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투사가 됐다...“산처럼 든든했던 딸, 산하를 위해”

2023년 01월 06일 17시 00분

  •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고 김산하 씨 어머니 인터뷰
산하야, 잘 가고...그곳에서는 너 하고 싶은 거, 재미난 거, 좋은 거 많이 보고
아프지 말고, 숨차지 말고, 짓밟히지도 말고, 안전한 곳에서
조금 더 많이 보고 재미나게 있어. 미안해, 미안해 산하야.

신지현 / 이태원 참사 희생자 고 김산하 씨 어머니(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추모 49재 위령제에서)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고 김산하(26) 씨 어머니 신지현(51) 씨는 딸을 보낸 뒤 ‘미안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유가족협의회 기자회견에서도, 49재 위령제에서도,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도 ‘미안하다’는 말을 수없이 반복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유학 가고 싶다고 할 때, 형편이 어렵다고 못 보내준 게 미안하고요. 서울에 취업했을 때 이제 부산에 내려오지 말라고 당부한 게, 어떻게든 서울에 자리 잡으라고 말했던 게 너무 미안해요. 무리해서라도 유학을 보내줄 걸, 부산에 내려오라고 할 걸, 그랬다면 딸에게 그런 일이 생기지 않았을까…그 두 가지가 너무 너무 미안해요.

신지현  / 이태원 참사 희생자 김산하 씨 어머니
하루 13만 명이 오갔던 지난해 10월 29일 서울 이태원동의 중심가, 그 날 딸이 그곳에 있었던 건 엄마의 잘못이 아니지만, 엄마는 모든 게 자기 탓인 것 같다며 눈물을 흘렸다. 정작 미안해야 할 정부는 무책임한 얼굴인데 딸을 잃은 엄마가 상실감에, 죄책감에 가슴을 부여잡고 울었다.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고 김산하 씨

국가를 믿었던 한 엄마의 이야기

10월 29일, 신지현 씨는 이태원에서 사고가 났다는 뉴스를 봤지만, 큰 걱정 없이 잠이 들었다. 설마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서 큰 사고가 났을까 싶었고 국가를 믿었기 때문이다. 참사 다음 날 오전 10시경 남편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남편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산하 전화를 용산경찰서에서 받는다.” 
이태원에 갔던 딸이 사고를 당했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생사 확인이 된 것은 아니었다. 그때까지도 엄마는 딸이 사망했을 거라고 전혀 짐작하지 못했다. 
아이를 찾으러 서울로 갈 채비를 하는 와중에도 너무 바보처럼 멍청이처럼 우리 아이 자취방에 가져다 줄 물건들을 챙기고 있었어요. 그때 딸이 집에 환기가 안 된다고, 서큘레이터 좀 보내달라고 그랬는데 제가 못 보내고 있었거든요. 그거 하고 아이가 쓸 밥솥을 챙겨서 아빠를 기다리고 있는데 아빠가 ‘이거 뭐 하러 가져가느냐’고 그래서 ‘왜 무서운 소리 하고 그래? 어딘가 긁혀서 그냥 병원에 누워 있겠지, 왜 그래’ 하고 저는 아빠한테 짜증을 냈어요. 그런 무서운 소리 하지 말라고요. 아빠한테 오전 10시 전화 받고 한 10시 반 사이 챙겨서 서울로 출발을 했거든요. 그러면서 갔는데 오후 1시 조금 넘어서 (부천)오정경찰서에서 아이가 사망했다고... 고속도로에서 그 소리를 들었어요.

신지현  / 이태원 참사 희생자 김산하 씨 어머니
엄마는 참사 다음 날 오후 3시가 되어서야 딸을 만날 수 있었다. 이태원에 갔던 딸은 30km가량 떨어진 부천 순천향대 병원 영안실에 누워 있었다. 수많은 서울의 병원을 놔두고, 딸이 언제 어떻게 부천의 병원까지 온 건지 엄마는 알 수 없었다. 남편은 딸의 얼굴을 보고도 “내 딸이 아니”라고 했다. 얼굴 전체에 멍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딸의 몸을 덮고 있는 천을 차마 내릴 수 없었다. 발밑에 놓인 옷가지를 보고서야 딸이 맞다는 걸 알아차렸다. 
부천 순천향대 병원에 가서 아이를 확인했는데, 얼굴이 너무 많이 붓고 물감을 뿌려놓은 것처럼 물이 너무 많이 들어 있어서 아빠는 아니라고 했어요. 그런데 턱선이 우리 애가 맞더라고요. 그래서  내려보고 싶었는데 무서워서 못 했고, 같이 갔던 친구에게, 아이 발밑에 있는 옷가지들을 보고 ‘우리 아이가 그날 입었던 게 맞는지’ 물어봤거든요. 그랬더니 그 친구가 그날 산하가 입었던 옷이, 가방이 맞다고 하더라고요.

