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생태보고서 : "나를 놓아주세요" 편의점 노예

2013년 04월 03일 14시 00분

“이게 노예지. 안 그렇습니까? 일 년 육 개월 열심히 일해도 집에 돈 한 푼 못 들고 가는데.”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의 푸념이 아니다. 편의점을 운영하고 있는 점주의 말이다. 김민성 씨는 1년6개월 넘게 편의점을 운영한 결과1억 원의 빚을 떠안게 됐다. 김금옥 씨는 365일 24시간 영업을 하고 있지만 다달이 200만 원씩 적자를 보고 있다. 31살 청년 임영민 씨는 이런 상황을 견디다 못해 지난 1월 자살을 택했다.

한 때 편의점은 소자본으로 시작해 안정적인 소득을 올릴 수 있는 업종으로 각광받았다. 그랬던 편의점이 점주들의 희망을 집어삼키는 늪으로 변한 까닭은 무엇일까. 최소 월200만 원, 안정적인 수익이 보장된다던 편의점가맹본부의 말은 어떻게 된 것일까?

뉴스타파M의 도시생태보고서 2회에서는 편의점 노예가 된 점주들의 잔혹한 삶 속으로 들어가 보았다.


제 고향 거제에도 봄이 왔군요. 그런데 제 편의점은 제가 떠난 지난 겨울 그 시간에 머물러 있네요. 비정규직을 전전하다가 이 편의점의 사장이 되던 날, 그 순간의 기쁨을 저는 잊지 못합니다. 제 삶의 모든 걸 이 편의점에 걸었지요.

그런데 이상하지요. 장사를 하면 할수록 돈을 벌기는커녕 빚만 쌓여가는 겁니다.

[이웃 주민]
“왜냐면 유동인구가 없잖아. 다니는 사람이 없잖아. 장사가 뭐 되겠어요.”
“나아진다는 건 언제 나아질지 기약이 없는 거니까 좀 답답하죠.”

답답했습니다. 장사를 그만두지 그랬냐고요? 저에겐 장사를 그만 둘 자유도 없었던 걸요. 당신을 위한 편의점, 그 속에 노예가 살고 있습니다.

평생 시장에서 장사를 했던 예순 살 김금옥 씨, 지금은 어엿한 편의점 사장님이다. 창업비용 3천만 원만 투자하면 한달에 적어도 2백만 원을 벌 수 있다는 가맹본부 직원의 말에, 사위의 퇴직금까지 끌어 모았다.

[김금옥 / 편의점주]
“그저 나는 대기업하고 손잡고 일하는 건 그 정도 하면 내가 이제 조금 신경 안 쓰고 힘들게 일 안 해도 되겠다, 여기서 조금 하고 알바 돌리고 내가 10시간이고 이렇게 하고. 나는 큰 욕심 안 내. 한 돈 100만 원만 가지고 가도 괜찮다고 생각하고, 그리고 우리 애들 뒷바라지 좀 해주고 이렇게 살 거라고 생각했는데...”

하지만 매출은 형편없었다. 하루하루 번 돈을 고스란히 본부로 보내야 했는데, 본부에서 수익의 35%를 가져갔다. 김 씨에게 돌아오는 몫은 월 180만 원 정도에 불과했다. 가게 월세 등을 내면 매달 200만 원 씩 적자가 났다.

[김금옥 / 편의점주]
“회사에서 하는 말이 매출이 없다고 하니까 내가 사 먹으래요. 내가 간장이니 뭐니 집에 필요한 거 가지고 가서 사 먹으래요. 그래서 매출을 올리래요. 내가 직접 사서 돈 주고 긇어서 그래서 가져가는 거예요. 그렇게라도 매출을 올리려고.”

가맹본부에서 주문한 제품도 팔지 못하고 남으면, 원가와 처리 비용까지 김 씨가 떠안아야 했다.

“어제 9시까지인데 시간 지났는데 안 팔린 거 처리 못한 거예요.”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이 하루 세 끼 김 씨의 주식이 됐다.

“손님 오면 부끄럽잖아. 이거 먹고 앉아있으면. 어디가냐면 여기 앉아서 먹어.”

김민성 씨는 2년 전 일자리를 잃은 후 이 편의점에 전 재산을 투자했다. 낮에는 아내가, 밤에는 김 씨가 번갈아 편의점을 지킨다. 허리를 수술한 몸으로 밤새 땀 흘리며 일하는 민성 씨, 하지만 부부에게 남은 건 1억 원의 빚뿐이다.

