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 해병 사건, 흔들리는 거짓과 침묵의 삼각형

2024년 07월 04일 20시 00분

고 채수근 해병 사망 1년, 채 해병 사망 원인과 이 수사를 둘러싼 외압 의혹을 둘러싸고 지난 1년 간 세 개의 수사기관에서 각각의 수사가 진행됐다. 
첫째는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의 항명 혐의 사건이다. 현재 재판이 진행되고 있을 정도로 진전이 빠르다. 둘째는 채 해병 사망의 원인을 규명하는 경북경찰청 수사다. 그리고 마지막 셋째는 수사 외압 의혹을 규명하는 공수처 수사다. 둘째와 셋째는 진행이 더디다.  
박정훈 항명 혐의 사건 외 다른 사건의 수사 진행이 더딘 이유는 핵심 관계자들이 진술을 번복하거나 입을 다물고 있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는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과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 그리고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이 있다. 
뉴스타파는 군 검찰의 수사 기록 2천여 쪽과 핵심 인물들의 통화기록 5천여 건을 입수해 이들 3인방을 중심으로 집중 분석했다.

이종섭 전 장관의 ‘번복할 결심’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은 채 해병 사건 수사 외압 의혹에서 대통령실과의 핵심 연결고리로 의심받는 인물이다. 이 전 장관은 2023년 7월 30일 오후 4시 30분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과 박정훈 당시 해병대수사단장으로부터 채 해병 사망 원인 사건 수사 결과를 대면 보고 받았다. 그리고 결재란에 서명했다. 
당시 이 전 장관이 해병대의 보고를 받고 승인한 내용은 모두 4가지였다. ▲현장 간부부터 임성근 1사단장까지 모두 8명을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자에 포함 ▲임 사단장에 대한 인사 조치와 후속 사단장 인사 계획 ▲수사 결과와 이 같은 후속 조치를 7월 31일 국회 및 언론에 공개 ▲8월 2일 경찰에 사건 이첩 등이다. 
그러나 다음 날인 7월 31일 오전 11시 56분, 이종섭 장관은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어 전날 자신이 결재한 내용을 완전히 뒤집으라고 지시했다. 그날 오후 1시 30분과 2시에 각각 예정돼 있던 국회 설명과 언론 브리핑 일정을 취소하라는 지시였다. 오후 1시 30분 이종섭 장관은 긴급 회의를 소집해 8월 2일로 예정된 경찰로의 사건 이첩도 보류하고 임성근 1사단장을 다음 날부터 정상 임무로 복귀시키라는 지시를 했다. 해병대가 10여일 간 절차에 따라 준비해 승인받은 채 해병 사건 처리 방침은 이 장관의 결재 번복으로 한순간에 휴지조각이 됐다. 이 번복 결정에 대해 이 전 장관은 “채 해병과 수중 수색을 함께했던 초급 간부까지 형사 책임을 지는 것은 과도하다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전 장관은 정말 초급 간부를 구제하기 위해 자신의 결정을 번복한 것일까. 
우선 7월 30일 박정훈 해병대 수사단장과 함께 이 전 장관에게 대면 보고를 했던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의 진술을 보자. 김 사령관은 이 대면 보고로부터 사흘 뒤인 8월 2일에 진행된 조사에서는 물론 8월 9일, 17일에도 진행된 군 검찰 조사에서 초급 간부에 관한 이 전 장관의 문제 제기가 있었다는 진술을 전혀 하지 않았다. 대면보고 당시 김계환 사령관이 적었다는 업무 수첩에도 초급 간부와 관련된 내용은 전혀 없었다. 김계환 사령관은 당시 이 전 장관이 ‘여단장이 왜 혐의자로 포함했는지’와 채 해병 사망 현장에 대한 일부 사실이 기존 보고와 왜 달라졌는지’에 대해서만 물었다고 진술했다. 
2023년 8월 17일 진행된 국방부 검찰단 3차 조사에서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은 이종섭 전 장관이 7월 30일 대면 보고 당시에는 여단장의 혐의자 포함 여부와 변경 보고된 사고 당시 상황에 대해서만 질문했다고 진술했다.
그런데 8월 29일 군 검찰의 4번째 조사에서 김계환 사령관의 말이 달라진다. 김 사령관은 4회 조사에서 “3회 조사할 때 정확히 기억이 안나고 헷갈려서 그 때 정책실장이 혐의자 중 5번에서 8번(초급 간부들)에 대해서 발언했었다고 진술한 사실이 있는데, 제가 기억을 더듬어 생각해 보니까 그 때 장관님이 현장책임자 5번에서 8번을 말씀하시며 현장책임자들에 대한 부분을 물어보셨다”며 진술을 번복했다. 공교롭게도 김계환 사령관의 진술 번복은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이 국회에서 초급 간부가 혐의자에 포함되는 것이 부당하다고 판단해 결재를 번복했다고 밝힌 8월 21일 이후였다. 
지난 해 7월 31일, 이종섭 전 장관이 긴급 소집한 회의에 참석했던 정종범 해병대 부사령관의 메모에도 ‘초급 간부’와 관련한 내용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정종범 부사령관은 이 메모를 토대로 회의에 참석하지 못한 김계환 사령관과 해병대 사령부 참모들에게 장관의 지시 사항을 전달했다. 정 부사령관의 군 검찰 진술조서에도 이 전 장관이 7월 31일 긴급 회의 당시 초급 간부를 언급했다는 내용은 등장하지 않는다.
지난해 7월 31일 오후 1시 30분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이 소집한 긴급회의에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 대신 참석한 정종범 부사령관이 장관 지시 사항을 받아적었다.
명확한 사유가 하달되지 않은 채 진행된 이 전 장관의 갑작스러운 결재 번복으로 군 실무자들이 크게 당황했던 사실도 확인된다. 예정된 언론 브리핑을 갑자기 취소한 후 기자들에게 이유를 설명해야 했던 이윤세 해병대 공보정훈실장은 “(국방부) 대변인께 어떻게 하느냐고 제가 물어보니까 장관님 지시로 취소됐다고 기자들에게 말하면 안된다고 들었고, 뭔가 추가로 확인할 점이나 보강할 점이 있어서 협의 중이라고 답변을 받았다”고 군 검찰 조사에서 진술했다. 
초급 간부 때문에 결재를 번복했다는 이 전 장관의 주장은 명확한 근거가 나오지 않고 있는 반면, 윗선의 개입을 방증하는 정황 증거는 하나 둘씩 새롭게 확인되고 있다. 특히 이종섭 전 장관은 결재 번복 당시 대통령실로부터 연락을 받은 적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김계환 사령관에게 결재 번복을 지시하기 불과 2분 전인 7월 31일 오전 11시 54분, 이 전 장관이 ‘02-800’으로 시작되는 대통령실 전화를 받은 사실이 뒤늦게 확인된 것이다.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의 침묵