신지현  / 이태원 참사 희생자 김산하 씨 어머니
딸은 대체 얼마나 오랫동안 사람들 사이에 끼어 있었던 걸까. 딸이 죽기 전에 심폐소생술은 받았던 걸까. 신지현 씨가 받아 든 딸의 시체검안서에는 알고 싶은 정보가 적혀 있지 않았다. 온통 불확실한 내용뿐이었다. 시체검안서에 적힌 딸의 사망 추정 시간은 10월 30일 자정 이전, 사망 원인은 압착성 질식 ‘추정’.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고 김산하 씨의 시체검안서 
남편이 검안 의사에게 왜 사망 시간이 이렇게 적혀 있는지, 딸이 심폐소생술을 받은 흔적은 있는지 물었다. 검안 의사는 “보통 이 시간대에 대부분 사망하셔서 (딸도) 그 시간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한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압사니까, 그 현장에서 심폐소생술을 하지 않았겠느냐”고, 하나마나한 말을 했다. 
딸을 보내고 엄마는 유실물센터를 찾았다. 유실물을 찾은 엄마는 또 한 번 의심이 들었다. 딸은 그날 두 개의 가방을 가지고 나갔고, 가방에는 각각 집 주소가 적힌 두 개의 신분증이 들어 있었다. 그런데도 산하 씨 가족이 먼저 경찰에 연락하기 전까지, 정부는 아무런 연락을 주지 않았다. 딸이 사고를 당했다는 연락도, 딸의 유실물을 찾아가라는 연락도 해주지 않았다. 
“우리 아이 신분증이 가방에 각각 두 개가 있었단 말이에요. 이름이 나와 있는 카드도 있었고요. 그러면, 참사 나고 신분 확인을 해서 가족에게는 분명히 (연락을) 할 수 있었고, 또 그날 산하와 같이 간 친구를 통해서도 신원 확인이 가능했는데, 그걸 해주지 않은 게 이해가 가지 않아요. 같이 간 친구에게는 안 다친 것 같으니 실종자 신고하고 집에 가서 기다리라고 했대요. 이제는 일부러 신원 확인을 지연시킨 게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들어요. 수많은 사람이 죽었으면, 실종자 명단을 TV에 공개적으로 띄워서라도 가족들이 찾을 수 있게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저는 거기서부터 단추가 잘못 끼워졌다고 생각해요.”

신지현  / 이태원 참사 희생자 김산하 씨 어머니

국가는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다

참사 이후에 정부가 보인 태도도 마찬가지였다. 국가는 1대1 전담 공무원을 지정해 유가족 지원에 총력을 다하겠다고 발표했지만, 개인정보라는 이유로 다른 유가족 연락처도 알려주지 않았다. 엄마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을 통해서야 부산에 있는 다른 유가족들을 만날 수 있었다.
정부가 뒤늦게 유가족과 수시로 소통하겠다며 지난해 11월 30일 꾸린 ‘이태원 참사 행안부 지원단’ 역시 마찬가지였다. ‘행안부 지원단’은 구성한 지 한 달이 넘도록 신 씨에게 아무런 연락을 주지 않았다.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고 김산하 씨 어머니가 지난 12월 19일 뉴스타파 취재진을 만나 참사 이후 두 달간의 상황에 대해 이야기했다. 
국가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건 참사 발생 20일이 지나서부터였다. 지난해 11월 21일, 유가족의 목소리를 듣겠다며 국민의힘 지도부가 마련한 유가족과의 첫 면담 자리에서 오히려 믿음이 깨졌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34명의 유가족은 이날 면담 자리에서 국민의힘에 △윤석열 대통령의 진심 어린 사과 △부실 대응 책임자 조사와 문책 △진상 및 책임 규명 과정에 피해자 동참 △유족 및 생존자 간 소통 기회 마련 △희생자 추모시설 마련 △참사에 대한 정부 책임 공식 발표 등 6가지를 공식 요구했다. 국민의 힘은 이 중 어떤 것도 확답하지 않았다. 
국민의힘 의원들과의 면담 과정에서 정진석 의원님이랑 다른 의원분들이 계셨는데, 그중에 한 명은 10분인가 20분 있다 나가 버리고는 들어오지 않고, 정진석 의원은 한 시간쯤 듣고는 자기 결재하러 가야 한다고 하고…그렇게 대화한 시간이 총 두 시간이 안 돼요. 우리한테 내줄 시간은 그 정도밖에 없었던 거예요. 그래도 우리 앞에서 눈물을 흘리기에 진심인 줄 알았어요. 진심으로 우리 이야기를 듣는 줄 알았어요. 그러고 나서 기사를 봤는데 정진석 의원이 ‘그분들 의견이 유족 전체를 대변하는 것은 아니’라며 폄훼했더라고요. 그때 깨달았어요. 우리 이야기를 진심으로 듣지 않았구나, 우리에게 단체를 만들라는 이야기구나. 아직 우리가 요구한 것에 대한 답변도 주지 않았고요. 