[김민성 / 편의점주]
“제가 거의 하루에 16시간, 17시간 정도 일을 하거든요. 돈을 들고 가본 적이 없어요.”

본사가 수익의 35%를 가져가고 남은 230만 원 가량이 그의 몫이다. 월세 등 운영비를 제하면 단돈 25만 원이 남는다.

[김민성 / 편의점주]
“25만원 가지고 나머지 다 해야죠. 휴대폰비, 가스비, 애기에게 들어가는 돈, 그럼 그 때부터 마이너스 나가는 거죠. 카드값 다 나가는 거죠.”

적자 운영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일이었다. 장사가 안 돼도 최대 월 500만 원까지 지원해준다는 본부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하지만 지원금은 매출에 따라 차등 지급됐다. 실제 받은 지원금은 100만 원 남짓, 적자를 메우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김민성 / 편의점주]
“며칠 전엔 아내도 아프지만 아이가 아파서 알바 대체 못해서 3일 연속 했는데 죽고싶더라고요. 그냥 죽고싶은 마음이 아니라 내가 왜 이걸 했지 왜 이걸해서 이 꼴을 당하고 있지...”

민성 씨는 자신 때문에 고생하는 가족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

[김민성 / 편의점주]
“살려줬으면 좋겠어요 솔직히. 다 까놓고 죽이지 말고 너무 많이 울어서 아내하고 울어서 더 이상은 눈물도 안 나는데 죽고 싶은 마음이 안 들게 본사에서 신경을 좀 썼으면 좋겠어요.”

밤 10시 45분, 김금옥 씨가 골아 떨어졌다. 김 씨의 하루 수면 시간은 4시간이 채 안 된다. 밤엔 편의점을 지키고 낮엔 외손자를 돌봐야 하기 때문이다. 편의점에서 생기는 적자를 메우기 위해 딸이 일자리를 찾아 나서면서벌어진 일이다. 김 씨는 힘든 내색 한 번 못 한다.

[김금옥 씨 딸]
“저희한테 미안해서 제가 뒤를 봐주고 있잖아요. 아니면 다 담보 넘어가고 하니까 저희한테 잠 못잔다 힘들다 말을 못해요. 지금 제가 다 해주고 있으니까.”

밤 11시가 넘어 김 씨가 지친 몸을 깨운다. 12시까지 다시 편의점에 나가야하기 때문이다. 당장이라도 편의점을 그만두고 싶다. 하지만 계약기간 5년을 못 채우면 본부에 위약금 5천만 원을 내야 한다. 위약금을 마련하지 못하는 한 밑 빠진 독에 돈 쏟아붓기를 계속할 수밖에 없다.

[김금옥 / 편의점주]
“그러니까 위약금 장사라는 말이 딱 맞는 것 같아요. 저희가 두 달 만에 못하겠다고 얘기를 했거든요. 두 달 만에 위약금 정산금이 나와요. 한달 보름 만에 나오는데 우리 못하겠다 하니까 이제 담보 얘기가 나오더라고요. 담보 팔아서 위약금을, 담보 다 빼앗긴다, 거기에 발목 잡히는 거죠.”

김 씨가 가족들에게 눈도 못 마주치고 부리나케 집을 나선다. 김 씨는 자식들에게 큰 죄인이 된 것만 같다.

[김금옥 / 편의점주]
“내가 미안해서 말을 다 못해. 사위한테도 미안하고.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 건지, 죽고 있는 건지 모르겠어요. 어떤 날은 차 타고 가다가 생각하면 뒤에서 누가 날 들이받아서 차라리 죽어버리면. 이게 뭐라고 해야 되나 보험금이라도 나오지 않을까. 이런 생각에 한 번 빚이라도 청산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들어요. 좀 비참한 생각이지만 내 장기라도 팔 수 있을까 싶어서 병원에 몇 군데 돌아다녀 봤는데 요즘은 그런 게 없더라고요.”

인건비라도 아끼기 위해 24시간 편의점에서 먹고 잔 적도 있었다. 그 뒤 건강이 나빠져 지금은 밤 12시부터 아침 7시까지 편의점을 지킨다. 난방도 하지 않은 채 찬 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추운 겨울밤을 보냈다. 밤새 문을 열어봐야 5만 원 어치도 못 팔기 일쑤지만 규정상 문을 닫을 수도 없다.

