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호일보 한창원 사장, 이번엔 '근로기준법 위반'...검찰 '기소유예'

2021년 05월 14일 16시 23분

인천에 본사를 둔 일간지 기호일보의 한창원 사장이 퇴직한 계약직 기자에게 퇴직금 지급을 거부하는 위법을 저질렀지만, 기소유예 처분만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인천 중부지방고용노동청(이하 인천노동청)은 지난달 말 한 사장의 '퇴직금 지급 거부' 등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를 조사한 뒤, 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검찰에 송치한 바 있다. 
해당 기자는 지난해 기호일보 노동조합에서 활동하면서 한창원 사장 퇴진 요구 시위에 참여했고, 이를 이유로 한창원 사장으로부터 고소를 당하기도 했다. 기호일보 노동조합 측은 "퇴직금 지급 거부는 노조 활동에 대한 사측의 보복"이라고 주장했다. 
뉴스타파는 지난해 8월부터 지속적으로 기호일보에서 벌어진 '공짜 취재 관행', 노동조합 탄압, 편집권 침해 의혹에 대해 보도한 바 있다.    

노조 활동 기자 계약해지 후 "퇴직금 못 준다"

2019년 9월부터 기호일보에서 계약직 기자로 일했던 우 모 씨는 지난 3월 초 회사로부터 일방적인 계약해지 통보를 받고 회사를 떠났다. 
근로기준법(제36조)에 따르면, 사용자는 근로자가 사망 또는 퇴직한 경우, 지급 사유가 발생한 시점부터 14일 이내에 임금, 보상금, 그 밖의 모든 금품을 지급해야 한다. 하지만 기호일보 측은 우 전 기자에게 계약해지를 통보한 이후 퇴직금과 관련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우 전 기자가 퇴직금을 달라고 요구하자 기호일보는 "근속 기간이 1년 미만이어서 퇴직금 지급 대상이 아니다"라며 버텼다. '계속근로기간이 1년 미만인 근로자는 퇴직금 지급 대상이 아니다'라고 명시한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제4조)에 따랐다는 주장이었다. 계속근로기간은 '근로계약을 체결해 해지할 때까지의 총 기간'을 뜻한다. 
그럼 기호일보는 왜 2019년 9월부터 2021년 3월까지 1년 6개월간 기호일보 기자로 일한 우 전 기자가 퇴직금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주장했던 것일까. 
우 전 기자는 기호일보에서 근무한 지 만 1년이 되던 2020년 9월, 1년 치에 해당하는 퇴직금을 정산받았다. 그리고 기호일보와 6개월 짜리 계약을 다시 맺고 일했다. 기호일보가 노린 건 바로 이 점이었다. 기호일보는 "우 기자의 과거 1년 계약직 근로와 이후 6개월 계약직 근로는 별개의 계약이기 때문에 계속근로기간은 1년 6개월이 아니라 6개월"이라는 논리를 펴며 퇴직금 지급을 거부했다.
지난 3월 뉴스타파 취재진과 인터뷰를 진행한 우 모 전 기호일보 기자.

이미 대법원 판례 있는데... 전문가들 "사측 주장 말도 안 된다"

하지만 기호일보의 이런 계산법은 이미 20여년 전 나온 법원 판결로 탄핵된 바 있다. 다음은 1995년에 나온 대법원 판결문 중 일부. 이 판결 논리는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근로계약이 만료됨과 동시에 근로계약기간을 갱신하거나 동일한 조건의 근로계약을 반복하여 체결한 경우에는 갱신 또는 반복한 계약기간을 모두 합산하여 계속근로년수를 계산하여야 한다.

대법원 93다26168 판결문 
이 판결에 따르면, 기호일보와 1년 계약이 종료된 뒤 하루의 공백도 없이 6개월간 추가로 일했던 우 전 기자는 총 1년 6개월간 계약직 직원으로 일한 셈이 된다. 당연히 추가로 일한 6개월치에 해당하는 퇴직금을 받을 자격이 있다. 
전문가들은 1995년에 나온 대법원 판결을 근거로 "기호일보가 억지 주장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노동 관련 사건을 다수 맡아온 허진민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소장(변호사)은 "업무 내용과 근로 조건이 완전히 달라지는 등 전혀 별개의 계약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은 이상 처음 근로를 시작했을 때부터 마지막 계약 종료 시까지를 모두 계속근로기간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승현 노무사도 "수십 년 전 대법원 판결 내용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사회적으로 합의가 끝났다는 뜻이다. 논쟁의 여지 없이 회사가 잘못했다"고 말했다.

