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력 정치인의 싱크탱크로 흘러간 공기업 기부금 예산

2021년 06월 18일 10시 00분

한국서부발전 본사 이미지, 한국서부발전 홍보영상 캡쳐
대선 주자급 정치인이라면 내세우는 정치 자원이 있는 데, 그중 하나가 ‘싱크탱크’이다. 한국 정계에서 싱크탱크는 사조직에 가깝다. 정책을 연구해 내놓기보단 유력 정치인을 위해 정략을 도모하는 등 정파 조직으로 기능한다. 
특정 정치인 개인의 정치적 발판 역할을 하는 싱크탱크에 공적 예산인 공기업 기부·후원금이 흘러갔다면, 이를 어떻게 봐야 할까? 특정 정파에 공적 자금을 퍼준 부적절한 기부라는 비판과 함께 정치 중립의 의무 위반 논란마저 일어날 것이다. 대법원 판례에서 알 수 있듯, 공기업도 공무원 조직과 마찬가지로 정치 중립의 의무가 있다. 
<한반도통일연구원>은 이인제 전 의원이 설립한 그의 '싱크탱크'다.
2013년 출범한 사단법인 <한반도통일연구원>은 북한을 포함한 한국의 외교 정책을 중심으로 세미나와 토론회를 열어 온 단체다. ‘대한민국의 평화 통일에 기여한다’고 표방하고 있다.
그런데, 한반도통일연구원은 여느 학술 단체와는 성격이 다르다. 순수 학술·연구 단체라기보단 이인제 전 의원의 '싱크탱크'로서의 성격이 더 짙다. 이인제 전 의원 스스로도 자신이 설립했다고 말한다. 언론에도 여러 차례 ‘이인제의 싱크탱크’로 소개됐다. 
실제, 연구원 홈페이지엔 이인제 전 의원의 정치 활동을 담은 동영상이 여러 개 올라와 있고, 사무실 벽엔 이인제 전 의원의 활동을 담은 사진 액자가 걸려 있다. 2013년 출범 당시, 이 전 의원은 연구원의 대표 고문을 맡았고 지금은 2대 이사장으로 있다.  
한반도통일연구원엔 선진통일당(이하 선진당) 출신 인사들이 다수 포진해 있다. 6선의 이인제 전 의원도 새누리당에 합류하기 전, 선진당 대표를 지낸 바 있다. 통일연구원 초대 이사장은 선진당 최고위원을 지낸 허증 씨다. 2012년 선진당 비례대표 1번으로 국회에 들어간 문정림 전 의원, 비례대표 2번을 받은 김영주 전 의원도 등기 이사다.
한반도통일연구원엔 선진통일당 출신 인사들이 다수 포진해 있다.  
선진당 제주도당위원장과 정무특보를 지낸 박상호 씨, 선진당 한인연합위원장에 위촉된 석균쇠 씨, 선진당 청년위원장과 최고위원을 지낸 송종환 씨, 여기에 이인제 전 의원과 친분이 두터운 탤런트 서인석 씨까지. 이사 대부분이 선진당 소속 정치인이나 이 전 의원의 측근으로 구성돼 있다.
2016년 9월, 발전 공기업인 한국서부발전이 한반도통일연구원에 500만 원을 기부했다. 기부·후원금 예산에서 썼다. 서부발전이 한반도통일연구원에 기부금을 낸 것은 이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통일 연구 단체에 기부금을 준 것도 이 때가 유일하다. 서부발전은 주로 지역사회 복지관과 노인·아동 등 취약 계층에 기부금 예산을 써왔다. 전례가 없는, 소위 '뜬금 없는' 기부금 집행이었다.
이인제 전 의원이 한 유튜브 방송(펜앤드마이크)에 출연해 발언하고 영상, 한반도통일연구원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다.  
어떤 계기와 절차에 따라 한반도통일연구원에 기부를 했는지, 누가 결정했는지, 한국서부발전에 물었다. 서부발전 관계자는 “(우리가) 포항 지진 때도 지원하고, 강원도 산불 때도 돕는 등 전국적인 사회 공헌 활동을 하고 있는데, 그 일환으로 통일 연구 단체에 기부한 것”이라고 답했다. 취재진은 다시 물었다. “왜 하필 수많은 통일 연구 단체 중 이인제 의원의 싱크탱크에 예산을 줬나요?” 서부발전은 답변을 거부했다. 
뉴스타파의 취재를 종합하면, 여기에도 '낙하산'이 연루돼 있었다. 한반도통일연구원에 기부금이 내려 간 건 2016년 9월 5일이다. 그런데 기부금 집행 약 6개월 전, 두 명의 낙하산이 잇따라 서부발전에 내려왔다. 둘 다 이인제 전 의원과 연관이 있는 인물이었다.   
2016년 3월, 서부발전 상임감사로 박대성 씨가 임명됐다. 박 상임감사는 정당 당직자 출신이다.
2016년 3월, 서부발전 상임감사에 박대성 씨가 임명됐다. 박 상임감사는 자민련 후원회 사무국장, 선진당 전문위원, 새누리당 국토교통위 수석전문위원을 지낸 정당 당직자 출신이다. 
박 상임감사는 이인제 전 의원과 오랜기간 정치 활동을 함께 했다. 2002년 자민련 시절, 당 총재대행과 그 보좌역으로 처음 인연을 맺었고, 2012년 선진통일당 대표와 당 원내행정실장으로 호흡을 맞췄다. 선진통일당과 새누리당이 합당한 이후에도 새누리당 충남도당 사무처장, 2014년 지방선거에선 새누리당 충남도당 종합상황실장으로 활동했다. 
박 상임감사가 임명되고 넉 달 뒤인 2016년 7월, 서부발전에 또 다른 자유선진당 출신 인사가 경영진에 합류했다. 안병철 씨. 서부발전 사외이사가 됐다. 그는 선진당 출신으로 3선을 지낸 이재선 전 의원의 보좌관 출신이다. 
박대성 전 서부발전 상임감사의 주요 이력
불과 몇 달 사이에, 충남 지역에 영향력이 있는 선진당 출신 두 명이 각각 서부발전 상임감사와 사외이사에 임명된 것이다. 서부발전은 충남 태안에 본사를 둔 공기업이다. 이인제 전 의원의 지역구는 충남 논산시·계룡시·금산군이다. 이렇게 ‘낙하산’ 임원이 투입되고 두 달이 지나지 않은 시점에 서부발전이 한반도통일연구원에 기부금 예산을 집행했다.    
뉴스타파 취재 결과, 서부발전 기부금 담당 부서에 한반도통일연구원을 소개한 사람은 박대성 전 상임감사였다. 박 전 감사는 “당시 이인제 의원실의 비서를 우연히 만난 자리에서 연구원을 소개 받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직접 기부를 지시하진 않았다"고 해명했다.
행사 때문에 국회를 갔는데 당시에 이인제 의원실의 비서로 있다가 그만둔 친구가 얘기를 하는 거예요. 자기가 알고 있는 데가 (한반도)통일연구원, 북한 관련 인권 관련 연구원이 있는데, 거기도 (기부금) 해당 업체니까 기부해 줄 수 있느냐? 이러고 나서 한 번 전화번호를 (서부발전 당당부서에) 알려주고, 확인을 해보고 (기부가) 가능한지, 업체가 맞는지, (전화) 해봐라, 알아봐라. 이게 전부예요.

