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피 스캔들] ③ '세금을 내 돈처럼' ...대한민국 공직자들의 민낯

2021년 03월 04일 14시 47분

엉터리상으로 확인된 ‘스티비 어워즈’를 수상한 우리나라의 공공기관(정부부처, 지차체, 공기업 등)은 총 183곳이다. 지난 10여 년간 국민 세금을 쏟아부어 총 770개의 상을 받았다. 이들 공공기관은 이렇게 받은 상을 대체 어떻게 활용했을까. 
지난 15개월간 ‘스티비 어워즈’의 실체를 추적해 온 뉴스타파 <트로피 스캔들> 취재팀이 가장 먼저 주목한 기관은 해양경찰청(이하 해경)이다. 
2018년 홍콩 아시아-태평양 스티비 어워즈에서 은상을 수상한 해양경찰청 

해경, 엉터리상 받고 “세월호 유가족에게 위로 되길...”

2014년 5월, 해경은 세월호 구조 실패의 책임을 지고 해체됐다. 조직이 부활한 건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후인 2017년 7월이었다. 부활 직후 해경은 새로운 도약을 다짐한다며 홍보영상을 만들었다. ‘국민과 함께 그리는 우리의 바다’라는 제목의 '라이브 드로잉' 영상이었다. 영상에는 이런 내용의 내레이션이 들어 있다.
국민에게 바다는 소중한 삶의 터전이자 풍요로운 안식처입니다. 그러나 지키지 못했던 현실은 피지 못한 현실을 삼키고, 지울 수 없는 세월호의 상처는 모두에게 깊은 아픔으로 남았습니다. 우리는 지난날의 아픔과 교훈을 마음에 새기고 다시 일어서려고 합니다.

- 해양경찰청 홍보영상 ‘국민과 함께 그리는 우리의 바다’
해경은 이 홍보영상을 ‘스티비 어워즈’에 출품해 은상을 받았다. 그리고 이듬해 6월 홍콩에서 열린 시상식에 참석했다. 해경은 이후 3년 연속 스티비 트로피(금상 1개, 은상 2개)를 챙겼다. 이 과정에서 해경이 낭비한 국민 세금은 866만 원이다. 홍콩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해경 관계자는 “이번 수상이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라는 수상 소감을 남겼다. 
뉴스타파는 해경에 연락해 스티비상에 출품한 경위를 물었다. 해경 관계자는 “세월호 사고 이후 해체됐던 해경이 다시 도약하자는 의미에서 만든 영상에 국민적 공감대가 만들어져 이런 상을 받는다고 생각했다. 논란이 있는 상이란 걸 알았다면 안 했을 것이다. 많은 정부기관과 기업이 받는 상이라 공신력이 있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스티비 어워즈’ 한국 대표가 대리 출품도 해줘...대행 수수료 건 당 10만 원