신지현  / 이태원 참사 희생자 김산하 씨 어머니

평범했던 엄마가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뉴스에서 일기예보만 보던 엄마는 그때부터 정치면, 사회면 뉴스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볼수록, 알수록 의혹투성이였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평범했던 엄마는 바뀌기 시작했다. 남 앞에서 노래도 잘 부르지 않던 엄마는 유가족협의회에 참여하고, 기자회견장에서 종종 마이크를 잡았다. 기자들이 가득 모인 자리에서 정부를 향해 호통치고, 울부짖었다. 딸을 잃은 엄마는 그렇게 점점 투사가 됐다.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 창립 기자회견에서 발언하는 신지현 씨의 모습
국가는 참사 당일에도 없었고, 지금도 없습니다. 정부는 유가족에게 상담을 왜 받으라고 합니까. 상담치료의 첫 번째가 뭡니까. 유가족의 말을 들어주는 것이지요. 유가족이 들어달라는 말이 뭡니까.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아닙니까? 이게 해결돼야 그 다음 치료가 가능합니다.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꼭 해주십시오. 그리고 제대로 된 사과 꼭 해주십시오.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 창립 기자회견에서의 신지현 씨 발언(2022.12.10)
신지현 씨는 여러 차례 용기 내 목소리를 냈지만, 정부에서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오히려 여당 정치인들은 2차 가해성 발언을 퍼부었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에게 2차 가해가 됐던 정치인들의 발언
특히 최근 국민의힘 김미나 창원시의원이 SNS에 올린 글이 큰 상처가 됐다. 김미나 창원시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유가족을 향해 여러 차례 막말했다. “자식 팔아 한 몫 챙기자는 수작이다”(11.23), “자식 팔아 장사한다는 소리 나온다, 나라 구하다 죽었냐”(12.12) 등등 입에 담기 힘든 말들을 올렸다. 
국민의힘 김미나 창원시의원이 지난달 12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
지난달  15일, 이태원 참사 유가족 협의회는 김미나 의원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고, 사퇴를 촉구했다. 김미나 의원은 뒤늦게 글을 삭제하고, 사과했다. 그러면서 “공인인 걸 깜빡하고 올린 글”이라고 했다. 거취 표명은 하지 않았다. 국민의힘 경남도당과 창원시의회는 김 의원의 징계를 논의하기 위해 김 의원을 윤리위원회에 회부했으나, 아직 징계는 결정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런 정치인들의 막막보다도 신지현 씨를 더 힘들게 하는 게 있다. 바로 윤석열 대통령의 무책임한 태도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의 49재가 시민추모제로 열렸던 지난 12월 16일, 희생자에 대한 언급 한마디 없이 중소기업·소상공인 상품 판촉 행사에 참석했다. 그 행사에서 술잔을 구입하고, 참석자들과 농담을 주고받았다는 기사가 다음날 뉴스면을 장식했다. 
유가족이 정부에 강하게 요구하는 것 중 하나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사퇴다. 지난달 11일, 국회에서 이상민 장관 해임안이 통과됐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수용하지 않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유가족의 목소리를 그렇게 무시했다. 
인터넷에 달리는 악성 댓글은 그렇게 마음 아프지 않아요. 근데 그들(정치인)이 그러는 거는 그렇지가 않아요. 무엇보다 저를 가장 아프게 하는 2차 가해는 윤석열 대통령의 태도입니다. 유가족 목소리에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는 그 분의 눈 감음, 귀 닫음입니다. 유가족이 그렇게 하찮은가요? 우리들의 목소리에 대꾸라도 했으면 좋겠어요, 대꾸라도.

