸림돌이 되어 온 것도 사실입니다. 어떤 스님의 단식으로 인해서 KTX 천성산 터널이 2년 넘게 공사가 중단됨으로 인해서 2조 원이 넘는 국가예산이 낭비되었다, 라는 지적도 있고...”

극우단체들도 공격에 가세했습니다.

[조갑제 조갑제닷컴대표]
“천성산에 터널을 뚫으면 그게 무슨 사람 아니고 도롱뇽에 피해를 준다고 어떤 여자 중이 단식을 하니까 그쪽 편에 서 있던 노무현정부가 여러 번 공사를 중단시켜 가지고 그것 때문에 (KTX 개통) 늦어진 거 아닙니까. 그래서 일어난 국가적 손실이 얼마냐 하면 2조 5천억 원입니다. 2조 5천억 원. 인구가 10만 명 사는 신도시를 지을 수 있는 돈을 간단하게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율이라는 여자 중한테 갖다 바치고 말았습니다. 권익이 침해 받을 때는 그땐 들고 일어나야 됩니다.”

보수 언론은 2조 또는 2조 5천억 공격의 논거를 제공했습니다. 기사에서도 사설에서도 천성산 공사 지연 기간과 손실액을 부풀렸습니다.

지율 스님의 단식은 국가에 막대한 손실을 끼친 돌출 행동으로 매도 당했고 결국 한 개인에게 집단적인 모욕과 신체적인 위해가 가해지는 상황까지 만들어졌습니다.

[지율 스님]
“전성산 고속도로 (관련해 나에 대한) 안티가 당시에 철도(시설) 공단 감리단장이 (지율 안티카페) 활동을 했어요. (어떤 이는) 사람들 많은 데서 저를 막 엄청 공격해서 밤에, 거의 폭언 같은 것들... 거리에서 뺨 맞은 그런 기억까지 있고요.”
천성산 논란은 졸속으로 이루어진 환경조사 때문이었습니다. 중앙일보조차 사업의 졸속 추진을 비판하고 천성산 보호주장에 대해 경청할 가치를 인정했습니다. 실제로 천성산 환경보호를 주장한 이들 덕분에 환경조사의 결과가 대부분 수정됐고 환경보호조치가 기존보다 강화된 가운데 공사가 진행될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일부 세력은 지율 스님이 무조건적으로 공사를 막은 것이라고 왜곡하고 있습니다.

[지율 스님]
“저쪽에서는 도롱뇽을 본 적이 없다고 얘기를 했어요. 그 당시에 법정에 서서, 전문가들이.”
(그런 것들을 보는 것이 더 안타까웠습니까? 파괴될 환경이 더 안타까웠습니까?)
“전자였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이건 잣대가 움직였으니까요.”

[서재철 녹색연합 사무국장]
“1994년 잘못된 환경영향평가를 제대로 하자는, 공동으로 조사를 하자는 것이었지.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는 고속철 공사를 안 된다. 이건 아니었습니다.”

왜곡된 사실관계는 피해 당사자의 지리하고 외로운 소송을 통해서야 비로소 정정됩니다. 조선, 중앙, 동아일보 모두 정정 보도문을 게재하는 굴욕을 당했고. MB 측근인 박승환 한국환경공단 이사장과 조선일보는 명예훼손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박재완 장관의 경우 명예훼손 대상을 특정하지 않아 유죄를 면했지만, 2조 5천억 손실 주장은 허위라고 법원이 확인했습니다.

허위사실이 명백히 드러났지만 이러한 사실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천성산은 도롱뇽 천지라는 새로운 왜곡으로 지율 죽이기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공격의 지속성과 집요함에 비춰볼 때 특별한 이유가 있어 보입니다.

천성산 환경운동가 지율스님을 비난하는 보도의 결론은 늘 개발사업 옹호였고, 이념 공세였습니다. 4대강, 제주해군기지 등에 대한 반대를 제2의 도롱뇽, 지율과 같은 억지로 몰아붙이는 것이 도식처럼 반복됐습니다. 심지어는 탈북자 보도에도 천성산 도롱뇽을 끌어붙였습니다.

[지율 스님]
“천성산만 이야기하는 것이 결코 아니고 구럼비, 새만금, 원자력, 가리왕산 골프장, 그리고 영주댐 공통점이 있어요.”
(삼성? 아니면 토건?)
“두 개가 같은 거죠.”

조만간 환경부는 천성산 일부 습지에 대해 6년 만에 정밀 조사에 나섭니다. 그러나 환경단체들은 정부 주도의 일방적인 조사가 아닌 시민단체도 참여하는 공동조사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서재철 녹색연합 사무국장]
“(도롱뇽 소송으로 실시된) 2005년 조사가 사회적인 갈등을 겪고 해보자, 해서 상당히 밀도 있는 조사였기 때문에 그분들과 함께 (공동조사) 하면 지금보다 훨씬 깊이가 있겠죠. 특히 천성산 조사는 습지 조사뿐만 아니라 계곡부 조사도 병행돼야 됩니다.”

올해 천성산 습지조사를 맡게 된 국립환경과학원은 대표적인 4대강 찬동 인사인 박석순 교수가 원장입니다. 그는 MB 외곽 조직인 부국환경포럼을 주도하고 초대 명예 대표까지 지냈습니다. 부국환경포럼은 천성산 환경운동을 국가발전의 걸림돌로 규정한 단체입니다.

정부가 소모적인 논쟁을 피하고 정치적 계산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습지보호에 나설 의지가 있다면 시민단체 등이 참여하는 공동조사를 거부할 이유가 없습니다. 주장이 다르다는 이유로 한 사람을 집단적으로 물어뜯는 세태. 그것을 부추기고 방조하는 언론과 정치세력은 민주주의의 해악입니다.

태그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