‘2020년 아시아-태평양 스티비 어워즈’ 시상식 직후인 지난해 10월, 뉴스타파 <트로피 스캔들> 취재진은 ‘스티비 어워즈’ 한국 대표인 배OO 씨를 서울 여의도의 한 식당에서 만났다. ‘스티비 어워즈가 어떻게 운영되는지’, ‘왜 공공기관들이 이 상에 목을 매는지’ 등이 궁금했다.    
배 씨는 먼저 스티비상에 도전하는 우리나라 공공기관의 90% 정도가 자신의 손을 거쳐 상을 출품, 수상한다고 자랑했다. 그는 이렇게 대리 출품을 해 주는 대가로 건당 10만 원가량의 대행 수수료를 받는다고 말했다.  
공공기관의 출품작이 어느 정도 모이면 출품 부문을 수상 가능성이 높게 조정하는 일종의 '교통정리'도 한다고 했다. 우리나라 공공기관들끼리의 경쟁을 최소화하고 수상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작업이라는 것이다. 배 씨는 “스티비상을 받았다는 사실이 중요하지, 수상 카테고리(부문)는 아무렇게나 해도 된다”고 말했다.  
지난달 25일, 뉴스타파는 [트로피 스캔들] ② 이명박처럼... 엉터리상에 세금 쓴 183개 공공기관 편에서 일부 공공기관이 전혀 관련 없는 부문에서 스티비상을 받은 사례를 보도한 바 있다. 국방을 책임지는 육군이 NGO 분야에서, 경기도 산하단체인 경기도일자리재단이 정부부문에서, 대통령 직속기구인 ‘임시정부 100주년 기념사업회’가 공기업 부문에서 상을 받았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수상이 중요하고, 수상 분야는 아무렇게나 해도 된다’라는 배 씨의 설명과 부합하는 대목이다. 
배 씨와의 인터뷰 내용은 뒤에서 이어 설명하기로 하고, 엉터리상 ‘스티비 어워즈’가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를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트로피 스캔들] ① 뉴스타파 취재진, '스티비 어워드' 대거 수상 '쾌거' 편에서 보도한 바와 같이, ‘스티비 어워즈’는 전 세계를 상대로 한 비즈니스다. 총 8개의 부문 및 지역상으로 나뉘어 운영되고 있다. 미국 비즈니스 대상, 국제 비즈니스 대상, 여성 기업인 스티비 대상, 영업 및 고객서비스 스티비 대상, 위대한 회사 스티비 대상, 아시아-태평양 스티비상, 독일 스티비상, 중동 및 북아프리카 스티비상이다. 이 8개 스티비상의 작동 원리는 동일하다. 심사위원을 공개 모집해 구성하고, 개인이나 기관 등이 아무거나 출품해 상을 받는 구조다. 
8개의 스티비상은 각각 100개 이상의 카테고리(부문)로 나뉘어 있다. 소비자 경영, 경영 혁신, 혁신 이벤트 등이다. 이렇게 나뉜 카테고리는 또 정부기관, 공공부문, 사기업 등으로 나뉜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세부 카테고리에서 복수의 금상, 은상, 동상 수상자가 나오는 구조다.  
이렇게 세세하게 분야를 나누다 보니 출품 카테고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우리나라가 주로 받는 스티비상 중 하나인 ‘아시아-태평양 스티비 어워즈’의 경우 세부 카테고리만 143개였다. 143개 카테고리에서 작게는 3~4개, 많게는 수십 개씩 금상, 은상, 동상 수상자가 나오다 보니 마음만 먹으면 한 번에 수천 개 이상 수상자를 배출할 수 있는 구조다.  
뉴스타파 취재진이 직접 심사에 참여해 확인한 결과, 심사위원들은 모든 출품작에 대해 1점에서 10점까지 점수를 줄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스티비 어워즈’ 측의 주장에 따르면, 이 중 평균 7점 이상을 받은 출품작이 수상작으로 결정된다. 물론 뉴스타파 확인 결과, ‘스티비 어워즈’의 심사위원이 되는 데는 아무런 자격 요건이 필요 없었고 검증 과정도 존재하지 않았다.    
다시 ‘스티비 어워즈’ 한국 대표인 배OO 씨와의 대화로 돌아가자. 
지난해 10월 뉴스타파 취재진과 만난 '스티비 어워즈' 한국 대표 배OO 씨.

스티비 어워즈 한국 대표, “내가 기관장에게 바람을 넣어서...”

