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부민원㉒ '셀프 연봉 인상' 류희림, 하루만에 들통난 거짓말

박종화

2024년 01월 23일 18시 20분

‘청부민원’, ‘셀프심의’, ‘이해충돌’ 의혹을 받고 있는 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 위원장이 의혹 제기 한 달만에 입장을 내놨다. 류 위원장은 지난 21일 한겨레신문을 통해 “나는 모르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누구에게 민원을 넣도록 부탁한 적이 없고, 이해충돌 문제도 없다”고 했다.

류희림 위원장의 소위 ‘청부민원’ 의혹은 지난해 12월 25일 뉴스타파 보도를 통해 처음 알려졌다. 류 위원장의 가족과 지인 수십 명이 지난해 9월 방심위에 “뉴스타파를 인용 보도한 방송사들을 심의·징계해 달라”는 내용의 오탈자까지 똑같은 민원을 집단적으로 냈고, 류 위원장이 이를 빌미로 KBS 등 4개 방송사에 억대 과징금을 부과했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류 위원장은 뉴스타파가 제기한 의혹에는 입을 다문 채, 지난 한 달간 제보자 색출에만 몰두해 왔다.

뉴스타파는 한겨레를 통해 나온 류 위원장의 첫 해명과 주장을 검증했다.

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장

류희림 거짓말① 보고 안 받아?... 방심위 노조, 위원장 보고 문건 공개

류 위원장은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동생 등 가족들이 방심위에 민원을 낸 사실을 방심위 직원에게 보고 받은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다. 보고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민원이 들어온 지 몰랐고, 이해충돌 문제도 당연히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주장은 하루 만에 거짓으로 확인됐다.

어제(22일) 방심위 노조는 ‘JTBC ‘JTBC 뉴스룸’ [2022.2.21., 2.28] 민원인 관련 보고’라는 제목의 두 장짜리 문서를 공개했다. 지난해 9월 14일 방심위 직원이 류 위원장에게 직접 보고한 문서다.

2023년 9월 14일 방심위 사무처 직원이 류희림 위원장에게 보고한 보고서

지난해 9월 14일, 방심위 사무처 직원은 류 위원장에게 보고서를 전달하며 ‘위원장의 동생이 방심위에 민원을 넣었고, 이 민원을 다루는 심의에 류 위원장이 참여하면 이해충돌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알렸다. 문서에는 류희림 위원장 동생 류OO 씨의 민원내용과 함께 류 위원장과의 관계를 알 수 있는 기사 발췌 내용,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임직원 이해충돌 방지 규칙’이 첨부됐다. 아래는 문서 내용 중 일부.

2023.9.4. 위원장님 형제분으로 추청되는 ‘류OO’ 씨께서 프로그램들에 대해 민원을 신청해 익일(2023.9.6.) 접수된 상태임.
류 위원장에게 보고된 방심위 문서 내용 중 일부(2023.9.14.)

뉴스타파 취재결과, 이 문서를 보고 받은 류 위원장은 방심위 직원에게 “그렇다면 동생에게 민원을 취하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가족 민원 사실을 보고받지 못했다”는 류 위원장의 주장은 사실이 아닌 것이다.

문제는 가족 민원 사실은 물론 이해충돌 문제까지 보고 받은 류 위원장이 가족과 지인들이 낸 민원과 관련된 심의를 단 한 번도 회피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류 위원장은 방송사들에 과징금을 결정한 지난해 11월 13일까지 무려 7번이나 관련 심의에 참여했다.

류희림 거짓말② 가족·지인들이 알아서?... 오탈자까지 똑같은 민원글

류 위원장은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가족과 지인들이 똑같거나 유사한 민원을 방심위에 집단적으로 낸 것과 관련해서는 “어떻게 된 건지 알 수가 없다. 가족과 지인들이 단톡방을 만들어 했는지, 어떻게 했는지, 물어보지도 않았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이 주장 역시 거짓말일 가능성이 높다. 류 위원장 외에는 아무런 공통점이 없는 가족과 지인들이 오탈자까지 똑같은 민원을 넣은 과정이 여전히 설명되지 않기 때문이다.

