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친구 이철우 교수 "강남 화랑 사무실, 나도 얘기 들었다"
2024년 11월 05일 08시 00분
1983년 11월 12일, 미국 레이건 대통령이 일본을 거쳐 한국을 방문했다. 당시 한국 언론은 레이건의 방한을 전두환 정권의 업적인 것처럼 선전했다.
그러나 외교부가 3월 27일 자로 공개한 1983년도 비밀외교문서에 따르면 전두환 전 대통령은 취임 초기인 1981년부터 이미 미국 대통령의 방문을 요청한 것으로 드러났다. 1981년 9월 백악관에 보낸 친서를 보면 전두환은 “본인과 내자(당시 영부인 이순자)가 내년 서울에서 각하를 영접할수 있는 기쁨을 갖게 되길 바란다"며 레이건의 방한을 간절히 부탁한 사실이 나온다.
정통성없는 전두환 정권이 레이건의 방한 이벤트를 통해 미국의 인정을 받고 있다는 이미지를 국민들에게 보여주려고 집권 초기부터 얼마나 노력했는가를 이 문서들은 잘 보여준다.
그러나 미국은 친서를 받고도 전두환의 요청을 쉽게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한국 외교부는 그 이후 2년 동안 여러 경로를 통해 미국 대통령의 방한 일정을 타진했다.
전두환이 친서를 보내고 2년이 지난 뒤인 1983년 11월에야 레이건은 일본을 거쳐 한국에 들렀다. 당시 언론은 미국 대통령의 방한으로 한미 관계에 찬란한 이정표가 세워졌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그러나 당시 외교부는 미국 대통령의 한국 방문시 실제 요구 사항으로 “국내 투자환경 개선문제, 미국의 특허권 및 상표권 보호, 알라스카산 액화천연가스 수입, 기술수수료 지불문제와 한국 내 수형중인 주한미군 장병 사면” 등을 예상했다.
특히 미국 측은 레이건 대통령 수행기자단이 한국 방문을 전후해 “한국의 인권 문제를 들춰내려 할 것이나 국무성으로선 이에 대해 별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한국 측에 통보한다.
전두환 정권의 인권탄압을 에둘러 지적한 것이지만 한국 정부는 이에 대해 별다른 답변을 하지 못했다.
대신 한국 정부는 미국 대통령 방한에 맞춰 대규모 환영 행사를 준비했다. 이번에 공개된 외교부 문서에는 레이건 영접을 위해 거의 모든 정부 부처가 동원된 사실이 적혀 있다.
[9182]Reagan Ronald 1983 11 12 14 001 (Text)
미국 대통령 방한 기념 우표와 담배, 영화, 앨범까지 제작하는 것은 물론, 환영행사장에는 5색 종이를 살포하고 비둘기가 시청앞 분수대에서 비상하도록 계획을 세웠다. 특히 공항에서 여의도 국회에 이르기까지의 카퍼레이드 경로와 주요 행사장 길가에는 학생과 시민 100만 명을 동원해 레이건을 환영하도록 했다.
당시 서울지역 교사였던 송원재(전교조 교육희망 편집국장)씨는 전두환 정권 시절 외국에서 대통령이 오면 대부분 학생과 시민들이 동원됐으며, 레이건 방한 때도 시민과 학생들이 미리 양국 국기를 흔드는 연습을 한 뒤 버스를 타거나 먼 길을 걸어서 지정된 장소에 집결해야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외교부가 이번에 공개한 1983년도 생산 외교문서는 총 1648건, 28만 페이지 분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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