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전속결 릴레이 해임...'이동관 방통위'에 꽃길

2023년 08월 24일 20시 00분

윤석열 정부 2년차, 대한민국의 공영방송이 다시 격랑에 휩싸였다. 10여년 전 이명박 정부 시기 공영방송 장악 시도와 언론탄압을 경험하고 기억하는 이들은 ‘이명박 정부 시즌2’라고 평하기도 한다. 
“권력의 방송장악 폭력이 거침없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들을 이명박 정권 시즌2다 이렇게 부르고 있지만, 이명박 정권조차 감히 하지 못했던 온갖 불법과 폭력으로 점철된 공영방송 장악 시도가 물밀듯이 밀려오고 있습니다.”

윤창현 /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 (2023.8.14)
윤석열 정부는 무엇보다 대통령 직속의 방송정책 및 규제 기구인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를 먼저 손아귀에 쥐는 것으로 공영방송 장악 시도를 본격화한 모양새다.
윤석열 정부는 감사원 특별감사와 검찰의 먼지떨이식 수사를 앞세워 전임 정부에서 임명된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방통위원장)을 쫓아내는 데 성공했다. 지난 5월, 검찰이 한상혁 당시 방통위원장을 2020년 TV조선 재승인 심사에 부당하게 개입한 혐의로 기소하자, 윤석열 대통령은 같은 달 30일 면직시켰다.
방통위는 대통령이 지명하는 2인과 국회가 추천하는 여당 1인, 야당 2인을 합해 모두 5명의 상임위원으로 구성된다. 한 전 위원장 면직 전까지는 임기가 만료된 방통위 상임위원 한자리만 공석이었다. 그나마 여야 2대2 구도의 균형은 유지된 것이다. 한 전 위원장이 면직됨에 따라 상임위원 공석이 2인으로 늘어난 3인 체제가 돼버렸고, 여야 합의제 기구로서의 기능이 취약해졌다. 특히 여야 구도가 여권 추천 김효재·이상인 위원 대 야권 추천 김현 위원, 즉 2대 1로 바뀌며 확실한 정부·여당 우위 체제가 됐다.
지난 8월 9일, 김효재 당시 방송통신위원장 직무대행이 전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김효재, 김현 위원의 임기는 8월 23일까지로 한 전 위원장 면직 시점을 기준으로 불과 석달도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여기에 윤 대통령이 지난 3월 더불어민주당이 추천한 최민희 상임위원에 대한 임명안 재가를 계속 미루면서 여권 우위 체제가 유지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줬다.
한상혁 위원장이 면직되고 이튿날인 5월 31일, 조선일보 기자 출신으로 한나라당 국회의원, 이명박 정부의 정무수석을 지낸 김효재 상임위원이 방통위원장 직무대행에 앉았다. 그때부터 방통위는 폭주했다. 3인 체제하에서 김효재·이상인 여권 추천 위원, 단 두 사람의 힘으로 공영방송의 근간을 뒤흔드는 의결 안건을 속전속결로 처리하기 시작했다. 임기 만료를 앞둔 김 직무대행은 무언가에 쫓기는 듯 보였다.

