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뉴스 '익명 소스' 종류만 수백 개...'아무말 대잔치'

2021년 07월 05일 10시 00분

2021년 7월 27일은 한국전쟁 정전협정 68주년이 되는 날이다. 이날 포성은 멎었으나 전쟁은 아직 공식적으로 끝나지 않았고, 남북한 평화 프로세스는 여전히 교착 상태다. 상호 신뢰 회복이 중요하지만 한국언론의 무분별한 북한 보도는 종종 대화의 걸림돌이 됐다. 걸핏하면 북한 최고지도자를 ‘죽였다가 살렸고’, 고위 인사 처형설과 같은 대형 오보를 내놨다. 핵 관련 소식, 북한 내부 동향 뉴스에서도 ‘묻지 마’식 보도행태를 끝없이 이어가고 있다. 북한 관련 뉴스는 과연 누가 만들고, 어디까지 믿을 수 있는 것일까. 뉴스타파는 국내 22개 언론사의 북한 관련 기사 1년치, 8만여 건을 전수 분석해 북한 뉴스 ‘소스’를 추적하는 <북한 뉴스 해부 - 누가 북한 뉴스를 만드는가> 프로젝트를 시작한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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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소스’에 기반한 북한 관련 뉴스의 수준

2020년 4월 21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건강 이상설이 급격히 확산됐다. 하루 전 북한전문매체라는 ‘데일리NK’가 김 위원장이 심혈관계 수술을 받았다고 보도한 데 이어, 21일 미국의 보도채널 CNN이 중태에 빠졌다는 뉴스를 내보내면서 부터다.
두 매체의 기사 모두 익명의 ‘소스’를 근거로 했다. 데일리NK는 ‘북한 소식통’, CNN는 ‘미국 당국자’(a US official with direct knowledge)’를 인용했다. 출처가 명확하지 않았는데도 이 뉴스는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그리고 10여 일이 지난 5월 2일 북한언론에 김정은 위원장의 멀쩡한 모습이 공개되면서 ‘김정은 건강 이상설’은 없던 일이 됐다. 
소식통, 당국자, 관계자 등의 단어로 표현되는‘익명 소스’는 북한 관련 뉴스에서 자주 등장하는 취재원이다. 민감한 팩트의 출처를 보호할 필요가 있는 외교안보 기사의 특성 때문만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오히려 익명의 취재원을 내세우고 그 뒤에 숨어 북한을 보는 시각을 오도하는, '아니면 그만'식의 보도행태를 자주 볼 수 있다. 일부 매체가 '익명 소스‘를 인용해 내보낸 김정은 위중설’을 다른 언론이 확인 취재나 교차 검증 없이 그대로 퍼나른 것이 단적인 예다. 

‘김정은 사망설’에 ‘무속인’까지 등장시킨 MBN

지난해 김정은 건강 이상설이 확산하던 당시, 종편 MBN은 한 무속인 유튜버가 김 위원장을 두고 '단명할 사주'라고 발언한 것도 기사화 했다. 
뉴스타파는 <북한 뉴스 해부 - 누가 북한 뉴스를 만드는가>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구축한 1년치 북한 관련 기사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2020년 4월 21일(데일리NK 첫 보도)부터 5월 2일(김정은 언론에 등장)까지 12일 동안 22개 언론사(조선일보·동아일보·중앙일보·한겨레신문·경향신문 ·서울신문· 세계일보· 문화일보· 한국일보· 국민일보·KBS· SBS· MBC·TV조선· JTBC· 채널A ·MBN·연합뉴스 ·뉴스1 ·뉴시스·YTN· 연합뉴스TV)가 보도한 북한 관련 기사를 추려봤다. 1년치 전체 기사 2만3천여 건 가운데 이 시기 생성된 기사는 모두 1348건으로 집계됐다. 김정은 위원장의 중태설을 다룬 CNN을 인용한 기사부터  청와대 관계자 등 각종 ‘관계자’의 발언 보도, 김 위원장 원산 체류설, 김여정 후계설까지 다양한 기사가 나왔다.
1348건 가운데 가장 문제가 되는 기사는 별도의 확인 과정이나 교차 검증 없이 김정은 위중설을 그대로 재생산하고 확대한 것들이다. 이런 기사는 건강 이상설을 넘어서 ‘유고설’, ‘사망설’까지 이어졌다. 이런 유형의 기사는 1348건 가운데 222건으로 집계됐다.
언론사 별로 보면 종편채널 MBN은 이 가운데 44건을 생산해 1위를 차지했다. 2위는 17건을 생산한 연합뉴스다.
김정은 위중설이 등장했다가 소멸된 이 12일 동안 MBN이 생산한 기사들은 북한 관련 뉴스를 다루는 한국언론의 수준을 잘 보여준다. MBN은 한 무속인인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김 위원장의 생년월일만 듣고 “살이 많이 찐 사람이냐”, “명이 짧은 사주다” 등의 발언을 한 내용을 두 시간 간격으로 보도했다. 
“김 위원장은 혼자 일어나 걸을 수 없는 상태”라는 태영호 당시 국회의원 당선자의 발언과 “김 위원장의 사망을 99% 확신한다”는 지성호 국회의원 당선자의 발언도 시차를 두고 여러 번 기사화 했다. 
이밖에 김 위원장이 “심혈관 수술을 받은 게 맞는 것 같다”는 윤상현 당시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의 발언과 김 위원장이 식물인간 상태고, 북한이 섭정 체제에 들어갔으며, 김여정이 공식 후계자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등의 무분별한 추측 기사도 마구 보도했다.
연합뉴스는 4월 21일 당시 CNN의 보도나 윤상현 국회 외통위원장의 보도 등을 ‘속보’와 ‘종합’, ‘종합2보’ 식으로 여러 건 기사화 했다. 

