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수증 '이중청구'는 공공연한 비밀, 전면조사 불가피

2018년 12월 04일 12시 41분

같은 영수증을 국회 사무처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에 중복 제출해 국회 예산을 부당하게 타낸 국회의원 26명이 확인된 가운데 의정활동비 ‘이중청구’가 “국회 내 오랜 관행”이었다는 복수의 내부 증언을 뉴스타파가 확인했다. 영수증 이중제출이 국회 차원에서 벌어진 구조적인 비리였다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것이다.

의원 보좌진 “영수증 이중제출은 관행이었다”

또 영수증 이중제출로 새 나간 국회 예산 대부분이 의원실 경비에 쓰였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뉴스타파 취재로 이미 상당수 의원 또는 의원실이 국민 세금을 사실상 빼돌린 정황이 드러난만큼 철저한 진상조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뉴스타파는 4일 영수증 이중제출로 국회 예산을 타낸 국회의원 26명의 명단을 공개했다. 사진은 전희경 자유한국당 의원의 2017년 동영상 의정보고

영수증 이중제출 의혹을 받고 있는 A 의원실 보좌관은 “그동안 국회가 국회 사무처 예산을 의정활동비로 알고 의원실 내부 경비로 사용해 왔다”며 “(영수증 이중제출이) 일종의 관행이었기 때문에 몇몇 의원실이 회계 처리를 느슨하게 했던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B 의원실 보좌관도 “오랫동안 행정비서들이 관행적으로 처리해 오던 영수증 이중제출이 드러나 문제가 되고 있다”며 “이른바 왕비서(국회 재직 기간이 길거나 행정비서들 사이 영향력이 큰 의원실 직원을 일컫는 말)가 있는 의원실이 영수증 이중제출 방법을 내부에 공유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영수증 이중제출로 국회 예산 1,550만 원을 타낸 더불어민주당 유동수 의원실 소속 한 직원은 ‘의정보고서 발간비’를 국회사무처에 청구하면 받을 수 있다는 설명을 듣고 그렇게 한 것”이라며 “다들 의례적인 관행으로 여겨 문제가 되는지 몰랐고, 국회 예산을 청구해 의원실 경비 통장에 보관해왔다”고 말했다. 즉 국회 예산을 의원실 경비 통장에 넣어 의원실 임의로 사용한 것이다.

영수증 이중제출로 타낸 ‘국회 예산’ 의원실 경비 통장에 입금

영수증 이중제출은 그 자체로 도덕적 논란과 함께 법적 문제까지 야기한다. 실제로는 한 건의 지출이 있었음에도 회계상 2건의 지출이 발생한 것처럼 회계 처리해 돈을 추가로 받아냈고, 이를 다른 용도로 유용했기 때문이다.

전희경 자유한국당 의원은 2017년 12월 정치자금 1,000만 원을 자신의 의정 보고 동영상(2편) 제작에 사용했다. 전 의원은 2017년 12월 15일과 같은 달 29일 각각 400만 원과 600만 원을 동영상 제작업체에 지급했다. 이 같은 지출 내역은 선관위가 매년 공개하는 ‘정치자금 회계 보고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정치자금은 정치자금법 상 그 사용 내역을 외부에 공개할 의무가 있다.

▲ 전희경 의원은 2017년 12월 국회 사무처에 의정보고서 제작비를 청구하고, 선관위에 그 사실을 신고하지 않은 채 국회 예산 1,300만 원을 타냈다.

그런데 전 의원은 동영상 제작업체에 의정보고 영상 작업비(1,000만 원) 가운데, 선금(400만 원)을 입금한 당일(2017년 12월 15일) 국회 사무처에 ‘의정보고 영상을 만들겠다’며 1000만 원을 지급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자 국회 사무처는 전 의원이 정치자금에서 동영상 제작 업체에 이미 제작비 선금을 지급한 사실은 모르고 국회 예산 1,000만원을 전희경 의원 명의 계좌로 입금했다.

의원 명의 계좌는 정치자금과 달리 그 사용 내역을 외부에 공개해야 할 의무가 없다. 때문에 선관위는 미리 집행한 정치자금에 대해 국회 사무처가 사후에 그 돈을 보전하면 그 금액만큼 정치자금에 반납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정치자금 회계의 투명성을 높이고, 혹시 모를 사적 유용 등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즉 전 의원의 경우 정치자금에서 집행한 돈을 국회예산에서 보전받았기 때문에 다시 정치자금 계정에 반환했어야 했다.

▲전희경 의원은 선관위 유권해석을 받은 뒤에야 입장을 정리하겠다는 원론적인 답변만 내놨다.

그러나 전희경 의원실은 국회 사무처에서 받은 1,000만 원을 정치자금 계좌에 반환하지 않고, 의원실 경비 통장에 그대로 남겼다. 즉 한 건의 영수증으로 2건의 지출이 발생한 것처럼 회계 처리된 것이다. 이는 정치자금법 제1조인 ‘정치자금의 투명성 확보’, 제2조 2항인 ‘정치자금 회계는 공개되어야 한다’는 원칙과 충돌한다.

또 국회 사무처가 의정보고 제작비용으로 지급한 1,000만 원은 결과적으로 의원실 운영 경비에 쓰였다. 당초 지원 목적인 의정보고 동영상 제작’과 달라 예산 유용이라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전희경 의원실은 이 같은 방법으로 의정보고서 인쇄제작비 영수증도 이중제출해 국회 예산 300만 원을 더 타냈다. 전희경 의원실이 2016년~2017년에 영수증 이중제출로 타낸 국회 예산은 확인된 것만 1,300만 원에 이른다.