① ‘TV수신료 분리징수’ 시행령 졸속 개정

지난 7월 5일, 김효재 직무대행 체제의 방통위는 30년째 지켜온 공영방송의 재정적 근간을 흔드는 결정을 밀어붙였다. 상임위원 전체회의에서 TV수신료를 전기요금에서 분리해 별도로 징수하도록 하는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을 의결한 것이다. 6월 5일, 대통령실이 소관부처인 방통위와 산업통상자원부에 수신료 분리징수를 권고한 지 정확히 한 달 만의 일이었다.
노골적으로 꼼수를 동원했다. 본래 행정절차법상 입법예고를 40일 이상 하고 국민들의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 하지만 김효재 직무대행 체제의 방통위는 법령이 예외적으로 인정하는 ‘특별한 사정’도 없이 입법예고 기간을 불과 10일로 단축했다. 김효재·이상인 위원은 전체회의에서 수신료 분리징수 시행령 개정에 찬성표를 던졌고, 야당 추천 김현 위원은 안건 처리에 반대하며 퇴장해 버렸다.
우리 국민들은 1994년부터 30년째 TV 수신료를 전기요금과 함께 내왔다. 그동안 매달 전기요금과 함께 청구된 수신료는 2500원이다. KBS는 연간 재원의 절반 가량(47%, 2022년 기준 약 6270억 원)을 수신료로 충당한다. 그런데 수신료를 전기요금과 별도로 징수하면, KBS의 수신료 수입은 예년의 3분의 1 수준인 1900억 원 가량으로 급감할 것으로 추산된다. 실제로는 수신료 납부율이 더 낮아져 추산치보다 수입은 더 적어질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헌법재판소는 이렇게 판단했다.
“KBS가 공영방송사로서의 공적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면서도 아울러 언론자유의 주체로서 방송의 자유를 제대로 향유하기 위하여서는 그 재원조달의 문제가 결정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KBS가 그 방송프로그램에 관한 자유를 누리고 국가나 정치적 영향력, 특정 사회세력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하여는 적정한 재정적 토대를 확립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헌법재판소 결정 (1999.5.27 / 98헌바70)
국민들이 나눠내는 수신료야말로 공영방송의 독립성과 공정성의 토대라는 의미다. 

② 공영방송 여권 이사 숙청…KBS·MBC 이사장 동시 해임

7월 12일, 김효재 직무대행의 방통위는 TV조선 재승인 심사 부당개입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아온 윤석년 KBS 이사에 대한 해임 건의안을 의결했다. 공영방송 이사 숙청의 신호탄이었다. 김 직무대행은 자신의 임기가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시점부터, 임기 안에 공영방송 이사진 교체를 마무리 지으려는 의도를 명확히 드러냈다.
7월 25일, 방통위는 남영진 당시 KBS 이사장에게 해임제청 사전통지서 송달을 시도하면서, 공식적인 해임 절차에 착수했다. KBS의 방만 경영을 방치했다는 게 해임의 제1 사유였다. 국민권익위원회가 남 이사장의 법인카드 부정사용 의혹을 조사하고 있었는데, 조사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해임 사유에 포함했다.
바로 일주일 뒤인 8월 2일에는 마찬가지로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여권 이사들에 대한 숙청을 시작했다. 권태선 이사장과 김기중 이사에 대한 해임 절차에 착수한 것이다. MBC와 관계사의 경영 관리·감독을 소홀히 했다며 권 이사장 해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 시점, 방문진은 감사원의 특별감사를 받고 있었다. 감사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방통위는 이사장 해임부터 시도한 것이다. 심지어 해임 통보를 먼저 해놓고 추가로 회계 검사·감독에 나서기까지 했다. MBC 구성원 다수가 반발했다. 이호찬 언론노조 MBC본부장은 “조사나 검사도 하기 전에 (방문진 이사장) 해임 절차부터 시작하면, 이후에 진행되는 조사는 무엇이냐. 요식행위 아니냐”며 따져 물었다.
KBS·MBC·EBS 이사진이 8월 14일 정부과천청사에서 방통위의 공영방송 이사진 해임 강행에 항의하고 있다.
한 차례 청문회만 열린 채, 8월 14일 남영진 KBS 이사장, 21일 권태선 방문진 이사장이 해임됐다. 김효재 직무대행의 임기 막판, 불과 열흘 사이에 두 공영방송 이사장이 동시에 쫓겨나는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공석이 된 공영방송 이사 자리는 여권 인사들로 속속 채워졌다. 정원이 11명인 KBS 이사회의 경우, 해임된 윤석년 이사의 자리를 최근 보수 성향의 서기석 전 헌법재판관이 차지했다. 남영진 이사장이 쫓겨난 보궐이사 자리에는 박근혜 정부 때 KBS 이사를 지낸 황근 선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가 다시 임명됐다. 이로써 여야 구도는 4대 7에서 6대 5로 뒤집혀 KBS 이사회는 여권 이사들이 다수가 됐다. 방송·언론계 경력이 전무한 서기석 전 재판관은 KBS 이사직에 앉자 마자 23일 임시 이사회에서 자신을 포함한 여권 이사 6명의 찬성으로 나머지 이사 5명의 반대표를 꺾고 신임 이사장에 선출됐다.
김효재 직무대행 체제 방통위의 여권 이사 해임 의결에 따라 KBS 이사회 여야 구도는 기존 4대7에서 6대5로 재편됐다.
MBC 방문진 이사회는 9명으로 구성된다. 8월 초, 일신상의 사유로 자진사퇴한 임정환 이사(여당 추천)의 후임으로 이미 차기환 변호사가 임명된 상태다. 차 변호사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 MBC 방문진 이사(2009~2015년)과 KBS 이사(2015~2018년)를 지냈다.
21일 해임된 권태선 이사장에 이어 김기중 이사까지 해임되고 두 사람의 후임으로 여권 인사가 앉게 되면, 방문진 이사회의 구도도 기존 3대 6에서 5대 4로 여권이 우세해진다.
신임 방통위원장 취임에 맞춰 KBS와 MBC 모두 사장 교체를 위한 이사진 구성이 사실상 마무리되는 것이다. 
김효재 직무대행 체제 방통위의 여권 이사 해임 의결에 따라 방문진 여야 구도는 기존 3대6에서 5대4로 재편됐다.