신지현 / 이태원 참사 희생자 김산하 씨 어머니

나무 같고 산 같았던 나의 딸, 산하 

 ‘산하(山下)’는 지리산에서 만난 산하 씨 엄마와 아빠가 직접 지은 이름이다. 산이 나무를 품듯이, 산처럼 모든 걸 품어주는 사람이 되라는 뜻이었다. 산하는 그 이름을 꼭 닮은 딸이었다. 살갑지는 않았어도 묵묵하게 제 할 일을 알아서 하고, 든든하게 엄마를 걱정해주고 지켜줬던 맏딸이었다.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고 김산하 씨
“우리 산하는 되게 자그마한데도 되게 당찬 아이였어요. 재미난 거, 다양한 경험하는 걸 좋아하고, 자신을 굉장히 사랑하는 아이였어요. 살갑거나 애교가 있는 아이는 아니었어도 되게 선이 굵은 아이였어요. 대학 다니는 동안도 자기 용돈 자기가 벌어 쓰고, 엄마에게는 항상 믿음을 주는 딸이었어요. 그래서 이런 생각을 했어요. ‘얘가 조금 더 크면 나한테는 굉장히 큰 나무가 되어주고 큰 바위가 되어주고 큰 산이 되어 주겠구나…’”
평소 말이 많지 않던 산하 씨는 지난 7월 가족여행에서 자신의 10년 계획을 꺼내 놓았다고 한다. 10년 뒤, 마흔 살쯤이 되면 창업하겠다고, 지금 다니는 회사는 잠시 머무는 곳이라고 했다. 회사에 다니며 모은 돈으로 고등학교 때부터 꿈꿨던 프랑스 영화를 배급하는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석 달 뒤, 이태원에서 스물여섯 살 산하 씨의 계획은 멈춰 버렸다.
참사 발생 70일이 지났지만, 아직도 엄마는 딸이 정확히 언제 어디에서 사망했는지 알지 못한다. 사망 전에 구조는 됐었는지, 병원은 몇 군데나 옮겨 다녔는지 알 수가 없다. 그저 다른 유가족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딸의 마지막 모습을 상상할 뿐이다. 
한 유가족분이 말씀하시길, 그분 아드님이 키가 되게 크고 근육질이어서 이태원 참사 현장에서, 그 사고로 가실 만한 분이 아니라고 형사님이 그러셨대요. 근데 그 분의 주변에 보면 조그마한 아이들이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형사님이 ‘아무래도 얘네들 도와주다가 아드님이 간 것 같다’ 그러셨대요. 그 말 듣고 생각했어요. 그 조그마한 아이 중에 우리 산하가 있었으면…제발, 산하가 그 오빠 옆에 있었으면, 그래서 본인이 가는 동안 좀 덜 무서웠으면, 마지막 순간에 그래도 자기를 도와주는 사람이 있었다는 거, 애써준 사람이 있었다는 거, 그렇게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갔으면 좋겠어요.

신지현 / 이태원 참사 희생자 김산하 씨 어머니
신지현 씨는 인터뷰를 마치며 이태원 참사 유가족에게 막말했던 김미나 창원시의원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엄마는 떨리는 목소리로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또박또박 한 문장씩 이어 나갔다. 
김미나 의원님, 나라를 구했냐고요? 나라를 구하고 싶었으나 나라를 국가에서 구할 기회를 안 줬네요. 시체 팔이요? 당신들은 자식들을 그렇게 뭘 팔아서 그런 행복, 보석 같은 그런 시간을 가질 수 있나 보죠? 그냥 우리 같은 시민들은 아이가 있는 것만으로도 나날이 다 행복이고 좋은 날이고 보석 같습니다.

신지현 / 이태원 참사 희생자 김산하 씨 어머니
딸과 함께 할 보석 같은 날들을 이태원 참사로 잃어버린 엄마. 엄마 신지현 씨가 앞으로 바라는 건 이태원 참사의 경찰 수사가 제대로 진행되는 것, 그리고 하루빨리 정부가 추모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다. 현재 이태원역 주변에 시민들이 희생자를 추모하며 남긴 물품들은 유가족들의 법률대리인인 민변 사무실과 이태원 광장 시민분향소에 임시 보관돼 있다. 
경찰 수사가 제대로 됐으면 좋겠어요. 이미 많은 은폐와 조작이 있었고, 거기다가 아직 그걸 책임지고 있는 사람이 윗선에서 탁 누르고 있기 때문에 제대로 된 수사가 될까 걱정되지만, 부디 수사가 제대로 돼서 진실규명이 됐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하루  빨리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할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졌으면 좋겠어요. 너무 무섭고 외롭게 간 아이들이잖아요. 추모 공간이 마련돼서 참사로 희생된 아이들이 이태원 역에 놓여 있는 시민분들의 따뜻한 마음을 오래 간직했으면 좋겠습니다.

신지현 / 이태원 참사 희생자 김산하 씨 어머니
제작진
촬영신영철, 이상찬
편집정애주
디자인이도현
출판허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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