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지난 9월 24일 국회 교육위원회에 출석해 '현직 교육부 공무원이 민간 출판사의 검정 교과서 집필에 참여해도 문제가 없다'라는 주장을 폈다. 교과서 검정 신청 공고문에 해당 규정이 없다는 이유다. 교육부가 쓰고, 교육부가 심사하는 이른바 '셀프 검정 심사'도 문제없다는 상식 밖의 주장에 야당 의원들의 비판이 이어졌다.
뉴스타파는 이 같은 이주호 장관의 주장을 반박하는 교육부의 과거 공문서를 다수 확인했다. 교육부 공무원의 필진 참여를 제한한 일부 공문서의 내용을 두고 '행정 오류'라고 말한 이 장관의 주장과 달리, 이 규정은 과거부터 교과서 검정 신청 관련 공문서에 꾸준히 포함된 내용이었다. 13년 전 이주호 장관이 이명박 정부의 교육부 장관이었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8월 말, 이 출판사의 교과서가 저작자 자격 요건을 위배했다는 사실이 언론 보도를 통해 드러났다. 이주호 교육부 장관의 청년보좌역인 김건호 씨가 해당 교과서의 필진으로 참여한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검정 교과서 심의는 교육부의 위탁을 받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 진행한다. 이 기관이 지난해 배포한 '교과서 검정 신청 안내 자료집'은 교과서의 저작자가 검정 신청일 기준으로 교육부 및 검정 심사 기관 소속이 아니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 규정에 따르면, 해당 교과서는 검정 신청 자격 규정을 위반한 것이 된다. 검정 신청일 당시 이 교과서의 필자 김건호 씨는 현직 교육부 공무원 신분이었다.
한국학력평가원도 문제의 소지를 알고 있었다. 이 출판사는 지난 8월 교과서 검정 합격본이 학교에 배포되기 전에 김 씨의 이름을 교과서 저자 명단에서 삭제했다. 또 김 씨가 집필에 참여했던 단원의 저자를 다른 사람의 이름을 대체했다.
한국학력평가원 한국사 교과서 교사용(위)에는 교육부 장관 청년보좌역 김건호 씨의 이름이 저자로 적혀 있으나, 학교에 배포된 전시본에서는 이름이 삭제되거나 다른 저자의 이름으로 바뀌어 있다.
하지만 이 출판사 홈페이지에 공개된 '교사용 지도서'에는 여전히 김 씨의 이름이 남아 있는 등 교과서 집필에 김 씨가 참여한 흔적이 역력하다. 현행 '교과용도서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교과서 저작자의 이름이 검정 신청 당시의 이름과 다를 경우 검정 취소나 발행 정지 처분을 받을 수 있다.
문제는 교육부가 이러한 사실을 확인하고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는 것이다. 교육부는 김 씨가 해당 출판사의 교과서 저자로 참여한 것에는 문제가 없다고 결론 내리고, 김 씨가 겸직 규정을 위반한 것이라며 주의 처분을 내렸다.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지난 9월 24일 국회 교육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이 입장을 되풀이했다. 이 장관은 "교육과정평가원의 저작자에 대한 공고문에는 교육부 직원이 안된다는 말이 없다"라며 "(검정 신청 자격을) 충족을 안 했다고 보기에는 어렵다"라고 말했다.
이 장관과 교육부가 내세운 근거는 교육과정평가원의 '검정 실시 공고문'이다. 이전 '검정 신청 안내자료집'과는 별도 문건이다. 이 공고문에는 교육부 공무원의 필진 참여를 제한한다는 관련 규정이 빠져 있으니, 이 공고문을 기준으로 보면 해당 교과서의 검정 통과에 문제가 없다는 논리다. 교육부 측은 오히려 안내자료집의 내용이 검정 심사 기관의 행정 오류라고 주장한다.