노동청 신고하자 "퇴직금 줄테니 진정 취하하라"요구 

지난 3월 17일, 기호일보의 억지에 시달리던 우 전 기자는 인천노동청에 "퇴직금을 받게 해 달라"는 내용의 진정서를 넣었다. 인천노동청은 즉각 조사에 나섰다. 
퇴직금을 줄 수 없다고 버티던 기호일보는 인천노동청 조사가 시작된 뒤에야 우 전 기자에게 연락을 해 왔다고 한다. 우 전 기자는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서 "기호일보 측이 '퇴직금을 줄 테니 인천노동청에 넣은 진정을 취하해 달라'고 요구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퇴직금을 받은 뒤에도 우 전 기자는 진정을 취하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난 4월 29일, 인천노동청은 한창원 사장을 근로기준법 위반 등의 혐의로 인천지방검찰청에 기소 의견으로 송치했다.
우 전 기자는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 퇴직금을 달라고 말했다. 그런데도 회사는 계속 무시했다. 분명 회사는 계속 이런 식으로 노동자들을 찍어 눌렀을 것이다. 이미 법정 기한인 14일을 넘겨 퇴직금을 줬기 때문에 위법이다. 유야무야 빠져나가게 하기 싫었다"고 말했다.
지난 4월 29일 인천 중부지방고용노동청은 기호일보 한창원 사장을 근로기준법 위반 등 혐의로 검찰에 기소 의견으로 송치했다.

기호일보 노조 "한창원 사장과 경영진의 시대착오적 행태"... 검찰은 면죄부

한 사장의 근로기준법 위반 사건에 대해 기호일보 노조는 "시대에 뒤떨어진 사측의 경영 행태가 그대로 드러난 사건"이란 입장을 냈다. 이창호 기호일보 노조위원장은 "회사는 퇴직금 뿐만 아니라 미사용 연차수당도 안 주려고 했다. 노동청 신고를 안 했다면 끝까지 받지 못했을 것이다. 회사의 안일한 노동 인식으로 인해 그동안 얼마나 많은 노동자가 피해를 봤을지 짐작이 간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또 "우 기자는 지난해 기호일보 노동조합에서 활동하면서 한창원 사장 퇴진 요구 시위에 참여했고, 이를 이유로 한창원 사장으로부터 고소를 당하기도 했다. 노조 활동에 대한 보복으로 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노조는 그 동안 사측에 '퇴직금을 안 주면 위법'이라고 계속 말했다. 하지만 회사는 무시했다. 시대착오적 경영 행태를 보이고 있는 한창원 사장은 스스로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3월 5일 뉴스타파 취재진과 만난 기호일보 한창원 사장.
지난 5월 10일, 인천노동청에서 사건을 넘겨받아 수사한 검찰은 한창원 사장에게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한 사장에게 사실상 면죄부를 준 것이다. 기소유예는 '범죄혐의는 있지만 가해자의 기존 전과나 반성 정도, 피해자의 피해 정도를 감안해 재판에 넘기지 않는 것'으로 검사에게 주어진 일종의 재량권에 해당한다.  
취재진은 한창원 사장에게 연락해 입장을 물었다. 한 사장은 "직원이 법을 오해해 그렇게 처리했다고 들었다. 퇴직금은 이미 정산해줬지만, 우 씨가 형사처벌을 원해 사건이 진행됐다. 이미 기소유예 처분 통보도 받았다"고 말했다.
인천지방검찰청은 기소유예 결정을 내린 이유에 대해 "피의자인 한창원 사장이 범행을 인정하고 있고, 수사 과정에서 체불 수당과 퇴직금을 지급한 점 등을 감안해 결정했다"는 입장을 전했다.  
제작진
취재홍주환
디자인이도현
출판허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