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에게 호통, 거짓 요구...전관 변호사가 수사 받는 법

2019년 11월 08일 16시 56분

이른바 ‘고교동창 스폰서 사건’의 스폰서 김 씨가 자신의 한때 담당 변호사에게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해 지난 6일 승소했다. 담당 변호사는 검찰 출신 전관 박수종 변호사였다. 박 변호사는 스폰서 사건 당시 도피 중이던 김 씨의 전화번호를 검찰에 넘겼고, 관련해 위증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바 있다. 하지만 검찰은 박 변호사의 업무상 비밀누설죄 혐의에 대해 불기소처분했다. 뉴스타파가 이 사건을 취재하던 중 확보한 검찰 수사 기록에 따르면, 검찰 출신 전관 박수종 변호사는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후배 검사에게 거짓 진술을 요구하고,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조사를 받다가 화를 내며 검사실을 박차고 나갔다.

스폰서 김 씨, 박수종 변호사에 민형사 소송 잇따라 제기

뉴스타파가 지난 8월 <죄수와 검사> 5편에서 보도한 바와 같이, 박수종 변호사는 2016년 9월 4일, 한때 자신의 의뢰인이었던 스폰서 김 씨의 차명 전화번호를 수사기관에 알려 김 씨 체포에 결정적 제보를 했다. 당시 스폰서 김 씨는 영장실질심사를 미룬 채 도피 중이었다. 김 씨의 수사를 담당했던 서울 서부지검의 박정의 검사는 박수종 변호사가 김 씨의 차명 번호를 알려준 사실을 수사보고서로 작성해 남긴 바 있다. 해당 수사보고서에 따르면, 박수종 변호사는 2016년 9월 4일 서울 서부지검의 박정의 검사실에 전화를 걸어 “최근 김 씨에게 받은 전화번호가 000-0000-000이다”라며 알려주었다. 스폰서 김 씨는 다음날인 2016년 9월 5일 체포됐다.

스폰서 김 씨는 이 같은 사실을 구속 이후 재판 과정에서 뒤늦게 알게됐고, 박수종 변호사에게 민형사 소송을 잇따라 제기했다. 먼저, 2017년 2월에는 자신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박수종 변호사가 “차명 번호를 검사에게 알려준 사실이 없다”고 증언한 것에 대해 위증죄로 형사 고소했다. 스폰서 김 씨가 고소한 박수종 변호사의 위증 혐의는 2심까지 유죄 판결이 난 상태다.

지난해 7월 11일에는 업무상 비밀누설죄로도 박 변호사를 처벌해달라며 다시 형사 고소를 했다. 김 씨가 추가로 고소한 업무상 비밀 누설 혐의에 대해서 검찰은 지난해 12월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스폰서 김 씨는 이에 불복해 항고했으나 검찰은 올해 2월,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또다시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수사 기록에 드러난 전관 변호사의 수사 방해

뉴스타파는 박수종 변호사의 위증 혐의와 관련한 검찰의 수사 기록 일부를 입수했다. 이 수사 기록에는 박수종 변호사가 처벌을 피하기 위해 후배 검사에게 거짓 증언을 요구하거나, 검사에게 조사를 받다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등 전직 검사의 지위를 활용해 수사를 방해한 행태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박수종 변호사가 위증죄 혐의와 관련해 서울 중앙지검에 출석해 이상록 검사의 조사를 받은 것은 2017년 8월 24일이다. 이날 조사에서 박수종 변호사는 박정의 검사실에 전화한 사실 자체를 부인했다. 검사가 박정의 검사실의 통신수신내역을 증거로 보여주자 그제서야 “전화를 건 것 맞지만 다른 용건으로 통화했을 뿐 스폰서 김 씨의 전화번호를 알려주지는 않았다”라고 진술을 번복했다. 박수종 변호사가 이런 식으로 진술을 번복하자 수사 검사는 8월 30일, 당사자인 박정의 검사의 진술을 청취한다.

