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변단체 ‘가짜 영수증’ 무더기...눈 감은 지자체

2014년 03월 28일 19시 44분

“시내 두 평짜리 식품 가게에서 40만 원 어치 화단 청소용 호미와 곡괭이를 구입했다.”

“돼지껍데기와 삼겹살을 파는 식당에서 거리 청소용 빗자루를 53만 원 어치 샀다.”

대구지역 3대 관변 단체가 지난해 사회단체보조금을 쓰고 증빙이라며 제출한 영수증들이다.

뉴스타파가 대구지역 8개 구군이 지난해 새마을운동중앙회와 바르게살기운동협의회, 자유총연맹 등 이른바 ‘3대 관변 단체’에 지원한 사회단체 보조금 사용 내역과 정산 서류를 분석한 결과 이처럼 엉터리 영수증이 무더기로 확인됐다.

지난해 9월 대구시 중구 바르게살기운동협의회가 길거리 환경 정비를 위해 호미와 곡괭이 등을 구입했다며 40만 원짜리 영수증을 제출했는데, 구입처가 엉뚱하게도 식품 가게였다.

취재진이 찾아간 이 식품 가게는 두세 명이 겨우 들어갈 정도로 좁았다. 주로 담배와 과자, 음료수 등을 팔고 있었다.

이곳에서 20년 동안 장사를 했다는 주인 정 모 씨는 영수증을 보더니 호미와 곡괭이를 판 적이 없다며 어이없어했다. 가짜 영수증이 제출된 과정을 유추해 보면 다음과 같다.

“ 지난해 누군가 이 가게에서 물건을 사고, 백지 간이 영수증을 받아 갔다. 그리고 호미와 곡괭이를 샀다고 거짓 영수증을 만들어 구청에 제출한 것이다.”

0328_완성_A(변환3)

관변 단체의 가짜 영수증은 이뿐만이 아니다.

삼겹살과 술을 파는 식당이 발급한 53만 원 짜리 영수증. 그러나 식대가 아니었다. 빗자루와 집게를 구입한 것으로 돼 있다. 대구 서구의 한 새마을 부녀회가 제출한 영수증이다.

알고 보니 식당의 주인은 이 단체의 회계를 담당하는 총무였다. 이 영수증이 나온 과정은 이렇다.

"지난해 4월, 이 새마을 부녀회 회원들은 사실 이곳에서 회식을 했다. 그리고 관할 관청에는 거리 청소를 했고, 빗자루를 53만 원어치 구입했다고 꾸민 것이다.”

0328_완성_B(변환3)

지난해 4월에는 또 다른 새마을 관련 단체가 빗자루 등 청소 도구 5만 원어치를 구입했다면서 술집의 간이 영수증을 제출했다.

그러나 관리 감독을 맡고 있는 관할 동 자치센터 직원은 “민간인이다 보니까 아무렇게 사용하는 것일 뿐”이라며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지난해 대구 중구의 새마을회는 모두 10여 차례 연탄 나누기 행사 비용으로 모두 3백만 원 가량의 보조금을 사용했다며 정산 서류를 제출했다. 증빙 서류는 역시 간이 영수증이었다. 그런데 절반이 넘는 150만 원어치의 연탄 구입처를 보니 페인트 가게였다.

페인트 가게의 주인은 이 새마을회 전직 회장으로 확인됐다. 처음엔 연탄을 취급하지 않는다고 했다가 말을 바꿔 지난해까지 연탄을 판매했다고 주장했다. 주변 주민들의 이야기는 전혀 달랐다. 연탄을 판매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대구 중구의 바르게살기운동 협의회. 이 단체는 지난해 인쇄물을 제작한다며 보조금 100만 원을 사용했다. 증빙자료는 이 단체의 전직 회장 서 모 씨가 운영한다는 인쇄소가 발급한 세금계산서. 그러나 취재팀은 서 씨의 인쇄소를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세금계산서에 기재된 주소에 가니 엉뚱하게도 다른 사람이 인쇄소를 운영하고 있었다. 건물 한쪽, 우편함에 서 씨의 연락처가 적혀 있을 뿐이다.

서 씨는 10년 전부터 자체 인쇄소를 운영하지 않고 있었지만 세금계산서에는 마치 사무실이 존재하는 것처럼 주소를 적어 놨다.

그러나 전직 회장 서 씨는 정당하게 인쇄 제작을 맡았다고 주장했다.

관련단체 간부나 전직 임원이 운영하는 업체 영수증 많아 나와

취재팀이 대구 지역 3대 관변 단체의 보조금 집행 내역을 분석한 결과 관련 단체의 전현직 임원이 운영하는 업체의 영수증이 많이 나왔다.

그것도 상당수는 간이영수증이었다. 관련 단체 간부들은 정당한 방식으로 계약을 했고, 유용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간이영수증과 현금 지출 등의 허술한 증빙은 국민의 세금인 사회단체 보조금이 빼돌려지거나, 일부 단체 임원들의 배불리기에 사용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자아내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영수증만 확인해도 관리 지침에 어긋나는 보조금 집행 사례가 수두룩하게 발견되는 데도 관할 관할 관청은 뉴스타파가 지적할 때까지 실태 파악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대구 지역 구청 공무원들은 부랴부랴 대책 마련에 나서겠다고 밝혔지만, 지금까지의 보조금 지급 관행을 비춰볼 때 일선 지자체가 스스로 제도 개혁을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대구 지역 3대 관변 단체들은 대부분 관할 구청이 실시한 사회보조금 집행과 실적 평가에서 ‘우’에 해당하는 80점 이상을 수년 동안 계속해서 받아왔다.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