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만 7천 원

2014년 03월 05일 15시 53분

손해배상 가압류 그리고 업무 방해. 의미를 정확하게 모르는 이들조차도 이제 언론을 통해 익숙해진 말들이다. 특히 노동자들의 파업과 관련한 보도가 나올 때면 거의 빠짐없이 이 말들이 등장하는데 그 순서는 대개 이런 식이다.

우선 노동자들이 파업을 한다. 하지만 그건 근로조건(임금 인상이나 복지)과 관련된 파업이 아니기 때문에 ‘불법’이다. 불법임에도 파업을 하면 이는 사측과 파업을 진압(?)하는 경찰에 대한 ‘업무 방해’다. 업무 방해로 기업과 경찰이 손해를 입힌 노동자(노조)들은 기업과 경찰에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 당장 배상할 수 없으면 노동자들이 가지고 있는 재산을 ‘가압류’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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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마치 잘 만들어진 ‘이야기’와 같다. 누군가 ‘불법’을 저질렀으니 그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권선징악이란 기본적인 구조를 지닌 보편적인 이야기 말이다. 이 이야기 속에서 ‘파업’은 불법 즉 ‘악’이 되고, 따라서 파업에 대해 벌을 주는 건 ‘선’이 된다. 즉 이 이야기의 핵심은 파업이 불법이라고 규정되어지는 것에 있는 셈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헌법은 파업을 노동자의 기본 권리로 보장 한다. 즉 최상위법인 헌법이 파업을 ‘합법’이라고 인정하고 있다는 말이다.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 - 대한민국 헌법 제33조 제1항

당연히 파업은 ‘불법’이 아니다. 파업을 해서 사측의 업무에 방해가 되더라도 이는 ‘합법’이다. 아니 파업이야말로 사측의 업무를 방해하는 게 목적이다. 업무를 전혀 방해하지 않는 파업이란 건 존재할 수가 없는 셈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엔 이와 정면으로 모순되는 하위법이 존재한다. 다름 아닌 ‘업무 방해죄’다.

"위력으로써 사람의 업무를 방해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형법 제314조

하위법이 상위법에 반하는 규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이상하지만, ‘업무 방해’를 본질로 하고 있는 ‘파업’과 ‘업무 방해죄’는 그 자체로 양립할 수 없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즉 이 법을 피해서 합법적인 파업을 한다는 건, ‘업무 방해죄’를 피해서 ‘업무 방해’를 하는 파업을 해야 한다는 것으로, 마치 물을 피해서 수영을 해야 한다는 것처럼 기이하다.

물론 "노조법 상 파업의 요건을 준수하면 예외적으로 업무 방해죄로 처벌하지 않는다"는 조건이 붙긴 하지만, ‘파업의 요건’이라고 하는 것은 매우 제한적이어서 임금, 근로 시간, 근로 복지에 해당할 때만 합법이다. 따라서 임금이나 근로시간 복지보다 훨씬 더 노동자들의 생게를 위협하는 ‘대량 해고’나 ‘구조 조정’과 같은 이유로 파업을 하면 불법이 된다.

선진국에선 이러한 이유로 노동 3권과 정면으로 배치하는 ‘업무 방해죄’ 혹은 그와 유사한 법 조항을 더 이상 파업에 적용하고 있지 않다. 업무 방해죄가 헌법에서 보장하는 노동3권을 정확하게 제약하고 있음을 이미 오래 전 인지하고 바로 잡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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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영상은 파업에 대한 잘못된 법적 관점과 더불어 파업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벌어지는 그 이후의 사태, 즉 손해배상 소송과 업무 방해죄 처벌, 그리고 가압류에까지 이르는 과정을 담고 있다. 특히 그 과정에서 자살이라고 하는 선택을 한 수많은 노동자의 이야기를 통해 ‘파업’이라고 하는 가장 기본적인 노동자의 권리가 보장되지 못했을 때 발생하는 비극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시한다.

나아가 이를 조금이나마 바로 잡기 위해 수많은 시민들이 정성을 담아 보낸 노란 봉투와 그 속에 담긴 4만 7천 원의 의미에 대해서도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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