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 삼중으로 감춰

2013년 06월 13일 10시 28분

<앵커 멘트>
네. 뻔히 서류에 나타나 있는 사실조차 부인하는데요. 그나마 이 경우는 등기이사에 소유자 이름을 실명으로 기재한 경우고요. 아예 가명을 써서 실제 주인을 감춰버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노브랜드의 김기홍 회장과 갑을오토텍 박효상 대표의 경우를 오대양 기자가 보도합니다.

도나카란뉴욕, 갭, 자라, 패션에 민감한 사람들이라면 한두 벌쯤 갖고 있을 해외 유명브랜드입니다. 그러나 이들이 직접 디자인하는 의류를 납품하는 회사가 노브랜드라는 이름의 한국기업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인지도는 낮지만 노브랜드는 해외에 대규모 제조시설을 갖춘 알짜기업입니다. 지난해 매출은 3000억 원, 지난 2009년에는 중소기업청이 선정한 한국형 히든챔피언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이 회사 대표가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페이퍼컴퍼니를 만들었다는 사실이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의 조세피난처 자료를 통해 드러났습니다. 유령회사의 이름은 제이드크라운그룹. 2007년 1월 김기홍이라는 인물이 이 회사의 등기이사와 주주에 오릅니다. 이 사람은 바로 의류업체 노브랜드의 대표이사 회장입니다.

취재진은 관련기록을 추적하던 중 김 회장의 페이퍼컴퍼니가 이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버진아일랜드에 2007년 10월 설립된 윈하베스트 컨설턴트, 2008년 4월 설립된 아크랩플래닝, 두 회사 모두 단독이사와 단독주주의 익스코프라는 차명이 등재돼 있습니다. 실제 주인을 파악할 수 없도록 설계된 겁니다. 이사나 임원을 뜻하는 EXECUTIVE와 회사를 뜻하는 Corp. 약자를 따서 만든 조어입니다. 차명이사와 주주를 내세울 때 동원되는 이름입니다. 하지만 취재진은 이 두 회사의 진짜 주인이 김 회장과 그의 아내 이선희씨라는 증거를 찾았습니다.

이 이면 결의서엔 두 페이퍼컴퍼니 명의로 개설된 스위스은행 UBS 홍콩지점의 계좌 인출권을 김씨 부부가 독점적으로 행사한다고 돼 있습니다. 겉으론 김씨 부부가 전혀 드러나지 않지만 실제로는 회사에 대해 완벽한 통제권을 가지는 구조입니다.

뉴스타파 취재진은 김 회장의 해명을 기다렸으나 갑자기 해외로 출장 갔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김기홍 회장 비서]
“(김기홍 대표는) 출장가셨어요.”
(어디로요?)
“미국으로요.”
(언제요?)
“네. 어제 밤에”
(언제쯤 돌아오실 예정이죠?)
“6월까지는 해외에 계실 것 같습니다.”
(조세피난처 관련해 취재에 들어가니까 그것 때문에 해외로 갑자기 출장을 간 거다, 라고 이해를 해도 될까요?)
“아니요. 예전부터 예정돼 있던 건데요.”

회사 관계자는 김 회장이 페이퍼컴퍼니를 만들 것은 맞지만 탈세 등의 목적은 없었다고 주장했습니다.

[노브랜드 관계자]
“홍콩 쪽으로 아마 딜을 할 게 있어 가지고 만드셨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거래는 없었다, 그러더라고요. 비록 (노브랜드가) 비상장 법인이지만 회계법인을 쓰고 있고 그래서 그렇게 만만하게 돈을 빼돌리지는 못하고..”

취재진은 노브랜드의 지분 구조를 살피는 과정에서 또 다른 페이퍼컴퍼니의 존재를 추가로 확인했습니다. 지난 2005년 윈넷홀딩스라는 회사가 노브랜드의 지분 32.67퍼센트를 확보합니다. 이 회사의 정체는 뭘까?

[노브랜드 관계자]
“윈넷(Winnet)은 어떻게 아셨어요? 주주니까 알았구나. 그거 미국에 있는 회사에요.”
(어떤 회사죠? 뭘 합니까?)
“아 거기 사업하는 회사죠. 예전에 거기(미국)에 계실 때 이 회사하기 전에 만들어 가지고 저기했던 회사들이에요. 자기들 같이 해서 만들었었고 사업도 조금 했었고 그거 다 기록이 있을 거예요.”
(그 회사 실체 없죠, 사실?)
“지금 일종의 활동을... 글쎄 모르겠네요.”

뉴스타파 취재 결과 윈넷홀딩스는 대표적 조세피난처의 하나인 영국령 채널제도 저지섬에 설립된 페이퍼컴퍼니로 확인됐습니다. 2005년 당시 윈넷홀딩스의 발행주식은 3주인데. 스코틀랜드 신탁은행이라는 동일한 이름의 회사가 각각 한 주씩 보우한 것으로 돼 있습니다. 김 회장이 윈넷홀딩스를 만들었지만 겉으론 진짜 주인이 드러나지 않게 한 겁니다. 이처럼 이중, 삼중으로 페이퍼컴퍼니의 실체를 감추고자 했던 기업은 노브랜드뿐만은 아닙니다.

갑을그룹의 주력 기업으로 급부상한 갑을오토텍과 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동국실업의 대표이사 박효상씨도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그는 갑을그룹 고 박재을 회장의 차남입니다. 회사 관계자는 오래전 일이라고 주장합니다.

[동국실업 관계자]
(사장님은 회사와 관계가 없다고 말씀하셨다고요?)
“네. 전혀 관계가 없다고요. 그리고 본인은 20년 전에 다른데 어디서 한두 개 만든 것은 기억이 나지만 지금은 그런 게 없다고 말씀하셨거든요.”

그러나 뉴스타파가 확보한 ICIJ 데이터엔 박 대표가 5년 전인 지난 2008년 UBS 홍콩지점의 소개로 아트그레이트트레이딩이라는 이름의 페이퍼컴퍼니를 만든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황당하게 이 회사의 등기이사와 주주의 이름은 노브랜드 김기홍 회장이 만든 페이퍼컴퍼니의 이사와 주주의 이름과 똑같습니다. 바로 익스코프입니다.

뉴스타파가 ICIJ가 입수한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이 익스코프는 2천 개 이상의 페이퍼컴퍼니의 이사나 주주로 등장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박 대표는 페이퍼컴퍼니를 만들면서 겉으론 주인을 숨기기 위해 가짜 이름을 내세우고 이면에는 자신을 베네피셜 오너, 즉 실제 주인으로 약정해 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박 대표는 차명이사와 주주를 두는 비용으로 해마다 1100달러의 비용을 추가로 지불했습니다. 비밀이 보장되는 조세피난처 페이퍼컴퍼니에 구태여 차명을 쓰는 것은 뭔가 감출 것이 많다는 의도로 밖에 해석되지 않습니다.

[이유영 조세정의네트워크 동북아 담당]
“왜냐하면 BVI는 뭐 주주든 등기 임원이든 아이덴티티(정체성)를 공개 안 할 수도 있기 때문에 사실 이름은 그렇게 무게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 상황을 아는 사람이라면.”

정상적 기업경영을 위해 만들었다고는 도저히 보기 힘든 행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뉴스타파는 박 대표의 직접 해명을 요구했지만 아무런 대답을 듣지 못했습니다.

뉴스타파 오대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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