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장관의 ‘패소할 결심’... 지극히 당연한 판결 “미국 출장비 공개해라”

2023년 08월 25일 13시 35분

지극히 당연한 판결이 나오기까지 9개월이 걸렸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법무부가 ‘패소할 결심’으로 소송에 나선 게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다. 이번에 법원에서 정보 공개를 다툰 사안은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미국 출장비 세부 집행내역과 지출증빙서류’였다. 
우리 정부는 모든 중앙행정기관의 공무원이 국외출장을 수행할 경우 출장개요, 일정, 경비를 작성해 공개한다. 또한 출장을 다녀온 후에도 출장 결과를 담은 보고서를 공개하고 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도 예외가 될 수 없다. 
한동훈 장관은 지난해 6월 29일부터 7월 7일까지 9일간 미국 출장을 다녀왔다. 한 장관과 동행한 법무부 직원 3명이 쓴 출장 경비는 4,840만 원 남짓이다. 출장 목적은 한미 사법기관 공조와 협력 방안 논의였다. 그러나 한 장관이 제출한 출장계획서에는 미국 법무부 장관과 회담하겠다고 돼 있었지만, 회담은 이뤄지지 않는 등 계획과 목적에 맞는 출장이었는지 검증이 요구됐다.
출장 한 달 뒤인 8월 7일, 하승수 변호사(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뉴스타파 전문위원)는 법무부에 출장비 4,840만 원의 용처를 공개해 달라는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지출 일시, 금액, 명목, 지출 장소는 물론 지출 증빙자료(카드 영수증, 현금수령증, 세금계산서)의 공개 요구였다. 
그러나 한동훈 장관과 법무부는 공개를 거부했다. 구실은 ‘국방 등 국익 침해’였다. 한동훈 장관이 쓴 출장 경비 내역은 ‘국가안전보장, 외교관계 등에 관한 사항으로써 공개될 때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이에 하 변호사는 “한 장관이 어디 가서 누구를 만났는지, 어디서 자고, 뭘 먹었는지 교통비·숙박비·식사비의 공개가 무슨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해친다는 건지 상식에 맞지 않는다”고 맞섰고, 그해 11월 15일 서울행정법원에 정보공개 행정소송을 냈다. (관련 기사 보기 : 정보공개청구 ‘달인’과 ‘정부 2인자’의 대결)
지난해 6월 29일 미국 출장길에 오른 한동훈 법무부 장관.

국익 침해 vs 국민의 알권리... 재판부는 알권리 승소 판결

소송을 낸 지 약 9개월이 지난 올해 8월 24일 오후 2시, 서울행정법원 B205호 법정에서 1심 판결이 나왔다. 서울행정법원 제12부(재판장 정용석)는 원고인 하 변호사의 승소로 판결했다. 판결의 근거는 이렇다.
우선 ① 원고(하승수 변호사)는 국가공무원의 외유성 출장이나 출장경비 명목으로 국가의 예산이 낭비되지 아니하도록 감시할 목적으로 정보의 공개를 청구한 것으로 보인다. ② 중앙행정기관의 공무원이 국외출장을 수행할 경우 출장개요, 일정, 경비 등을 구체적으로 기재한 공무국외출장서를 작성할 뿐만 아니라 ③ (출장) 사후에는 출장 결과를 기재한 보고서를 작성하여 해당 정보를 공개하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④ 피고(한동훈 장관)의 업무 범위와 출장의 목적을 감안하더라도 (해외 출장 경비) 정보를 공개하지 아니함으로써 보호할 수 있는 (한 장관) 업무 수행의 공정성 등 공익이 더 크다고 보기 어렵다. 

“국외출장 지출증빙서류 그 자체로 안보·국방·외교관계에 관한 사항 아니다”

나아가 ⑤ 단순한 출장경비의 세부적인 집행내역이나 지출 증빙서류가 그 자체로 국가안전보장·국방·통일·외교관계에 관한 사항에 해당한다고 보기도 어려울뿐더러, (이미) 출장목적, 방문기관, 출장일정 등의 정보가 사전에 공개되어 있는 상황에서 출장 업무가 종료된 다음 사후에 출장 경비의 세부적인 집행내역 및 지출증빙서류를 추가적으로 공개한다고 하여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발생한다고 볼만한 아무런 합리적인 근거를 찾을 수 없다.
쉽게 말해 여느 공직자처럼 법무부 장관의 해외출장 경비도 마땅히 공개해야 하고, 아무데서나 ‘국방 등 국익 침해’를 갖다 붙이지 말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판결이다. 

재판부, “국민의 예산 감시 기능도 중요한 공익” 

재판부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밝힌다. ⑥ 공공기관이 보유·관리하는 정보는 국민의 알권리 보장 등을 위하여 정보공개법이 정하는 바에 따라 적극적으로 공개되어야 함이 원칙이고, ⑦ 모든 국민은 정보의 공개를 청구할 권리를 가지는 바, ⑧ 국민의 예산 감시 기능, 국정운영의 투명성 제고 등과 같은 이익이 (한동훈 장관과 법무부가) 정보를 비공개함으로써 보호하고자 하는 추상적인 공익에 비해 결코 작다고 단정할 수 없다.
이 같은 재판부의 판결에 따라 피고(한동훈 장관)는 2022년 6월 29일부터 7월 7일까지 미국 출장에서 사용한 4,800만 원 남짓한 출장경비와 관련하여 지출 건별로 지출일시, 금액, 명목, 장소 등 세부 집행내역과 함께 영수증, 카드영수증, 세금계산서, 견적서, 현금수령증 등 지출을 증빙하는 일체의 자료를 공개해야 한다. 다만 계좌번호, 주민등록번호 등은 가리거나 지우고 공개한다. 

법무부,  공개할지 항소할지 밝히지 않아 

뉴스타파는 법무부에 연락해 법원 판결을 존중해 정보를 공개할지 아니면 항소할지, 이번 1심 판결에 대한 법무부와 한동훈 장관의 입장을 물었지만, “확인하고 답변드리겠다”고 할 뿐 이후 구체적인 답변은 오지 않았다. 판결문을 받은 날로부터 2주 이내에 항소할 수 있다.
한편, 이번 판결을 다룬 언론 보도가 나오자, “이번에도 영수증이 휘발되는지 지켜보겠다”, “1년이 안 된 영수증도 휘발되려나” 등의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제작진
행정소송 하승수
웹디자인이도현
웹출판허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