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공장의 영업비밀① 어느 학술단체의 '가짜 심사'와 '도둑 논문'

2021년 06월 23일 14시 53분

학술 단체와 조작.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단어가 만났다. 학자와 연구자들의 집단에서 서류를 조작하는 행위가 벌어졌다. 학회 교수들이 국가기관에 제출하는 학술지 평가 서류를 허위로 꾸며 제출했다. 다양한 심사위원이 논문 심사를 하는 것처럼, 엄격하게 심사해서 상당수 논문은 탈락시키는 것처럼 평가기관인 한국연구재단을 속였다. 그렇게 해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국가가 인정하는 학술지, KCI(한국학술지인용색인)에 등재되는 학술지가 그렇게 만들어졌다. 학술지 논문의 내용도 부실했다. 조작된 데이터와 표절 논문이 수두룩했다. 그런 논문을 쓴 사람들은 대다수가 현직 교수였고 또 교수가 됐다. 비법은 전수됐다. 논문이 급한 후배 연구자들도 이 학회를 이용했다. 후배 연구자들은 이 학회를 두고 "논문이 급할 때 내는 곳"이라고 했다. 필요할 때 원하는 양만큼 논문을 낼 수 있는 곳. 똑같은 물건을 대량 생산하는 공장처럼 논문을 찍어냈던 어느 학술단체의 영업비밀을 두 차례에 걸쳐 보도한다.-편집자주
  • ①어느 학술단체의 '가짜 심사'와 '도둑 논문'
  • ②조작, 표절, 부실 논문도 '패스'...KCI등재지의 민낯

뉴스타파, 경기대 교수들 중심의 ‘관광경영학회’, 연구재단 평가 서류 조작 확인

뉴스타파는 지난 4월, 경기대 교수들이 중심이 되어 운영하는 학술단체인 사단법인 '관광경영학회’가 학술지 평가 서류를 조작했다는 제보를 받았다. 제보에 따르면, 학회 편집위원장과 부편집위원장(전 사무처장)을 맡고 있는 경기대 교수들이 논문 심사과정에서 심사위원의 명의를 도용해 가짜 심사를 진행하고, 연구재단 평가지표 중 하나인 ‘논문 게재율’을 맞추기 위해 다른 학회에 투고된 논문을 무더기로 얻어와 자신들 학회의 ‘탈락용 논문’으로 사용했다. 
뉴스타파는 관련된 녹취파일도 입수했다. 녹취파일에는 관광경영학회에서 일했던 한 관계자가 누군가에게 털어놓은 대화 내용이 담겨있었다. 제보를 뒷받침하는 내용이었다.
학회가 엄청 깨끗하고 정말 공정하고 그럴 줄로 알았는데, 한편으로는 학회가 잘 평가 받아야 되고 살아남아야 되니까 이럴 수 있겠다, 사람이라면 이런 생각은 들 수 있겠다 했는데 그렇게 심사위원 명단을 돌아가면서 도용하는 걸 보고 많이 놀랐죠.

