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문의 2대주주, 유령회사까지

2013년 06월 27일 10시 28분

서울 부암동의 한 고급 주택가입니다. 192 제곱미터 규모, 잘 정리된 조경, 잔디밭까지 갖춘 고급 빌라…

조세피난처인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세워진 한 페이퍼컴퍼니의 등록 주소지로 기재돼 있는 곳입니다. 페이퍼 컴퍼니의 이름은 디베스트 인베스트먼트, 만든 사람은 김재훈으로 나옵니다.

하지만 이 곳에 김재훈은 없었습니다.

[관리인]
“그런 사람 없어요. 그 사람 안산다니까 여기. 할아버지 할머니들 두 분 밖에 안살아요.”

그렇다면 김재훈은 누굴까? 뉴스타파는 조세피난처 시민참여 프로젝트를 통한 시민제보로 김씨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효성그룹의 계열 수입 자동차 회사인 더 클래스 효성의 2대 주주로 밝혀졌습니다. 더 클래스 효성은 메르세데스 - 벤츠의 공식 수입 딜러업체로 지난해 매출액은 3천억 원입니다.

김재훈씨는 먼저 2007년 10월 8일,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에 페이퍼컴퍼니를 세웁니다. 그리고 이 법인의 단독 이사와 단독 주주에 올랐습니다. 페이퍼 컴퍼니 설립 중개업체는 프라이비트 뱅크 서비스로 유명한 골드만 삭스 싱가포르 지점, 실제 김씨는 이 은행에 페이퍼 컴퍼니 명의로 은행계좌를 만들어 자금을 거래해왔다고 밝혔습니다.

[김재훈 디베스트파트너스 대표]
“골드만 삭스...소개로 그냥 나중에 글로벌 비즈니스를 하려고 하는데 지금은 한국에 들어갈 사정이 있어서 그래서 BVI컴퍼니도 세우고...

김씨는 페이퍼컴퍼니를 만들고 두 달 뒤인 2007년 12월 27일, 더 클래스 효성의 지분 31.54%를 취득합니다. 현재 김씨가 유일한 이사로 있는 디베스트 파트너스라는 법인이 유상증자에 참여해 약 23억원을 납부했습니다. 단숨에 김씨의 디베스트 파트너스는 58.02%의 지분을 지닌 ㈜효성에 이어 더 클래스 효성의 2대 주주에 올랐습니다. 나머지 지분은 효성그룹 조석래 회장의 2세인 조현준, 조현문, 조현상씨가 3.48%씩 소유하고 있습니다.

김씨는 비슷한 시기에 조세피난처에 유령회사를 만들고 더 클래스 효성의 지분을 취득했습니다. 이 둘 사이에 어떤 관련성이 있을까?

김씨는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국내로 자금을 들여온 사실은 없으며, 투자금은 국내 은행에서 대출받은 돈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구체적인 자금 출처는 밝히지 않았습니다.

[김재훈 디베스트파트너스 대표]
“전혀 1원도 없습니다. 관련성은...”
(왜냐하면 제가 확인해 보니 그 부분이 시기가 묘하게 맞아 떨어져서...)
“진짜 우연의 일치...”

김씨의 더 클래스 효성 지분 취득 과정은 의문투성이입니다. 먼저 일반 투자자는 상상하기 힘든 파격적 조건으로 지분 참여를 했습니다.

디베스트 파트너스는 더 클래스 효성의 우선주 31.54%를 취득하면서, 언제든 상환을 요구할 경우 2개월 이내에 투자금을 돌려받을 수 있는 권리를 받았습니다. 특히 당시 시중 대출금리보다 두 배 가까이 높은 9%의 높은 이자까지 받을 수 있게 돼 있습니다. 게다가 우선주를 보통주로 전환할 수도 있습니다. .

당시 더 클래스 효성의 재무상황은 비교적 안정적이었기 때문에 이 같은 파격적 조건까지 내걸며 유상증자를 실시할 상황이 아니었다는 것이 회계전문가의 지적입니다. 특히 재벌 그룹인 효성의 이미지를 감안할 때 이런 식의 자금 유치가 이뤄진 것은 상식 밖의 일이며, 그만큼 디베스트 파터너스는 파격적인 특혜를 누린 것이라는 것입니다.

[김경률 회계사]
“이 정도 특혜를 누구에게 줄 수 있느냐 더군다나 기존 주주들은 쟁쟁한 재벌가 사람들이라면...이건 쉽게 상상할 수 있는 특혜는 아닌 것 같아요.”

효성 또는 효성 오너 일가와 특별한 관계가 없다면 이런 식의 투자는 힘들었을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한 부분입니다.

[김재훈 디베스트 파트너스 대표]
(효성일가 하고는 무슨 친분이 있습니까?)
“제가 친분이란 게 상당히 애매한 얘기잖아요. 베스트 프렌드일 수 있고 그냥 얼굴 정도 알고 인사만 하는 사람도 친분이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저는 그 당시에 소개를 받은 게 로펌(법무법인)을 통해 받았어요.”

