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들은 몰랐다고?

2014년 04월 04일 22시 57분

간첩증거조작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검찰은 제 식구인 검사들의 잘못을 따져 처벌하는 데는 전혀 관심이 없어 보인다. 검찰은 최근 국정원 직원과 협력자를 기소하면서 공소장을 통해 마치 검사들이 위조문서를 검증하기 위해 노력한 것처럼 묘사했다.

그러나 뉴스타파가 유우성 씨 사건의 전개 과정을 분석해보니 증거 은닉, 공문서 위조, 위증 등 검사들에게 적용할 수 있는 혐의는 한두 개가 아니었다. 상식적으로 볼 때 검사들이 국정원에 속기만 했다고 보기에는 너무나 많은 의문의 관문들을 이들은 그냥 지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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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 1) 검사, 유가려가 ‘허위자백했다’ 고백하자 “그러면 못 도와준다”?

2013년 3월 국정원으로부터 유우성 씨 사건을 송치받은 이시원 검사는 4월 초 열린 증거보전재판에서 유 씨의 동생 유가려 씨에게 많은 질문을 던졌다. 유가려 씨는 검사의 수백 가지 질문에 가는 목소리로 ‘예’하고 대답했다. 그러나 오빠가 묻기 시작하자 제대로 답하지 못하고 계속 울기만 했다. 유가려 씨의 자백 내용이 거짓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사진이 공개되자 더욱 괴로워했다.

증거보전재판이 끝난 뒤 이시원 검사는 유가려 씨를 불러 ‘사실대로 말하라. 국정원 직원들에게는 말하지 않겠다’며 진실을 고백할 것을 종용한다. 거듭된 이시원 검사의 종용에 유가려 씨는 ‘사실은 모두 허위자백이었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이 검사는 막상 유 씨의 고백을 듣자마자 “그러면 못 도와준다”며 입장을 바꾸었다는 것이 유가려 씨의 일관된 증언이다. 이 검사도 유가려 씨가 국정원에서 허위 자백을 했다고 고백한 사실을 일부 인정한다. 그는 “당시 유 씨가 자백을 번복한 것은 채 1분도 되지 않았다”고 재판에서 진술했다. 그러나 1분이건 1시간이건 허위자백을 했다는 피의자의 진실고백을 무시한 것은 심각한 문제였다.

의문 2) 사진 증거 조작도 무시

국정원이 유우성 씨가 북한에 들어가서 찍은 것이라고 제출한 사진은 아이폰으로 찍은 것이었다. 국정원은 이 사진을 파일 형태가 아니라 종이에 출력한 형태로 제출했다. 변호인 측이 압수된 하드 드라이브를 받아 디지털 포렌식으로 되살려보니 국정원이 제출하지 않은 사진들이 나타났다. 중국의 노래방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국정원이 제출한 사진들도 위치 정보를 확인해보니 북한이 아니라 중국에서 찍은 것이었다. 국정원은 자신들에게 불리한 일부 사진 증거는 은닉하고, 일부는 위치 정보를 확인할 수 없도록 종이로 출력해 제출한 것이다. 그러나 검사는 사진 증거 조작도 무시했다.

의문 3) 유우성 씨가 북한에 들어가지 않았던 것을 입증하는 통화기록을 무시

당초 공소장 대로라면 유우성 씨가 북한에 들어가 있어야 할 때에 중국에서 찍은 사진들이 나오자 검찰은 공소장 변경을 신청한다. 2012년 1월 22일에 밀입북했다고 한 것을 1월 24일 밀입북한 것으로 바꿨다. 검사는 새 증거로 유 씨의 통화기록을 제출했다. 1월 24일에는 유우성 씨의 통화기록이 없으니 북한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통화기록에는 검사가 공소장을 변경하기 전까지 유 씨가 북한에 들어가 있었던 기간이라고 주장한 1월 22일부터 23일까지의 통화기록이 있는 것이 드러났다. 그렇다면 검사는 당초 1월 22일 유 씨가 중국에 있었던 증거인 통화기록을 갖고 있었으면서도 북한에 들어갔다고 기소한 것이 드러난 셈이다. 검사는 기소하기 전에 통화기록을 보았을 가능성이 크다. 피의자의 혐의를 벗길 수 있는 증거를 보고도 무시하고 기소했다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처벌 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의문 4) ‘입-입-입’ 기록 갖고 있던 검찰, ‘입-출-입’ 기록 받아 법원에 제출?

국정원은 유우성 씨가 어머니 장례식 참석 북한에 다녀왔던 2006년 5월 말-6월 초 출입경기록을 갖고 있었다. 국정원은 북한에서 중국으로 세 번 연이어 들어간 것으로 되어 있는 이 기록을 토대로 유가려 씨와 유우성 씨를 추궁했다. 그러나 이 기록은 비공식 자료였으므로 검찰은 국정원에 공식 자료를 요구했다.

그런데 중국 길림성 공안청은 유 씨의 출입경기록 발급을 거부했고, 국정원은 갖고 있던 ‘입(入)-입(入)-입(入)’ 자료를 선양총영사관에 보내 영사인증만 받은 뒤 검찰에 제출했다. 국정원은 한편 협력자 김 모씨가 가짜 허룽시 공안국 관인을 찍고 ‘입-입-입’을 자연스럽게 ‘입(入)-출(出)-입(入)’으로 변조한 기록도 검찰에 제출했다.