관광경영학회 전 관계자
관광경영학회는 경기대 관광경영학과 교수들이 1997년 설립한 학술단체다. 학회 회원 수 1700여 명, 매년 100편 이상의 논문을 발행하고 있다. 겉보기에는 다양한 학교의 교수들이 참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경기대 관광대학 교수들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실제로 학회 이사진 전원(9명)이 경기대 관광대학 교수나 경기대 관광대학 출신 박사들로 구성돼 있다. 학회장은 전주대 교수지만 경기대 관광대학 출신이고, 평가 서류를 조작한 인물로 언급된 학회 편집위원장과 부편집위원장(전 사무처장)도 모두 경기대 관광대학 소속 교수들이다. 이 때문에 학계에선 “그들만의 리그, 경기대 교수들이 좌지우지하는 학회”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런 학계의 평가와 달리 관광경영학회가 발행하는 학술지 ‘관광경영연구’는 한국연구재단이 운영하는 한국학술지 인용색인(KCI)에 등재돼 있다. 한국연구재단은 정부가 연구자들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한 공공기관이다. KCI에는 연구재단의 학술지 평가에서 85점 이상을 받은 학술지만 등재된다. 관광경영학회 학술지는 2012년부터 매번 85점을 넘겨 현재까지 등재학술지 자격을 유지하고 있다. 연구재단으로부터 지난 5년간 4000만 원 가량의 학술지 지원금도 받았다. 그만큼 국가로부터 인정을 받는 학회라는 이야기다.
사단법인 관광경영학회가 발행하는 학술지 '관광경영연구'. 이 학술지는 2012년부터 연구재단 등재학술지 자격을 유지하고 있다.
이렇게 국가로부터 공인받는 학회가 학술지 평가 서류를 조작했다는 제보 내용은 사실일까. 뉴스타파는 국회로부터 제보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를 입수했다. 관광경영학회가 2019년 연구재단 학술지 평가 당시 제출했던 평가 서류 ‘학술지 논문투고대장’이 그것이다. 이 논문투고대장에는 2018년 관광경영학회에 투고된 1년 치 논문리스트와 심사결과, 심사자 명단이 소속과 성까지 적혀 있다. 뉴스타파는 논문투고대장에 나와 있는 460여 건의 논문과 심사자 명단을 분석했다. 그 결과 제보 내용 대부분이 사실로 확인됐다. 그리고 등재 학술지 평가를 위해 이 학회가 남몰래 벌여왔던 ‘영업비밀’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관광경영학회가 2019년 연구재단 학술지 평가 당시 제출했던 평가 서류 ‘학술지 논문투고대장’

영업비밀ⓛ 심사위원 명의 도용

뉴스타파는 가장 먼저 관광경영학회가 심사위원의 명의를 도용했다는 제보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심사자 명단을 확인했다. 논문투고대장에 나오는 심사위원 중 학회 임원명단과 각 대학 홈페이지를 통해 신분 확인이 가능한 사람들을 추렸다. 그리고 해당 심사자들에게 일일이 전화해 실제 심사 여부를 물었다. 그 결과 10여 명의 심사자로부터 “심사를 직접 한 적이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논문투고대장에 26차례나 심사를 한 것으로 적혀 있는 A교수는 “10년 전쯤에는 학회에도 자주 가고, 심사도 했었지만 최근에는 학회 일도, 논문 심사도 전혀 해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22차례 심사자로 이름을 올린 B교수도 자신이 논문 심사위원이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 B교수는 뉴스타파와의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22건 아니라 한 건도 심사한 적이 없어요. 그리고 22건 심사했으면 심사비만 해도 60~70만 원을 받았을 텐데, 그럼 고기라도 사 먹었겠죠. 그런데 전혀 심사한 적이 없으니까 황당한 거죠.

22차례 논문 심사자로 등장하는 관광학 분야 B교수
심사 위원 명단에는 학계 관계자들 말고 현업에 종사하고 있는 관광업계 대표들의 이름도 여러 차례 등장했다. A 여행사 정00 대표(16차례), B투어 한00 대표(11차례), C호텔 현00 대표(16차례) 등이었다. 뉴스타파는 이들에게도 전화를 걸어 실제로 심사를 한 적이 있는지 물었다. 관광업계 대표들은 모두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제가 논문 심사를 해봤자 1~2번 했을 거예요. 16차례나 하지는 않았어요. 할 수 있는 시간도 안 되고 그렇게 해서도 안 되죠. 학교에 있는 사람이 심사해야지, 제가 심사할 위치도 아니고요.(특히 대표님은 다른 사람 논문을 심사하면서 ‘게재 불가’ 판정을 내린 게 많더라고요?) 제가 다른 사람에게 ‘게재 불가’라는 평가까지 해서 사람들이랑 원수질 일이 없거든요. 누가 제 명의를 도용했나 보네요.

C호텔 현00대표/관광경영학회에 2018년에만 16차례 심사자로 등장
제가 그 학회 부회장으로 있지만, 그냥 이름만 올린 것이지 실질적으로 학회 일을 한 게 없어요. 당연히 논문 심사도 안 했고요. 심사는 전혀 한 적이 없습니다.

