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의 전쟁, 승리의 기록

2020년 09월 30일 14시 00분

2020년 9월 3일, 대법원 앞이 들썩였다. 7년을 끌어온 박근혜 정부와 전교조 간의 법정 싸움 결론이 나는 날이다. 전교조 해직 교사뿐 아니라 극우단체 회원도 대거 몰려들었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짧게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한다"고 말했다.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처분 취소 소송과 관련한 대법원의 최종 판단이었다. 속보가 전해지자 엉뚱하게 극우단체 회원들이 박수치며 환호하기도 했다. 그동안 판결이 워낙 업치락뒤치락 하다 보니, ‘파기환송’을 놓고 자신들이 이겼다고 착각해 벌어진 해프닝이었다.

이날 대법원은 박근혜 정부가 전교조를 법외노조 처분한 것은 정당하다는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돌려보냈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3년 10월 법외노조 통보처분을 받은 지, 7년 만에 전교조는 노동조합으로서의 법적 지위를 회복할 길이 열렸고, 해직교사들도 다시 교단에 서게 됐다. 박근혜 정부에 맞섰던 전교조가 결국 승리한 것이다.

▲ 대법원 앞 기자회견 (2020년) 플래카드에 “다시 참교육 한길로 걸어 가겠습니다”라고 적혀 있다.

2013년,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전교조는 눈엣가시가 됐다. 당시 정부는 전교조 조합원 6만 명 가운데 해직 교사 9명이 조합원 신분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꼬투리 잡았다. 전교조 측에 해직 교사도 조합원으로 인정하는 조합규약의 개정을 요구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전교조를 법외노조로 통보하겠다고 위협했다.

당시 9명의 해직자 중 1명이던 송원재 교사는 “해직 교사가 노동조합에 부담을 주는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며 이렇게 회상했다.

"(해직자들을)그냥 밟고 가도 된다. 당사자 입장은 난처하고,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많지만 입이 열 개라도 안 떨어져요 .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우리 때문에 노조를 지키겠다고 하면 또 해직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그게 뻔히 예상이 되고 또 우리 때문에 수십 명이 해직을 당한다면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는 거죠. "
- 송원재 당시 해직교사

그러나 전교조 교사들의 선택은 단호했다. 모든 조합원을 대상으로 투표를 했다. 그 결과 2/3가 넘는 68% 조합원들이 해직된 동료도 조합원으로 인정하는 조합규약을 그대로 유지하자는 데 뜻을 모았다.

"조직 활동을 하다가 교육 민주화를 위해서 활동하다 희생된 동지들을 어찌 우리가 내치고 교사라고 할 수 있겠느냐. 저는 법외노조 관련해서 가장 위대하고 통쾌한 장면이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 조창익 전 전교조 위원장

2013년 10월 박근혜 정부는 전교조에 한 줄 짜리 통보서를 보낸다.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함” 이렇게 전교조는 단체교섭권, 협약체결권, 노조전입자 파견권 등의 권리를 포함해 노조로서의 법적 지위를 박탈당했다. 34명의 노조전임 교사도 잇따라 해직됐다.

▲ 고용노동부가 전교조에 보낸 팩스 한 장. 제목은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함 통보”이다. (2013년)

법외노조 처분을 받은 이듬해, 세월호 참사가 났다. 정부가 손을 놓고 있는 사이, 수많은 아이들이 희생됐다. 전교조는 세월호의 진실을 알리려는 수업을 시작했다. 박근혜 정부는 세월호 수업을 금지시켰다. 나아가 전교조에 ‘친북좌파’라는 딱지를 붙이기 시작했다.

박근혜 정부 청와대 비서실장 김기춘은 전교조 사안을 거의 매일 꼼꼼히 챙겼고 심지어 재판까지 관여했다. 이같은 사실은 고 김영한 청와대 민정수석의 비망록이 공개되면서 드러났다. 양승태의 대법원은 전교조를 제물삼아 박근혜 행정부와 상고법원 설치를 두고 재판 거래를 시도하기에 이른다.