뉴스타파가 권익위에 접수된 신고서와 자체 취재를 통해 확인한 바에 따르면, 방심위에 집단적으로 민원을 낸 류 위원장 주변인들은 대략 대여섯개 그룹으로 나뉜다. 류 위원장의 가족과 친인척, 류 위원장 동생이 운영하는 수련원 강사들, 류 위원장의 전 직장인 경주엑스포 관계자들과 그들의 가족, 류 위원장이 공동대표를 맡은 미디어연대 등 언론단체 관계자들과 그들의 가족, 류 위원장이 나온 경북대 언론인회 회원들과 그들의 가족 등이다.

이들은 모두 직업과 사는 곳이 제각각이다. 류 위원장과의 관계를 빼고는 공통점이나 연관성이 전혀 확인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들이 방심위에 낸 민원은 내용이 아주 유사하거나, 오탈자까지 똑같았고, 심지어 민원을 낸 패턴도 약속이나 한 듯 같았다. 류희림 위원장의 부탁 혹은 사주가 있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정황이다.

류희림, 방심위 전체회의에서 ‘셀프 연봉 인상’ 의결…연봉 1억9500만 원

뉴스타파 보도로 류희림 위원장의 ‘청부 민원’ 의혹이 제기된 뒤, 류 위원장과 방심위는 바쁘게 돌아갔다. 방심위 직원들은 류 위원장의 사퇴와 진상규명을 주장했고, 류 위원장은 제보자 색출에 나섰다. ‘청부 민원’ 의혹을 제기한 두 명의 야권 추천 방심위원(김유진, 옥시찬)이 류희림과 윤석열 대통령에 의해 해촉되는 일도 벌어졌다.

윤석열 대통령은 어제(22일) 해촉된 두 방심위원의 후임으로 이정옥 전 KBS 기자와 문재완 전 아리랑TV 사장을 신임 방심위원으로 위촉했다. 이로서 방심위는 여야 구도가 6:1이 됐다.

류 위원장을 포함한 여권 위원 6명은 어제 열린 방심위 전체회의에서 류 위원장과 황성욱 상임위원, 이현주 사무총장의 임금을 2.5% 올리는 안건을 무리없이 통과시켰다. 유일한 야권 추천 위원인 윤성옥 위원은 회의 보이콧을 선언했다. 결정된 인상안이 반영되면, 류 위원장은 연봉은 1억 9천5백만 원이 된다. 장관보다 35% 높은 수준이다.

방심위 노조는 “류희림 위원장의 셀프 연봉 인상안 의결을 반대한다”는 내용의 성명을 냈다. 노조는 성명에 이렇게 썼다.

가족과 지인을 동원해 정권에 비판적인 방송사를 옥죈 것과 공익신고자를 색출하기 위해 내부감사와 수사의뢰를 한 대가인가? 눈엣가시였던 야당 추천 위원 2명을 몰아내고 방심위의 독립성을 무너뜨린 대가인가? 최저임금을 겨우 상회하는 사무처 직원들의 열악한 처우 개선에나 최소한의 성의를 보이라.
방심위 노조 성명 중 일부 (2024.1.22.)

지난 15일부터 방심위 직원들과 언론·시민단체 회원들은 매일 점심시간마다 방심위가 있는 방송회관 출입문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방심위가 있는 서울 목동 방송회관 앞에서는 ‘청부민원’ 의혹의 진상규명과 류희림 위원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방심위 직원과 언론단체 관계자들의 시위가 줄줄이 이어지고 있다.

제작진

취재	한상진 봉지욱 송원근 홍우람 김지윤
촬영	신영철
편집	윤석민
디자인	이도현
출판	허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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