D여행사 정00대표/관광경영학회에 2018년에만 16차례 심사자로 등장
논문 심사요? 현업에 있는 사람이 무슨 논문 심사를 합니까. 한 번도 한 적이 없어요.

E투어 한00대표/ 관광경영학회에 2018년에만 11차례 심사자로 등장
심사위원의 명의를 도용해 가짜로 논문심사를 진행했다는 제보 내용이 사실로 확인된 것이다. 뉴스타파가 입수한 녹취파일을 들어보면, 이 같은 명의 도용 수법을 주도한 사람은 당시 학회 사무처장(현 부편집위원장)이었던 경기대 관광경영학과의 최 모 교수로 지목된다.
사무처장님이 심사했다고 파일은 올리는데 정작 심사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인 경우도 있죠. 보통 명의를 도용하는 계정이 학회와 정말 관련이 깊은 사람들, 이걸 알아도 별 말 안 하는 사람들, 아니면 자신보다 낮은 사람들, 같은 교수라고 하더라도 후배가 있잖아요. 이런 사람들을 위주로 다 돌리는 거죠, 심사계정을.

관광경영학회 전 관계자

학회 편집위원장이 논문심사 도맡아 ...학계 “연구윤리위반” 지적

문제는 명의 도용 뿐이 아니었다. 관광경영학회 논문 심사 규정에는 “해당 분야의 전문적 지식과 공정한 판단 능력을 지닌 심사위원에게 투고 논문의 심사를 의뢰해야 한다”고 나와 있지만 이 규정도 지켜지지 않았다. 전공과 상관없이 학회 일부 관계자들에게 논문 심사가 몰렸다. 이 학회에서 가장 많이 논문 심사를 맡은 사람은 평가 서류 조작의 핵심 인물로 지목된 학회 편집위원장인 경기대 최 모 교수. 그는 2018년 한 해 동안 무려 156회나 심사위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호텔경영학 전공자인 최 교수는 자신의 전공과 상관없는 분야까지 모두 심사를 도맡았다. 이는 보통의 학회에선 흔치 않은 일이라는 게 다른 학회들의 설명이다.
국내 학회에서 편집위원장이 직접 심사를 하는 경우는 잘 들어보지 못했고요. 편집위원장은 직접 심사하는 자리가 아니라 투고된 논문이 해당 분야 전문가에게 잘 가도록 심사를 의뢰하는 역할이에요. 그리고 학술지 논문은 익명심사가 기본적인 원칙인데, 편집위원장은 누가 투고하는지 알 수 있는 위치에요. 그런 상황에서 심사한다는 건 익명성 보장이라는 연구윤리 측면에서도 위배되는 거죠.

F 학술지(우수 등재학술지) 편집위원장
심사위원 명의 도용의 주동자로 지목된 학회 전 사무처장 최 모 교수는 이 학회에서 세 번째로 심사를 많이 했다. 2018년 한 해 동안 68번이나 심사위원을 했다. 학회 규정상 논문심사위원은 편집위원이 위촉한다. 문제는 사무처장은 심사위원을 위촉할 자격이 없는데도 본인이 직접 심사위원을 위촉하고, 급할 때는 심사위원의 명의를 도용까지 했다는 것이다. 뉴스타파가 입수한 관광경영학회 전 관계자의 녹취파일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최00 교수(학회 전 사무처장)님이 아는 교수님들 논문 같은 경우에는 논문을 심사할 때 학회 계정에서 관리하니까 자기 학회와 친분이 있는 이름들로 심사위원 3명을 임의로 지정을 하는 거죠. 그리고 '이번에 00교수 논문이 들어왔으니 잘 좀 봐 달라' 심사자에게 전화를 돌리고요.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는 본인이 다른 심사위원 계정 1개 이상 도용해서 심사를할 때도 있었던 걸로 기억하고요.

