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부동산 광풍 6년 후...

2013년 03월 22일 12시 59분

지난 3월 13일 서울 용산 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이 자금난으로 사실상 부도처리됐다.

뉴스타파는 용산 국제업무지구 개발 사업의 부도 사태로 가장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될 용산구 이촌동 주민들의 상황을 집중 취재하고, 사업이 파국을 맞게 된 원인을 진단했다.

뉴스타파가 용산구 이촌동 대림아파트 638세대를 상대로 아파트를 담보로 한 부채 현황을 조사한 결과, 은행이나 제2금융권으로부터 대출을 받고 있는 세대는 모두 391세대로 나타났다.  10집 가운데 6집은 빚을 안고 있는 것이다.

용산구 아파트 평균 시세인 3.3제곱미터 당 2200만원을 적용해 이 아파트 시세와 대출금을 비교해보니 모두 21세대가 시세보다 더 많은 대출금을 끼고 있었다.

대출금과 전세금을 합친 금액이 아파트 시세를 초과하는 이른바 깡통 아파트들도 무려 47세대나 됐다.

취재진은 또 과도한 빚으로 자신이 거주하던 대림 아파트를 경매로 날리고 바로 옆 월세 30만원짜리 연립주택에 살게 된 한 고등학교 선생님의 기막힌 사연도 소개한다.

김남근 변호사(참여연대 집행위원장)는 수많은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기성 시가지를 용산 철도 창고창 부지와 함께 개발하려 한 서울시(당시 시장 오세훈)의 책임이 가장 크다며 시장의 개인 치적을 위해 신축한 지 10년도 안된 아파트들까지 모두 허물고 다시 지으려 했던 발상 자체가 편법이었다고 비판했다.


2013년 3월. 허름한 아파트 단지에 찬바람이 붑니다.

저기 가서 불 질러 버리겠죠."

"안되면 용산 참사 또 일어나는 거예요."

원망과 분노도 보입니다.

"그 XX 뒈져야 돼. 빨게 벗겨서."

그 이면에는 부동산 불패 신화에 대한 환상도 있었습니다.

"한 집 당 30억 이익이 있다."

지난 3월 13일 용산 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은 자금난으로 사실상 부도가 났습니다. 부동산 광풍이 휩쓸고 간 자리에는 지역 주민들의 회한만이 남았습니다.

용산이 개발된다는 풍문이 떠돌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6년 즈음. 당초에는 코레일이 철도 정비창 부지만 개발하는 방안을 추진했습니다.

그러나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취임하면서 방향이 틀어졌습니다. 오 전시장은 자신의 이른바 한강 르네상스 사업과 용산 국제업무지구사업을 결부시켰습니다. 이에 따라 서부 이촌동의 아파트와 연립주택 2200여 가구도 개발 대상에 포함됐습니다.

[장성열 / 서부이촌동 주민]

"원래는 그 저 코레일 자체만 이제 개발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오 시장이 어떤 정치 야망이라던가 이런거 때문에 우리가 집을 지어달라 한 적도 없고 이것을 한강 르네상스나 이래가지고 이걸 같이 편입해서 넣었단 말이에요.

[오세훈 전 서울시장]

"서울의 도시계획을 한강 중심의 계획으로 새로 짜고, 장기적으로는 서울을 쾌적하고 매력적인 수변도시로 재창조하고자 합니다."

부동산 시장이 이미 꼭지에 이르렀다는 경고음이 많았지만 오 전시장이 설파한 장밋빛 환상은 쉽게 떨쳐버리기 힘든 유혹이었습니다. 67조 원의 경제효과와 35만 명의 새 일자리. 31조 원이 들어가는 단군 이래 최대 개발 사업. 100층 높이의 랜드 마크 빌딩을 비롯해 40층 이상 초고층 빌딩만 19개. 꿈같은 도시가 금세 펼쳐질 것 같았습니다.

