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보다 못한 기사...국민건강 해치는 '기사형 광고'

2019년 11월 15일 23시 28분

언론의 생명은 신뢰다. 언론 사업은 뉴스와 프로그램 등을 통해 정보를 판매하는 비즈니스지만 사실은 그 속에 담긴 신뢰를 판다고도 할 수 있다. 올해 영국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가 공개한 세계 38개 국가 언론신뢰도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들의 언론 신뢰도는 22%였다. 조사 대상 국가 중 꼴찌다. 그것도 4년 연속이다. 하지만 한국에선 망하는 언론사가 거의 없다. 왜일까?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뉴스타파는 한국 언론의 기이한 수입구조에 주목했다. 그 중 하나가 기사를 가장한 광고다. 또 하나는 세금으로 조성된 정부의 홍보, 협찬비다. 이 돈줄이 신뢰가 바닥에 추락해도 언론사가 연명하거나 배를 불리는 재원이 되고 있다. 여기엔 약탈적 또는 읍소형 광고, 협찬 영업 행태가 도사리고 있다. 이런 비정상적인 구조가 타파되지 않으면 우리 사회에서 언론이 정상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게 불가능하다. 뉴스타파는 이 시대 절체절명의 과제 중 하나가 언론개혁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관련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추적 결과물은 언론개혁 계기판 역할을 할 뉴스타파 특별페이지 ‘언론개혁 대시보드’에 집약해서 게재한다.-편집자 주

관련 기사: 인보사를 '기적의 신약'으로 만든 언론...국민건강 해치는 '기사형 광고'(영상 링크)

학문적으로도 문제가 있고요. (이 병원이) 특허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의학적으로 인정되지 않은 거고요. 신의료기술 평가를 통과하지도 않은 기술이고요... (의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은) 특허는 의료법상 광고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취재진이 서울 서초구에 있는 A통증의학 전문 의원을 홍보하는 기사를 내밀며 “이 기사의 내용이 광고로 나갈 수 있는지”를 묻자, 이세라 대한의사협회 의료광고심의위원장이 한숨을 내쉬며 한 말이다.  

의료법에 따라 의료광고는 대한의사협회, 대한치과의사협회, 대한한의사협회 등 의료단체의 자율심의기구로부터 사전심의를 받아야 한다. 이세라 위원장이 맡고 있는 대한의사협회 의료광고심의위원회는 2019년 한 해 동안 약 1만 5000건의 의료 광고를 승인했다.

심의 통과 어려운 의료광고, 기사 형태로 퍼져 나가

조선일보는 A통증의학 전문 의원을 홍보하는 내용의 기사를 2018년부터 현재(2019년 11월 15일)까지 무려 20건 게재했다. 6명의 기자가 동원됐는데, 기사의 구성과 내용은 대체로 비슷했다. 만성통증을 치료하는 것이 왜 어려운지를 설명한 뒤, 이 병원 대표 원장이 개발해 특허를 받은 혁신적인 의료기술로 환자의 고통을 근본적으로 치료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식이었다.

한국광고자율심의기구의 2019년 상반기 ‘기사형 광고 심의 결정 자료’에 따르면, 같은 기간 A 의원을 다룬 조선일보 기사 6건은 모두 ‘기사형 광고’로 간주돼 주의나 경고 처분을 받았다. 광고 표시를 하지 않거나 기자 이름을 명시해, 마치 정상적인 기사인 것처럼 독자를 속였다는 것이다.

또 다른 병원의 사례도 비슷했다. 한국광고자율심의기구에 따르면, 서울 영등포구에 위치한 B정형외과를 홍보하는 ‘기사형 광고’는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 등에 6개월 동안 모두 4건 게재됐다. 취재진은 이세라 위원장에게 이 기사들도 보여주고, 기사 내용이 광고 심의를 통과할 수 있는지 물었다. 다음은 이세라 위원장과의 대화 내용. (괄호 내용은 기자가 임의로 적은 것이다.)

 
▲ 이세라 대한의사협회 의료광고심의위원장

- 환자 수술 성공률이 90%가 넘는다(고 기사에 적혀 있는데...) 