검찰은 국정원이 제출한 이 두 기록 가운데 가짜 허룽시 공안국 관인이 찍힌 ‘통째로 위조된’ 출입경기록을 선택해 법원에 제출했다. 물론 검찰은 변조한 ‘입-출-입’ 기록이 정상 발행된 것인지 확인하겠다며 사실확인요청을 하기는 했다. 그러나 사실확인 결과가 오기도 전에 이 위조 문서를 법원에 증거로 제출했다. 따라서 사실확인요청 행위는 알리바이 용이 아니었나하는 의문이 제기된다.

검사는 비공식 입수한 것이지만 수사단계부터 활용해온 ‘입-입-입’ 기록을 제쳐두고 왜 위조된 ‘입-출-입’ 문서를 선택했을까? 검찰은 관할 관청인 길림성 공안청이 출입경기록 발급을 거부했는데도 왜 유 씨 출입경기록 발급 권한도 없고, 상관도 없는 허룽시 공안국이 유 씨의 출입경기록을 발급해줬다는 국정원의 주장을 그대로 믿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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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 5) 뉴스타파가 ‘위조’ 사실을 확인해줬는데도 왜 검찰은 진위를 확인하지 않았나.

뉴스타파는 중국 현지 취재를 통해 허룽시 공안국 출입경기록 담당자, 연변주 공안국 담당자, 허룽시 공증처 담당자를 취재해 한결같이 국정원이 제출한 중국 공문서가 ‘위조’라는 답변을 들었고, 이를 담당 검사들에게 지난해 12월 6일 알려줬다. 그러나 검사들은 뉴스타파의 취재 결과를 믿지 않고 오히려 몰래카메라로 찍은 믿을 수 없는 영상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잘못을 교정할 기회였지만 검사들은 이 또한 무시한 것이다.

의문 6) 유우성 측, 진본 출입경기록 제출. 그래도 안 믿은 검사들?

유우성 씨측은 검찰이 위조된 출입경 기록을 제출한 이후 중국에서 정식으로 진본 출입경기록을 발급받아 제출했다. 이 기록은 ‘입-입-입’이었다. 유우성 씨가 북한에서 중국으로 들어온 날 함께 들어온 다른 친척 2명의 기록도 ‘입-입-입’으로 되어 있었다. 중국 출입국 관리 시스템의 전산오류로 ‘입’이 세 번 연이어 나온 것이라는 유우성씨 측 주장이 사실임이 입중된 것이다. 하지만 검사들은 믿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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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7) 여권기록도 믿지 않은 검사들

유 씨의 여권기록도 제출됐다. 출입 때마다 직접 스탬프를 찍기 때문에 틀릴 수 없는 기록이다. 검찰이 증거로 제출한 출입경기록은 이 여권에 기재된 내용과 달라 위조된 것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검사들은 역시 믿지 않았다.

의문8) 엉성하고 위조 흔적 뚜렷한 ‘사실확인서’ 그대로 제출한 검찰

허룽시 공안국이 출입경기록을 발급한 사실이 있다는 ‘사실확인서’는 서로 다른 두 개의 팩스 번호로 중국 선양 주재 한국 총영사관에 전송돼 왔다. 나중에 확인됐지만 이 두 개의 동일한 ‘사실확인서’는 허룽시 공안국에서 보낸 것이 아니라 서울 국정원 본부에서 보낸 것이었다. 게다가 이 ‘사실확인서’는 문법도 틀려서 중국 정부의 공문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엉성했지만 검사들은 그대로 제출했다.

의문 9) 검사들에게 ‘국정원이 위조 문서를 제출할 것’이라는 경고를 전하다

한 국정원 정보원은 검찰이 위조된 유 씨의 출입경기록을 제출하기 전에 뉴스타파 취재진에게 ‘위조된 기록이 제출될 것’이라고 알려 왔다. 뉴스타파는 이를 유 씨 변호인 측에 알렸고, 위조 기록이 제출된 뒤인 지난해 12월 20일 재판에서 변호인들은 검사들에게 이 사실을 전했다. 그러나 검사들은 독자적으로 해당 정보원을 만나 사실관계를 알아보기는커녕 이 경고 뒤에도 삼합변방검사참 명의의 위조 문서를 제출했다.

의문 10) 중국 정부의 위조 통보를 받고도 믿지 않은 검찰

중국 정부는 지난 2월 유 씨 사건 항소심 재판부에 검찰이 제출한 3가지 중국 공문서가 모두 위조라고 통보했다. 그 직후 열린 검찰 브리핑에서 윤웅걸 서울중앙지검 2차장은 중국 측이 위조라고 단정한 것인지는 의문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중국측도 단정적 위조라고 했는지 의문스럽다. 자기들도 더 밝힌게 있다는 취지로 보인다. 중국 대사관 위조라는 개념이 위조와 똑같은 개념인지 사실 잘 모르겠다. 내용이라는건지 조작인지, 권한없이 상급자 결재없이 했다는 건지…확정적이지 않다.
-윤웅걸 중앙지검 2차장

검찰은 오히려 브리핑에 참석한 뉴스타파 취재진에게 몰래카메라로 중국 관리들을 불법적으로 촬영했다며 불법으로 처벌할 수도 있다는 투의 압박을 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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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유 씨 사건을 맡은 검사들이 간첩증거가 위조됐다는 것을 인지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지만 검찰 수사팀은 담당 검사들에 대해 최소한의 강제 수사도 하지 않고 있다. 해당 검사들은 여전히 재판에 나와 유우성 씨가 간첩이라는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과연 이 검사들은 그들 주장대로 국정원에 속아서 위조 증거를 제출한 것인가?
이들은 아무런 합리적 의심도 없이 뉴스타파가 포착한 의문의 관문들을 마냥 국정원에 속아 지나온 것일까?
그것이 상식적인 인간으로서 가능한 것일까?

검찰이 이 정도 수준이라면 더 이상 존재할 가치나 필요가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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