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사람이 줄어드는 나라?

2014년 04월 02일 19시 14분

생계를 비관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은 ‘세 모녀’ 자살 사건이 발생한 지 벌써 한 달 여. 처음 이 사건이 보도 되었을 때 세 모녀가 남긴 월세 및 공과금 70만 원과 ‘죄송합니다’란 유서가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줬고 그로 인해 대통령까지도 언급할 만큼 큰 사건으로 다뤄지게 됐다.

동시에 세 모녀가 복지 관련 신청을 전혀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들이 과연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있었는 지도 쟁점이 되었는데, 이에 대한 정부의 입장은 ‘기존의 복지 제도를 세 모녀가 활용했다면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해 안타깝다’라는 것이었다. 이러한 입장은 대통령의 국무회의 언급에서도 정확하게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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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당시 많은 복지 전문가들은 세 모녀가 설사 복지 신청을 했다고 하더라도 혜택을 받기 어렵거나, 받더라도 매우 미미한 수준일 거라는 전혀 상반된 의견을 피력한다. 그렇다면 과연 누구의 의견이 맞는 걸까?

안타깝게도 매우 복잡한 복지 규정과,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용어들, 무엇보다 각각의 복지 제도에 부합하기 위한 다양한 ‘조건’으로 인해 평범한 사람들은 물론, 관련 기사를 작성한 기자들조차 정확히 누구의 말이 맞는 건지 이해하기가 매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 사건은 복지 문제에 대한 토론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그저 안타까운 마음 만을 남긴 채 급속도로 잊혀져 가고 있는 것이다.

이에 본 영상에서는 세 모녀가 받을 수도 있었다는 복지 혜택의 가능성에 대해, 크게 세 가지 복지 혜택의 범주로 나눠 차근차근 짚어봤다.

첫째, 실직자에게 제공되는 ‘실업급여’.
둘째, 기초생활 보장 제도에 해당하는 기초생활 수급자 선정 가능성.
마지막으로 긴급 복지지원 제도에 해당할 수 있는 지의 여부가 그것이다.

우선 실업 급여의 경우 가장 중요한 조건이 ‘구직 활동’을 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 즉 열심히 구직활동을 하는데도 직장을 잡을 수가 없을 경우에만 실업 급여를 받을 수가 있는 셈이다. 하지만 오른 팔을 다친 어머니의 팔이 낫기 전까지는 새로운 일(식당일)을 알아볼 수가 없기 때문에 구직 활동을 할 수가 없고, 따라서 실업 급여를 받을 가능성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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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어머니는 기초생활 수급자로 선정될 가능성은 있었을까? 기초생활 수급자로 인정받기 위한 가장 중요한 조건은 ‘근로 무능력자’로 판정을 받는 것. 즉 일할 능력이 없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럼 도대체 ‘근로 무능력자’의 기준은 뭘까? 정부가 발표한 기준은 아래와 같다.

① 18세 미만/65세 이상,
②중증장애인(1~2급 장애인, 3급 중복 장애인),
③질병․부상 또는 그 후유증으로 3월 이상의 치료 또는 요양이 필요한 자,
④임산부,
⑤공익요원 등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오른 팔을 다친 어머니의 경우 골절상이기 때문에 3월 이상의 치료 또는 요양이 필요하다고 보기가 쉽지 않다. 쉽게 말해 ‘만성 질환’일 때 근로 무능력자로 판정을 받을 수 있는데, 어머니는 이에 해당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설사 운이 좋아 만성 질환 판정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부양 능력이 있는 가족이 있으면 수급자로 인정받을 수가 없다. 다행히(?) 함께 사는 두 딸은 재산과 소득이 미미하여 부양 능력이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설사 부양 능력이 없다고 하더라도 일을 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일을 하지 않아서 소득이 없는 경우엔, 일을 했을 경우 받을 수 있는 소득을 제외한 나머지 금액만 지원되기 때문이다. 일을 했다면 받을 수 있는 소득을 ‘추정 소득’이라고 한다. 현행법에 따르면 일 할 능력이 있을 경우 한 사람 당 60만원을 ‘추정 소득’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두 딸은 ‘일 할 능력이 없음’을 증명해야만 최대한 많은 지원을 받을 수가 있는 셈인데, 다행히(?) 첫째 딸은 당뇨와 고혈압을 앓고 있었다. 근로 무능력자로 판정 받을 가능성이 있었던 것. 문제는 이를 인정받기 위해선 병원에서 받은 ‘진료 기록’이 필요한데 첫째 딸의 경우 돈이 없어 병원에 거의 가지 못했다. 따라서 진료 기록이 없는 첫째 딸은 돈이 없어서 근로 무능력자 판정을 받기 어려운 황당한 상황이 놓이게 된다.

더구나 둘째 딸은 아픈 곳이 있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추정 소득 60만 원을 피해갈 방법이 없었다. 물론 돌아가신 아버지 병원비로 인해 신용불량자가 되어 편의점 아르바이트 외에 정상적인 직장을 잡을 수 없었지만, ‘취업 능력’이 없다는 것이 ‘근로 능력’이 없다는 것으로 인정받을 수는 없다.

정리하면 결국 세 모녀 모두 ‘근로 능력자’로 판정 받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각각 60만원 씩 총 180만 원의 ‘추정 소득’이 있는 것으로 판정이 될 가능성이 높고, 이렇게 되면 3인 가구 월 최저 생계비인 132만 여 원을 이미 초과하여 기초생활 수급자로 판정 받을 수가 없다.

다음으로 어머니만 근로 무능력자로 인정받을 경우엔 추정 소득이 120만원이 되는데, 이 또한 3인 가족 최대 지원액인 107만 원을 초과하여 사실상 한 푼도 받을 수 없다.

마지막으로 첫째 딸이 고혈압과 당뇨로 인해 근로 무능력자로 인정받는다고 하더라도 둘째 딸 추정 소득 60만 원이 남기 때문에, 3인 가족 최대 지원액 107만 원에서 추정 소득 60만 원을 제하면, 실제로 받을 수 있는 금액은 47만 원에 불과하게 된다. 이는 세 모녀가 내던 월세 50만 원보다 적은 금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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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긴급복지 지원제도의 혜택을 받을 수는 있었을까? 이 역시 가능성이 희박하다. 긴급복지 제도는 사망이나 화재와 같은 다소 특수한 상황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그저 길을 가다 스스로 넘어져 팔을 다친 어머니의 경우 이에 해당할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다.

여기까지만 봐도 ‘있는 복지 제도’를 통해 세 모녀가 복지 혜택을 받을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 이전에 그나마 희박한 이 모든 희박한 가능성을 더욱 희박하게 만드는 건, 읽기만 해도 머리가 아픈 이 복잡한 복지 제도를 세 모녀가 스스로 이해하고, 신청해야 하는 ‘신청주의 방식’에 있다. 세 모녀가 복지 제도를 ‘잘 알기만 했다면...’이라고 하는 전제가 복지 제도의 합리성을 떠나 얼마나 비현실적인 것인지 여기까지 읽은 사람이라면 더 이상 말하지 않아도 이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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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2009년부터 복지 제도에 부합하는 사람들의 수는 꾸준히 줄어들고 있고, 긴급복지 사업의 집행율도 줄고 있는 추세이다. 그렇다면 이는 우리나라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실제 줄어 들어서일까? 아니면 국가가 가난한 사람이라고 ‘판정’하는 기준을 더욱 까다롭게 들이대고 있어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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