‘스티비 어워즈’ 한국 대표인 배 모 씨와의 대화를 통해, ‘스티비 어워즈’ 시상식 참관을 빙자한 공공기관들의 외유성 출장의 비밀도 알 수 있었다. ‘스티비 어워즈’ 측과 우리나라 공공기관 간에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결과였다.  
배 씨의 설명에 따르면, ‘스티비 어워즈’ 측은 해외에서 시상식이 열릴 때마다 공공기관들을 불러 모아 ‘참관단’을 꾸렸다. 일정은 공공기관들의 요구를 반영해 짰다. 관광지 투어나 공공기관 방문 일정 등을 끼워 넣는 식이었다. 결국 공공기관 임직원들은 스티비상 수상을 핑계 삼아 세금으로 외유를 즐겨서 좋고, ‘스티비 어워즈’ 측은 여행사 역할을 하며 돈을 벌어 좋은 구조인 것이다.  
‘스티비 어워즈’ 측이 시상식 참관단 수 늘리기에 목을 매는 이유는 또 있다. 시상식에 참가하는 공공기관 관계자들로부터 1인당 500달러 가량의 참가비를 따로 받기 때문이다. 이 돈은 ‘스티비 어워즈’의 주요 수입원 중 하나다. 스티비 어워즈 한국 대표인 배 모 씨는 취재진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행 일정도 우리가 짜 준다. 여행 일정을 넣어달라고 요청하면 거기에 맞게 일정을 짜서 시상식 참관단을 꾸려 해외에 나간다. 공공기관과 공기업 관계자들이 많게는 한 시상식에 50~60명씩 참가하는 경우도 있었다. 몇 년 전 일본 도쿄에서 열린 시상식에는 용인시에서만 12명 정도가 참가했다. 뉴욕에서 열린 여성 스티비 상 시상식 때는 박춘희 전 송파구청장을 참가시켰는데, 내가 바람을 좀 넣었다. 박 구청장과 함께 1주일간 뉴욕을 여행했다.

- 배OO ('스티비 어워즈' 한국 대표)
2017년, 박춘희 당시 서울 송파구청장은 뉴욕에서 열린 '스티비 어워즈' 시상식에 참석했다.

기관장 치적으로 활용되는 엉터리상 ‘스티비 어워즈’

배 씨는 “스티비상을 기관 홍보는 물론 승진에도 활용해 온 공무원들이 많다”고도 말했다. 그 사례로 경기 고양시, 서울 서초구, 송파구 등을 꼽았다. 특히 고양시의 경우 “스티비 어워즈가 한국에 정착하는데 큰 도움을 준 곳”이라고 설명했다.
강현석 전 고양시장이 초창기 스티비상을 많이 받았다. 상을 받을 때마다 시청 벽면에 설치된 전광판에 수상 사실을 싹 다 깔고, 플래카드도 걸었다. 다른 지역 공무원들이 이걸 보고 따라하기 시작해 몇 년 후에는 경기도 산하 지자체 대부분이 스티비상에 출품하게 됐다. 서울 서초구의 한 공무원은 스티비상을 받은 공로를 인정받아 초고속 승진했다.

- 배OO ('스티비 어워즈' 한국 대표) 
배 씨는 지자체의 한 과장으로 위장해 '스티비 어워즈'의 실체를 취재한 뉴스타파 제작진에게도 “승진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실제로 인사평가에 써 먹으라며 공문서 하나를 보내왔다. 수상 확인증이라는 제목이 붙은 이 문서에는 “스티비 어워즈 한국 대표부는 한상진 OO시 문화예술과장(뉴스타파 기자가 위장한 직함)이 ‘2020 아시아-태평양 스티비상’에서 ‘고객서비스 경영, 기획, 실행 혁신상-공기업’ 카테고리에서 아래와 같이 수상했음을 확인해 드립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지방자치단체 청사 로비에 전시된 '스티비 어워즈' 트로피
뉴스타파 <트로피 스캔들> 취재진은 그동안 스티비상을 받은 공공기관이 이 엉터리상을 어떻게 써먹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수상기관들을 찾아가 봤다.
상을 받은 대다수 지자체들이 시민들이 드나드는 청사 로비 등에 ‘스티비 어워즈’ 트로피를 전시하고 있는 모습이 확인됐다. 기관지에 수상 사실을 홍보하는 기사를 큼지막하게 실은 곳, 대형 현수막을 청사 외벽에 내 건 곳도 있었다. 물론 이들 기관이 내놓은 보도자료를 받아 쓴 기사들은 셀 수 없을 정도였다.   
스티비상을 기관장 개인의 홍보에 활용한 사례도 많았다. 3년 연속 '아시아-태평양 스티비 어워즈'를 받은 김한영 전 공항철도 사장이 대표적인 경우다. 포털 사이트에 등록된 김 사장의 인물정보에는 스티비상 수상 실적이 3개나 올라와 있었다. 모두 ‘CEO 김한영’ 이름으로 받은 것들이었다. 2017년 응원단을 끌고 일본 도쿄 시상식에 참석했던 정찬민 전 용인시장, 오는 4월 열리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도전장을 냈던 조은희 서초구청장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조은희 구청장은 언론과 인터뷰를 할 때마다 ‘스티비 어워즈’ 트로피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식으로 스티비상 수상 사실을 개인 홍보에 활용해 왔다. 서초구청 홈페이지의 ‘열린 구청장실’ 코너에도 스티비상 수상 사실이 대문짝만하게 올려져 있었다.  
뉴스타파와 화상 인터뷰를 가진 '스티비 어워즈' 마이클 갤러허 회장.