▲ 故 김영한 민정수석의 비망록 중. 전교조 법외노조화에 대해 “긴 프로세스 끝에 얻은 성과”라고 적혀 있다. (2014년)

국정농단이 세상에 드러났고, 촛불혁명이 시작됐다. 전교조 교사들도 함께 촛불을 들었다. 정권이 바뀌었고 곧 법외노조 문제는 해결되리라 기대했다. 새로 들어선 정부가 스스로 박근혜 정부가 내린 부당한 처분을 취소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전교조는 박근혜 정부 시절 법외노조로 지낸 시간보다 더 긴 세월을 문재인 정부에서도 비합법 노조로 지내야 했다. 교사들은 다시 거리에 섰다. 삭발, 단식, 오체투지로 호소했다. 그렇게 3년 4개월이 또 흘렀다.

▲ 법외노조 취소와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는 전교조 조합원들의 오체투지 (2019년)

"어느 날, 노조 활동을 끝내고 지하철 화장실에서 들어가 가발을 쓰고 집에 들어가려고 하는데, 그날 너무 바빠서 밥도 못 먹었었어요. 세끼 내내 . 이제 가발을 쓰는데 눈물이 죽 나오더라구요. 내가 지금 뭘 하고 있지? "
- 이민숙 해직교사

"솔직히 만약에 올해를 넘겼으면 정말 살아가는 것에 자신이 없다. 그래야 되나? 그랬을 거 같아요. 올해는 어쨌든 간신히 간신히 버텼던 게 있고요. 올해 지나면 정말 어렵겠다. 사는 게 너무 힘들겠다. 이런 생각을 했어요."
- 김진 해직교사

▲ 삭발한 이민숙 해직교사 (2019년 모습) 이 교사는 1990년부터 역사 선생님으로 교단에 섰지만, 2016년 해고됐다.

"교사 노동자의 권리의 문제를 ‘정치의 문제’로 봤다고 생각해요. 청와대 관계자들이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기본권을 어떻게 다시 회복시켜야 할까. 이런 권리의 문제로 보지 않고, 지지율에 엄청 악영향을 끼칠 거다. 그렇게 바라 본 정부의 태도가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해요."
- 이민숙 해직교사

대법원 판결 이후, 2020년 9월 21일까지 법외노조 관련 해직 교사 34명 중 32명이 복직했다. 2명의 교사는 복직하지 못했다. 한 명은 이미 정년을 넘겼고, 또 한 명은 다른 시국사건으로 유죄선고를 받아 복직할 수 없었다.

이영주 교사. 그는 해직 이후 2015년 민주노총 사무총장을 맡아 민중총궐기 집회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구속돼 유죄선고를 받았다. 법원에서 집행유예 이상의 유죄 판결을 받은 교직원은 규정상 교단에 설 수 없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8년 됐네요. 떠나온 지가 . 정말 가고 싶지만, 정말 소중한 곳이기 때문에 구걸해서 가고 싶지 않아요. 정말 저한테 소중한 곳이기 때문에 구걸해서 학교에 돌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정말 당당하게 승리해서 돌아가고 싶습니다."
- 이영주 해직교사

전남 해남의 한 중학교. 이곳으로 복직한 조창익 전 전교조 위원장이 교단에 설 수 있는 시간은 이제 5개월뿐이다. 어느새 정년이 다가온 것이다.

그는 학생들과 함께 "세상의 변화에 관한 이야기,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꿈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무엇보다 고귀한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하지만 코로나19로 학생들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박근혜 정부의 탄압에 맞선 전교조의 7년 전쟁은 해직교사와 전교조의 승리로 끝이 났다. 하지만 선생님들이 교단이 아닌 거리에서 보내야 했던 허망했던 시간을 되돌릴 길은 없어 보인다.

제작진
글 구성정재홍
취재 연출박정남
디자인이도현
웹출판허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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