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개혁TF, DJ⋅盧 정부 언론사 세무조사도 재조사 논란
2017년 10월 12일 16시 57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불러온 지난 2008년 태광실업(회장 박연차) 세무조사가 절차와 과정 모두에서 위법행위가 있었다는 사실이 국세행정개혁TF(이하 국세청개혁TF)의 조사로 확인됐다. 세무조사가 끝나기도 전에 검찰 고발이 먼저 이뤄졌고, 탈세 혐의가 있다는 이유로 특별한 단서 없이 계열사 10여 곳에 대해 동시다발적으로 세무조사가 이뤄졌다는 것이다. 세 달에 걸친 조사 끝에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한 국세청개혁TF는 조만간 이런 내용을 담은 중간 조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태광실업에 대한 세무조사는 그동안 수 많은 의혹을 받아 왔다. 이명박 정권이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세무조사를 지시했다는 의혹, 한상률 당시 국세청장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세무조사 진행 과정을 실시간으로 보고했다는 의혹 등이었다. 한 마디로 노무현 전 대통령을 겨냥한 ‘정치적 표적 조사’였다는 것이다. 국세청은 지난 9년 동안 “청와대 하명조사도, 정치적 표적조사도 아니다”며 모든 의혹을 부인해 왔다. 그러나 이번 국세청개혁TF의 조사에서 국세청은 기존의 입장을 뒤집어 위법행위가 있었다는 사실을 시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따라서 책임자 규명 요구 등 상당한 파장이 뒤따를 것으로 보여진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후원자로 알려진 박연차 회장이 이끄는 태광실업에 대해 국세청이 특별세무조사에 나선 건 2008년 7월 말이었다. 부산에 있는 기업이지만 교차조사라는 명목으로 서울지방국세청 조사 4국이 동원된 대규모 조사였다. 10월 말까지 1차 조사가 마무리된 후 국세청은 조사기간을 연장했다. 국세청이 검찰에 태광실업을 고발(수사의뢰)한 시점은 같은 해 11월 25일로 당시는 아직 세무조사가 마무리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국세청 고발을 받은 검찰은 즉각 대검 중수부에 사건을 배당, 대대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그 과정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일가가 박연차 회장 측으로부터 640만 달러 가량을 받은 혐의가 드러났다. 노 전 대통령은 이듬해인 4월 30일 검찰에 출두해 조사를 받았고, 5월 23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사건으로 박정규 전 청와대 민정수석, 정상문 총무비서관 등 노무현 정권 핵심 인사들이 뇌물 수수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지난 8월 출범한 국세청개혁TF는 세 달간 정치적 논란이 있었던 과거 세무조사에 대한 점검 차원의 조사를 진행해 왔다. 대상 건수는 김대중에서 박근혜 정권에 이르는 기간 동안 진행된 50여 개 세무조사였다. 조사 대상 중 핵심은 지난 2008년 태광실업 세무조사였다. 정치권과 국세청 안팎에서는 태광실업 세무조사의 적법성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국세청개혁TF의 성과를 가늠할 수 있는 잣대라는 인식이 퍼져 있을 정도였다.
국세청개혁TF의 재점검은 국세청이 보유한 문서를 확인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고 전해진다. 세무조사 착수와 진행 과정에서 문제가 없었는지, 혹시 절차를 어긴 부분은 없는지 등이 확인 대상이었다. 그 과정에서 국세청개혁TF는 세무조사가 끝나기도 전에 국세청이 태광실업을 검찰에 고발한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국세청개혁TF는 태광실업에 대한 검찰 고발 과정이 “매우 이례적이며 정상적인 절차를 무시한 심각한 행위”로 규정했다. 당시 세무조사가 정상적인 세금 추징을 목적으로 진행된 것이 아니라, 형사처벌 등 정치적인 목적으로 진행됐음을 확인하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한 국세청 전직 고위 관료는 이렇게 설명했다.
세무조사가 모두 완료되고 탈세 규모나 방법 등이 확인된 뒤, 이를 검찰에 고발할 것인지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국세청의 통상적인 세무조사 절차이다. 그런데 세무조사가 끝나기도 전에, 다시 말해 탈세 규모나 방법이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 검찰에 고발부터 했다면 그것은 아주 이례적일 뿐 아니라 절차를 무시한 행위에 해당한다. 직권남용, 조세범처벌절차법을 심각하게 위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전직 국세청 고위 관계자
국세청이 세무조사를 완료하기도 전에 검찰에 고발을 했다는 사실이 확인된 이상, 앞으로 태광실업 세무조사를 둘러싼 의혹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당장 국세청이 검찰 고발 과정에서 정상적인 내부 절차를 준수했는지가 확인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조세범처벌절차법에 따르면, 국세청은 세무조사가 완료된 이후 기준 이상의 탈세 규모가 확인되거나 탈세 과정에서 사기 등 기타 부정한 방법이 동원된 사실이 확인됐을 때, 조세범칙조사심의위원회(이하 범칙조사위원회)를 열어 검찰 고발 여부를 결정한다. 이 위원회의 심의를 거치지 않고서는 검찰 고발이 결정될 수 없는 구조다. 조사가 끝나지도 않은 세무조사는 원칙적으로 범칙조사위원회에 심의를 맡길 수도 없다.