[김금옥 / 편의점주]
“문도 못 닫아요. 문만 닫을 수 있으면 그래도 잠이라도 자면서 있을 수 있지, 문 닫으면 강제 폐업 시킨다고 하는데.”

편의점을 지키면서도 틈틈이 하는 일이 있다. 동네의 폐지를 주워 모으는 것이다

[김금옥 / 편의점주]
“이 정도 모아놓으면 이거라도 팔면 목욕비라도 할 수가 있고. 내가 어쩌다가 이런 폐지까지 주워서 이런 장사까지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내가 이렇게 될 줄은....”

거리에서 폐지를 모으는 신세보다 못 하다는 김 씨. 오가는 사람 하나 없는 편의점을 오랜 시간 밤새 홀로 지키다보니 우울증까지 생겼다.

“가슴이 벌떡벌떡 뛰어.”

김 씨는 신경안정제를 먹으며 하루하루 버티고 있다.

[김금옥 / 편의점주]
“나는 살려고 여기 들어왔지 죽으려고 안 들어왔다고 한번 살려고 인간답게 살려고 시장바닥에서 천날 만날 옆에 사람하고 싸우면서 그러는 게 싫어서 좀 조용하게 살고 싶어서 세븐일레븐 편의점에 들어왔다가 이건 시장바닥보다 더 못해. 노예 노예도 아니고 이건 뭐라고 해야 되나 이건 사람도 아니야 완전 여기에 콕 박혀서 살아야 되고...”

24시간 족쇄를 차고 있는 김 씨에게 봄은 아직 오지 않았다.

프랜차이즈 편의점 사장이었던 김영현 씨. 지금은 같은 자리에서 개인 편의점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본부가 일방적으로 브랜드명을 바꾸자 이에 소송을 제기해, 본부로부터 계약 해지를 당했기 때문이다.

[김영현 / 편의점주]
“제가 그 소송에 앞장선다는 이유일지는 몰라도 어떤 위약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고가서 작년 9월 26일이죠. 그 날짜로 상품 판매를 본부쪽에서 막았습니다.”

계약 해지 전에는 4천만 원의 적자를 보면서도 울며 겨자 먹기로 일을 했다. 하지만 개인마트로 전환한 뒤 오히려 수익이 높아졌다. 본부가 수익의 35%를 떼어가는 일이 없으니, 손에 쥐는 돈이 더 많아진 것이다. 이제야 비로소 내 가게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영현 / 편의점주]
“여기서는 우리가 상품이 안 팔리는 거 안 받으면 그만이고 물론 안 받으면 그만입니다. 또 경쟁력 있는 상품을 내가 갖다놓고 가격 자체도 내가 결정을 할 수 있어요.”

그런데 기쁨도 잠시, 이 가게마저 곧 문을 닫게 됐다. 가맹 본부에서 7200만 원의 위약금을 내놓으라며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본부가 카드 매출에 가압류까지 걸어 더 이상 새 물건을 들일 여력이 없어졌다.

[김영현 / 편의점주]
(앞으로 생활은 어떻게 하시려고?)
“그거는 아직까지도 저도 많은 생각 중에 있습니다. 어떻게 뭐 어떻게 해야되는지는 아직 저도 해답을 못찾고 있어요. 직업을 한 번 바꾼다는 게 쉬운 문제는 아니지 않습니까?”

365일 24시간 불을 밝히고 있던 편의점은 이제 밤 1시가 되면 문을 닫는다. 김 씨는 이 시간만 되면 노예같은 삶에서 처음 해방감을 맛 보았던 그 순간의 기억이 떠오른다.

[김영현 / 편의점주]
“2012년 9월 27일 새벽 1시에 처음 불을 꺼 봤죠. 그러니까 참 많은 생각이 오가더라고요.”

하지만 7200만 원의 위약금이 여전히 그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 한 번 발을 들이면 쉽게 벗어날 수 없는 편의점 가맹점. 살려고 발버둥치면 더 깊게 빨려 들어가는 늪 같은 곳에서 언제쯤 온전히 벗어날 수 있을지 기약이 없다.

전국 편의점수는 5년 새 두 배 이상 급증했다. 무인도에 편의점을 열어도 손해날 게 없는 가맹본부는 해마다 사상 최대의 수익을 거둔다. 반면 노예로 전락한 점주들은 오늘도 소리없는 비명을 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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