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 기업이 침묵하는 이유

2018년 04월 11일 18시 56분

# 2018년 3월 2일 부산 구포동

독립다큐 감독인 저는 요즘 한 달에 한번은 부산에 갑니다. 나원이, 다원이 쌍둥이 자매를 만납니다. 나원, 다원 자매는 생후 6개월부터 호흡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하고 폐가 굳는 증상이 나타난 겁니다.

▲ 올해 8살의 나원, 다원 쌍둥이 자매

이날은 두 자매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날입니다. 올해 8살입니다. 기쁜 날이기도 하지만 마음이 무겁습니다. 언니 나원이는 목에 구멍을 뚫어 플라스틱관을 연결한 채 입학식을 치렀습니다. 플라스틱관에 의지해 숨을 쉽니다. 이날 입학식에서 나원이, 다원이는 “안녕하세요” “고맙습니다.” 목청 높여 인사를 했습니다. 표정은 무척 밝았지만 조금 힘겨워 보였습니다.

엄마 미향 씨는 입학식을 마치고 운동장을 뛰노는 두 딸을 바라봅니다. 엄마의 눈가가 계속 젖어 있습니다. 목에 플라스틱관을 연결한 채 학교를 다닐 어린 딸이 앞으로 겪어야 할 수많은 상황을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두 아이가 구김살없이 건강하게 성장하기를 기원합니다.

# 2018년 3월 29일 서울 명동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첫 번째 전원회의가 열렸습니다. 명칭은 <가습기살균제 사건과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입니다. 말 그대로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4.16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위해 특별법 제정으로 구성된 기구입니다.

그런데 오후 1시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마자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립니다. “사퇴하라, 황전원은 사퇴하라’

▲ 세월호 유가족들이 황전원 의원의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황전원, 그는 박근혜 정부 시절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 위원으로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적극 방해한 인물입니다. 특히 사퇴 운운하며 세월호 7시간 조사를 온 몸으로 막았습니다. 그런 그가 자유한국당 추천으로 또 다시 사회적 참사 특조위 상임위원이 된 것입니다.

이날 황 위원은 궤변에 가까운 해명을 내놨습니다.

제가 대통령 7시간 (조사)을 반대했던 것은 당시에 대통령 7시간이 무슨 굿판이다. 밀회다. 보톡스다 하는 정치적 함의가 너무 컸기 때문에, 7시간이 논란이 되는 순간 특조위 활동이 위축당해서 본연의 목적을 달성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제 나름의 판단이 있었습니다.

이번엔 참사의 진상규명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요?  황전원 위원의 발언을 담기 위해 카메라를 들고 있던 제 손이 떨렸습니다.

# 2017년 8월

지난해 8월부터 애경, sk, 이마트, 옥시 등 가습기 살균제 제조/판매업체들을 찾아 다녔습니다.  이들 업체로부터 뭔가 입장을 듣고자 했습니다. 제대로 된 사과 한마디라도 받아내 피해가족들에게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담당 직원을 만나기 조차 어려웠습니다. 전화를 돌리거나 무대응으로 일관하기 일쑤였습니다.

▲ 애경 본사를 찾은 김종관 감독

제가 더 이상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애경 홍보실 직원

전후 좌우 설명을 좀 드리면, 드릴 필요가 있을 것 같은데, 입장을 말씀드리면 그것만 방송이 되니까.

SK케미컬 홍보실 직원

가습기 살균제로 피해를 보신 가족분들의 아픔에는 저희가 깊이 공감을 하고 있고 저희가 할 수 있는 노력에 관해서는 최선을 다해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이마트 홍보실 직원

가습기 살균제 피해 기록을 시작하고 해를 두 번 넘겼습니다. 그 사이 환경부에 신고된 피해자는 6천 명, 사망자는 1,500 명에 이릅니다.

이제 피해자들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제대로 된 진상조사를 할 수 있는 곳은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뿐입니다. 장완익 특별조사위원장은 “진상규명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습니다.  

특별조사위는 앞으로 2년 동안 활동하게 됩니다. 저의 취재도 계속될 것입니다.

취재,연출 김종관 (독립다큐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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