야당 국회의원들은 상식적인 이해충돌 문제를 무시한 채 자의적으로 규정을 해석하는 것이라며 일제히 이 장관과 교육부의 행태를 비판했다. 이 장관과 교육부의 해석대로라면, 교육부 장관이 직접 검정 교과서 집필에 참여해도 막을 길이 없다는 논리가 된다는 지적도 나왔다.
●고민정 의원: 그 얘기는 지금 장관님도 교육부 직원이나 마찬가지인데 장관님께서 (현재 AI 디지털교과서 검정 심사 중인) 에듀테크의 저자로 활동하셔도 겸직 허가만 나면 상관이 없는 거예요?
○이주호 장관: 교과서 부분에서는 뭐 지금 그렇게 해석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고민정 의원: 국민들이 과연 동의하실까요?
–국회 교육위원회 역사교과서 문제 관련 현안질의(2024.9.24)
2024년의 이주호를 반박하는 13년 전의 이주호
뉴스타파는 교육과정평가원의 과거 교과서 검정 실시 공고문과 안내자료집을 분석했다. 교육부 소속 공무원은 검정 교과서 저작자가 될 수 없다는 제한 규정은 이미 오래전부터 일관되게 명시된 사항이었다.
지난 2019년 교과서 검정의 경우, 교육과정평가원이 배포한 '역사과 교과용도서 검정 신청 안내 자료집'에 '검정 신청일 현재 교육부 및 검정 심사 기관 소속이 아닌 자'라고 저작자 자격이 나와있다. 당장 이전 사례에만 비춰보더라도, 지난해 발간된 '안내자료집'에 담긴 해당 규정이 행정 오류라는 교육부 측 주장은 근거가 없는 셈이다.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재임 시기인 2011년 교과서 검정 실시 공고문에 교육부 소속인 사람은 저작자가 될 수 없다는 규정이 적혀 있다.
교육부는 관련 규정이 누락된 '공고문' 한쪽만을 취사선택하여 저작자 요건을 판단한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1년 8월에는 이 '공고문'에도 해당 규정이 담겼다. 당시에는 교육과정평가원, 국사편찬위원회 2개 기관에서 교과서 검정 심사 '공고문'을 냈는데, 두 기관 모두 '검정 신청일 현재 교육과학기술부 및 검정 심사 기관 소속이 아닌 자'로 저작자 자격 제한했다. 이 당시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은 지금의 이주호 장관이다.
교과서 검정을 신청하려면 '최근 3년 이내 검정출원 교과 관련 도서를 한 권 이상 출판한 실적'을 증명해야 한다. 지난해 한국학력평가원은 2007년 출판한 문제집(왼쪽)의 표지만 바꿔 발행 등록(오른쪽)하는 수법으로 이 같은 출판 실적을 조작했다.
국정감사에서도 교육부의 감싸기 계속될까
교육부는 뉴스타파 보도로 드러난 한국학력평가원의 출판 실적 조작 사실에 대해서도 눈 감고 있다. 이 출판사는 옛 문제집의 표지만 바꿔 붙이는 수법으로 검정에 필요한 역사 교과 관련 출판 실적을 채웠다. 그러나 교육부는 '교육과정평가원에서 절차상 문제가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는 말만 반복하며 검정 합격을 취소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지난 9월 24일, 국회 교육위원회 강경숙 의원이 '한국학력평가원의 출판 실적 조작' 문제를 제기하자 이주호 장관이 검정 합격 취소는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오는 8일, 국회 교육위원회는 교육부를 상대로 국정감사를 실시한다. 이날 야당 측은 한국학력평가원의 검정 신청 자격 조작 사건에 대해 교육부의 책임 있는 답변과 후속 조치를 다시 한번 촉구할 예정이다.
이날 국정감사에는 한국학력평가원의 대표와 교과서 편집자도 증인으로 채택됐다. 이 출판사 측은 “출판 실적 조작이나 검정 신청 교과서의 편집자 자격 문제와 같은 부적절한 행위는 없었다”라고 뉴스타파에 반론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