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회] 바퀴따라 달라요

2012년 10월 26일 06시 46분

<기자>

10월 17일 울산 현대자동차 공장 앞.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 두 명이 20미터 높이 송전탑에 올라갔습니다.

“정몽구를 구속하고 정규직 쟁취 승리하자.”

2002년 현대차 사내 하청업체에 들어가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다 2005년 해고된 최병승씨. 최씨는 긴 소송 끝에 올해 초 대법원으로부터 사실상 현대차의 정규직이라는 판결을 받았습니다. 판결대로 라면 최씨는 현대차에 이미 정규직으로 복직됐어야 합니다. 하지만 최씨는 지금도 목숨을 건 싸움을 계속 하고 있습니다. 대법원의 판결에 따른 정규직 전환을 현대차에 요구하는 겁니다.

올해 2월 대법원의 판결문. 대법원은 최씨가 현대차에 파견돼 사용되었고 사업주인 현대차와 최씨 사이에 직접적인 근로관계가 성립한다고 판결했습니다. 현대차가 최씨를 불법파견을 통해 사용해 왔다는 걸 확인해 준 겁니다.

이후 중앙노동위원회는 대법원 판결을 근거로 부당 해고된 최씨를 30일 이내에 정규직에 복직시키라고 현대차에 명령했습니다.

이같은 대법원의 판결은 최씨와 같은 처지에 있는 8000명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도 희망적인 소식이었습니다.

[김호관 현대아산공장 사내하청 노동자]
“너무나도 기쁘고 좋은 날이었지만 제 눈에서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얼마나 서글프고 서러웠으면 이 두 눈에서 눈물이 났겠습니까.”

하지만 기쁨도 잠시, 대법원의 판결이 난지 8개월이 지났지만 최씨는 물론 단 한 명도 정규직이 되지 못했습니다. 현대차가 최씨를 상대로 또 다시 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입니다.

“고공농성을 하고 있는 두 동지들이 느끼는 찬바람은 두 분만의 찬바람이 아닙니다. 이 땅의 900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찬바람입니다. 함께 하는 노동자 최병승, 천의봉 동지 함께 합니다.”

7년 여의 법정 싸움 끝에 얻어낸 대법원의 판결. 하지만 노동자들이 원하던 복직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이들은 또다시 거리로 내몰렸습니다. 현대차가 최씨를 복직시키라는 대법원과 중앙노동위의 판결을 받아들이지 않고 또 다른 행정 소송으로 맞서고 있는 이유는 뭘까.

[한성호 현대차 정책홍보부장]
“대법원 판결에 의해서 불법파견이 인정된 부분에 대해서는 저희가 당연히 법을 존중하고 인정하고요. 대신 이제 최병승씨가 지금까지 한 18건의 부당 폭력이라든지, 무단 점거라든지, 그 분이 한 행위들이 다른 직원들의 경우와 비추어 봐서 해고에 해당된다, 라고 보이는 사람이고. 부당해고라는 부분에 대해서는 법에서는 다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현대차는 소송 중에 비정규직의 근로조건이 달라 최씨 외의 직원들의 복직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김태욱 전국금속노조 법률원 변호사]
“(현대차에서)‘어떤 정규직은 왼쪽, 비정규직은 오른쪽 부품을 장착해서 (업무가) 다르다’ 이런 류로 말하는 것이 하나가 있고요. 두 번째는 오른쪽, 왼쪽은 아니더라도 ‘누구는 A나사, 누구는 B나사를 조립하기 때문에 부품이 다르다’ 이렇게 얘기하는 것도 있고요.”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
“그건 그들(사측)만의 생각이고 컨베이어라인에서 앞뒤, 양옆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다 섞여서 일하고 있습니다.”

사측이 이렇게 완강하게 나오자 2010년 비정규직 노조는 대규모 파업을 벌였습니다. 울산 공장의 생산라인을 점거한 채 25일 간 농성을 이어갔습니다. 이 와중에 한 노동자가 분신하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이상수 전 현대차 비정규직 노조지회장]
“우리가 살려고 여기에 들어왔습니다. 맞지 않습니까.”

“살려냅시다. 우리가 살려냅시다. 정몽구를 족쳐서라도 살려냅시다. 동지들.”

[황인화 2010년 11월 분신 시도]
“나 하나 희생해서 우리 조합, 전국에 있는 비정규직들한테 우리가 정규직이 될 수 있는 이런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으로 그때(분신 당시)는 저 혼자(희생)만 생각을 했어요. 우리 동지들을 살려야 한다는 생각 하나로.”

25일 간의 파업에도 불구하고 현대차 비정규직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사측의 입장은 강경했습니다. 지난 7년 사이 160여 명이 해고 됐고. 노조원 7명이 구속됐습니다. 사측은 또 노조를 대상으로 192억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기도 했습니다.

[김상록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정책부장]
“일상적으로 구속, 수배 그리고 투쟁을 들어가서 문제가 생기면 업무방해에 손해배상, 가압류, 지금도 보면 월급 가압류를 넘어서서 부동산 가압류까지 (걸고 있어요.)”
이런 상황에서 관할 주무부처인 노동부는 대체 뭘 했던 걸까. 노동부는 이미 2004년 현대차를 대상으로 불법 파견 판정을 한 바 있습니다.

@ MBC 뉴스데스크 2004년 12월 9일

“현대 자동차가 하청업체 근로자들을 불법 파견 형태로 받아서 작업 현장에 투입해 온 사실이 노동부 조사 결과 확인이 됐습니다.”

파견법에 따르면 불법 파견이 확인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고용노동부는 지금까지 현대차에 대해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사실상 수수방관한 셈입니다.