“과장입니다.”

- 만약 이 기사에 쓰인 내용을 광고에 넣겠다면요?

“부적절합니다.”

- (이런 기사가) 심의위원회에 올라오면 어떻게 심의하시죠?

“근거를 제시하라고 하죠. 서류를 제시하고, 근거를 제시하라고 하면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는 일이 많습니다.”

이세라 대한의사협회 의료광고심의위원장 인터뷰

이 위원장의 말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광고였다면 의료단체들의 사전심의에 걸러졌어야 할 내용이 기사에서는 걸러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글로벌 정보분석기업 닐슨이 2015년 발간한 ‘광고 신뢰도에 관한 글로벌 소비자 보고서’에 따르면, 독자들은 신문기사가 신문광고보다 더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심의기구는 물론 언론사 스스로도 광고보다 기사를 더 꼼꼼히 관리해야 하는 이유다. 하지만 의료 분야에서는 이런 상식이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 광고를 검증하는 장치는 있는데, 더 중요한 ‘기사 검증 장치’는 아예 존재하지 않기 때문. 이런 기묘한 상황은 언론사들이 돈을 목적으로 ‘기사형 광고’를 쏟아내는 데 일종의 토양 노릇을 하고 있다.

2002년 복지부의 ‘기사형 광고’ 금지 조치, 2007년 헌재 결정 이후 무력화

한 의료광고 심의 관계자는 의료분야 ‘기사형 광고’가 처음 문제로 떠오른 때를 2002년 쯤으로 기억했다. 실제로 2002년 1월, 당시 보건복지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기사형 광고 전면 금지’를 발표한 바 있다.(아래 사진 참조) “기사성 의료 광고에 특정의료기관의 명칭 등을 기재한 경우 의료 광고로 유권해석한다”는 내용이었다.  

보건복지부가 느닷없이 이런 결정을 내린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의료법을 우회하는 변종 기사들이 속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가 ‘기사형 광고’를 금지하는 유권해석을 내놓을 당시 의료법은 ‘학술 목적 이외의 의료 광고’를 모두 금지하고 있었다. 의료기관의 주소 등 몇 가지 정해진 항목만 광고가 가능하고 나머지는 일체 홍보할 수 없는 일괄 규제 방식이었다. 그런데 이런 규제를 피하는 기사들이 여성지 등 잡지를 중심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상 광고지만 형태는 기사인 일명 ‘기사형 광고’의 출현이었다.  

의사협회에서 의료광고 심의를 담당하는 한 관계자는 당시를 이렇게 기억했다.

당시 의료법은 의료기관의 주소 등 몇 가지만 광고에 쓸 수 있을만큼 규제가 심했습니다. 그러니까 이걸 피하려고 ‘기사형 광고’가 나오게 된 거죠. 의료 광고가 기사형태로 나가면서 뭔가 객관적으로 입증된 것처럼 보이니까, 의료기관들이 이런 기사를 많이 원한 것도 이유고요. 한마디로 ‘좋아 보인다’는 거였죠. 그래서 복지부가 이런 문제를 근절한다며 ‘기사형 광고’를 금지하는 유권해석을 내린 겁니다. 그 뒤로는 기사에 ‘OO외과 전문의 OOO’ 정도만 쓸 수 있었습니다.

의사협회 의료광고 심의 관계자

 
▲ 보건복지부의 2002년 보도자료. 보건복지부는 이날 기사에 병원 이름이 들어가면 광고로 간주하겠다는 유권해석을 밝혔다.

2002년 시작된 보건복지부의 ‘기사형 광고 금지’ 유권해석은 2005년 헌법재판소(이하 헌재)가 “의료법의 의료광고 금지 조항은 위헌”이라는 결정(헌법재판소 2003헌가3 결정)을 내리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당시 헌법재판소는 “모든 의료광고를 금지하는 것이 헌법상 비례의 원칙을 위배하여 의사들의 표현의 자유와 직업수행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판단했다.