너무나 당당했던 김효재의 퇴장과 이동관의 미소

뉴스타파 취재진은 김 직무대행 임기 만료 이틀 전인 지난 21일, 마지막 상임위원 전체회의를 마치고 방통위 심판정을 나선 그를 쫓아가 물었다. 그는 막 MBC 방문진 이사장을 해임하고 나오던 길이었다. 취재진은 임기 막바지에 이렇게 무리하게 수신료 분리징수, 양대 공영방송 이사장 동시 해임 등 치명적인 결정들을 급하게 추진한 이유가 뭔지, 상임위원 3인체제에서 고작 여권 추천 위원 두 사람이 이런 의결을 강행해도 절차상 하자가 없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김 직무대행은 너무나 당당했다. 목소리에서 망설임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임기하고 이런 결정 사항하고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국가적으로 해야 될 일은 임기에 관계없이 언제나 할 수 있는 것이고 해야 됩니다. 그게 공무원인 제게 국민들이 부여한 의무이고 저의 권한입니다. 됐습니까? … 급작스럽게 한 것은 아니고요. 제가 공무원들에게 늘 강조한 말은 절대로 어떤 일이 있든 절차를 어기지 말라, 규정을 어기지 말라, 이게 저의 원칙입니다.”

김효재 당시 방통위원장 직무대행 (2023.8.21)
김효재 전 방통위원장 직무대행이 임기 만료 이틀 전 8월 21일 전체회의를 마치고 뉴스타파 기자와 만나 질문에 답하고 있다.
퇴임이 임박했는데도 향후 직권남용 혐의로 수사와 처벌을 받을 가능성을 감수해가며, 김효재 직무대행은 방송 장악의 시간표를 앞당겼다. 이는 역설적으로 어떤 ‘한 사람’의 등장이 윤석열 정부에 얼마나 절실하고 또 중요한 일인지를 시사해준다. 바로 이명박 정부의 청와대 홍보수석을 지낸 이동관의 복귀다. 
김효재 직무대행 체제의 방통위가 KBS, MBC 방문진 이사 숙청작업에 골몰하던 7월 28일, 윤 대통령은 이동관 전 홍보수석을 방통위원장 후보자로 지명했다. 그는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중앙선대위 미디어소통특별위원장을 맡아 윤석열 후보를 지원했다. 이명박 정부에서 언론 탄압을 주도한 기술자라는 오명을 안고 있는 이 전 수석을 윤 대통령은 “방송의 공정성과 공공성을 확립하고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적임자”로 치켜세웠다.
8월 1일, 이동관 방통위원장 후보자는 인사청문회 준비 첫 출근길부터 논란의 씨앗을 뿌렸다. 마치 양대 공영방송과 특정 언론매체를 겨냥한 듯이 “공산당 기관지” 운운했다. 어떤 언론이 공산당 기관지라고 보느냐는 기자 질문에는 “그건 국민들이 판단하시고 본인들이 잘 아실 거라고 생각한다”며 만족스러운 듯 미소지었다.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가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지난 18일, 이동관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가 진행됐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의 반발로 인사청문 경과보고서 채택은 불발됐지만, 윤 대통령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를 방통위원장에 임명할 가능성이 크다. 