관광경영학회 전 관계자
최 교수는 심지어 본인 논문의 심사위원을 본인이 지정했다고도 한다.
최00 교수(학회 전 사무처장)님 논문은 본인이 항상 평가를 하세요. 자기 논문을 자기가 평가했는지, 자기 주변의 지인들로 구성해서 심사 평가했는지는 정확하지 않아요. 하지만 자기와 친한 사람들로 구성해서 심사를 진행하는 건 제가 거의 확신에 가깝게 말씀드릴 수 있어요.

관광경영학회 전 관계자
이렇게 심사가 허위로 이뤄지다보니 논문 심사 서류도 제대로 작성됐을 리 없다. 뉴스타파가 입수한 녹취파일에 따르면 부실하게 작성된 심사서를 고치는 일은 대학원생인 학회 연구원들에게 맡겨졌다.
심지어는 최00 교수님(학회 전 사무처장)이 자기가 심사를 하거나 자기 지인 분들에게 심사를 부탁해가지고 받은 파일을 저한테 주잖아요. 그러면 그 파일들을 제가 최종 확인해서 혹시 중복되는 내용이라든지 너무 좀 하찮은 내용들이 없는지 확인 좀 부탁한다고 지시를 해요. 심사내용이나 심사 날짜가 같으면 안 되니까요. 그래서 많이 꼼꼼하게 보고 그랬었거든요. 정말 급하게 필요할 땐 밤도 새고요.

관광경영학회 전 관계자
실제 관광경영학회가 발행한 논문 중에는 심사 날짜가 엉터리로 적혀있는 것이 종종 눈에 띈다. 논문을 접수한 날짜보다 심사한 날짜가 앞선 논문 접수 날짜와 심사 날짜가 같은 논문 등 지금도 관광경영학회 학술지에는 부실 심사의 흔적이 남아있다.
관광경영학회 논문 중에는 1차 수정본 원고 접수 날짜가 최종 수정본 원고 접수 날짜보다 앞선 것이 나온다. 

영업비밀② 다른 학회 논문 얻어와 ‘논문 게재율’ 조작

뉴스타파가 입수한 녹취파일에는 학회 편집위원장인 경기대 최 모 교수가 다른 학술지에서 게재 불가용 논문 80여 편을 얻어왔다는 얘기가 나온다.
(경기대 관계자 : 그때 다른 학회에서 심사 탈락한 논문 80편을 줬다고 했잖아. ZIP(압축)파일로)네, 그때 좀 많았어요. 그때 최00 교수(학회 전 사무처장)님이 어떤 다른 학회에서 게재불가 파일을 얻어 오신다고 하셨거든요. 제 기억으로는 최00 교수님(학회 편집위원장)이 가져온다고, 학회 이메일로 보내준다고 하셨어요. 무슨 작업을 했는지는 몰라요. 학회에 게재불가 파일이 미달된다고 하더라고요. 

