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예산 100조 시대의 허상

2013년 03월 01일 10시 45분

공적연금, 주택부문 지출 빼면 50조에 불과

복지예산 100조 시대는 착시현상에 따른 허상이라는 지적이다.

정부와 국회예산처 등에 따르면 민간위탁 복지사업비를 포함한 올해 복지관련 예산은 모두 103조원으로 사상 처음 100조원을 넘었다고 한다.

복지예산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은 공적연금 지출액으로 33조1382억원이고, 주택건설 지출 17조4733억원, 노동 13조8906억원 등의 순이다.

그러나 공적연금과 주택건설 지출을 복지 예산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 소장은 “일반 공무원과 군인, 교사들의 노후보장을 위해 사용되는 공적연금 지출이 복지예산으로 둔갑됐다”면서 “이 같은 착시효과로 복지예산 규모가 과대 포장돼 실제로는 복지수준이 미흡하지만 전체 예산에서 복지 지출이 과다한 것으로 비춰지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공적연금 수급권자에 대한 연금 급여 지출을 복지예산으로 분류한 것은 지난 2005년부터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경제협력개발기구 OECD가 만든 사회적지출(SOCX) 항목의 편제 기준에 따라 공적연금을 복지예산으로 편성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OECD의 사회적 지출(social expenditure)은 ‘가구나 개인이 그들의 복지에 악영향을 미치는 특정한 환경에 처해 있을 때 공적인 기관을 통해 급여를 제공하거나 재정적 도움을 주는 것’으로 정의돼 있다.

이는 저소득 계층을 위한 최저 생계비 보장 등을 말하는 것으로 퇴직 공무원들에게 노후 생활비를 지급하는 공무원연금과는 성격이 전혀 다르다.

공적연금과 주택건설 지출을 제외할 경우 올해 복지예산은 53조원 규모다.

<앵커 멘트>

뉴스타파는 내 세금 어떻게 쓰이나 시리즈를 통해서 국민의 소중한 세금이 제대로 사용되는지 철저히 감시하겠습니다. 그 첫 번째 보도 복지 예산 100조 시대의 허상입니다.

정부는 올해 복지예산이 103조가 돼서 처음으로 100조가 넘었다고 강조해 왔습니다. 정부와 보수 언론은 100조 복지시대라는 표현을 통해서 마치 복지 지출로 나라가 곧 어떻게 될 거 같은 분위기를 조성합니다.

그런데 과연 이 100조가 보두 진정한 복지예산일까요?

뉴스타파 취재 결과 이 100조 중에서 50조는 공적 연금 급여나 주택건설 지출이어서 복지와는 직접 관련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100조 중에서 50조 원입니다. 황일송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황일송 기자> 퇴직 공무원들에게 지급되는 공무원 연금의 적자를 보전해주기 위해 정부가 지난 한 해 동안 갖다 쓴 세금은 얼마나 될까.

[박선미 / 서울 효자동] “한.. 10프로... 10프로? 한.. 몇.. 몇억...”

이보다 훨씬 많았습니다. 올해 공무원 연금 적자분 보전을 위해 1조 8천 억 원의 국가 예산이 쓰입니다. 내년에는 이보다 6천 억 원이 증가한 2조 4천 억 원의 예산이 투입될 예정입니다. 2005년부터 지난해까지 8년 간 공무원 연금 등 공적 연금 재정 적자를 메우는데 들어간 세금은 무려 17조 원 가량입니다.

[박선미 / 서울 효자동] (알고 계셨어요?) “아니요. 몰랐죠.” (어떻게 생각하세요? 국민 세금으로 공무원들 연금 적자) “어, 화 날라고 그래요.”

이처럼 사실상 세금지원으로 연명 되다시피 하는 공무원 연금. 그렇다면 퇴직 공무원들이 받는 연금의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공무원들에게 물었습니다. 대답을 주저합니다.

[중앙부처 공무원] “현재 기준으로 봤을 때 한 240정도 지금 예상하고 있습니다.” (내일 당장 퇴직하시면..) “네. 그렇습니다.”

연구 결과를 보면 공무원 연금과 국민연금의 수령액은 기준에 따라 2배에서 최고4배까지 차이가 납니다.

[이용하 국민연금 연구원 연금제도실장] “지금 공무원 연금의 경우는 33년을 가입하면, 자기 소득의 63%를 받고 있는데요. 국민연금의 경우에는 33년을 가입한 경우, 동일한 가입기간을 가지는 경우에, 동일한 소득이라고 전제할 경우에 33%를 받고 있습니다. 이 부분에 있어서 벌써 62%와 33%의 격차가 발생한다는 거죠.”

쥐꼬리만 한 국민연금을 받는 국민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한 달에 225만 원을 버는 이 여성은 나중에 국민연금을 얼마나 받을 수 있을까. 국민연금 공단 홈페이지에 접속해 계산해 보니 56만 원을 받는 것으로 나왔습니다. 22년 동안 매 달 12만 원 넘게 보험료를 납부하는 조건입니다.