정치자금에서 먼저 인쇄비나 문자 발송비를 지출하고 나중에 그 영수증을 국회 사무처에 청구해 국회 예산을 타냈다면 국가를 상대로 한 사기 행위가 될 수 있습니다. 또 이미 다 거래가 끝났는데 마치 새로 인쇄를 하거나 문자 발송을 한 것처럼 서류를 만들었다면 세금을 빼먹을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하승수 변호사 (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

이에 대해 전희경 의원실은 “지급받은 국회 예산(1,300만 원)은 유류비 등 의원 의정 활동에 썼고, 사적 유용은 없었다”는 입장을 전했다. 정치자금 반납 여부는 선관위 유권해석에 따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영수증 ‘이중제출’ 관행, 여야 가리지 않아

국회 예산을 타내기 위한 영수증 이중제출은 여야를 가리지 않았다. 유동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17년 1월 의정보고서 발간 명목으로 1,230만 원을 정치자금에서 지출했다. 그리고 다음달인 2월 해당 거래 과정에서 발생한 영수증을 국회사무처에 제출해 1,230만 원을 타냈다.

또 유 의원은 지역 유권자에게 보내는 의정보고서를 인천의 한 우체국에서 발송했다며 국회 사무처에 우편료 321만 원을 보전해달라고 요청했다. 국회 사무처는 유 의원의 요청대로 321만 원을 유동수 의원실 경비 통장에 입금했다. 이에 대해 유동수 의원실 소속 한 직원은 “의정보고서 발간비 명목으로 국회 예산을 (이중) 청구할 수 있다는 것은 국회 직원의 설명을 들어 이미 알고 있었다”고 털어놨다. 즉 국회 내에서 영수증 이중제출은 서로 공유하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던 것이다.

▲ 유동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의정보고서 발간료와 우편료 등을 이중청구해 국회 예산 1550만 원을 타냈다.

하지만 선관위가 한 권고대로 국회 보조금 반환 처리는 하지 않았다. 반납해야 된다는 걸 몰랐다는 것이 유동수 의원실의 해명이다. 유동수 의원실은 뉴스타파 취재가 시작되고 나서야 정치자금 1,550만 원을 전액 반환했다.

‘국회 운영을 위한 이중제출은 문제가 없으며, 국회 보조금을 어떻게 사용할 지는 우리(의원실)가 직접 결정하면 된다’고 주장한 곳도 있었다. C 의원실 직원은 “이건(영수증 이중제출은) 비도덕적인 문제가 아니라 의원실 재량”이라며 “의원실 경비 통장은 거의 모든 의원실에서 문제 없이 관리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동영상 제작, 의정보고서 인쇄, 우편료까지 마구 ‘이중청구’

반면 회계 전문가는 영수증 이중제출을 통한 국회 예산 유용이 그 자체로도 심각한 문제라고 말한다. 실제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같은 당 손혜원 의원, 이은권 자유한국당 의원은 뉴스타파의 확인 요청 과정에서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자체 조사를 통해 취재진이 확인한 것 이상의 이중제출 내역을 스스로 공개했다.

만약 기업에서 이런 방식으로 회계 처리를 했다면 횡령 의혹까지 불거질 수 있습니다. 국회에서도 마찬가지로 돈을 한 번 지출했는데 두 번 계상했다면 이건 국민 세금에 대한 유출 행위가 벌어지는 것과 다름 없습니다.

김경률 회계사 / 참여연대 집행위원장

뉴스타파가 국회의원들의 영수증 이중제출 검증 대상 기간은  2016년 6월부터 2017년 12월까지다. 검증 항목도 의정보고서 발간, 발송, 문자 발송비 등으로 한정했다.

같은 기간 26명의 의원들이 1인 당 최대 2,000만 원에 이르는 국회 예산을 부당 지급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국회 의정보고서 발간, 발송, 문자 발송비 지원 제도는 2000년대 중반부터 최근까지 외부 감시를 받지 않은 채 이어졌다. 수면 아래 감춰진 영수증 이중제출 비리가 얼마나 더 있을지 가늠하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국회를 상대로 한 철저한 진상조사만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라는 시각도 있다.

10년 넘게 지원된 의정활동비...“집행 내역 전면 조사 불가피”

일단 현재로서는 이게 아마 10년 전부터 계속돼 왔던 관행적인 어떤 비리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왜냐하면 이 예산 자체가 2000년대부터 있었던 걸로 확인이 되기 때문에 19대 때는 안 그랬겠냐, 18대 때는 안 그랬겠냐는 의심이 들고 그래서 이중제출 전체 규모를 밝힌다면 정말 어마어마한 규모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승수 변호사 (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

뉴스타파는 지난해부터 <세금도둑잡아라> 등 시민단체와 3곳과 함께 ‘국회의원 의정활동 예산감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뉴스타파 등은 행정소송을 통해 2016년~2017년 동안 국회의원들이 집행한 ‘정책자료 발간 및 홍보물유인비’ 내역과 ‘정책발송료’ 사용 내역 등을 입수했다. 뉴스타파는 이 자료를 각 의원들이 선관위에 신고한 정치자금 지출 내역과 교차 분석해 의정활동비 이중청구 사실을 밝혀냈다.

▲ 뉴스타파는 지난해부터 ‘세금도둑잡아라’ 등 시민단체와 함께 ‘국회의원 의정활동 예산감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 국회의원 영수증 이중제출 내역 특별페이지(링크)
※ 20대 국회의원 입법 및 정책 개발비 지출 증빙 자료 공개 특별페이지(링크)

취재 : 문준영, 김새봄, 강현석, 박중석
데이터 : 최윤원
데이터 시각화 : 임송이
촬영 : 최형석, 김남범, 오준식, 신영철
편집 : 정지성
CG : 정동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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