기대감에 아파트 값이 폭등했습니다. 기획 부동산들도 몰려들었습니다. 한바탕 큰 장이 섰습니다.

[이희자 / 서부이촌동 주민]

"이거 있잖아. 해도 안 들어오는 지하, 이거 6억 5천, 5억 6천 이리 다 팔고 집 다 비어있어."

[홍주표 / 서부이촌동 주민]

-깔고 앉은 땅이 네 평, 세 평인데 그걸 10억까지 팔고 나간 사람이 있어요. 보통 5억을 받았다고요."

'미래에 개발이 되면 땅값이 얼마는 갈 것이다'라는 가정아래 시작한 위험한 사업이었지만 당시엔 다른 이야기는 잘 들리지 않았습니다.

[박종민 / 서부이촌동 주민]

"어느 날 밤에는 새벽 1시에 와서 지금 계약하자 해서 그 시간에 계약도 하고…"

그러나 처음부터 문제가 많은 개발 사업이었습니다. 당시로 따지면 신축된 지 불과 2년 밖에 안된 아파트도 개발대상에 포함됐습니다.

[김남근 변호사 / 참여연대 집행 위원장]

"이 것을 편법적으로 주변에 하천이 있다던가 고속도로가 있다던가 철도창 같은 것이 있으면 그런 철도창이나 하천을 정비한다 하면서 그 옆에 사람들이 많이 사는 주거지를 편입시켜놓고 도시개발법으로 개발하는 편법이 과거 정부에 좀 있었습니다. 그 것은 누가 보더라도 편법적인 행정이긴 한데, 현행법상 불법이다라고 할 순 없는 거죠. 거기는 지어진 지 한 10년 밖에 안된 멀쩡한 아파트들도 있었거든요. 그런 것까지 다 허물어야하는 모순된 행정이 나타나게 됐던 것도 좀 편의적으로 기성 시가지 개발에 적용되지 않는 신도시 개발을 주로 하는 도시개발법을 적용했기 때문입니다."

용산 지역구 국회의원인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도 사업 실패의 책임은 한강 르네상스 사업과 용산 개발을 결부시킨 오세훈 전 시장에게 책임이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현재 국내에서 변호사로 활동중인 오세훈 전 시장은 뉴스타파의 공식 인터뷰 요청을 거절했습니다.

[오세훈 변호사 여비서]

"당분간 인터뷰 계획이 없으시다고 정중히 좀 거절해 달라고 하셨거든요."

책임 있는 정치인은 입을 닫고 있지만, 지역주민들에게 고통은 현재형입니다. 용산 개발사업이 발표된 지 6년. 부동산 대박을 쫓은 사람들의 말로는 비참했습니다.

지난 2003년 이 지역 60제곱미터의 아파트를 2억 5천만 원 정도에 샀던 한 고등학교 선생님.

[서부이촌동 주민]

"집을 보러왔는데 너무 경치가 좋더라고요. 그런 조망권을 보고 무리해서 좀 구입을 했는데. 그러다 보니까 조금 좀 이게 자꾸만 지역이 개발이 지연되고…"

용산 개발이 가시화되기 시작한 2007년. 2억 5천만 원에 샀던 아파트가 8억 원에 육박하자 이 교사는 또 한 번 투자를 결심합니다. 2007년에만 세 번에 걸쳐 무려 6억여 원을 빌려서 경기도 여주의 땅을 샀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대운하, 4대강 사업에 귀가 솔깃했다고 합니다.

[서부이촌동 주민]

"그거 4대강 사업 때문에. 여주 그 중심으로 해서. 나중에 노후도 거기서 생활해야 될 거 같고, 그래서 해놨었는데 잘 안 되어가지고요."