관광경영학회 전 관계자
관광경영학회가 어차피 게재하지도 않을 논문을 80편이나 얻어온 이유는 무엇일까. 
연구재단이 학술지를 평가할 때 보는 평가 지표 중에는 ‘논문 게재율’이라는 게 있다. 논문 게재율은 학회에 투고된 전체 논문 대비 실제로 게재된 논문의 비율을 말한다. 논문 게재율이 낮을수록 엄격하게 심사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연구재단 평가지표에 따르면 논문 게재율은 60% 이하여야 만점(5점)을 받는다. 100편 중 40편은 탈락시켜야한다는 뜻이다.
논문 게재율 점수는 학술지 평가 점수 100점 만점 중 5점에 불과하다. 하지만 정성평가에서도 심사의 엄정성 등을 판단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기 때문에 학회들은 논문 게재율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한다. 이 때문에 연구재단 평가를 앞두고 임의로 게재 불가 논문을 만들어 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뉴스타파는 사실 확인을 위해 관광경영학회 2018년 ‘학술지 논문투고대장’에서 ‘게재 불가’판정을 받은 논문들의 명단을 한국학술지인용색인(KCI)사이트에서 일일이 검색했다. 그 결과, 게재불가 판정을 받은 전체 논문 181편 중 88편이 다른 등재 학술지 3곳에 이미 게재됐거나 심사 중인 논문들로 확인됐다. △관광레저학회 62편△한국관광산업학회 22편 △동북아관광학회 4편이다. 보통 연구자들은 동시에 여러 학회에 논문 투고를 하지 않는다. 중복 게재의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미 한 번 게재된 논문을 다른 학회에 다시 투고한다는 건 더더욱 상식 밖의 일이다.
2018년 관광경영학회에서 게재 불가 판정을 논문 181편 중 88편은 이미 다른 학술지에 게재됐거나 심사가 진행 중인 논문이었다. 
뉴스타파는 88편의 논문의 저자 중 연락처를 알 수 있는 40여 명의 저자에게 모두 전화를 걸어 다른 학회에 낸 논문을 다시 관광경영학회에 투고한 적이 있는지 물었다. 40여 명 모두 “관광경영학회에는 논문 투고를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관광경영학회가 다른 학회 논문을 저자도 모르게 도용한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이렇게 관광경영학회가 도용한 논문 가운데는 박양우 전 문체부 장관의 논문도 있었다. 관광경영학회 논문투고대장에 따르면, 박 전 장관이 2018년 5월 동료교수와 관광레저학회에 낸 논문이 게재 확정 6일 전에 관광경영학회에 다시 투고돼 ‘게재 불가’판정을 받은 것으로 돼 있었다.
관광경영학회 논문투고대장에 따르면, 박양우 전 문체부 장관이 2018년 4월 동료 교수와 함께 관광레저학회에 낸 논문이 황당하게도 게재 확정 6일 전에 관광경영학회에 다시 투고돼 게재 불가 판정을 받은 것으로 나와있다. 
박양우 전 장관은 뉴스타파와의 통화에서 “두 개 학회 동시 투고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오래 전에 호텔외식관광경영학회 회장을 지낸 적이 있어 학회 일을 잘 아는데 동시에 두 학회에 논문을 투고하는 행위는 연구윤리상 있을 수 없는 일이라 하지 않는다”며 “관광경영학회에도 자신이 논문을 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관광경영학회만 다른 학회의 논문을 도용했을까. 뉴스타파는 관광경영학회가 논문을 도용한 것으로 드러난 3개 학회 중 ‘한국관광산업학회’의 논문투고대장도 입수해 살펴봤다. 그 결과 관광산업학회의 경우 2018년 게재 불가 논문 35편 중 26편이 관광경영학회에 이미 게재된 논문으로 확인됐다. 그러니까 관광경영학회가 다른 학회로부터 논문을 얻어오기만 한 게 아니라, 자신들 학회 논문을 다른 학회에 빌려주기도 했던 것이다.
학회 간에 논문을 서로 주고받는 ‘품앗이’로 논문 게재율을 조작해왔다는 의심이 드는 대목이다. 대학연구윤리협의회 사무총장인 이인재 서울교대 교수는 “이건 명백하게 몇몇 사람들이 주도적으로 논문 게재율을 유지하기 위해 조직적으로 가담을 해서 서류작성을 조작한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든다”며 “2개 내지 3개 정도의 유사한 학회에 소위 말하는 편집위원장이나 편집위원 또는 학회의 간부들이 겹쳐 있다 보니까 조금 나쁜 말로 말하면 우리 학회도 평가 잘 받고 너희 학회도 잘 받기 위해서 품앗이하는 것 같다. 굉장히 잘못된 일이고, 위험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이 학회들의 논문게재율 조작 등의 행위는 위법 소지가 높다. 
연구재단은 학회를 심사하게 돼 있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심사위원이나 논문을 조작해서 연구재단의 업무, 학회를 평가하는 업무를 방해했다고 볼 수 있고 이건 업무방해죄에 해당할 소지가 있다고 봅니다.