지난해 7월 30일 해병대 수사단이 이종섭 장관에게 보고한 최초의 수사 결과에 따르면 임성근 1사단장은 형사 책임을 져야 했다. 임성근에 대한 인사 조치도 당연히 불가피했다. 후임 사단장도 임명해야 했다. 장관에 대한 대면 보고에 동석했던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은 보고 이후 이종섭 장관과 둘만 남아 임성근에 대한 인사 조치와 후속 인사를 논의했다.  
그러나 다음 날 이 전 장관의 결재 번복과 함께 임 사단장에 대한 인사 조치는 없던 일이 됐다. 이종섭 장관이 김계환 사령관에게 7월 31일 임 사단장을 휴가 처리하는 동시에 다음 날부터 정상 출근 시키라는 지시를 내린 것이다.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이 장관의 이같은 결정에 의문을 품고 이유를 물었다는 흔적은 발견되지 않는다. 장관으로부터 직접 결재 번복 전화를 받은 김 사령관 본인조차, 번복 사유를 명확하게 인지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7월 31일 장관의 결재 번복 이후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은 참모 회의를 소집했다. 이 회의에 참석했던 이윤세 공보정훈실장은 군 검찰 조사에서 “모두 있는 자리에서 (사령관이) ‘사건 이첩은 어떻게 해야되지?’라는 취지로 말씀을 하셨던 것 같다”고 진술했다. 
이 장관이 김 사령관에게 어떤 사유도 밝히지 않고 결재 번복을 지시한 것인지, 혹은 김 사령관이 부하에게도 밝히기 부담이 될 만큼 장관으로부터 부당한 지시를 받은 게 아닌지 의문이 제기될 수 밖에 없는 대목이다. 
이 전 장관 측은 임성근 사단장에 대한 인사 조치를 번복한 적이 없다는 입장이다. 애초에 7월 30일 보고 당시 인사 조치를 결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번복도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전 장관 측은 7월 30일 보고 당시 장관은 유보적 의견을 밝혔으나 김 사령관이 스스로로 임성근 사단장을 사령부로 분리파견 조치를 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다음 날인 7월 31일 휴가 조치에 대해서도 장관은 지시를 한 게 아니라 ‘아이디어’를 낸 것에 불과했다고 주장했다.
김계환 사령관이 장관의 결재 번복을 불법으로 의심했던 정황도 확인된다. 김 사령관은 지난 해 8월 17일 군 검찰에서 진행된 3회 조사에서 “박정훈 대령이 이틀 동안 계속 ‘외압이니, 수사개입이니’라는 이야기를 반복했기 때문에 당시까지는 박정훈 대령이 그런 이야기를 한 부분이 맞는 것으로 신뢰하고 있었다”며 “장관님께서 말씀하신 ‘법무관리관과 박정훈 대령이 법적 검토를 하고 조율하라’는 부분이 직권남용, 여론 악화, 불신조장 등의 위험성이 많은 부분에 관한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은 지난해 8월 28일 국방부 검찰단에 제출한 진술서에서 이 전 장관이 전날 결정 사항을 갑자기 번복한 이유가 이른바 'VIP 격노' 때문이라고 김계환 사령관에게서 전해 들었다고 적었다.
박정훈 대령의 주장에 따르면 ‘VIP 격노설’의 최초 진원지는 다름아닌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이다. 그러나 김 사령관은 극구 부인하고 있다. 박 대령은 신범철 당시 국방부 차관으로부터 문자를 받은 김계환 사령관이, 지난 해 7월 31일 윤석열 대통령이 해병대 수사단의 수사 결과를 보고 받은 후 ‘격노'한 사실을 전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군 검찰 조사 및 군사법원 증인 신문에서 김계환 사령관은 신 차관으로부터 그런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받은 사실도 없고 박 대령 앞에서 격노라는 단어를 쓴 적도 없다고 부인했다. 그러나 최근 진행된 국회 청문회에서는 “수사 중인 사안이라 언급할 수 없다”고 말했다. 명백한 부인에서 진술 거부로 입장이 바뀐 것이다. 