[김수란 / 회사원] “20년 이상.. 회사 같은 경우는 근속년수가 긴 편인데 보통 20년 정도까지 근무하기가 여자들의 경우 힘든 게 사실인 것 같아요. 노후도 제대로 보장 받지 못하는데 세금도 공무원을 위한 연금으로 쓰이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연금을 꼭 내야 되나 싶고, 많은 사람들이 불안해하고 있는 게 사실인 것 같아요.”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 “국민 기초연금을 도입해서 연금을 내지 못하는 어르신들도 월 20만 원 정도를 받을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국민 연금에 대한 불신과 불안감은 박근혜 정부 인수위원회 기간에 더욱 커졌습니다. 국민 연금을 마치 쌈지 돈 취급을 하며 기초노령연금 지원으로 사용하겠다는 방침이 흘러나오면서 기금 고갈에 대한 우려를 확산 시킨 겁니다.

반발 여론에 부딪히자 다시 말을 바꾸긴 했지만 국민연금의 신뢰도는 이미 추락한 뒤였습니다.

[박정현 / 서울 서초동] (국민연금을 전혀 기대 안 하시는 거예요?) “전혀 안 해요. 안한 지 오래 됐는데. 따로 연금을 준비하지 국민연금을 받을 생각은 안 하죠.” (아 진짜요? 내고는 계시잖아요?) “내고는 있지만 실질적으로 봤을 때 고령화 사회고, 또 뻔하잖아요. 세금 내는 거지 내가 받을 거라고 생각 해 본 적 없는데.”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의 배경에는 공무원 연금과의 형평성 문제도 도사리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정부는 공무원 연금 개혁을 통해 연금 수준을 최대 25퍼센트 낮췄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한성원 행정안전부 연금복지과] “공무원은 국가가 사용자로서 공공의 이익에 봉사하는 근로자입니다. 어떤 식으로든지 국가가 공무원의 생애 소득에 대해서 보장해주는 형태죠. 부양제도에요. 2010년 연금 개혁안은 세계 유수의 국가들과 비교해 봐도 가장 엄격하고 재정안정 측면에서 가장 충실한 방안이었습니다.”

하지만 공무원 연금을 받는 사람마저 세금지원으로 유지되는 현재의 과도한 연금 수준에 대해 미안한 마음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공무원 연금 수혜자] “근데 지금 저는 공무원 연금 받는 사람이라서 말하기가 그렇네 미안해서. 세금을 갖다가 밀어 넣는 말 들으니까 미안하기는 해요. 사실은.”

공무원 연금 등 공적 연금에 관련된 예산 체계에는 또 다른 문제점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정부는 올해 복지 예산이 민간 위탁 복지 사업비를 포함할 경우 모두 103조 원에 이른다고 발표했습니다. 전체 국가 예산의 30퍼센트에 이르는 규모입니다. 하지만 여기엔 허수가 포함돼 있습니다. 보건복지 예산의 개별 항목을 살펴보면 103조원 가운데 33조 원이 공적연금으로 돼 있습니다. 국민연금이나 공무원 연금 급여 등의 엉뚱하게 복지예산으로 잡혀 있는 것입니다. 더구나 국민연금 급여는 12조 규모지만 공무원 연금, 군인 연금 등의 급여는 14조에 이릅니다. 이처럼 퇴직 공무원과 군인들에게 지급되는 연금마저 복지예산에 넣어 전체 복지예산의 규모를 부풀린 것입니다.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장] “우리나라 복지는 복지내역을 보면 굉장히 많은 허수들이 포함돼 있습니다. 일반 국민들이 볼 때 착시현상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착시효과 때문에 국민들은 복지예산 규모가 어느 정도 있다는 판단을 하게 되고...”

공적 연금에다 주로 보금자리 주택건설 예산으로 건설된 주택부분 17조를 합하면 50조.

이 두 항목은 전문가들도 복지예산으로 보긴 힘들다는 입장입니다. 그렇다면 올해 복지예산은 실제 53조 규모에 불과합니다.

[서마리나 / 서울 불광동] “복지예산은 복지... 그야말로 정말 지금 그 밑바닥 어려운 살림을 하고 있는 그런 사람들 뿐만 아니라 사실 복지는 어느 뭐 계층 간의 그.. 저기가 없잖아요? 거기다 써야지 그것이 왜 연금에 써서 되겠어요?”

[노희태 / 경기도 구리시] “뭐 조 단위가 들어가니까 그렇게 많이 주고 있다고 하니까 오히려 더 감이 안 오는 것 같아요. 근데 왜 하필 복지 예산에서 그렇게 가는 거죠? 다른 걸 좀 이렇게 해서 할 수도 있을 텐데 왜 하필 복지예산에서 그렇게 가는지 모르겠네.”

국가 제정과 예산은 기본적으로 숫자놀음입니다. 간단한 장난으로 조작이 가능하고 정치적 의도가 수시로 개입됩니다. 복잡하고 딱딱하지만 주권을 가진 국민이라면 반드시 관심을 가져야 할 분야입니다. 뉴스타파는 내 세금 어떻게 쓰이나 시리즈를 통해 앞으로 예산 감시관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예정입니다.

뉴스타파 황일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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