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뚤어진 투기와 호화사치... 수사착수

2017년 03월 29일 07시 49분

지난해 뉴스타파는 조세도피처인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오픈블루’라는 페이퍼 컴퍼니를 함께 세웠던 허재원, 이상엽, 유순열씨의 사례를 보도한 적이 있다. 당시 이상엽, 유순열 씨는 무역업을 위해 페이퍼컴퍼니를 세웠다가 사업이 실패하면서 손해를 보고 페이퍼 컴퍼니를 폐업했다고 해명했지만, 뉴스타파 취재결과 이들 세 사람은 지난 2009년부터 인도네시아와 한국을 무대로 유연탄 무역 사업과 이를 매개로 한 투자사업을 계속 벌여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이 유연탄 무역을 위해 인도네시아에 세웠던 회사는 400억 원이 넘는 손실만을 남겼다. 그런데 허재원 씨와 직원 김 모 씨는 지난해 11월 닷새 만에 연이어 인도네시아 현지에서 의문사했다. 과연 이 같은 손실은 사업 실패 때문이었을까?

석탄무역 손실 400억원은 어디로? 1. 회사 인수와 주가부양

인도네시아 회사에서 고 허재원 씨를 도와 자금 정리업무를 맡았던 전 직원 A 씨는 한국으로 현금으로만 170억 원 이상이 보내졌고, 이 돈은 기업 인수나 유상증자 자금으로 활용됐다고 말했다. 석탄 무역이나 광산개발을 위해 인도네시아 회사로 투자됐던 자금이 용도와는 다르게 다시 한국으로 보내졌다는 의미다. 이 증언을 뒷받침하듯 이상엽 씨는 2015년 7월 코스닥 등록기업인 아큐픽스에 15억 원을 투자하면서 최대 주주가 됐고, 이후 4차례나 더 증자에 참여하면서 지분을 늘린 것으로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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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의 증자시기와 숨진 허재원씨가 국내로 돈을 보낸 날짜를 비교해 보면 최소 3차례에서 시기와 액수가 겹쳤다. 2015년 7월 21일 최초 유상증자 15억 원을 납입하기 2주 전 150만 달러, 약 17억 원이 국내로 보내졌다. 10월 5일 유상증자 6억 원을 납입할 때도 이틀 전에 50만 달러, 6억 원이 들어왔다. 12월 7일 10억원의 유상증자에 참여할 때는 6일 뒤 95만 달러 11억 여 원이 한국으로 보내졌다. 금융당국의 추적을 피해 허재원 씨 등이 거액을 들고 직접 들어왔고, 국내에서 암달러상을 통해 현금화된 것으로 파악됐다. 고 허재원 씨가 숨지기 전에 남긴 자료에는 수표 묶음 사진들이 남아있었고, 허 씨의 동생도 뉴스타파 취재진에게 당시 장면을 여러 차례 목격했다고 증언했다. IT기업인 아큐픽스는 이상엽 씨가 최대주주가 된 뒤에는 주력사업이 자원무역으로 바뀌었고, 잇따라 유연탄 공급 체결 공시도 이어졌다. 하지만 인도네시아에서 비싸게 사서 한국에 싸게 파는 이상한 무역이었다. 이에 대해 인도네시아 회사의 직원으로 있다가 지난해 11월 허재원 씨에 이어 의문사한 김 모 씨는 처음부터 이상엽 씨의 주도로 아큐픽스의 주가를 부양하기 위해 이 같은 이상한 무역을 감수했다는 통화녹음을 남겼다. 유연탄 무역거래를 통해 수익을 남기려 했던 것보다는 주가를 부양시키는 것이 더 큰 목적이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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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탄무역 손실 400억 원은 어디로? 2. 투기와 주가조작 활용?