헌재 결정 이후 의료법의 의료광고 금지 조항은 대폭 수정됐다. ‘해도 되는 것’만 규정하던 조항이 ‘하면 안 되는 것’을 규정하는 식으로 전환된 것이다. 이때 ‘기사형 광고’를 금지하는 조항도 새롭게 만들어졌다.  

 
2007년 개정된 의료법에 따라 의료광고를 ‘기사형 광고’로 게재하는 것은 전면 금지됐다.

바뀐 의료법에 ‘기사형 광고 금지’ 조항이 들어갔지만, 복지부의 유권해석은 헌재 결정에 따라 느슨해졌다. 광고 규제도 당연히 풀리기 시작했다. 규제가 풀리면서 ‘기사형 의료광고’의 양은 2002년 이전처럼 다시 늘어났다. 한 의료 분야 심의 관계자는 “광고 표시 없는 기사형 광고에 대한 처벌 규정이 사라진 게 큰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2010년에 (기사와 광고를 구분하지 않을 때 부과되던) 과태료 규정이 없어졌습니다. 기자분들, 광고 쪽 담당하는 기자분들에 대한 규제가 없어진 겁니다. 자연스레 의료 분야 기사형 광고도 늘어났죠.

의료 분야 심의 관계자

그럼 현재 의료법이 금지하고 있는 의료기관 홍보 ‘기사형 광고’는 얼마나 나오고 있을까. 뉴스타파는 한국광고자율심의기구의 ‘기사형 광고 통계’에서 해당 건수를 확인해 봤다. 그 결과, 2010년 74건이었던 의료 관련 기사형 광고가 2017년엔 무려 497건까지 증가한 것으로 확인됐다. 2018년엔 321건, 2019년 상반기에는 155건이었다.

 
▲ 한국광고자율심의기구가 발표하는 ‘기사형 광고’ 통계 중 병원 관련 기사의 연도별 추이

2019년 상반기 심의 결정 자료에 따르면, 같은 병원을 반복적으로 홍보한 사례도 여러 건 있었다. 1위는 더와이즈치과병원(서울 강서구)이었다. 이 병원을 소개하는 기사형 광고는 2019년 상반기에만 9건이 심의에 걸렸다. 대부분 “대학병원에서도 다루기 어려워하는 환자들을 이 병원의 신기술로 잘 치료해줬다”는 내용이었다.

광고자율심의기구가 올 상반기 경고나 주의 결정을 내린 기사형 광고 가운데 두 번 이상 등장한 병원은 모두 21곳에 달했다.

의약품 광고 규제하는 약사법에도 구멍

2019년 상반기 광고자율심의기구 심의자료에는 의약품을 홍보한 기사형 광고가 경고나 주의를 받은 사례도 84건 있었다. 1위는 종근당의 고함량비타민제 벤포벨이었다. 일반의약품인 벤포벨 홍보 기사는 국민일보 3건을 비롯해 모두 11건이나 신문지면에 게재됐다. 일반의약품인 대웅제약의 우루사도 8건(한국경제, 조선일보 각 3건, 매일경제, 동아일보 각 1건), 명인제약의 이가탄이 6건으로 3위였다. 모두 광고 표기를 하지 않거나, 기자 이름을 표기해 편집 기준을 위반한 사례였다.

약사법 68조는 “의약품 등은 그 효능이나 성능을 암시하는 기사ㆍ사진ㆍ도안, 그 밖의 암시적 방법을 사용하여 광고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약사법에 따라 의약품 사전 심의를 하는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의약품광고심의위원회는 “기사형 광고 자체를 금지하지는 않지만, 대신 ‘애드버토리얼’ 등 광고임을 표시하는 문구를 붙여야 한다”는 걸 가이드라인으로 정하고 있다. 하지만 약사법과 가이드라인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의약품 심의 관계자는 “기자의 바이라인이 들어가면 기사로 오인할 수 있다. 그런 광고가 심의에 들어오면 바이라인을 떼게 한다”고 말했다.