이에 대해 김씨와 효성 측은 국내법무법인을 통해 적법한 절차를 통해 투자가 진행됐으며, 이 과정에서 특혜는 없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9% 금리는 당시 벤처 투자 환경에서 통상적인 금리였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렇다면 김재훈씨와 그가 유일한 사내 이사로 돼 있는 디베스트 파트너스의 정체는 뭘까? 경기도 성남의 한 빌딩. 법인등기부등본에 이 회사의 주소지로 기재돼 있는 곳입니다.

뉴스타파 취재진은 그러나 이 건물 어디서도 디베스트 파트너스라는 회사의 흔적을 찾을 수 없습니다. 등기부등본에 적혀 있는 주소로 찾아갔으나 그 사무실엔 다른 이름의 회사가 수년째 입주해 있었습니다.

[직원]
(1102호에 디베스트파트너스라고 있지 않았어요?)
“1102호. 여기요? 여긴..아니요. 한 번도 있었던 적 없었어요.”

어떻게 된 일일까? 이번엔 디베스트 파트너스 대표 전화번호로 연락해봤습니다. 하지만 전화를 받은 사람은 디베스트 파트너스 직원이 아니었습니다.

[연락대행업체 직원]
(디베스트 파트너스 직원이 아니란 말씀이세요?)
“그냥 기장해주는 데에요.”
(기장을 해 준다는 게 무슨 뜻인가요?)
“그 회사 전화 받고, 그냥 따로 관리해 주는 것 없고 메모 남겨서 전달해 드리고 이런 것만 하고 있거든요. 지금 다른 업무는 안하고요.”

알고 보니 걸려오는 전화를 받아주고, 통화 내용을 김씨에게 전달해주는 업무를 맡고 있는 이른바 소호사무실이었습니다.

결국 디베스트 파트너스라는 회사는 이름만 있을 뿐 실제 사무실도, 직원도 없는 사실상의 서류상 회사로 밝혀졌습니다. 하지만 김씨는 투자목적으로 직원이 필요 없을 뿐, 유령회사는 아니라고 밝혔습니다.

[김재훈 디베스트 파트너스 대표]
“단순 투자 목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회사여서 직원들이나 사업장들이 있을 필요도 없고...”

어떻게 이런 법인이 재벌 계열사인 더 클래스 효성의 2대주주가 될 수 있었을까?

뉴스타파는 더 클래스 효성의 지분을 취득할 당시 디베스트 파트너스의 대표이사였던 전 모씨를 만났습니다. 전씨는 현재 다인회계법인 소속 회계사입니다.

전씨는 당시 모든 결정은 김재훈씨가 했으며 자신은 아무것도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자신은 대표 이사 명의를 빌려줬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전ㅇㅇ / 다인회계법인 법무사]
“김재훈 대표가 효성하고 투자건에 대해 협상을, 사실은 저는 그냥 명의만 되어있는 상태였고, 자세한 진행이나 투자의사결정은 김재훈 대표가 다 결정을 내렸습니다.”

무슨 이유에선지 회계사가 서류상 회사의 대표로 이름만 빌려줬다는 것입니다. 디베스트 파트너스와 관련된 의혹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디베스트 파트너스 법인등기부에 등장하는 전현직 임원 6명을 확인해보니, 이 가운데 전씨를 포함해 무려 4명이 다인회계법인 소속 회계사란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전씨는 2009년 3월 말까지 대표이사였고, 이모 회계사는 2010년 3월 말까지 디베스트 파트너스의 감사였습니다. 그런데 다인회계법인은 지난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더 클래스 효성의 외부 감사를 담당한 회계법인이었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공인회계사법을 보면, 관련 회계법인이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거나 과거 1년이내 그러한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 재무제표를 감사하거나 증명하는 업무를 행하지 못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김경률 회계사]
“어떤 회사의 이익과 그를 감시하는 감사인의 책무를 소홀히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회계 법인이 피감회사를 감사한다고 하면 피감회사의 주식을 회계법인의 구성원들 어떤 분이라도 주식을 보유하면 안됩니다. 단 1주라도...”

공인회계사법 제 33조 직무제한 관련 조항을 위반했다는 지적이 제기될 수밖에 없습니다. 회계법인 측은 그렇지 않다고 주장했습니다.

[전ㅇㅇ 다인회계법인 회계사]
“저희 내부적으로 독립성 검토...외감법에 따른 기준들을 충족 시켜서 감사를 진행한 것이지...”

이에 대해 더 클래스 효성 측은 당시 다인회계법인과 디베스트 파트너스의 특수 관계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면서, 투자자인 김재훈씨의 추천으로 다인회계법인에 외부감사를 맡기기로 결정했다고 해명했습니다. 특히 모든 절차는 적법하게 이루어졌다고 강조했습니다.

[차유나 효성 홍보실 차장]
“다인 회계법인이 재무적 투자자(김재훈)가 추천을 해줬고 경영감시 목적으로 추천 하는 것은 굉장히 정상적인 것이다. 아주 당연한 것이다.”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에 페이퍼 컴퍼니를 세운 직후 파격적인 조건으로 더 클래스 효성의 지분을 취득해 2대 주주가 된 디베스트 파트너스. 이 회사의 실체와 투자자금의 출처, 그리고 김재훈씨와 효성 측의 관계를 규명하는 일은 이제 국세청의 몫이 됐습니다.

뉴스타파 이유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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