장성원 변호사
'게재 불가'용 논문을 서로 주고 받은 것으로 확인된 한국관광산업학회 학술지(왼쪽)와 관광경영학회 학술지
뉴스타파는 논문 게재율 조작이 의심되는 4개 학회에 모두 질의서를 보내 입장을 물었다. 답변을 준 곳은 없었다. 다만 관광경영학회에 가장 많은 논문이 넘어간 것으로 확인된 관광레저학회측은 “자신들도 논문 도용의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도 “관광경영학회 측에 논문이 도용된 경위에 대해 알아보면 안 되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는 “출신학교가 다른 교수들끼리 연락을 하지 않는 교수들의 관행상 불가능한 일”이라고 답했다.
저는 세종대 파고요. 그쪽 경기대 파에요. 제가 굳이 그 사람들한테 전화할 이유가 뭐가 있습니까. 기자님이 학회랑 교수들 시스템을 몰라서 그래요. 연대 교수들이 고대 교수들한테 전화할 것 같아요?절대 안 해요. 학교라는 데는 그런 게 있어요.

관광레저학회 관계자

영업비밀③ 동료학회 ‘인용 품앗이’

‘탈락용 논문’을 서로 주고받은 것으로 의심되는 관광경영학회와 한국관광산업학회. 뉴스타파는 취재과정에서 두 학회가 논문 인용지수를 높여주기 위해 꼼수를 부린 정황도 포착했다. 뉴스타파가 입수한 관광경영학회의 논문심사보고서에는 특정 학회, 즉 한국관광산업학회의 학술지를 인용하라는 내용이 나온다. 또 다른 논문심사서엔 한국관광산업학회의 논문을 3편씩 인용하라고 아예 편수까지 제시한 대목도 발견된다.
관광경영학회 논문심사결과보고서에는 자신들 학회 뿐만 아니라 동료 학회 학술지를 인용하라는 대목이 나온다.
논문심사 과정에서 특정 학회의 학술지를 인용하라고 조언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관광학 분야의 한 학회 사무국장은 “보통은 저자의 논문과 관련된 주제의 논문을 인용하라고 조언하지 다른 학회 논문을 인용하라고 하는 건 본 적이 없다. 비공식적으로 부탁을 할 수는 있어도 공개적으로 심사서에 적는 것은 창피하고 비윤리적인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관광경영학회가 굳이 관광산업학회의 논문을 인용하라고 적시한 이유는 무엇일까. 관광경영학회와 한국관광산업학회에는 공통점이 있다. 두 학회 모두 경기대 최 모 교수가 각각 편집위원장과 부회장으로 학회 운영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임원 명단도 상당히 겹친다. 현재 관광경영학회 학회장 류 모 전주대 교수는 관광산업학회에서 2018년에 편집위원장을 지냈던 인물이고, 두 학회의 편집위원도 절반이 같은 사람이다. 쌍둥이 학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즉, 이미 등재 학술지로 자리를 잡은 관광경영학회가 상대적으로 등급이 낮은 쌍둥이 학회를 키워주려고 꼼수를 부린 게 아닌지 의심되는 대목이다.
실제로 연구재단에 따르면, 2018년 한국관광산업학회의 학술지를 가장 많이 인용한 학술지는 관광경영학회 학술지였다. 동료 학회의 인용 품앗이로 관광산업학회의 학술지는 사회과학분야에서 인용지수 상위 1%를 달성했다. 그리고 그해 등재후보학술지에서 등재지로 승격됐다.

학회 권력자들의 연구실적 쌓는 도구 ‘KCI 등재 학술지’