‘관계자’가 전체 ‘인물 소스’ 중 2위 

‘김정은 위중설’은 단적인 사례일 수 있다. 하지만 북한 관련 기사 1년치 전체를 살펴봐도 익명의 ‘소스’가 매우 자주 등장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뉴스타파가 <북한 뉴스 해부>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첫 순서로 ‘익명 소스’를 다루는 이유다. 
취재진은 2만 3천여 건의 북한 기사 데이터베이스에서 어떤 인물이 가장 많이 ‘소스’로 나오는지 집계했다. 1위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으로 나왔다. 실명 소스다. 2위는 ‘관계자’였다. 익명 소스다. 트럼프가 당시 미국 현직 대통령이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한국언론이 북한 관련 기사를 쓸 때 가장 많이 의존한 핵심 취재원은 사실상 ‘관계자’였던 셈이다. ‘관계자’와 함께 역시 익명 소스인 ‘당국자’는 6위, 이 보다 더 모호한 범위의 익명 소스인 ‘소식통’은 18위로 집계됐다. 
뉴스타파는 국내 22개 언론사의 최근 1년치(2020.4.~2021.3.) 북한 관련 기사 가운데 ‘익명 소스’를 인용한 기사를 추려냈다. 2만 3천여 건 중 1781건이 나왔다. 기사에 한 번이라도 명확하게 ‘관계자’, ‘당국자’, ‘소식통’ 등의 익명 소스가 등장하는 경우다.  
취재진은 특정 기사가 실제는 익명 소스에 기반했더라도 기사에 ‘소스’가 명확하게 표기돼 있지 않은 경우엔 데이터 집계에서 뺐다.
예를 들어 CNN이 보도한 ‘김정은 건강이상설’ 뉴스의 경우 어떤 언론사는 “CNN에 따르면 ‘익명의 미국 당국자’가 김정은 위원장이 수술 후 중태에 빠졌다고 말했다”라고 쓴 반면, 다른 언론사는 단지 “CNN에 따르면 김정은 위원장이 수술 후 중태에 빠졌다”라고 보도해 CNN이 거론한 ‘소스’는 생략한 사례들이 발견됐다. 취재진은 데이터 입력 시 임의적 해석을 최대한 배제하기 위해 각 기사에 나오는 ‘소스’를 해당 기사 내용 그대로 반영했고, 앞서 예시한 사례에서 후자의 경우와 같은 기사는 입력에서 제외됐다.
다시 말해 실제 ‘익명 소스’에 기반한 북한 관련 기사는 뉴스타파가 데이터로 집계한  1781건보다 훨씬 더 많다는 의미다. 
‘익명 소스’에 근거한 북한 관련 기사를 분류해 보면 몇가지 패턴이 보인다. 기사의 핵심 내용을 익명 소스에 의존하는 경우와 어떤 북한 상황을 익명의 논평을 받아 설명하는 경우, 그리고 ‘청와대 관계자’나 ‘통일부 당국자’식으로 특정 기관 인사의 발언을 익명 보도하는 경우 등이 있다. CNN 등 외신이 ‘익명 소스’를 인용해 보도한 것을 그대로 베껴 쓰는 경우도 많다. 