이런 규정을 감안하면, 태광실업을 검찰에 고발하는 과정에서 열렸을 범칙조사위원회의 구성과 활동은 그 자체로 규정을 위반한 행위에 해당될 수 있다. 만약 범칙조사위원회가 정상적으로 열리지 않고 검찰 고발이 이뤄졌다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이와 관련 국세청개혁TF 관계자는 “아직까지 국세청으로부터 태광실업 세무조사와 관련된 범칙조사위원회 구성과 활동에 대해서는 보고를 받은 바 없다”고 말했다.
태광실업 세무조사 당시 국세청이 태광실업의 계열사 10여 곳에 대해 동시다발적인 세무조사에 나선 부분도 국세청개혁TF 중간 조사 결과에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가 됐던 해외 비자금과 관련이 없는 계열사에 대해 전방위 조사가 이뤄진 것은 분명한 잘못이라는 것이다. 2008년 태광실업에 대한 세무조사 당시 국세청은 본사격인 태광실업은 물론 계열사인 정산개발 등 관계회사들에 대해 동시 조사에 들어갔다. 심지어 태광실업이 인수한 지 몇 년도 안 된 화학회사 휴켐스까지 조사대상에 포함됐을 정도였다. 이 문제 또한 그 동안 국세청이 단 한번도 스스로 문제라고 인정한 적이 없는 사안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태광실업 세무조사와 관련된 의혹은 한 둘이 아니다. 9년이나 지난 사건이지만 여전히 세간의 관심을 받고 있다. 전직 대통령의 죽음으로 이어진 사건이란 점 외에도 국세청이 정치적 목적으로 세무조사를 했다는 논란이 빚어 질 때마다 대표적인 사례로 꼽혀 왔다. 한상률 당시 국세청장이 이명박 대통령과 교감하며 치밀하게 준비한 세무조사라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논란은 증폭됐다.
2008년 10월 24일 끝난 (태광실업에 대한) 1차 세무조사 결과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직보된 뒤 검찰로 넘어갔으며, 당시 청와대는 그 폭발력에 대한 계산도 끝냈을 것이라고 여권 인사들은 전하고 있었다. 여권과 검찰 관계자에 따르면 작년(2008년) 11월 초 한상률 당시 국세청장은 박 회장 소유의 태광실업, 정산개발 등에 대한 세무조사 결과를 민정수석실을 건너뛰고 이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 했다...보고서는 특히 박회장이 빼돌린 수백억 원 가운데 ‘괴자금’ 50억 원의 실소유주가 노무현 전 대통령일 가능성이 언급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태광실업 세무조사가 정치적 세무조사였다는 주장을 제기해 온 안원구 전 대구지방국세청장은 자신이 겪은 일을 이렇게 이렇게 설명했다.
태광실업 세무조사가 시작된 2008년 7~8월경, 두 번에 걸쳐 한상률 당시 국세청장을 만나 태광실업 세무조사와 관련된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한 청장은 자신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매주 한 두 차례 독대해 태광실업 세무조사 문제를 보고한다고 말했다. 명예를 회복해 주겠다며 나에게도 세무조사 투입을 지시했다. 태광실업 세무조사가 정권과 국세청이 손잡고 만들어낸 사건임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증거다.
안원구 전 대구지방국세청장
수많은 의혹이 제기됐지만 국세청, 한상률 당시 국세청장은 의혹을 부인해 왔다. 정치적 세무조사도, 의도적인 표적조사도 아니었다는 것이다.
태광실업 세무조사를 둘러싼 항간의 오해 중 하나는 태광실업 세무조사를 이명박 대통령이 지시했다는 것이다. 전혀 사실이 아니다. 태광실업에 대한 세무조사는 그야말로 자연발생적으로 시작되었다. 대통령은 물론이고 그 누구부터의 지시도 없었고 부탁도 없었다.
따라서 태광실업 세무조사가 청와대의 하명에 의해 시작된 것인지, 한상률 당시 국세청장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세무조사 과정을 일일이 보고하고 지시를 받았는지 등의 의혹은 앞으로 규명되어야 할 부분들이다. 국세청개혁TF의 한 관계자는 이런 의혹들을 조사하지 못한 것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번 세무조사 재점검은 국세청이 보유한 세무조사 관련 서류들을 확인해 세무조사의 시작과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는지를 확인하는 작업이었다. 따라서 서류로 확인할 수 없는 국세청과 청와대 간의 은밀히 교감 등은 조사대상이 되지 못했다.
국세청개혁TF 관계자
태광실업 세무조사 과정에서 발견된 위법행위와 관련, 국세청 주변에서는 당시 세무조사에 참여한 관련자들에 대한 수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9년이나 지난 사건이어서 공소시효 등의 이유로 수사대상이 될 수 없다는 지적도 있지만, 국세청 개혁을 위해서는 실체적 진실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취재 : 한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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