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간첩 사건 2번째 무죄...대공수사권이관 만으론 조작 못 막아

2020년 12월 24일 22시 48분

홍강철 씨 간첩 사건 무죄 확정...유우성 씨에 이어 두번째

북한 보위사령부 직파 간첩 사건의 피고인 홍강철씨에 대해 대법원이 12월 24일(목) 최종 무죄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은 홍강철 씨에 대한 수사 절차가 위법했을 뿐 아니라 수사 결과 나온 자백의 신빙성도 없다고 판결했다. 이로써 국정원 중앙합동신문센터에서 간첩으로 조작된 사건이 유우성 씨 사건에 이어 두번째로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홍강철씨 가족
홍강철씨는 지난 2013년 6월 탈북해 8월에 입국했고 탈북 이유 등을 조사하는 중앙합동신문센터(현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에 수용돼 6개월 동안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다. 홍강철씨가 수용됐던 합신센터 내 독방(1인실)은 바깥에서 문을 열어주어야만 밖으로 나갈 수 있었고, 달력이 제공되지 않아 날짜에 대한 감각을 유지할 수 없었으며 용변을 포함해, 24시간 일거수 일투족이 CCTV로 감시되는 곳이었다.
이런 곳에서 국가정보원 조사관들은 홍강철씨가 원하는 진술을 하지 않을 경우 폭언과 욕설을 일삼았고  책상을 발로 걷어찼으며 오랫동안 서 있게 하기도 했다. 자백을 해도 불이익이 없다고 했고 담배 제공의 대가로 자백을 종용하기도 했다. 같은 질문을 며칠씩 계속 물으면서 진이 빠지게 만들고, 힌트를 주어 진술을 하게 했다. 6개월의 긴 독방 조사기간 동안 허위 자백과 번복을 계속하던 홍강철씨는 ‘북한에 있는 가족을 데려다주겠다’는 합신센터 간부의 약속에, 자신이 북한 보위사령부의 지시로 남파된 간첩이라고 최종적으로 허위 자백했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의 피해자 유우성 씨의 동생 유가려 씨도 합동신문센터에서 6개월 동안 강압 조사를 받은 뒤  ‘오빠가 간첩’이라고 허위 자백한 바 있다. 그러나 유가려 씨는 결국 ‘국정원의 강압에 허위 자백을 했다’고 폭로했고 서울중앙지법은 이를 인정해 무죄를 선고했다. 
국정원은 유우성씨에 대한 항소심 재판이 진행되는 도중에도 1심 판결을 뒤집기 위해 중국의 공문서인 출입경기록을 위조하는 범죄를 저질렀다. 
홍강철 씨 간첩 조작 사건은 바로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 씨 간첩 조작 사건의 1심 무죄 선고(2013년 8월 22일) 후 항소심이 진행되던 중에 발생했다. 결국 홍강철 씨 사건은 국정원의 간첩 조작이 한 번의 실수가 아니었다는 것과 단순 탈북자를 간첩으로 만들어내는 ‘간첩제조 공정'이 합신센터 내에서 계속해서 가동돼왔다는 것, 그리고 다른 더 많은 피해자가 있을 수 있음을 알려 준다.