김효재 전 직무대행의 사전 작업 덕분에 이동관 후보자는 방통위원장 자리에 앉아도 자신의 손에는 피를 묻힐 필요가 없게 됐다. 임기를 시작하기도 전에 KBS, MBC 두 공영방송 이사회 여야 구도는 이미 정부·여당 우위로 재편됐다. 이후 두 공영방송 이사회가 착수할 사장 교체 작업을 지켜보기만 하면 된다. 결국 김 전 직무대행은 퇴임 전 자신의 말대로 “국민이 부여한 의무와 권한”을 최선을 다해 휘둘러 이동관 신임 방통위원장 앞에 꽃길을 깔아준 셈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임명한 이상인 상임위원 외에, 국민의힘은 이동관 후보자와 함께 이명박 정부 시기 공영방송 탄압의 대표주자로 꼽히는 인물을 한 명 더 지원군으로 보내줄 예정이다. 국민의힘은 김효재 전 직무대행 후임으로 지난 대선 때 윤석열 후보의 언론특보를 지낸 이진숙 전 대전MBC 사장을 추천했다. 이 전 사장은 이명박 정부 시기 김재철 사장 체제의 MBC에서 구성원들이 대거 좌천·해임되고, 공정방송 사수 투쟁과 장기 파업에 나설 때 MBC 홍보국장으로 ‘김재철 체제’의 입이 되어 노조 공격의 한 축을 맡았던 사람이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에는 “보도본부장으로 유가족 폄훼 보도 등 세월호 보도 참사를 야기한 당사자이자 책임자(언론노조 MBC본부)”로 꼽힌다.
이동관·이진숙·이상인, 정부 여당 측 위원이 주축이 될 6기 방통위가 출범을 앞두고 있다. 이동관 체제 방통위에서는 ‘공영방송 민영화’가 가장 뜨거운 쟁점이 될 전망이다. 올 12월에는 지상파 3사 재승인 심사가 예정돼 있다. 양 공영방송이 재허가 탈락 점수를 받게 된다면 KBS2와 MBC의 소유구조 전환, 즉 민영화 추진 주장에 불이 붙을 수 있다. 특히 KBS는 이미 수신료 분리징수 시행의 여파로 비상경영체제에 빠져 있다. 공공기관 보유 지분 30.95%로 공영성을 유지해 온 보도전문채널 YTN 역시 바람 앞의 등불처럼 완전 민영화 위기에 놓여 있다. 지지부진했던 공공기관 지분 매각 작업이 이동관 방통위 체제에서 속도를 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 모든 일을 주도할 이동관 방통위원장 후보는 인사청문회에서 공영방송 체제에 대한 확고한 불신, 반대로 방송 민영화에 대한 소신을 밝힌 바 있다. 
“자유로운 정보 소통을 위해 공영방송은 최소화하고, 민영화라는 표현은 좋지 않지만 정보의 유통도 경쟁 체제 속에서 소비자가 선택하도록 하는 게 올바르다고 본다.”

이동관 방통위원장 후보자 / 2023.8.18 국회 인사청문회
제작진
영상취재최형석 이상찬
편집정지성
CG정동우
디자인이도현
웹출판허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