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랑하는 숲

2019년 04월 05일 08시 02분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뉴스타파는 2018년부터 독립PD와 독립영화감독을 대상으로 작품 공모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제주 비자림로 확장공사 이후 비자림로 삼나무 숲을 사랑하는 시민들을 기록한 이번 작품은 뉴스타파의 제작비 지원을 받아 제작됐습니다. 촬영과 연출을 맡은 부성필 감독은 2014년 뉴스타파 하계 연수과정을 수료했습니다. - 편집자 주

# 고등학교 시절 아지트였던 햄버거 가게가 문을 닫다

나(부성필 감독)는 제주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4년 전, 대학을 졸업 하고 취직을 하지 못한 나는 압박감을 못 이겨 서울로 일자리를 찾아 떠났다. 지난 1월 제주에 있는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친구는 15년 동안 이어오던 어머니의 햄버거 가게가 문을 닫는다며 그 마지막을 영상으로 남기고 싶다고 했다. 가게는 고등학생 시절, 우리들의 유일한 아지트였다.

어머니에게 왜 문을 닫는지 물었다. 어머니는 1,500원 짜리 햄버거로 승부하려면 ‘박리다매’가 돼야 하는데 ‘다매’가 안 된다고 하셨다. 물가와 임대료 상승의 이유도 있었지만 최근 우후죽순 생겨난 대기업 편의점들이 치명타였다. 편의점에서 더 다양하고 싼 가격에 햄버거를 내놓기 시작하면서 어머니의 햄버거 가게는 경쟁력을 잃은 것이다.

어머니는 다른 일거리를 알아보겠다고 담담하게 말씀하셨지만 나는 슬펐다. 어머니가 할 수 있는 일을 떠올려봤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개발로 인해 제주가 점점 살기 좋아진다고 말하지만 나는 내 주변 사람들이 점점 더 힘들어지고 추억의 공간들이 사라지는 것을 지켜봤을 뿐이다.

# 제주 도청 앞 천막촌을 가다

나는 제주도청 앞으로 갔다. 2018년 겨울 무렵, 비자림로와 제2공항을 비롯한 제주의 난개발을 우려하는 시민들이 제주도청 앞에 모이기 시작했다. 천막이 하나 둘씩 늘어갔고, 지금 이곳은 ‘도청 앞 천막촌’이라 불린다. 시민들과 아이들은 제주도청 앞에 모여 제주를 지키자며 합창을 한다.

▲ 제주도청 앞 천막촌

도청 앞 천막촌이 생기고 며칠 뒤 제주도는 제2공항 기본계획수립 용역을 발표했다. 시민들은 원희룡 지사를 만나기 위해 도청사 현관에서 기다렸다. 하지만 도지사는 시민들을 만나주지 않았다. 원희룡 지사가 도청에 들어오거나 나갈 때 마다 공무원들이 내려와 시민들을 떼어놓고 피켓을 치우며 도지사가 지나가도록 ‘인간 통로’를 만든다. 하루에 서너 번씩 벌어지는 풍경이다.

# 제2공항 건설 예정지를 가다

도청앞 천막촌 사람들과 함께 제주 제2공항 건설 예정지인 성산읍으로 간다. 제주시에서 성산읍으로 가려면 비자림로를 거쳐야 한다. 비자림로를 지나면 금백조로가 나온다. 금백조로를 지나 성산읍 수산리에 이르렀다. 큰왕메 오름이 보인다. 이 아름다운 오름은 제2공항이 건설되면 깎여지거나 혹은 사라질 수도 있다.

▲ 제주 제2공항 건설 예정지

안개때문에 제2공항 건설 예정지가 잘 보이지 않았는데, 알고 보니 미세먼지였다. 제주의 하늘만큼은 깨끗하다는 말은 이제 옛말이 됐다. 비자림로 확장공사의 조속한 시행을 요구하는 현수막의 결론은 언제나 지역경제발전이다. 제주의 끝없는 개발이 지역 원주민들의 삶을 나아지게 할 수 있을까.

# 베어져 쓰러지는 비자림로 공사현장을 가다.

▲ 비자림로 확장공사 벌목 현장

비자림로 공사가 본격 시작됐다. 시민들은 기록을 위해 벌목이 이뤄지고 있는 숲으로 향했다.

그저 지켜보고 기록만 하려 했지만 나무가 잘려나가는 현장을 보고 견딜 수 없었다. 너나없이 나무를 향해 뛰어갔다. 나무를 안아보고, 나무를 자르지 말아 달라고 외쳐보지만 전기톱과 포크레인의 소음 앞에 묻히고 만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 나무들은 수없이 베어지고 쓰러진다. 비자림로 숲에는 야생화, 노루, 올챙이, 도룡뇽 그리고 수많은 새들이 삼나무에 기대어 살고 있다.

# 비자림로를 지키는 사람들을 만나다

비자림로 확장공사 현장에서 사람들을 만났다. 2년 전 토종씨앗을 심을 땅을 찾아 제주에 온 그린씨.  10여 년 전, 고향인 제주로 다시 돌아온 친구 승민과 그의 친구 선경도 현장을 지키고 있었다. 경기도 파주에서 제주로 정착한 만화가 김홍모 씨, 제주에서 태어나 비자림로와 가까운 곳에 서점을 운영하는 김키미 씨 등 여러 사람들을  만났다.

비자림로에 다녀간 대부분의 언론들은 그저 ‘환경운동가’와 ‘개발업체’의 대결 구도라는 프레임으로만 보도한다. 그게 속상하고 불편하다. 편리와 발전을 명분삼아 제주에 벌어지고 있는 온갖 개발사업은 과연 올바른 결정일까? 나는 나만의 방식대로 비자림로와 그 숲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기록하고 있다.

 취재 연출 부성필, 김성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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