외압의 실행자? 국방부 법무관리관에게 쏠린 시선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도 ‘외압 의혹’의 핵심 당사자다. 이 사건에서 최초로 ‘수사 외압’ 의혹이 불거진 것 자체가 박정훈 해병대 수사단장이 “유재은 법무관리관이 외압을 행사했다”고 폭로하면서부터다. 당초 박 대령의 주장에 대해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던 유재은 법무관리관의 진술에 최근 균열이 생기면서 외압 의혹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이 지난해 8월 1일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과 통화하며 받아적은 메모를 보면 유 법무관리관은 '혐의자를 특정짓는 것이 맞지 않다'고 해병대 측에 말했다.
지난 5월 박정훈 대령의 항명 혐의 재판에서는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이 지난 해 8월 1일 작성한 메모가 증거로 채택됐다. 김계환 사령관이 유재은 법무관리관과 통화를 하면서 작성했다는 메모에는 “(수사 보고서에) 혐의자는 특정짓는 것이 맞지 않다”는 유 법무관리관의 조언 내용이 등장한다. 박 대령 측이 사실 확인을 요구하자 당시 증인으로 출석한 유재은 법무관리관은 “저런 취지의 말씀을 드린 적이 있다”며 시인했다. 유재은 법무관리관이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의 부하이자 해병대 수사단장이었던 박정훈 대령에게도 ‘혐의자 삭제’ 등 수사 결과 축소 지시를 내렸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릴 수 밖에 없는 대목이다. 
유재은 법무관리관은 최근 출석한 국회 청문회에서 대통령실 개입 의혹의 실마리를 제시하는 발언을 내놓기도 했다. 경찰에 이첩한 채 해병 사건 기록을 국방부가 다시 회수한 지난해 8월 2일 오후 1시 42분 임기훈 대통령실 국방비서관은 유재은 법무관리관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이 전화와 관련해 유 법무관리관은 “임 비서관 전화가 와서 ‘경북(경찰청)에서 나한테 전화가 올 거다’라는 말을 했다”고 털어놨다. 임기훈-유재은 사이의 통화 시점은 국방부가 수사 기록 회수 작업에 착수하기 이전으로, 국방부보다 대통령실이 먼저 수사 기록을 회수하는데 개입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핵심 3인방 진술의 ‘균열’에도 실체 규명은 제자리 걸음

채 해병 사망 원인 수사 외압 및 대통령실 개입 의혹의 핵심 당사자 3인의 진술이 곳곳에서 균열을 드러내고 있지만, 실체 규명을 위한 수사는 여전히 제자리 걸음이다. 박정훈 대령 측 김규현 변호사는 “현재 공수처 수사 단계는 해병대 사령부의 끝부분, 그리고 국방부의 초입 부분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보인다”라며 “언제 국방부 수사를 끝내고 대통령실 관계자들에 대한 수사에 착수할 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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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강혜인 김지윤 조원일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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