그렇다면 학회들이 이렇게 평가서류를 조작하고 인용 품앗이까지 해가면서 연구재단 등재 학술지를 만들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학회의 학술지가 등재지로 선정되면 돈과 명예, 연구 실적이 자연스럽게 따라오기 때문이라는 게 교수들의 설명이다. 대부분의 대학들은 연구재단에 등재된 학술지 논문부터 연구실적으로 인정해 준다. 국제 저명 학술지 색인인 SCI나, SCOPUS 등에 게재되면 더 높은 점수를 받지만 상대적으로 국내 학술지보다 논문 게재가 어렵다. 때문에 국내 등재 학술지에 논문 투고자가 몰리고, 그에 따라 학회 심사비도 비싸진다.
관광경영학회는 논문 1편당 회원가입비, 심사비, 게재비 등을 포함해 최대 70만 원까지 받고 있다. 하지만 심사위원에게 지급되는 심사비는 편당 6 만원 가량이다. 논문을 많이 받으면 받을수록 남는 장사다.
하지만 돈보다 중요한 건 학회 일부 관계자들이 논문 심사를 좌지우지 하면서 손쉽게 자신들의 연구실적을 쌓는 용도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뉴스타파가 취재 과정에서 접촉한 관광학계 한 교수는 “학회 활동을 많이 하는 교수들은 대외적인 신뢰도도 높게 평가받고, 논문 게재에도 특혜를 보는 면이 있다. 그래서 여러 학회에 임원을 맡으며 활동하려고 한다”며 “학회가 순수하게 연구하는 곳이 아닌 연구실적을 쉽게 쌓는 도구로 이용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뉴스타파는 관광경영학회 측에 공식질의서를 보내 학술지 평가 서류 조작 의혹에 대한 입장을 물었다. 3주가 넘도록 답변은 오지 않았다. 학회 회장과 편집위원장, 전 사무처장 모두 취재진의 연락을 받지 않았다. 문자를 보내도 읽기만 할 뿐 답을 하지 않았다. 유일하게 답변을 준 학회 이사장 경기대 이 모 교수는 “자신은 대외적으로 연설할 일이 있을 때만 학회에 참석할 뿐 학회 운영에 대해선 아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답했다.
뉴스타파는 한국연구재단에도 왜 학술지 평가과정에서 이 같은 부정행위가 걸러지지 않았는지 물었다. 한국연구재단은 뉴스타파에 보낸 답변서에서 “학술지 평가는 기본적으로 학회들이 제출한 자료를 토대로 진행한다. 해마다 들어오는 평가 자료가 워낙 방대해 세부적인 사항을 일일이 체크하기는 어렵다”며 “평가에서 거르지 못한 부정행위는 전체 학술지의 10%를 무작위로 선정해 진행하는 실태 점검을 통해 보완하고 있지만 역시나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뉴스타파가 지적한 학회들을 실태 점검할 계획이며, 부정행위가 적발될 경우 등재지 자격을 취소하는 등의 행정조치를 내리겠다”고 밝혔다.
현재 연구재단에 등재된 학술지는 총 2600여 종(등재 후보 학술지 400여 종 포함). 등재 학술지 제도가 처음 생긴 1998년의 57종에 비해 그 숫자가 45배 가량 증가했다. 사실상 현행 등재 학술지 제도는 학회들이 평가 서류만  잘 맞춰서 제출하면 연구재단 평가를 통과하기 쉬운 구조다. 등재 학술지 난립 사태를 해결할 등재지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학술지 평가 기준만 잘 맞추면 등재지로 승격될 수 있기 때문에 학술지의 양적인 확대는 가져왔지만 질적인 확대는 안 된 것이죠. 또 등재죠지 숫자는 늘어났지만, 연구재단의 예산이나 인력은 그 만큼 늘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감시가 허술해질 수밖에 없었고요. 이제는 등재지의 양적인 확대보다 질적인 확대를 꾀하는 방향으로 등재지 제도의 대대적인 개선이 필요합니다.

강득구/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학술단체가 워낙 디테일하게 분화돼 있고, 끼리끼리 운영하는 문화들에 문제점이 있다고 봅니다. 특히 소규모 학술단체 같은 경우에는 여러 가지 면에서 평가의 기준에 부합해가지고 학술지 지원을 받으려고 하는 노력들이 있다 보니까 상당 부분 유혹을 많이 받고 있는 것 같긴 한데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개인적으로 너무나 세분화되어서 소규모로 움직이는 학회가 필요할까. 조금은 유사하고 공통적일 수 있는 것은 좀 합쳐가지고 그 안에서 스스로 활동할 수 있는 셀프 모니터링 시스템도 갖추고 그렇게 해서 좀 더 공개적이고 좀 더 개방적으로 하는 것이 오히려 서로의 발전을 위해서 좋은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인재/서울교대 윤리교육과 교수(대학연구윤리협의회 사무총장)
제작진
촬영기자김기철, 신영철, 오준식,
편집기자정지성, 조문찬
CG정동우
디자인이도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