심지어 투기 목적으로 인도네시아에서 한국으로 거액이 투입된 정황도 발견됐다. 고 허재원 씨가 남긴 역송금 장부에는 2015년 5월 8일 'U관련'이라는 명목으로 55만 달러 6억 원이 국내로 보내졌다. 인도네시아 회사의 전 직원이었던 A 모 씨는 투자를 위해 이 돈이 보내진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2015년 1월에는 상장사인 고려포리머 유상증자에 유순열 씨 이름으로 20억 원을 투자하기도 했다. 고 허재원 씨는 이른바 ‘작전’을 통해 당시 900원도 안되는 주가를 2, 3만 원대로 올리려다 실패했다는 녹음을 남겨 이들의 허황된 투기 행태를 증언하기도 했다.

석탄무역 손실 400억 원은 어디로? 3. 호화 사치, 유흥 소비

기업인수와 투기뿐 아니라 사치 호화생활과 유흥에도 거액이 탕진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상엽 씨 회사의 전 직원 B 씨는 이상엽, 허재원 씨 등이 한 달에 1억원 이상씩 유흥업소에서 써왔고, 최소 10억 원이 넘는 돈이 유흥으로 빠져나갔다고 말했다. 이들이 주로 다녔던 유흥업소의 직원은 허재원 씨가 이 거액의 술값을 인도네시아에서 보내줬다고 뉴스타파 취재진에 털어놨다. 취재결과 허 씨는 인도네시아 현지 환치기상을 통해 술값을 결재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허씨가 인도네시아에서 현지 환치기상에게 돈을 보내면 환치기상이 관리하는 국내 계좌에서 돈이 입금되는 역송금 수법을 이용한 것이다. 사업상 지출로 해놓고 실상은 유흥과 사치 소비에 돈을 써왔던 사실을 감추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들과 거래했던 보석상 주인도 이 같은 방법으로 대금을 받아왔다고 말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이들은 서울 청담동 명품점들과 유명 백화점에서 명품과 보석 등을 한 번에 수천만 원어치 씩 사들인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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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탄무역 손실 400억 원은 어디로? 4. 투자자 모집, 피해 양산

이상엽 , 유순열 씨 등은 롤스로이스나 밴틀리 등 고가의 자동차를 타고 돈 많은 사업가 행세를 하면서 투자자들을 계속 끌어모은 것으로 파악됐다. 서울 강남의 한 유명 학원 설립자는 이들에게 수 십억 원을 빌려줬다가 못 받은 것으로 나타났고, 한 의류업체 대표도 이들의 권유로 거액을 건넸다가 큰 손실을 봤다며 기자에게 털어놓기도 했다.

뉴스타파 취재진은 위와 같은 취재 내용에 대해 해명과 반론을 듣기위해 이상엽, 유순열 씨를 지속적으로 접촉했지만 만날 수 없었다. 이런 와중에 이상엽 씨가 관계기관에 불려와 조사를 받는 사실을 파악하고 그를 만나려 했지만, 부하 직원인 듯한 사람들이 완력으로 취재를 방해하면서 이 씨의 해명을 듣지 못했다. 사실상 해명을 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풀이됐다.

아큐픽스에는 지난해 말 새로운 투자자들이 참여하면서 이상엽 씨는 대주주 자격을 잃었고 회사 이름도 바뀌었다. 회사 측은 전 대주주의 사업행태는 회사와는 별개이며, 만약 전 대주주의 행동으로 인해 회사에 손실이 입혀진 부분이 확인된다면 거기에 맞는 법적인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뉴스타파의 보도로 국세청과 금감원 등이 수사에 나섰지만, 진척이 지지부진하다가 최근 허재원 씨가 남긴 비자금 장부 등이 확보되면서 수사는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관계기관은 지난달 말 압수수색을 마쳤고, 이 씨 등에 대해 출국을 금지하고 수사를 벌이고 있으며 조만간 수사 결과와 전모를 밝힐 예정이다. 하지만 이들의 투기적 사업행태는 주식시장에서 고스란히 개인 투자자들의 피해로 이어졌고, 비뚤어진 꾀임에 넘어가 거액을 건넨 투자자들의 감춰진 피해 규모도 수백억 원대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취재:현덕수
촬영:최형석
편집:박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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