전관 변호사, 후배 검사에게 ‘거짓 확인서’ 요구

박정의 검사의 진술에서 새로운 사실이 드러났다. 박수종 변호사가 후배 검사인 박정의 검사에게 ‘거짓 확인서를 작성해달라’고 요구한 사실이다. 박정의 검사에 대한 진술 청취 수사보고에 따르면, 박수종 변호사는 박정의 검사에게 “본인이 김 씨의 전화번호를 알려준 사실이 없다는 취지의 확인서를 작성해달라”고 요청했다. 뿐만 아니다. 박수종 변호사는 후배인 박정의 검사에게 “김 씨의 전화번호를 알려준 것이 어떻게 증거로 제출되었느냐”며 항의했으며 “법정에서는 일단 알려준 사실이 없다고 증언했다” 며 위증죄를 시인하는 듯한 발언도 했다. 본인이 법정에서 위증을 했으니 거기에 맞춰 거짓 확인서를 작성해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이는 증거인멸 교사 혐의에 해당할 수 있는 발언이다.

▲ 박정의 검사 진술청취 보고 문서 중 일부. 여기서 피의자는 박수종 변호사다.

거짓말 드러나자, 화내며 검사실 박차고 나가

박수종 변호사의 또다른 거짓말도 드러났다. 박수종 변호사는 첫 번째 신문에서 “박정의 검사실에 전화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하다 “전화를 한 사실은 있으나, 번호를 알려주기 위해 전화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을 바꿨는데, 이를 설명하기 위해 또다른 거짓말도 꾸며낸 것이다. 즉, 박정의 검사와 통화하기 전날 밤 박 검사의 상관인 김도균 부장검사와 먼저 수사와 관련한 통화를 했고 이후 수사와 관련해 추가적인 이야기를 하기 위해 박정의 검사실에 전화를 걸었다는 것이다.

2016년 9월 3일 밤에 김도균 부장검사로부터 먼저 저의 휴대폰으로 전화가 와 자신들이 김 씨를 쫓고 있는데 김 씨를 검거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취지의 부탁을 하였습니다. 김도균 부장검사에게 김 씨에 대해 말을 하지 못한 부분이 있어 그것을 말하기 위해 다시 전화한 것 같습니다.

박수종 변호사 피의자 신문조서 중

하지만 이마저도 사실이 아니었다. 두 번째 피의자 신문이 진행됐던 2017년 9월 5일, 수사검사는 박수종 변호사의 통화내역을 증거로 제시했다. 박수종 변호사의 통화내역에는, 그의 주장과 달리 김도균 부장검사와의 통화내역이 존재하지 않았다. 객관적인 증거 앞에 또 거짓말이 드러나자 박수종 변호사는 뜻밖의 반응을 보였다.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이냐”며 화를 냈고 “마음대로 처리하라”고 하면서 조사실을 박차고 나간 것이다. 수사 검사는 이 때문에 신문조서에 박수종의 서명 날인을 받지 못했다며 박수종 변호사의 황당한 반응을 수사 보고로 남겼다. 실제로 검사가 작성한 박수종 변호사의 신문조서에는 피의자의 서명 날인을 받지 못해 서명란이 비워져 있다.

▲ 피의자(박수종 변호사)의 서명을 받지 못한 경위를 작성한 수사 보고 문건

▲ 제2회 피의자신문조서 수사과정 확인서에 피의자의 서명날인이 비워져있다.

법원 “박수종 변호사, 스폰서 김 씨에게 7백 만 원 지급하라”

스폰서 김 씨는 지난해 7월 “자신의 차명 번호를 수사기관에 유출해 입힌 정신적 피해를 보상하라”며 박수종 변호사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소송에서 일부 승소했다. 서울중앙지법(이대경 판사)은 지난 6일, 스폰서 김 씨가 박수종 변호사에게 3천만 원을 배상하라며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7백 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형사사건 의뢰인이었던 김 씨의 신뢰를 저버린 박수종 변호사의 행위로 김 씨가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입은 사실은 명백하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이와 함께 검찰이 앞서 불기소한 업무상 비밀누설 혐의까지 모두 인정했다.

제작진
취재기자김새봄 심인보 김경래
촬영기자정형민 오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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