수백 가지 ‘익명 소스’의 향연

북한 관련 기사에 나오는 ‘익명 소스’를 하나씩 보면, 표현 방식이 그야말로 가지각색이다. ‘관계자’, ‘고위 관계자’, ‘핵심 관계자’부터 ‘소식통’, ‘외교소식통’, ‘대북소식통’, ‘한미일 소식통’, ‘한미관계 소식통’, ‘한국 정부 관계자’, ‘익명의 관계자’, ‘미국 정부 관계자’, ‘익명의 미국 관리’, ‘고위 외교관’, ‘중국 관계자’ 등이 대표적이다. 
취재진은 뉴스타파가 구축한 북한 관련 기사 데이터베이스에서 ‘익명 소스’를 표현하는 용어를 무려 229개나 확인할 수 있었다. 
북한 기사 중 '익명 소스' 빈도 1위는 관계자(481회), 2위는 당국자(281회) 3위는 소식통(138회) 4위는 고위관계자(112회) 5위는 고위 관리(65회)였다.

익명 소스도 ‘등급’이 있다...'완전 정체 불명' 소스가 27% 

한국언론이 언급하는 ‘익명 소스’ 중에는 그래도 소속 기관 정도는 파악할 수 있는 소스가 있다. ‘청와대 관계자’, ‘청와대 핵심 관계자’ 등이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소식통’, ‘관련 사정에 밝은 소식통’, ‘북한 전문가’, ‘북한 관계자’ 등으로 표기된 소스도 많이 나왔다. 이런 익명 표현은 정체가 뭔지 짐작하기도 힘들다. 실재하는 인물인지도 의심스럽다. 또한 ‘전언’, 즉 ‘전해지는 말’을 인용한 기사도 있었다.
소속기관이 명시되지 않은 '익명 소스' 순위. 1위 소식통(81회) 2위 대북 소식통(62회) 3위 외교 소식통(51회) 4위 복수의 소식통(37회) 5위 복수의 관계자(36회) 6위 북한 소식통(30회) 7위 한미일 소식통(21회) 8위 북한 내 소식통(19위) 9위 베이징 소식통(12위) 10위 북중 관계 소식통(10회)
뉴스타파가 구축한 1년치 북한 기사 데이터베이스에서 ‘익명 소스’는 모두 2134건이 나온다. 기사 건수로 보면 1781건이다(한 기사에 ‘익명 소스’가 복수인 경우가 있음). 이 가운데 소속 기관 등 소스의 정체를 최소한이라도 파악할 수 있는 정보도 전혀 명시되지 않은 ‘소스’는 전체의 27%가량으로 집계됐다.   

‘익명 보도’의 주인공

그렇다면 이 같은 ‘익명 소스’가 만들어내는 북한 관련 기사는 과연 어떤 기사이며, 또 유독 정체 불명의 소스를 자주 활용하는 매체는 어디일까. 외신이 ‘익명 소스’를 인용해 일방적 보도를 하는 경우는 얼마나 되고, 또 한국 매체는 이러한 내용을 교차 검증 없이 얼마나 재생산하고 있을까. 오는 7월 8일 후속 보도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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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 수집, 이렇게 했습니다
뉴스타파 취재진은 “북한산(혹은 북한강)이 보이는 아파트 시세…” 등의 기사, 또는 북한군을 등장인물로 하는 특정 드라마 소개 기사 등 ‘북한’이라는 키워드로 검색은 되지만 북한 소식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기사와 날씨 기사, 사진 기사는 최종 데이터베이스 구축 과정에서 제외했습니다.  
북한 관련 기사에 등장하는 소스, 즉 취재원은 언론사, 인물, 기관 등 세 가지로 나눠 입력했습니다. 소스를 ‘언론사’ 유형에 입력한 경우는 외신 등 다른 매체를 인용한 기사에 해당됩니다. ‘인물’ 유형에 입력한 경우는 기사에 특정 인물의 발언을 인용 보도한 경우, ‘기관’은 특정 기관의 발표 내용이나 보도자료가 인용된 경우 해당 기관을 입력했습니다. 
한 기사에 등장하는 소스가 복수인 경우 가능한 한 전부 입력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인물과 기관의 경우 한 기사에서 최대 7개까지, 매체 인용의 경우 2개까지 입력했습니다.
두 달간에 걸친 북한 기사 데이터 입력을 마친 후에는 최종 분석 대상 기사를 다시 걸러내는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이때 다시 “북한 같다”는 등의 비유가 들어간 기사 등 ‘북한’이 단순 언급된 기사는 제외했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23,235건의 북한 관련 기사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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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진
데이터최윤원
데이터 입력황다예 이준엽 김이향 이종현
촬영오준식 신영철 이상찬
편집박서영
CG정동우
디자인이도현