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대 교수, 와셋 학회 발표 한다며 잇달아 부부동반 해외출장

2018년 08월 24일 14시 25분

교수와 연구원 등이 연구비로 해외 관광지에서 열리는 '가짜 학술대회'에 대거 참석해온 사실이 뉴스타파 보도로 밝혀진 가운데, 한 국립대 교수는 연구원으로 채용된 배우자와 함께 와셋 등 가짜학술대회 발표 등을 명목으로 부부동반 해외 출장을 최소 2차례 이상 한 사실이 드러났다.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뉴스타파는 국립 전남대학교 건축학부 한승훈 교수가 지난 6월 국책 연구비로 와셋(WASET: World Academy of Science, Engineering and Technology, 세계과학공학기술학회) 주최 가짜 학술대회에서 연구발표를 한다며 이탈리아 베니스까지 갔으나 실제 학술대회 참석도, 발표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도한 바 있다. (링크 :‘가짜 학문' 제조 공장의 비밀)

한 교수는 당시 대학원생 등 5명을 인솔해  6월 21일부터 이틀 일정으로 예정돼 있던 와셋의 베니스 콘퍼런스에 등록했다. 학교가 승인한 이들의 출장비 내역을 보면 1인 당 출장 경비가 3백 90만 원에서 3백 10만 원 선이었다. 이 돈은 대부분 한 교수가 책임 연구자로 진행하고 있는 국토부 발주 한옥 관련 국책연구과제의 연구비에서 조달되는 것으로 돼 있었다.

와셋 베니스 학술대회 동행연구원 중 1명, 인솔 교수 부인으로 확인  

뉴스타파 취재진은 한 교수 일행의 출장비 처리 결과를 추가 취재하는 과정에서 당시 이탈리아 베니스에 출장 간 연구원 중 1명이 한 교수의 배우자 이 모 씨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국립대인 전남대는 지난 2011년부터 공무원 행동강령 5조에 의거해 연구책임자가 자신의 연구과제에 배우자, 자녀 등 특수관계자를 참여시키는 것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내규를 시행하고 있다. 다만 객관적으로 연구 수행에 필요한 전공지식과 자격을 갖췄거나 연구과제 특성 상 특수관계자 외에 제3의 연구인력을 확보하기 어려운 경우에만 산학협력단장의 승인을 받아 예외적으로 특수관계자를 채용할 수 있다는 예외 규정을 뒀다.

한 교수는 국토부 발주 과제인 ‘한옥의 유지관리체계 개발 및 거주성능 기준 수립’을 지난 2017년부터 이끌고 있다. 취재진은 부인 이 씨가 전남대 건축학부 천 모 교수의 지도 하에 문화재학협동과정 박사과정을 수료했고, 이 교수가 해당 국토부 과제의 전 단계 연구 책임자였던 2012년부터 이 연구에 참여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됐다.

뉴스타파는 한 교수가 해당 국토부 과제의 연구책임자가 된 시점인 2017년 당시 배우자인 이 씨 외에 다른 연구인력을 확보하기 위한 공개채용 등의 절차를 거쳤는지 물었다. 한 교수는 이 씨가 다년 간 해당 과제 연구원으로 일하며 이해도가 높은 점을 고려해 산학협력단 승인 절차를 거쳐 채용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산학협력단에서는) 공개 채용이 의무적이라고 했다고 하면 반드시 (제게) 말했을 것"이지만 고지받지 못했다며 “아마 공개 채용이 의무적이 아니니까 말씀을 안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교수 부부, 베니스에 앞서 올해 4월엔 리스본 와셋에 출장

뉴스타파 취재 결과, 한 교수 부부는 지난 4월에도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개최된 와셋 학술대회에 참가한다며 출장을 떠난 것으로 확인됐다. 이때는 다른 대학원생들은 동행하지 않았다. 부부 단 둘이 해외 출장을 떠난 것이다.

이들은 당시 리스본 와셋 학술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한옥의 쾌적성 평가 표준 개발’이라는 제목의 논문과 초록을 게재했다. 왜 단 둘이 떠났는지 묻는 뉴스타파의 질문에 한 교수는 “당시 게재했던 논문 주제가 참여연구원들 중 이 씨의 연구과업과 일치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불과 두 달 후인 지난 6월, 한 교수 부부는 학생 4명과 함께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열린 와셋 학술대회에 참석했다. 이때 두 사람이 저자로 올라있는 논문 초록의 제목은 ‘한옥의 거주성능 평가 기준 개발’이다. 가짜 학술단체인 와셋이 유명 관광지에서 잇달아 개최한 가짜 학술대회에 비슷한 주제의 논문을 연거푸 발표한다며 부부가 함께 해외 출장을 간 것이다. 두 가짜 학술대회에서 발표하겠다고 제출한 논문 모두 ‘한옥의 유지관리체계 개발 및 거주성능 기준 수립’이라는 국토부 과제 연구비에서 지원받은 연구 결과물이다. 발표를 위한 출장비 또한 연구비로 신청했다. 취재진은 한 교수에게 리스본 와셋 학술대회에서는 과연 실제 발표를 했는지, 했다면 누가 했는지 물었으나 답이 오지 않았다.

뉴스타파 취재진이 입수한 한 교수 부부의 리스본 와셋 학술대회 출장 일정은 총 열흘로 베니스 와셋 출장과 비슷했다. 전남대 측이 취재진에게 공개한 한 교수 부부의 리스본 출장 내역을 보면 와셋 학술대회 참가 일정 이외에  현지 전문가와의 네트워킹과 주거 시설 기술 벤치마킹 활동 등이 기재돼 있다. 취재진은 실제 계획대로 출장 일정을 진행했는지 여부를 물었다. 한 교수는 “출장 보고서에 올리지 않았을 뿐 현지 마을의 커뮤니티센터(마을회관)를 방문해 현지인과 교류했”으며 “계획대로 진행하고 왔다"고 주장했다.

와셋 외 다른 ‘가짜 학술대회’에도 여러차례 논문 게재 드러나

한 교수 부부는 국토부 한옥 연구과제 예산을 활용해 와셋 외 다른 가짜 학술단체에도 논문과 초록을 게재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국제학계에서 잘 알려진 가짜 학술단체 IRAJ에서 운영하는 학술지에 지난 2017년부터 2018년 현재까지 10건이 넘는 논문을 게재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중엔 배우자인 이 씨가 공저자인 논문도 많다(링크: ‘가짜 학술단체’ 리스트 보기).

전남대 측은 한 교수가 국제학술대회 발표를 이유로 해외 출장을 갔으나 실제 해당 학술대회에 발표는커녕 참석도 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났음에도 제대로 된 조사와 적절한 조치는 하지 않고 있다. 전남대 연구처와 교무처 관계자들은 현재 진행 중인 교육부와 연구재단의 조사가 끝나고 그에 따른 지침이 오면 향후 조사와 조치 방향을 정할 것이라고만 답했다.

취재 : 김지윤, 김용진, 신우열, 임보영
촬영 : 김남범, 오준식
CG : 정동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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