스티비 어워즈 회장, “뉴스타파가 너무 열심히 취재를 해서...”

뉴스타파는 15개월간의 취재를 마친 뒤 해명을 듣기 위해 ‘스티비 어워즈’ 미국 본사에 연락했다. ‘스티비 어워즈’를 창립한 마이클 갤러허 회장과의 인터뷰가 성사됐다. 마이클 갤러허는 ‘스티비 어워즈’ 회장 자격으로 그동안 국내 언론에도 여러 번 소개됐던 사람이다. 
먼저 마이클 갤러허는 ‘스티비 어워즈’를 이렇게 소개했다. 
2002년에 스티비상을 창립했다. 아메리칸 비즈니스 대상이 첫 어워즈였다. 2004년에는 새 어워즈 프로그램인 국제 비즈니스 대상(IBA)을 시작했는데, 스티비상 프로그램 중 한국에서 가장 잘 알려진 상이다. 한국이 많은 상을 받고 있는 아시아-태평양 스티비 어워즈는 2014년부터 시작됐다.

- 마이클 갤러허 ‘스티비 어워즈’ 회장
그런데 그의 설명과 주장은 대부분 뉴스타파가 장기간 취재 과정에서 확인한 것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 마이클 갤러허는 “출품작을 제출하기 위해서는 많은 작업이 필요하다. 성과를 입증할 자료도 준비해야 한다”라고 말했는데, 이는 허무맹랑한 작품을 출품해 금상 2개, 동상 1개를 받은 뉴스타파의 취재 내용과는 동떨어진 답변이었다. 
마이클 갤러허는 스티비 어워즈 심사과정에 대해서는 “직장 경험이 3~5년 정도 있는 사람이 심사위원이 될 수 있다. 누군가 심사위원 신청을 했는데 업무용 이메일 주소와 온라인 이력서 링크를 제공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이 신청자에게 이메일을 보내 회사 업무 이메일 주소에서 이력서를 보내달라고 요청한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주장 역시 뉴스타파 기자 3명이 개인 이메일 계정으로 허위 경력을 제출해 심사위원이 됐던 것과는 판이하게 다른 설명이었다. 
마이클 갤러허의 발언 중 뉴스타파 취재진이 출품-심사-수상 전 과정을 취재하면서 알게 된 사실에 부합하는 내용은 “이 상을 받기 위해서는 많은 돈이 필요하다”는 것 정도였다. 
마이클 갤러허의 설명을 충분히 들은 뒤, 뉴스타파 취재진은 지난 15개월간의 취재 과정을 그에게 들려주고 입장을 물었다. 마이클 갤러허는 “뉴스타파가 너무 열심히 취재해서 벌어진 일이다. 스티비 어워즈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아무도 그렇게 취재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정리하면, 너무 열심히 취재해 문제가 생겼을 뿐, ‘스티비 어워즈’는 엉터리상이 아니라는 주장이었다.
제작진
취재최윤원 김강민 김지윤 김새봄 한상진
촬영정형민 김기철 오준식
편집정지성
CG정동우
디자인이도현
음악하비뮤직
출판허현재
내레이션김석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