[강문대 민변 노동위 부위원장(변호사)]
“불버버 파견이 되면 처벌을 합니다. 노동부에서도 처벌을 하고 검찰에서도 처벌을 한 사례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대기업 사업장들에 대해서는 유독 기소나 조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그런 실정입니다.”

이 같은 비판은 고용노동부에 대한 국정감사장에서도 나왔습니다.

@ 고용노동부 국정감사 10월 22일

[심상정 국회의원] & [이채필 고용노동부 장관]

“(현대차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대책을 준비하고 있습니까?”
“수사를 하고 있기 때문에 빠른 결론을 내서 이 부분을 정리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무슨 평론가이신가요? 장관께서 지금 이걸 해설하시는 분이세요?”
“기본에 충실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는 거 아닙니까.”

“지금 천 명. 한 사람 한 사람씩 다 법의 판결을 받을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게 노동부의 입장인지 모르겠는데. 노동부에서 기다릴 필요가 없죠. 8천 명이나 되는 사람을 8년씩 걸려서 소송하면 얼마 걸립니까? 6만 4천 년 걸려요. 6만 4천 년.”

올 들어 법원에서 불법 파견 사실이 확정되자 현대차 사측은 비난을 피하기 위해 마지못해 타협안을 내놓았습니다. 그 안은 전체 생산직 비정규직 8천여 명 가운데 3천명을 선별적으로 그것도 2015년까지 단계적으로 신규채용하겠다는 겁니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불법 파견 혐의를 피하려는 꼼수라며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합니다.

[강성용 현대차 비정규직 수석부지회장]
“회사가 주장하는 것은 3천 명 정규직 전한이 아닌 신규채용입니다. 채용하고 전환이 차이점은 하늘과 땅 차이라고 얘기할 수 있는데요. 신규 채용은 말 그대로 회사가 인사규정에 따라서 최초로 입사하는 날 입사하는 것을 신규채용이라고 하는 거고. 7년 동안 받지 못했던 임금하고 근속연수를 다 포함해서 저한테 지급하는 것을 전환이라고 하는 겁니다.”

하지만 정규직 전환에 대한 현대차의 입장은 완고합니다. 최씨처럼 개별적인 소송을 통해 불법파견 사실이 입증되지 않는 한 일괄적으로 전환할 수 없다는 겁니다.

[한성호 현대차 정책홍보부장]
“모든 것이 다 불법파견은 아닙니다. 다양한 공정이 있기 때문에 그중에는 사내하도급으로 멀쩡히 적법한 범위 내에서 일을 했던 분들도 있고 불법파견의 소지가 있다고 보이는 분들도 있고 이렇게 막 뒤섞여 있습니다. 뒤섞여 있다 보니까 그 부분에 대해서 어느 누구도 명확히 (판단을) 못하게 되는 거죠. 그래서 그러한 소송을 유지할 수밖에 없고.”

[강문대 민변 노동위 부위원장(변호사)]
“(최병승씨가) 다른 근로자들과 동일하게 일을 하던 파견노동자들 중의 한 명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법원에서 최병승씨에 대해서 이렇게 판단을 했다면 당시 최병승씨와 같은 여건과 상황에 있던 사람들에 대해서는 법원에서 이제 사실상은 같은 취지의 판겨을 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거고.”

지난해 현대차가 벌어들인 순이익은 4조7천억 원. 사상 최대의 실적이었습니다. 정몽구 현대차 회장도 199억 원의 배당금을 받았습니다. 일부에서는 4초7천억 원의 순이익 가운데 6% 정도만 들여도 비정규직 노동자 8천 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지만 현대차의 입장은 다릅니다.

[한성호 현대차 정책홍보부장]
“현재로서는 맞을지 몰라도 향후에 미래를 대비하는 미래의 입장에서는 맞지 않는다고 볼 수 있죠. 또 미래에 발생될 위기에 대해서는 회사는 대비를 해야 되는 것이지, 지금 있는 파이가 크다고 해서 그 파이를 다 쪼개 먹어서는 아무런 미래가 보장이 되지 않습니다.”

[최병승 현대차 비정규직 해고 노동자]
“10년 동안 비정규직 노동자 1만3천 명을 불법을 저질러서 착취를 했다면, 그리고 그 불법의 결과가 현대자동차 성장의 밑거름이었다면 현대자동차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감사해야 하고 미안해야 하고.”

사상 최대의 흑자를 기록하고도 비정규직에 인색할 뿐만 아니라 법의 판단마저 무시하고 있는 현대차. 불법을 확인하고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는 노동당국. 그 사이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는 오늘도 송전탑 위에서 목숨을 건 농성을 벌이고 있습니다.

[황인화 2010년 11월 분신 시도]
“비정규직이 정말로 잘못된 제도이고, 이 제도를 없애야만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고, 사람을 차별하는 것이 인간의 존엄성까지 침해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반드시 비정규직 제도를 없애는 방향으로 가야 된다고 그렇게 느끼고 있어요.”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
“노동부에서 불법파견이라고 인정을 한 지가 벌써 10년 가까이 다 되는데, 아직까지도 현행범으 잡혀가지도 않고, 조사도 안 받고 있는 상태이고. 세상에 그런 권력을 누리고 있는 사람은 이 나라에 법이 필요가 없다는 얘기죠. 법이 결정을 내렸는데도 불이행금, 벌금만 내면 그만이니까. 그럼 이 나라에서는 돈만 있으면 법이 필요 없다는 얘기에요.”

“정몽구를 구속하고 정규직 쟁취 승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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