 
▲ 2019년 상반기 의약품을 홍보한 ‘기사형 광고’의 업체별 순위

더 심각한 문제도 발견됐다. ‘기사형 광고’가 ‘전문의약품 광고’를 금지하는 약사법 조항을 우회하는 경로로 악용되고 있는 경우다. 광고자율심의기구 심의결정 자료를 보면, 2018년부터 ‘인보사’ 등 전문의약품을 기사 형태로 홍보한 경우가 여러 건 나온다. 또 특정 병원에서 ‘인보사’를 잘 쓴다는 내용 등 병원을 앞세운 ‘기사형 광고’도 다수 확인됐다. 모두 전문의약품 광고 규제를 무력화시키는 사례였다.

“기사와 광고 구분 어려워 제재 곤란”... 광고보다 못한 기사 많다

이렇게 상황이 심각한데도, 뉴스타파가 취재 중 만난 광고 심의 관계자들은 “현실적인 대안마련이 힘들다”고 입을 모았다. “광고가 실리는 플랫폼이 광고면이 아니라 기사면이기 때문에 사전에 파악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한 심의기구 관계자는 “광고주 측에서 ‘이건 광고가 아니라 기사’라고 하면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의료분야 전문가들은 이미 여러차례 복지부 측에 ‘기사형 광고 문제 개선방안’을 요구해 온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뚜렷한 결론은 내지 못했다. 이세라 위원장의 얘기다.

저희가 보건복지부에 규정을 마련해달라고 건의했습니다. 우리가 기준을 만드는 것보다 법령에 들어있으면 좀 더 편하니까...보건복지부도 문제를 인지하고는 있지만, 현실적인 대안마련을 어려워하고 있습니다. 

이세라 의사협회 의료광고심의위원장

취재진은 의료법을 담당하는 보건복지부에 연락해, 이런 의료계의 의견을 전달하고 입장을 물었다. 하지만 보건복지부의 담당자는 어려움만 토로할 뿐, 뾰족한 해법은 제시하지 못했다.

신문사 차원의 전문가 의견 전달과 광고의 경계가 무엇인가는 정말 어려운 문제입니다. 광고인 것 같은데 광고라고 말하기는 쉽지 않은 부분이 있습니다. 한마디로 심증은 있는데, 물증은 없는 상황입니다. 게다가 문제가 있다면 기사에 칼질을 하거나 손을 대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신중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언론에서 자율적으로 자정을 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

현행 의료법(56조)은 ‘부작용 등 중요한 정보를 누락하는 광고를 금지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제56조(의료광고의 금지 등) ②의료인등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의료광고를 하지 못한다.

7. 의료인등의 기능, 진료 방법과 관련하여 심각한 부작용 등 중요한 정보를 누락하는 광고

의료법

이 법에 따라, 의료 분야 전문가들은 ‘부작용을 언급하는지’ 여부를 광고의 적절성을 판단하는 중요한 잣대로 판단한다. 실제로 앞서 소개한, 조선일보에 20건에 달하는 ‘기사형 광고’를 낸 A통증의학과 의원의 신문 광고에는 “치료 후 부작용으로 주사통증이나 출혈, 염증, 재발이 생길 수 있다”는 내용의 부작용 위험이 적혀 있다.(아래 광고면 참조) 그러나 정작 이 병원을 홍보한 ‘기사형 광고’에는 이 같은 부작용이 언급되지 않았다. 취재진이 확인한 결과, 이런 식의 사례는 너무 많아 일일이 헤아리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한 병원광고 심의 관계자는 “의료법에 정해진대로 성실하게 사전심의를 받는 병원들만 손해를 보는 세상”이라고 한탄했다.

 
▲ 의료광고 심의를 통과한 A통증의학과 의원 지면광고 일부. 이 의원을 소개하는 ‘기사형 광고’와는 달리 특허를 언급하지 않고, 치료방법도 직접 만든 이름이 아닌 일반적인 이름으로 소개한다. 가장 큰 차이점은 ‘치료후 부작용으로 주사통증이나 출혈, 염증, 재발이 생길 수 있다’고 부작용을 명시한 것이다.

제작진
취재오대양 신동윤
촬영정형민 오준식
CG윤석민
디자인이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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