돈이 모두 땅과 아파트에 묶이면서 결국 이 선생님은 지난 2011년 용산의 아파트와 여주의 땅을 모두 경매로 처분해야 했습니다. 현재는 월급까지 가압류가 들어온 상황입니다. 이 교사는 개인회생신청을 했다고 말했습니다. 지금은 자신이 소유했던 아파트 바로 앞 월세 30만원의 낡은 연립주택에서 아들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교직에 있지만 참 제가 법원에 가서 그 협의 이혼을 하긴 처음이에요. 제가 생각지도 못했지만. 지금 집사람은 지금 저 처갓집에 거기 가서 살고 있고요."

이 지역 주민들의 과도한 채무 문제는 이 교사의 문제만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보상금이 곧 들어올 것이라는 기대감에 돈을 빌린 사람들도 많습니다. 뉴스타파 취재진이 만난 주민들 상당수가 빚 때문에 고통을 겪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정철수 / 서부이촌동 주민]

-이자 갚으려고 융자를 땡기죠.그러면 원금 늘어나고 이자가 계속 늘어나잖아요. 지금 거의 포화상태죠."

이곳 주민들 대부분의 고민은 빚이었습니다. 빚 때문에 못살겠다고 아우성입니다. 과연 얼마나 많은 빚을 안고 사는 것인지 뉴스타파가 정밀 분석했습니다.

이 아파트 638세대 가운데 은행이나 제2금융권으로부터 대출을 받은 세대는 모두 391가구. 10가구 가운데 6가구는 빚을 안고 있었습니다. 이 가운데 10억 원 이상 빚을 지고 있는 가구도 16가구. 5억 원 이상 빚을 지고 있는 세대도 72세대나 됐습니다. 대출을 받은 사람들은 가구별로 평균 3억 4천 8백여만 원을 빌렸습니다.

등기부 등본에서 확인된 전세권을 토대로 면적별 전세금과 대출금을 아파트 시세와 비교해 봤습니다. 이 아파트는 6년 동안 거래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현재 용산구의 평균 시세인 3.3제곱미터 당  2200만원을 적용해 봤습니다. 전용면적 60제곱미터 형이 6억 원. 84제곱미터 형이 약 7억 5천만 원. 126제곱미터 형이 9억 6천여만 원으로 계산됩니다.

이 시세를 기존의 대출금과 비교해보면 대출금만으로도 시세에 못 미치는 사실상 부도난 아파트가 21(스물 한)가구. 전세를 주고 있다는 가정아래 대출금과 전세금을 합친 금액이 아파트의 시세를 초과한 이른바 깡통 아파트들은 무려 47(마흔 일곱)가구에 이르렀습니다. 빚을 갚고 나면 소유주에게는 한 푼도 남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빚을 갚고 나면 소유주에게는 한 푼도 남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들이 법적으로 구제될 여지는 거의 없습니다.

[김남근 변호사 / 참여연대 집행위원장]

"법적으로만 따지면 본인의 판단에 의해 투자한 것이기 때문에 투자에 따른 책임은 투자자가 책임을 진다는 원칙에 의해 보상받기 힘들 것으로 보입니다.

또, 이 지역 주민들 가운데 빚이 전혀 없는 사람들은 빚이 많은 사람들과는 입장이 다릅니다. 개발이 되어도 그만, 되지 않고 그냥 살아도 무방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적잖습니다.

[이희자 / 서부이촌동 주민]

"우리도 손해 없고 사업자도 남아야 사업을 하는거지. 안 남고 사업을 어떻게 하냐고. 막 퍼줘 봤자 그거 다 나라돈이고 국민 세금이지 뭐 어디 하늘에서 떨어진 돈도 아니고.하늘에서 솟아난 돈도 아니잖아. 좋게 절충을 해가지고 했음 좋겠어요."

달도 차면 기울고 산이 높을수록 골도 깊습니다.한없이 올라만 갈 것 같던 부동산 가격도 정점을 지난 지 오랩니다. 지가가 하락하고 사업성이 없어져서 사실상 부도위기에 처한 용산 국제업무지구 개발 사업. 부동산 천국 한국이 한순간에 빚더미에 무너질 수 있다는 마지막 경고인지도 모릅니다.

뉴스타파 최경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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