탈북자 위장 간첩 사건 전수조사 필요성 높아져

2010년 이후 국정원 중앙합동신문센터(현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에서 조사 과정에 적발돼 간첩으로 확정 판결을 받은 사건은 10여 건에 이른다.  이 가운데 뉴스타파가 취재를 통해 사실 여부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한 사건도 여러 건이다. 
대표적인 것이 북한 보위사령부에서 준 ‘거짓말탐지기를 속이는 패치'를 붙인 채 합신센터의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통과했다는 또 다른 ‘북한 보위사 직파 간첩 사건'이다. 홍강철 씨의 변호인 박준영 변호사는 이 사건을 언급하면서 “피해자인 이혜련 씨에 대한 재심이 진행되어야 한다. 열네 번째 자백인 홍강철 씨 사건 이전에 있었던 열 세 번의 자백 중에도 간첩조작 사건이 더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법원 무죄 확정 판결 후 홍강철 씨와 변호인단
탈북자가 합신센터에서 조사를 받다가 자살을 한 사건도 있었다. 국정원은 지난 2011년 12월 한 탈북자가 합신센터에서 간첩이라는 자백을 하고 자살했다고 짧은 보도자료를 냈는데 그 시점은 이미 탈북자가 사망한 지 2주가 지났을 때였고, 한 언론이 이 사건에 대한 취재를 시작한 뒤였다. 뉴스타파의 취재 결과 국정원은 사망자를 무연고자 묘에 안장하는 과정에서 묘지 관리자인 시흥시에 사망자의 신원을 76년생 한종수라고 통보했다. 그러나 취재 결과 그의 실제 이름은 한준식이었다. 한 씨의 입국 전 행적 등 뉴스타파가 취재한 근거들을 종합하면 한 씨가 간첩이었다는 국정원 주장은 신뢰하기 어렵다.
10여 건의 탈북자 위장 간첩 사건 중에서 유우성, 홍강철 사건과 같은 간첩조작이 있을 개연성은 매우 높다. 실제로 간첩으로 유죄판결을 받고 복역까지 마친 여러 사람들이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홍강철 씨의 변호인인 장경욱 변호사는 탈북자 위장 간첩으로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들을 ‘전수조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최근 발족한 ‘진실ㆍ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이 문제에 대해 조사를 하는 것도 해결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국정원의 대공수사권 이관, 진전이지만 해결책은 아니다.

최근 국회는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을 경찰로 이관하는 국정원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그러나 간첩조작의 온상인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구 중앙합동신문센터)에서의 국정원 조사는 계속된다. 비록 조사기간을 6개월에서 3개월로 줄였고 독방 조사가 아니라 2인 1실에서 생활하도록 했지만 여전히 위험성이 있다는 우려가 많다. 
국정원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구 중앙합동신문센터)
홍강철씨는 “ 3개월이 아니라 1주일도 버티기가 힘들다. 마음 먹기 따라서는 하루 만에도 간첩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실제로 합동신문센터의 조사관들은 조사대상자에게 “입국 전의 잘못에 대해서는 처벌하지 않는다. 간첩으로 자백하면 김현희처럼 살게 해준다. 북한의 가족도 데려다 줄 수 있다.”는 등 허위자백을 유도하는 거짓말을 일상적인 수사기법으로 사용해왔다. 피조사자 입장에서는 지리하게 계속되는 신문을 피하기 위해 쉽게 허위 자백을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우선 합신센터에서 간첩을 조작해온 여러 수사관들을 강력하게 처벌하고 잘못된 수사기법을 폐기해서 증거에 입각한 간첩 수사가 이뤄지도록 바꿔야한다는 지적이 계속해서 제기돼왔다. 
최근 유우성 씨의 동생 유가려씨에게서 ‘오빠가 간첩’이라는 허위 자백을 짜낸 합신센터 수사관들을 검찰이 기소해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홍강철 씨 사건 담당 수사관들에 대한 처벌은 없었고 , 법적으로 그들을 처벌하기 위해서는 불가능에 가까운 지리한 법적 절차를 거쳐야 하는 상황이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에도 국정원이 스스로 잘못을 도려내고 관행을 바꾸는 적극적인 조치는 이뤄지지 않았다. 홍강철 씨의 변호인인 신윤경 변호사는 “국정원이 합신센터의 운영을 법이나 규정에  의거하지 않고 자의적으로 하고 있고 외부에서 개입할 수 없게 폐쇄적인 시설로 운영하는 한 간첩조작을 막기는 어렵다. 사견이지만 지금도 간첩조작은 계속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제작진
취재최승호
촬영최형석 오준식
편집정지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