박대성 전 서부발전 상임감사
또 박 전 상임감사는 개인적으로 이인제 전 의원을 잘 모르고, 자신은 통일연구원과 아무런 관계가 없고, 연구원 측 사람들도 잘 알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연구원의 이사 다수가 선진당 출신인 것도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인제 의원하고 연결짓진 마시고요. 저는 이인제 의원하고 그렇게 잘 아는 사이도 아니고, 통일연구원을 내가 출입하는 사람도 아니고, 거기 관련 있는 사람도 아니고, 그걸 제가 어떻게 압니까. 그 사람들이 이사인지 뭔지는.

박대성 전 서부발전 상임감사
하지만 연구원 측의 설명은 달랐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반도통일연구원 관계자는 박 전 감사가 선진당 당직자였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이 관계자는 “당시 내가 연구원에 있진 않았지만, 아마 아시는 분들한테 누군가가 도움을 청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즉, 박 전 상임감사와 전혀 무관하게 진행된 공기업의 기부는 아닐 것이라는 추론이다. 
한국서부발전은 2016년 9월 한반도통일연구원에 500만 원을 기부했다.
다만, 연구원 측은 현재 이인제 전 의원이 이사장으로 있지만, 통일을 연구하는 기관으로 정치 활동을 한 적이 없기 때문에 공기업으로부터 기부를 받는 것은 문제가 없다고 해명했다. 
정상적인 절차에 의해서 기부 못 하게 돼 있지 않습니다. 다 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 온 2대 이사장이 이인제 이사장님을 보시면 이제 정치인이야. 이런 걸로 보시면 색깔이 보이기는 하겠으나, 정치적 행위를 한 적은 없습니다. 

힌반도통일연구원 관계자
주로 복지 시설과 소외 계층 지원에 쓰였어야 할 공기업 기부금 예산이 특정 정치인을 위한 조직으로 흘러간 사실이 드러나면서 예산 오·남용과 사익 추구 의혹이 제기된다. 하지만 서부발전과 낙하산 인사 모두 법적으론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는다. 
‘공기업이 준수해야 할 정치 중립의 의무를 위반한 것 아니냐’는 취재진의 질의에 서부발전 측은 “정치 조직이라고 해서 기부가 금지된 단체도 아니었다”는 해명을 내놨다. 박 전 상임감사는 “개인이 몇 십만 원을 (기부)하는데, 공공기관이어서 500만 원 소액 기부를 한 것일 뿐, 법률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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